그림책에서 빗소리가 들려올 때
유리 슐레비츠의 『비 오는 날』과 쇼팽(Frederic Francois Chopin, 1810~ 1849)의 전주곡(Preludes)
늦은 봄이라 해야 할까 혹은 이른 여름이라 해야 할까? 하여간 지난 오월 말, 나는 병산 서원에 갔었다. 하회(河回)란 옛이름이 고스란히 보여주듯이 굽이져 흐르는 낙동강가에 위치한 병산 서원은 1,572년 서애 류성룡이 지은 사액 서원이다. 휘감아 도는 물줄기를 따라서 7폭 병풍 모양인 ‘병산’이 야트막한 산자락의 그림자를 강물에 담그고 있고, 그 강줄기가 씻어낸 모래들이 제법 너르게 자리잡고 나란히 누워있는 곳, 바로 그 곳에서 병산 서원은 약 500년의 세월을 아랑곳 않고 서있었다. 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인 만대루(晩對樓)에 앉아서 병산과 그의 그림자를 안고 있는 풍만한 여인 같은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새 바람에 실려 잡념마저 떠나고 난 자리에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하는 내가 아니었다. 자연이 서원을 품은 것인지, 서원이 자연을 끌어안은 것인지, 자연인지 서원인지가 사람마저 그 속으로 끌고 들어가 오래된 병풍 속 어느 귀퉁이에나 내가 있을 법했다. 그 때, 갑자기 불어 닥친 거친 찬 기운이 아니었다면, 나는 병풍 속에 빠진 채 그렇게 시간을 잊고 있었을 게다. 땅거미가 내리는 시간을 가르고 하늘에서 ‘후두둑’ 소리가 들려오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래 사장에 내려 와봐!” 비가 바람에게 전갈을 전했다. “그래, 내려가 볼께!” 나는 홀린 듯 모래 사장으로 내려가, 젖어 드는 서늘한 모래에 두 발을 파묻었다. 발 아래로 젖은 모래들이 굳어지는 줄도 모른 채, 지상에서의 짧은 인연의 덧없음을 아쉬워하면서!
마요르카 섬에서의 사랑
빗소리에 눈을 떴다. 촉촉한 공기 입자 속에 수증기가 시원하게 살갗에 닿는 느낌이다. 잠을 깨울 만큼 시끄럽게 땅을 치는 세찬 비도 아니었지만, 내가 눈을 뜬 시간은 이미 오전이 거의 지난 점심 때 즈음이었다. 빗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자니 지난 오월 병산 서원에서 ‘다시 오자’ 약속했던 그 사람이 빗 속에 서있을 것만 같다. 지상에서의 모든 것에는 유효 기간이 있고, 사랑마저 그러한 것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을까? 마요르카 섬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창작의 원천이 되어주었던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떠들썩한 사랑도 지상에서는 영원할 수 없었던 것인데…. 나는 그렇게 나를 위로하기로 한다.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요란한 것인지는 두 사람의 사랑이 실제로 별스러워서라기 보다는 스캔들을 달고 다닌 상드의 남성편력과 그 두 사람이 예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19세기의 인물이란 점에서 더욱 과장되어 전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 1936년 17세의 폴란드 소녀 마리아 보진스카와의 비밀 약혼이 깨어지게 되자 실연의 상처를 달랠 곳이 필요했던 쇼팽에게 집요하게 접근했던 것은 상드였다. 여섯 살 연상에다 ‘여성 돈 환’이란 별명까지 달고 다닌 상드를 달가워하지 않은 것은 소심한 성격의 쇼팽의 성격으로 보아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당시 시인 뮈세와 결별한 상태였던 상드에게 쇼팽의 천재적 음악성과 우아하고 병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성격은 어떤 식으로든 쇼팽을 사로잡고 싶은 욕망을 부추겼고, 결국 상드의 치밀하고 집요한 2년간의 구애 끝에, 1838년 두 사람은 마요르카 섬으로 사랑의 도피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마요르카 섬에서의 이들이 나눈 사랑과 열정, 끝없는 예술에의 갈망과 죽음 앞에서의 몸부림은 쇼팽과 마찬가지로 폴란드 태생인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이 1991년도에 발표한 영화 <쇼팽의 푸른 노트(La Note Bleue)>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그들이 선택한 마요르카(Majorca) 섬은 스페인 본토에서 60마일 정도 떨어진 발레아레스 제도의 16개의 섬들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울창한 수풀과 따사로운 햇빛이 어우러져 있는 곳은 소문에 지친 그들에게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울퉁불퉁한 해안선을 따라 있는 절벽들과 키 큰 소나무들과 곱향 나무들은 육지에서 행여라도 들여올지 모르는 소문을 차단시켜주고, 그들이 섬에서 어떤 사랑을 나누든 보이지 않도록 가려주었다. 처음 마요르카 섬에 도착한 쇼팽은 전해지는 쇼팽의 편지들에 의하면 꽤 행복했던 것 같다. 그러나 천국이 지옥으로 변하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이 섬에 도착한 지 일주일 후부터 비는 쉴 새 없이 퍼붓기 시작했고, 집 안은 언제나 눅눅해서 폐결핵을 앓고 있던 쇼팽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당시만 해도 폐결핵은 몹쓸 전염병처럼 생각되었기에 집주인은 두 사람이 집을 비워줄 것을 요구했고 쫓겨난 두 연인은 마요르카 섬의 서부 지역에 위치한 발데모사(Valldemossa)라는 마을의 수도원으로 거처를 옮겨야만 했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발데모사에서 다시 햇빛을 쬘 수 있게 된 쇼팽은 어느 정도 심신의 건강을 회복하고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우리는 허물어져가는 수도원의 한 구석 방을 빌렸다네. 벼랑과 바다 사이에 자리 잡은 이끼 낀 수도원, 파리의 성문보다 더 큰 문이 달리 방에서 우리는 살고 있지. 흐트러진 머리를 손질도 안하고 언제나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지내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게나. ….(중략)… 방 안에는 세모꼴의 책상이 하나 있고, 그 위에는 낡은 촛대와 바흐의 악보, 그리고 내 새 작품의 스케치가 놓여있을 뿐이라네. 그리고 이 것이 내 전 재산이라네.”(네이버 카페 ? 클래식 애기- 중에서 재인용)
그러나 그의 건강은 자연의 포근함에도 불구하고, 점점 악화되었다고 전한다. 그들의 거처였던 수도원의 방은 갖가지 비극이 휩쓸고 간 듯 괴괴한 이야기의 무대와 같았을 것이고, 벽을 이루는 돌 들 사이에 낀 이끼들은 습한 기운은 가뜩이나 폐가 좋지 못한 쇼팽의 들숨에 불행의 먼지들을 품어냈을 것이다. 잠시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쇼팽이 쓴 위의 편지를 바탕으로 하나의 장면을 그려보자.
‘늦은 밤에도 귀신처럼 머리를 흩트리고 마요르카 섬에서 옮겨온 피아노 앞에 앉아 악상이 떠오를 때면 악보에 옮기는 병약한 서른 중반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축축한 방안 공기에 촛불마져도 흐릿해진 수도원의 음습한 방에서, 몸의 고통을 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작곡에 몰두하고 있는 가난한 작곡가이다. 그리고 아픈 연인을 위해 3마일쯤 떨어진 마을로 약을 사러 나갔다가 쏟아지는 빗속을 헤치고 돌아온 여인이 저 큰 문을 열고 들어온다. 초췌한 모습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를 치고 있던 남자는 자신의 연인이 돌아온 것도 의식하지 못한다. 한참 만에야 그늘진 웃음을 보이며 남자가 입을 뗀다.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이 곡을 작곡했지.’라고 말하는 남자의 눈에는 눈물이 그득하다.’
어디까지나 위의 묘사는 조르주 상드의 『나의 생애』를 바탕으로 그 유명한 [빗방울 전주곡]이 탄생한 밤의 모습을 스케치해 본 것이다. 상드의 책에 의하면 어느 폭풍우 치던 밤 쇼팽은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이 곡을 작곡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조르주 상드가 만년에 지은 『나의 생애』에서 밝힌 이 곡의 탄생 배경은 미화되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불행하게도 쇼팽을 위해서는 베토벤의 전기를 그린 알렉산더 타이어 같은 전기작가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리스트나 슈만이 회고하는 쇼팽, 그리고 쇼팽 문헌의 결정판으로 인정되는 프레데리크 니크스의 쇼팽 전기 등에 의존하여 이야기를 짜맞출 수 밖에 없다.
그림책 속의 [빗방울 전주곡]
곡 전체를 통해 들려오는 A-flat(혹은 G-sharp)음 때문에 [빗방울 전주곡]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 곡은 비오는 날의 분위기와 사뭇 잘 어울린다. 창문 밖으로 비 오는 거리를 내다보거나, 처마 밑에 서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듯한 분위기가 이 곡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작부분의 가랑비 같은 살포시 내리는 음의 전개는 돌연 중간부에서 c-sharp 단조로 전조되면서 먹구름이 낀 어두운 하늘 아래 무겁게 내리는 빗줄기를 연상시킨다. 그러다 다시 A-flat의 주제음으로 다시 빗줄기가 가늘어지면서 짧은 5분 정도의 곡은 끝을 맺는다.
폴리니(Maurizio Pollini)가 연주하는 [빗방울 전주곡]을 듣고 있던 중, 나는 조용히 내 방의 그림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쇼팽처럼 폴란드에서 태어났지만,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으로 프랑스로 이주했던 유리 슐레비츠의 그림책이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1935 년, 바르샤바에서 태어났지만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을 피해 1,939년 유럽을 떠돌게 되었다. 그러다 13살에 파리에 정착하고 어둡고 조용한 서점에 주저앉아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면서 유랑의 서러움을 달랠 수 있었다고 한다. ‘고향을 상실한(지금은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 그림책 작가에게 평생 고향 폴란드를 마음에서 지울 수 없었던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불현듯 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왜냐하면 유리 슐레비츠는 쇼팽이 음악으로 그려낸 바 있는 비오는 날의 서정을 그림으로서 『비 오는 날』에서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은 연노랑, 연두, 파랑을 주조로 한 수채화가 잔잔하고 차분하게 비 오는 날의 서정을 전달해 주는 책이다. 촉촉하게 스며드는 비의 감촉과 향긋한 냄새, 그리고 비로 인해 외부 세계와 격리된 공간에서 느껴지는 나만의 존재감이 잔잔하게 표현되어 있다. 비의 색깔이 투명하듯, 그림들 하나 하나가 투명하다. 또한 빗줄기가 직선이나 사선으로 내리듯, 바탕색 위로 가는 직선과 사선의 처리로 비의 질감이 잘 느껴진다.
책의 첫 장, 그러니까 제목이 적힌 아래로 빗방울이 흘러내리는 유리창이 보인다. 수막현상 때문에 창 너머의 것들이 보이지 않는 뿌연 창이다. ‘그럼 창이 있는 방에는 누가 있을까?’ 궁금하다. 책장을 넘기면, 한 소녀가 다락방에서 ‘통통’ 튕기며 울리는 지붕 위의 빗소리를 들으며 상념에 잠겨있다. 방안이 조금은 쌀쌀한지 소녀는 옷소매를 늘어뜨려 손을 덥고 옷자락으로 발을 감싼다. 소녀의 옆에는 아직 잠이 덜 깬 고양이가 몸을 움크리고 졸고 있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탁탁 두드리고, 지붕 위로도 투두둑 툭툭 떨어져. 온 마을에 비가 내리고 있어.” 소녀가 고양이에게 속삭인다. 한편 홈통을 타고 내려온 비는 ‘쏴아’하고 길바닥을 따라 흘러간다. 소녀는 갑갑했던지, 잠시 비가 그친 사이 좁은 마당에 나간다. 비가 고여 생긴 웅덩이에 종이배 하나 정도는 띄울 수 있을 것 같다. 비는 소녀가 사는 좁은 골목과 건물 위에만 내리는 것은 아니다. 비는 새의 날개도 개구리의 등도 적신다. 언덕 위도 바위 위도 비의 세례를 받는다. 만약 장대같이 굵은 비가 내린다면 냇물도 쉴 새 없이 조잘거리거나 꾸룩꾸룩 소리를 내며 개울을 굽이돌아 강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바닷물에 합류하면, 어느 몹시 더운 여름날 다시 하늘로 증발해 버리겠지만!
그림책은 비가 와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소녀의 상상을 따라 바다로 까지 흘러간다. 이처럼 『비 오는 날』에서 소녀는 마음의 망원 렌즈를 통해 꼼꼼하게 비를 품은 자연을 내다보고, 유리 슐레비츠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은 채 절제된 그림에 담아내고 있다. 물기 어린 듯 촉촉한 연노랑, 연두, 파랑의 그림은 아직도 종이에 마르지 않은 물기가 배인 듯한 착각을 자아낸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 마치 언어를 절제하고 있는 단편 영화 한 편을 본 듯하다.
가는 선들의 눅눅한 번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림은 석판화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동양화에서 본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사실 어떤 기법으로 그렸는지는 그림책을 전공하려는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그다지 중요하지 는 않을 듯싶다. 오히려 작가가 선택한 미술적 방법론 보다는 한시(漢詩)에서 영감을 얻어 이 그림책을 만들었다는 것이 나와 같은 그림책 독자에게는 유리 슐레비츠가 말을 아끼고, 여백의 미를 살려낸 목적이 무엇일지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해준다 하겠다. 일본의 어린이 문학 비평가인 하라 쇼가 이 그림책을 두고 “리얼리즘 예술의 극치”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비 오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비 오는 날』속의 그림들이 환상처럼 느껴만 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도 내 방 창 너머로는 비가 내리고 있기 때문만일까?
쇼팽의 전주곡(Preludes) Op. 28
쇼팽은 발데모사 수도원에서 플로네이즈 A장조와 녹턴 f단조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작곡하고, 24개의 전주곡도 완성했다. 쇼팽 이전에 전주곡이란 푸가 앞에 붙는 짤막한 형식으로 도입곡으로 사용되거나 모음곡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역할로 사용된 곡을 가리킨다. 따라서 쇼팽 이전의 개념에 따르면, 쇼팽의 전주곡은 그 자체로서 독립된 음악이므로 쇼팽의 Op. 28을 ‘전주곡’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석연치 않다. 그러나 쇼팽은 그자 존경하던 바하의 [전주곡과 푸가]에서와 마찬가지로 24개 곡을 모든 조에 걸쳐 작곡하면서도, 조 Op. 28을 ‘전주곡’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석연치 않다. 그러나 쇼팽은 그자 존경하던 바하의 [전주곡과 푸가]에서와 마찬가지로 24개 곡을 모든 조에 걸쳐 작곡하면서도, 조 배열의 방법에 있어서는 바하의 스타일을 따르고 있지 않다. 바하의 [전주곡과 푸가]는 C장조에서 시작해, c단조, C sharp 단조와 같이 반음계적 상승으로 구성되어 B조로 끝나는 양식으로 되어있는 반면, 쇼팽의 [전주곡]은 C장조(전주곡 1번)으로 시작하여, 관계조인 a 단조(2번), G장조(3번), 3번의 관계조인 e단조와 같이 5도를 기준으로 짜여진 조성배열을 갖추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악보를 보면 1번부터 sharp(#)이 하나씩 늘어나 13번에 이르러 sharp이 숫자가 최대가 되고, 14번부터는 역으로 6개의 flat(b)이 점점 수를 줄여나가기 시작한다. 하여간 음악이 수학적 구조로 이루어진 추상적 영역이란 점이 이런 면에서 확인될 때면 놀랍고도 즐겁다.
1,839년 쇼팽의 전주곡이 출판되었을 때, 보들레르(Baudelaire)는 리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름 없는 사원 위를 선회하는 장엄한 새 한 마리 같다.”
또한 슈만(R. Schumann)은 전주곡에 대해 전체적인 통일감을 갖추도록 하는 것에 쇼팽이 얼마나 깊이 사로잡혀 있었는지, 이 [전주곡]에서는 모종의 불안감, 심지어 혼란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게다가 병적이고, 열에 들뜬, 가끔은 불쾌한 느낌마저 담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표현했다. 보들레르와 슈만의 평의 공통점은 [전주곡]이 갖고 있는 시적인 감흥과 회화적 이미지에 대한 지적인 것이다. 이 곡이 쓰여진 1,836년에서 1,839년 사이 쇼팽이 폐결핵 이외에도 여러가지 합병증에 시달렸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슈만의 지적이 꼭 부당하다고만은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슈만도 지적했지만, 쇼팽 자신은 24개의 개별 곡의 다양성을 묶어줄 구심점에 신경을 썼는데, 이런 노력은 그의 에튜드[Etudes]에서도 적용이 된다.
15번째의 곡인 ‘빗방울 전주곡’이 가장 널리 알려져 일반으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전주곡]의 전곡은 마요르카 섬에서 모두 작곡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르주 상드 역시 이 점에 대해서 [전주곡]의 24개의 곡 중 절반 정도는 마요르카 섬 이전에 이미 쓰여졌고, 섬에서는 쇼팽이 곡들을 다듬었을 뿐일련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이 곡을 연주할 때는 쇼팽이 의도한 ‘원심성’과 함께 각각의 곡들이 갖고 있는 ‘독립적인 회화성’을 잘 살려내야 한다. 또한 작곡 당시의 쇼팽의 내적 심상을 고려할 때,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해석이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좀 오래된 녹음이라 추천하기를 주저했던 코르토(Alfred Cortot)의 연주 음반(1933-1934, Mono, EMI)은 후자 즉 ‘독립적 회화성’의 측면에서 가장 훌륭한 음반이란 생각이 든다. 코르토가 이 곡의 연주 방식에 대해 강조했던 ‘각각의 곡에 표제를 붙여 곡 전체를 이해하라’는 말 그대로 문학적 해석이 담긴 연주이기에 낭만성 부분에 있어서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게 된 듯 싶다. 그러나 지나친 루바토의 잦은 등장으로 코르토만의 독자적인 맛과 쇼팽의 병적인 낭만(,퇴폐미,라고 해두자)은 잘 표현되어 있지만, 그가 연주에서 보여준 불안정한 템포 감각과 ‘원심성’ 획득의 실패란 차원에서는 추천을 꺼리게 된다. 그래서 [전주곡]의 스탠다드 음반으로 꼽히는 폴리니(Maurizio Pollini)가 DG에서 1974 발간한 스테레오 음반을 추천한다. 쇼팽 콩쿨 이후 한동안 잠적한 경력(?)을 갖고 있는 그는 70년대 DG로 옮기면서,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자리매김을 했다.
코르토와는 달리 폴리니의 연주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느낌이 담겨 있다. 또한 프레이즈의 강약 조절과 포르테와 피아노간의 밸런스 등에 있어서 지나치게 수학적이고 기계적이다. 그런 이유로 쇼팽의 음악이 요구하는 낭만적이고 섬세한 분위기와 일견 거리가 멀 것만 같지만, 그의 [전주곡] 연주는 쇼팽이 요구했던 바대로 각각의 곡의 독립성을 살리면서도 곡들간의 유기성을 시종일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음반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게 된다. 또한 감질나게 녹아있는 멜랑콜리, 황홀경, 분노 등의 감정적 요소는 폴리니의 손가락 안쪽으로 숨겨져 객석의 관객들의 눈으로는 확인되지 않는 그만의 마술인데, 이 음반에서도 그 마술은 펼쳐진다. 다만, 이 음반이 녹음된 70년대 중반 DG의 사운드는 다소 나무 재질의 통 속에서 울리는 느낌이라, 피아노만의 관능적인 맛이 조금 떨어진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인 점도 밝혀둔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비로 가득하다. 창문 앞에 서 있는 나무의 녹음이 비에 젖어 더욱 여려 보이고 빗소리가 최고의 음악을 선물해주고 있지만, 비 피해를 입고 보금자리를 잃었다는 사람들의 소식들이 또 들려온다. 비 피해만 없다면 비는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유익한 준재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