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 제4권
103. 차마경(差摩經)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많은 상좌(上座) 비구들은
코오삼비이[拘舍彌]국 코시타아 동산에 있었다.
그 때에 케마[差摩]비구는 코오삼비이국의 바다리카아[跋陀梨]
동산에 있으면서 큰 병을 앓고 있었는데 다아사카[陀娑]라는
비구가 병을 보살피고 있었다. 때에 다아사카 비구는
여러 상좌 비구들에게 나아가 그 비구들 발에 절하고
한 쪽에 서 있었다.
"너는 케마 비구에게 가서
'여러 상좌 비구들은 묻노니, 그대 몸은 좀 나아
안온하여 고통은 더 심하지 않는가.'고 말하라."
때에 다아사카 비구는 여러 상좌 비구들의 시킴을 받고
케마 비구에게 가서 말하였다.
"여러 상좌 비구들이 '그대 병은 좀 나은가.
고통은 더하지 않은가.'고 안부합디다."
케마 비구는 다아사카 비구에게 말하였다.
"내 병은 낫지 않아 몸이 안온하지 않으며,
여러 가지 고통은 갈수록 더해 구(救)할 길이 없다.
만일 힘 센 역사가 잔약한 사람을 붙잡아 노끈으로
머리를 동여매어 두 손으로 세게 조이면 그 고통이
심하지마는 내가 지금 겪은 고통은 그보다 더하다.
또 만일 백정이 날랜 칼로 소 배를 가르고
내장을 집어내면 그 소의 고통이 어떠하겠는가.
그러나 지금 내 배아픔은 그 소보다 더한 것 같구나.
또 마치 두 역사가 잔약한 한 사람을 붙들어다
불 위에 달아 놓고 두 발을 태우는 것과 같이
지금 내 두 발의 열(熱)은 그보다 더한 것 같구나."
때에 다아사카 비구는 여러 상좌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케마 비구가 말한 병증세를
여러상좌들에게 자세히 알리었다.
여러상좌 비구들은 다시 다아사카 비구를
케마비구에게 보내어
'세존께서는 다섯가지 <쌓임>이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어떤 것이 다섯인가. 물질이 받는 <쌓임>과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의 <쌓임>이다. 너 케마는 조금이라도
이 다섯가지 <쌓임>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관찰하여 보았는가.'고 말하게 하였다.
때에 다아사카비구는 여러 상좌 비구들의
시킴을 받고 케마 비구에게 가서 말하였다.
"여러 상좌 비구들이 너에게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다섯가지 쌓임을 말씀하시었다.
너는 조금이라도 그것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관찰하여 보았는가.'
라고." 케마 비구는 다아사카 비구에게 말하였다.
"나는 그 다섯 가지 쌓임에 대해서
그것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관찰한다."
다아사카 비구는 여러 상좌들에게 돌아가서 아뢰었다.
"케마 비구는 '나는 다섯가지 쌓임에 대해서
그것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관찰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여러 상좌 비구들은 다시 다아사카 비구를 보내어
케마 비구에게 말하게 하였다. '
너는 다섯 가지 쌓임에 대해서 그것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관찰하기를 번뇌가 다한
아라한과 같이 하는가'고. 때에 다아사카 비구는 여러
상좌 비구들의 시킴을 받고 케마 비구에게 가서 말하였다.
"비구여, 그 다섯가지 쌓임을 관찰하기를 번뇌가 다한
아라한과 같이 하는가." 케마 비구는 대답하였다.
"나는 다섯 가지 쌓임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관찰하지마는 번뇌가 다한 아라한은 아니다."
때에 다아사카 비구는 여러 상좌들에게 돌아가서 아뢰었다.
"케마 비구는
'나는 다섯가지 쌓임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관찰하지마는 번뇌가 다한 아라한은 아니라'고
말하였습니다."
때에 여러 상좌 비구들은 다아사카 비구에게 말하였다.
"너는 다시 케마 비구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는 다섯가지 쌓임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관찰하지마는 번뇌가 다한 아라한은 아니라고 말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하라."
다아사카 비구는 여러 상좌 비구들의
시킴을 받고 케마 비구에게 가서 말하였다.
"네가 '나는 다섯가지 쌓임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관찰하지마는 번뇌가 다한
아라한은 아니다'고 말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케마 비구는 다아사카 비구에게 말하였다.
"내가 다섯 가지 쌓임에 대해서 그것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관찰하지마는 번뇌가 다한 아라한은
아니라고 말한 것은, 나는 <나>라는 교만과 <나>라는
욕심과 <나>라는 번뇌에 대해서 아직 그것을 끊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떠나지도 못하고
뱉어 버리지도 못하였기 때문이다."
다아사카 비구는 여러 상좌들에게 돌아가서 아뢰었다.
"케마 비구는 '나는 다섯가지 쌓임에 대해서 그것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관찰하지마는
아라한은 아니라고 말한 것은, 다섯가지 쌓임에 대해서
<나>라는 교만과 <나>라는 욕심과 <나>라는
번뇌를 아직 끊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떠나지도 못하고
뱉어 버리지도 못하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여러 상좌 비구들은
다시 다아사카 비구를 보내어 케마 비구에게 말하게 하였다.
"너는 <나>가 있다고 말하였다.
어느 곳에 <나>가 있는가.
물질을 <나>라고 하는가. <나>는 물질과 다르다고 하는가.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을 <나>라고 하는가.
<나>는 그것들과 다르다고 하는가."
케마 비구는 다아사카 비구에게 말하였다.
"나는 '물질은 <나>다. <나>는 물질과 다르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나>다. <나>는
그것들과 다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섯가지 쌓임에
대해서 <나>라는 교만과 <나>라는 욕심과
<나>라는 번뇌를 아직 끊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떠나지도 못하고 뱉어 버리지도 못한다."
케마 비구는 다시 다아사카 비구에게 말하였다.
"귀찮게 너를 오가게 할 것 있느냐.
너는 지팡이를 가져다다오.
지팡이를 짚고 내가 직접 그 상좌들에게 가 보리라.
그 지팡이를 가져다 다오."
때에 케마 비구는 스스로 지팡이를 짚고
여러 상좌들에게로 갔다. 때에 여러 상좌들은 멀리서
케마 비구가 지팡이를 짚고 오는 것을 보고,
위에 자리를 펴고 발을 얹는 궤를 바로 놓고 스스로 나가
그를 맞이하면서 가사와 바리를 받고 자리를 권해 앉게 하고
서로 위로한 뒤에 케마 비구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라는 교만을 말한다니
어디서 <나>를 보는가. 물질이 <나>인가.
<나>는 물질과 다르다.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 <나>인가. <나>는 그것들과 다른가."
케마 비구는 아뢰었다.
"물질은 <나>가 아니요
<나>는 물질과 다르지도 않으며,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은 <나>도 아니요 <나>는 그것들과 다르지도 않다.
다만 나는 다섯 가지 쌓임에서 <나>라는 교만과
<나>라는 욕심과 <나>라는 번뇌를 아직 끊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떠나지도 못하고 뱉어 버리지도 못합니다.
그 <나>라는 것은 마치 우팔라[優癖], 파두마[鉢雲摩],
쿠무다[拘牟頭], 푼다리이카[芬陀利]꽃들의 향기와 같습니다.
즉 뿌리가 곧 향기입니까, 향기는 뿌리와 다른 것입니까.
줄기, 잎, 꽃술의 정추(精序)가 향기입니까,
향기는 그 정추와 다른 것입니까. 혹은 같은 것입니까."
여러 상좌들은 대답하였다.
"아니다. 케마 비구여, 우팔라, 파두마, 쿠무다,
푼다리이카꽃들의 뿌리가 곧 향기가 아니요 그렇다고 향기는
뿌리와 다른 것도 아니며, 또한 줄기, 잎, 꽃술의 정추가
곧 향기도 아니요 그렇다고 향기는 그 정추와 다른 것도 아니다."
"그러면 그것은 어떤 향기입니까."
"그것은 꽃향기이니라."
케마 비구는 말하였다.
"<나>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물질이 곧 <나>가 아니요,
그렇다고 <나>는 물질을 떠난 것도 아니며,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 곧 <나>가 아니요 그렇다고 <나>는
그것들을 떠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나는 다섯 가지 쌓임에서
그것은 <나>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보지마는
아직 <나>라는 교만과 <나>라는 욕심과 <나>라는
번뇌를 끊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떠나지도 못하고
뱉어 버리지도 못합니다.
여러 상좌님들은 내 말을 들으십시오.
무릇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 말미암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유모(乳母)의 옷을 빨래집에 주면 여러가지 재물로
때를 빼지마는 아직도 남은 냄새가 있을 때에는 여러가지
향기로써 쏘여 그 냄새를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다섯가지 쌓임을 떠나
그것은 <나>가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바르게 관찰하지마는 그 다섯가지 쌓임에서 아직 <나>라는
교만과 <나>라는 욕심과 <나>라는 번뇌를 끊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떠나지도 못하고 뱉어 버리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다섯가지 쌓임에 대해서 생각을 더욱 더해서
그것들의 나고 멸하는 것을 관찰해 보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물질이요 이것은 물질의 모임이며
이것은 물질의 멸함이다. 이것은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요,
이것은 그것들의 모임이며 이것은 그것들의 멸함이다'라고.
그래서 그 다섯가지 쌓임에 대해서 이렇게 그 나고 멸하는 것을
관찰한 뒤에는 <나>라는 교만과 <나>라는 욕심과
<나>라는 번뇌가 모두 없어집니다.
이것을 진실한 바른 관찰이라 합니다."
케마 비구가 이 법을 설명하였을 때, 저 모든 상좌 비구들은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눈이 깨끗하게 되었다.
그리고 케마 비구는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한 법의 기쁨과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몸의 병이 모두 없어졌다.
때에 여러 상좌 비구들은 케마 비구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그대의 첫 설법을 들었을 때에
이미 이해하고 이미 즐겨 하였거늘 하물며 다시 묻겠는가.
우리가 다시 물은 것은 그대의 미묘한 변재를 들어보기 위함이요
그대를 희롱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대는 과연
능히 여래, 다 옳게 깨달은 이의 법을 널리 설명하였다."
때에 상좌 비구들은
케마 비구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모셨다.
(一○三) 如是我聞。 一時。有眾多上座比丘住拘舍彌國瞿師羅園。 時。有差摩比丘
住拘舍彌國跋陀梨園。身得重病。 時。有陀娑比丘為瞻病者。時。陀娑比丘詣諸上座比丘。
禮諸上座比丘足。於一面住。 諸上座比丘告陀娑比丘言。汝往詣差摩比丘所。語言。諸上座問汝。身小差安隱。苦患不增劇耶。 時。陀娑比丘受諸上座比丘教。至差摩比丘所。語差摩比丘言。諸上座比丘問訊汝。苦患漸差不。眾苦不至增耶。 差摩比丘語陀娑比丘言。我病不差。不安
隱身。諸苦轉增無救。譬如多力士夫。取羸劣人。以繩繼頭。兩手急絞。極大苦痛。我今苦痛有過於彼。譬如屠牛。以利刀生割其腹。取其內藏。其牛腹痛當何可堪。我今腹痛甚於彼牛。如二力士捉一劣夫。懸著火上。燒其兩足。我今兩足熱過於彼。 時。陀娑比丘還至諸上座所。以差摩比丘所說病狀。具白諸上座。 時。諸上座還遣陀娑比丘至差摩比丘所。語差摩比丘言。世尊所說。有五受陰。何等為五。色受陰。受.想.行.識受陰。汝差摩能少觀察此五受陰非我.非我所耶。 時。陀娑比丘受諸上座比丘教已。往語差摩比丘言。諸上座語汝。世尊說五受陰。汝少能觀察非我.非我所耶。 差摩比丘語陀娑言。我於彼五受陰能觀察非我.非我所。 陀娑比丘還白諸上座。差摩比丘言。我於五受陰能觀察非我.非我所。 諸上座比丘復遣陀娑比丘語差摩比丘言。汝能於五受陰觀察非我.非我所。如漏盡阿羅漢耶。 時。陀娑比丘受諸上座比丘教。往詣差摩比丘所。語差摩言。比丘能如是觀五受陰者。如漏盡阿羅漢耶。差摩比丘語陀娑比丘言。我觀五受陰非
我.非我所。非漏盡阿羅漢也。 時。陀娑比丘還至諸上座所。白諸上座。差摩比丘言。我觀五受陰非我.非我所。而非漏盡阿羅漢也。 時。諸上座語陀娑比丘。汝復還語差摩比丘。汝言。我觀五受陰非我.非我所。而非漏盡阿羅漢。前後相違。 陀娑比丘受諸上座比丘教。往語差摩比丘。汝言。我觀五受陰非我.非我所。而非漏盡阿羅漢。前後相違。 差摩比丘語陀娑比丘言。我於五受陰觀察非我.非我所。而非阿羅漢者。我於我慢.我欲.我使。未斷.未知.未離.未吐。
陀娑比丘還至諸上座所。白諸上座。差摩比丘言。我於五受陰觀察非我.非我所。而非漏盡阿羅漢者。於五受陰我慢.我欲.我使。未斷.未知.未離.未吐。 諸上座復遣陀娑比丘語差摩比丘言。汝言有我。於何所有我。為色是我。為我異色。受.想.行.識是我。為我異識耶。 差摩比丘語陀娑比丘言。我不言色是我。我異色。受.想.行.識是我。我異識。然於五受陰我慢.我欲.我使。未斷.未知.未離.未吐。 差摩比丘語陀娑比丘言。何煩令汝驅驅往反。汝取杖來。我自扶杖。詣彼上座。願授以杖。差摩比丘即自扶杖。詣諸上座。 時。諸上座遙見差摩比丘扶杖而來。自為敷座。安停腳机。自往迎接。為持衣缽。命令就座。共相慰勞。慰勞已。語差摩比丘言。汝言我慢。何所見我。色是我耶。我異色耶。受.想.行.識是我耶。我異識耶。 差摩比丘白言。非色是我。非我異色。非受.想.行.識是我。非我異識。能於五受陰我慢.我欲.我使。未斷.未知.未離.未吐。譬如優缽羅.缽曇摩.拘牟頭.分陀利華香。為即根香耶。為香異根耶。為莖葉鬚精.麤香耶。為香異精.麤耶。為等說不。 諸上座答言。不也。差摩比丘。非優缽
羅.缽曇摩.拘牟頭.分陀利根即是香.非香異根。亦非莖葉鬚精.麤是香。亦非香異精.麤也。 差摩比丘復問。彼何等香。 上座答言。是華香。 差摩比丘復言。我亦如是。非色即我。我不離色。非受.想.行識即我。我不離識。然我於五受陰見非我.非我所。而於我慢.我欲.我使。未斷.未知.未離.未吐。諸上座聽我說譬。凡智者。因譬類得解。譬如乳母衣。付浣衣者。以種種灰湯。浣濯塵垢。猶有餘氣。要以種種雜香。薰令消滅。如是。多聞聖弟子離於五受陰。正觀非我.非我所。能於五受陰我慢.我欲.我使。未斷.未知.未離.未吐。然後於五受陰增進思惟。觀察生滅。此色.此色集.此色滅。此受.想.行.識。此識集.此識滅。於五受陰如是觀生
滅已。我慢.我欲.我使。一切悉除。是名真實正觀。 差摩比丘說此法時。彼諸上座遠塵離垢。得法眼淨。差摩比丘不起諸漏。心得解脫。法喜利故。身病悉除。 時。諸上座比丘語差摩比丘言。我聞仁者初所說。已解已樂。況復重聞。所以問者。欲發仁者微妙辯才。非為嬈亂汝。便堪能廣說如來.應.等正覺法。 時。諸上座聞差摩比丘所說。歡喜奉行。
상윳따니까야 제3권 오온을 위주로 한 가르침
S22 무더기(존재의 다발,蘊) 상윳따
케마까 경(S22:89)
Khema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많은 장로 비구들이 꼬삼비에서 고시따 원림에 머물렀다.
2. 그 무렵 케마까 존자는 도기공의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 장로 비구들은 저녁 무렵에 삼매에서 깨어나 일어나 다사까 존자를 불러서 말했다.
3. “이리 오시오, 도반 다사까여. 그대는 케마까 비구에게 가시오. 가서는 케마까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시오. ‘도반이여, 장로 비구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도반이여, 어떻게 견딜만합니까? 그대는 편안합니까? 괴로운 느낌이 물러가고 더 심하지는 않습니까? 차도가 있고 더 심하지 않다는 것을 알겠습니까?’’라고.”
4.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반들이여.”라고 다사까 존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대답한 뒤 케마까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케마까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이여, 장로 비구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도반이여, 어떻게 견딜만합니까? 그대는 편안합니까? 괴로운 느낌이 물러가고 더 심하지는 않습니까? 차도가 있고 더 심하지 않다는 것을 알겠습니까?’라고.”
“도반이여, 나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편안하지 않습니다. 괴로운 느낌은 더 심하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습니다. 더 심하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는다고 알아질 뿐입니다.”
5. 그러자 다사까 존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케마까 비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도반이여, 나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편안하지 않습니다. 괴로움이 더 심하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습니다. 더 심하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는다고 알아질 뿐입니다.’라고.”
“이리 오시오, 다사까여. 그대는 케마까 비구에게 가시오. 가서는 케마까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시오. ‘도반이여, 장로 비구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를 설하셨나니 취착의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형성의 무더기, 취착의 의식의 무더기입니다. 그런데 케마까 존자는 이러한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 가운데 어떤 것을 자아라거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라고 관찰합니까?’라고”
6.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반들이여.”라고 다사까 존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대답한 뒤 케마까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케마까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이여, 장로 비구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를 설하셨나니 취착의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형성의 무더기, 취착의 의식의 무더기입니다. 그런데 케마까 존자는 이러한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 가운데 어떤 것을 자아라거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라고 관찰합니까?’라고.”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를 설하셨나니 취착의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형성의 무더기, 취착의 의식의 무더기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 가운데 어떤 것도 자아라거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라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7. 그때 다사까 존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케마까 비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를 설하셨나니 취착의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형성의 무더기, 취착의 의식의 무더기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 가운데 어떤 것도 자아라거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라고 관찰하지 않습니다.’라고.”
“이리 오시오, 도반 다사까여. 그대는 케마까 비구에게 가시오. 가서는 케마까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시오. ‘도반이여, 장로 비구들이 그대에게 말합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를 설하셨나니 취착의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형성의 무더기, 취착의 의식의 무더기입니다. 그런데 만일 케마까 존자가 이러한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 가운데 어떤 것도 자아라거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라고 관찰하지 않는다면 케마까 존자는 번뇌 다한 아라한입니까?’라고.”
8.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반들이여.”라고 다사까 존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대답한 뒤 케마까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케마까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이여, 장로 비구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를 설하셨나니 취착의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형성의 무더기, 취착의 의식의 무더기입니다. 그런데 만일 케마까 존자가 이러한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 가운데 어떤 것도 자아라거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라고 관찰하지 않는다면 케마까 존자는 번뇌 다한 아라한입니까?’라고.”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를 설하셨나니 취착의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형성의 무더기, 취착의 의식의 무더기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나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 가운데 어떤 것도 자아라거나 자아에 속한 것일고 관찰하지 않지만 나는 번뇌 다한 아라한은 아닙니다.
도반이여, 그러나 나는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해서 ‘나는 있다.’라는 헤아림과 분별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들 가운데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이것이 나다.’라고는 관찰하지 않습니다.”
9. 그때 다사까 존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케마까 비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를 설하셨나니 취착의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형성의 무더기, 취착의 의식의 무더기입니다. 그런데 나는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해서 ‘나는 있다.’라는 헤아림과 분별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들 가운데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이것이 나다.’라고는 관찰하지 않습니다.’라고.”
“이리 오시오, 도반 다사까여. 그대는 케마까 비구에게 가시오. 가서는 케마까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시오. ‘도반이여, 장로 비구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도반 케마까여, 그대는 ‘나는 있다.’라는 헤아림과 분별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물질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물질을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느낌을 두고 … 인식을 두고 … 형성을 두고 … 의식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의식을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도반 케마까여, 그대가 ‘나는 있다.’라고 말할 때는 어떤 것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 합니까?’라고.”
10.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반들이여.”라고 다사까 존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대답한 뒤 케마까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케마까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케마까여, 장로 비구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도반 케마까여, 그대는 ‘나는 있다.’라는 헤아림과 분벼이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물질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물질을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느낌을 두고 … 인식을 두고 … 형성을 두고 … 의식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의식을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도반 케마까여, 도반 케마까여, 그대가 ‘나는 있다.’라고 말할 때는 어떤 것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 합니까?’라고.”
“도반 다사까여,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왜 그대가 이 일로 왔다갔다해야 합니까? 도반이여, 지팡이를 주십시오. 내가 장로 비구들에게 직접 가겠습니다.”
11. 그러자 케마까 존자는 지팡이를 짚고 장로 비구들에게 찾아갔다. 가서는 장로 비구들과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학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케마까 존자에게 장로 비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도반 케마까여, 그대는 ‘나는 있다.’라는 헤아림과 분별이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물질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물질을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느낌을 … 인식을 … 형성을 … 의식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의식을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도반 케마까여, 그대가 ‘나는 있다.’라고 말할 때는 어떤 것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 합니까?”
12. “도반들이여, 나는 물질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고, 물질을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느낌을 두고 … 인식을 두고 … 형성을 두고 … 의식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 말하지 않고, 의식을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나는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해서 ‘나는 있다.’라는 헤아림과 분별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들 가운데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이것이 나다.’라고는 관찰하지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의 향기가 난다고 합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향기는 꽃잎에서 난다고 하거나 꽃자루에서 난다고 하거나 암술에서 난다고 한다면 그는 바르게 말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도반들이여, 그렇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바르게 설명하는 것입니까?”
“도반이여, 꽃에서 향기가 난다고 설명해야 바르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그와 같이 나는 물질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고, 물질을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느낌을 두고 … 인식을 두고 … 형성을 두고 … 의식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고, 의식을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나는 취착의 다섯 가지무더기에 대해서 ‘나는 있다.’라는 헤아림과 분별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들 가운데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이것이 나다.’라고는 관찰하지 않습니다.”
13.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에게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下分結]가 제거되었다 하더라도,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한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자만과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욕구와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번뇌는 완전히 뿌리 뽑히지는 않습니다.
그는 나중에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들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뭅니다.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다. … 인식이다. … 형성이다. … 이것이 의식이다.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다.’라고.
그가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들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물 때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한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자만과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욕구와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번뇌는 완전히 뿌리 뽑히게 됩니다.”
14.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더럽고 때가 묻은 천이 있는데 주인이 그것을 세탁업자에게 맡긴다 합시다. 그러면 세탁업자는 그것을 소금물이나 잿물이나 쇠똥에 고루 비벼서 빤 뒤 맑은 물에 행굴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천은 청정하고 깨끗하게 되었지만 미세한 소금물 냄새나 잿물 냄새나 쇠똥 냄새는 뿌리 뽑히지 않을 것입니다. 세탁업자가 이런 천을 주인에게 돌려주면 주인은 그 천을 냄새를 제거하는 상자에다 넣을 것입니다. 그러면 뿌리 뽑히지 않고 남아있던 미세한 소금물 냄새나 잿물 냄새나 쇠똥 냄새는 모두 뿌리 뽑히게 될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그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에게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下分結]가 제거 되었다 하더라도,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한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자만과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욕구와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번뇌는 완전히 뿌리 뽑히지는 않습니다.
그는 나중에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들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뭅니다.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다. … 인식이다. … 형성이다. … 이것이 의식이다.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다.’라고.
그가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들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물 때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한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자만과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욕구와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번뇌는 완전히 뿌리 뽑히게 됩니다.”
15. 이렇게 말하자 장로 비구들은 케마까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케마까 존자를 성가시게 하려고 이런 질문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케마까 존자는 그분 세존의 교법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케마까 존자는 그분 세존의 교법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하였습니다.”
16. 케마까 존자의 말을 들은 장로 비구들은 이처럼 마음이 흡족해져서 케마까 존자의 말을 크게 기뻐하였다.
17. 이 상세한 설명이 설해졌을 때 60명의 장로 비구와 케마까 존자는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다.
saṃyutta nikāya 22
9. theravagga
89. Khemakasutta
Ekaṃ samayaṃ sambahulā therā bhikkhū kosambiyaṃ viharanti ghositārāme.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khemako badarikārāme viharati ābādhiko dukkhito bāḷhagilāno. Atha kho therā bhikkhū sāyanhasamayaṃ paṭisallānā vuṭṭhitā āyasmantaṃ dāsakaṃ āmantesuṃ: “ehi tvaṃ, āvuso dāsaka, yena khemako bhikkhu tenupasaṅkama; upasaṅkamitvā khemakaṃ bhikkhuṃ evaṃ vadehi: ‘therā taṃ, āvuso khemaka, evamāhaṃsu—kacci te, āvuso, khamanīyaṃ, kacci yāpanīyaṃ, kacci dukkhā vedanā paṭikkamanti no abhikkamanti, paṭikkamosānaṃ paññāyati no abhikkamo’”ti? “Evamāvuso”ti kho āyasmā dāsako therānaṃ bhikkhūnaṃ paṭissutvā yenāyasmā khemak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ṃ khemakaṃ etadavoca: “therā taṃ, āvuso khemaka, evamāhaṃsu: ‘kacci te, āvuso, khamanīyaṃ … pe … no abhikkamo’”ti? “Na me, āvuso, khamanīyaṃ na yāpanīyaṃ … pe … abhikkamosānaṃ paññāyati no paṭikkamo”ti.
Atha kho āyasmā dāsako yena therā bhikkhū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here bhikkhū etadavoca: “khemako, āvuso, bhikkhu evamāha: ‘na me, āvuso, khamanīyaṃ … pe … abhikkamosānaṃ paññāyati no paṭikkamo’”ti. “Ehi tvaṃ, āvuso dāsaka, yena khemako bhikkhu tenupasaṅkama; upasaṅkamitvā khemakaṃ bhikkhuṃ evaṃ vadehi: ‘therā taṃ, āvuso khemaka, evamāhaṃsu—pañcime, āvuso, upādānakkhandhā vuttā bhagavatā, seyyathidaṃ—rūpupādānakkhandho, vedanupādānakkhandho, saññupādānakkhandho, saṅkhārupādānakkhandho, viññāṇupādānakkhandho. Imesu āyasmā khemako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kiñci attaṃ vā attaniyaṃ vā samanupassatī’”ti?
“Evamāvuso”ti kho āyasmā dāsako therānaṃ bhikkhūnaṃ paṭissutvā yenāyasmā khemak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 pe … therā taṃ, āvuso khemaka, evamāhaṃsu: “pañcime, āvuso, upādānakkhandhā vuttā bhagavatā, seyyathidaṃ— rūpupādānakkhandho … pe … viññāṇupādānakkhandho. Imesu āyasmā khemako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kiñci attaṃ vā attaniyaṃ vā samanupassatī”ti? “Pañcime, āvuso, upādānakkhandhā vuttā bhagavatā, seyyathidaṃ—rūpupādānakkhandho … pe … viññāṇupādānakkhandho. Imesu khvāhaṃ, āvuso,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na kiñci attaṃ vā attaniyaṃ vā samanupassāmī”ti.
Atha kho āyasmā dāsako yena therā bhikkhū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here bhikkhū etadavoca: “khemako, āvuso, bhikkhu evamāha: ‘pañcime, āvuso, upādānakkhandhā vuttā bhagavatā, seyyathidaṃ—rūpupādānakkhandho … pe … viññāṇupādānakkhandho. Imesu khvāhaṃ, āvuso,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na kiñci attaṃ vā attaniyaṃ vā samanupassāmī’”ti. “Ehi tvaṃ, āvuso dāsaka, yena khemako bhikkhu tenupasaṅkama; upasaṅkamitvā khemakaṃ bhikkhuṃ evaṃ vadehi: ‘therā taṃ, āvuso khemaka, evamāhaṃsu—pañcime, āvuso, upādānakkhandhā vuttā bhagavatā, seyyathidaṃ—rūpupādānakkhandho … pe … viññāṇupādānakkhandho. No ce kirāyasmā khemako imesu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kiñci attaṃ vā attaniyaṃ vā samanupassati. Tenahāyasmā khemako arahaṃ khīṇāsavo’”ti.
“Evamāvuso”ti kho āyasmā dāsako therānaṃ bhikkhūnaṃ paṭissutvā yenāyasmā khemako … pe … therā taṃ, āvuso khemaka, evamāhaṃsu: “pañcime, āvuso, upādānakkhandhā vuttā bhagavatā, seyyathidaṃ—rūpupādānakkhandho … pe … viññāṇupādānakkhandho; no ce kirāyasmā khemako imesu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kiñci attaṃ vā attaniyaṃ vā samanupassati, tenahāyasmā khemako arahaṃ khīṇāsavo”ti. “Pañcime, āvuso, upādānakkhandhā vuttā bhagavatā, seyyathidaṃ— rūpupādānakkhandho … pe … viññāṇupādānakkhandho. Imesu khvāhaṃ, āvuso,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na kiñci attaṃ vā attaniyaṃ vā samanupassāmi, na camhi arahaṃ khīṇāsavo; api ca me, āvuso,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asmī’ti adhigataṃ, ‘ayamahamasmī’ti na ca samanupassāmī”ti.
Atha kho āyasmā dāsako yena therā bhikkhū … pe … there bhikkhū etadavoca: “khemako, āvuso, bhikkhu evamāha—pañcime, āvuso, upādānakkhandhā vuttā bhagavatā, seyyathidaṃ—rūpupādānakkhandho … pe … viññāṇupādānakkhandho. Imesu khvāhaṃ, āvuso,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na kiñci attaṃ vā attaniyaṃ vā samanupassāmi, na camhi arahaṃ khīṇāsavo; api ca me, āvuso,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asmī’ti adhigataṃ, ‘ayamahamasmī’ti na ca samanupassāmī”ti.
“Ehi tvaṃ, āvuso dāsaka, yena khemako bhikkhu tenupasaṅkama; upasaṅkamitvā khemakaṃ bhikkhuṃ evaṃ vadehi: ‘therā taṃ, āvuso khemaka, evamāhaṃsu—yametaṃ, āvuso khemaka, asmīti vadesi, kimetaṃ asmīti vadesi? Rūpaṃ asmīti vadesi, aññatra rūpā asmīti vadesi, vedanaṃ … saññaṃ … saṅkhāre … viññāṇaṃ asmīti vadesi, aññatra viññāṇā asmīti vadesi. Yametaṃ, āvuso khemaka, asmīti vadesi. Kimetaṃ asmīti vadesī’”ti?
“Evamāvuso”ti kho āyasmā dāsako therānaṃ bhikkhūnaṃ paṭissutvā yenāyasmā khemak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ṃ khemakaṃ etadavoca—therā taṃ, āvuso khemaka, evamāhaṃsu: “yametaṃ, āvuso khemaka, ‘asmī’ti vadesi, kimetaṃ ‘asmī’ti vadesi? Rūpaṃ ‘asmī’ti vadesi aññatra rūpā ‘asmī’ti vadesi? Vedanaṃ … saññaṃ … saṅkhāre … viññāṇaṃ ‘asmī’ti vadesi aññatra viññāṇā ‘asmī’ti vadesi? Yametaṃ, āvuso khemaka, ‘asmī’ti vadesi, kimetaṃ ‘asmī’ti vadesī”ti? “Alaṃ, āvuso dāsaka, kiṃ imāya sandhāvanikāya. Āharāvuso, daṇḍaṃ; ahameva yena therā bhikkhū tenupasaṅkamissāmī”ti.
Atha kho āyasmā khemako daṇḍamolubbha yena therā bhikkhū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herehi bhikkhūhi saddhiṃ sammodi.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aṃ kho āyasmantaṃ khemakaṃ therā bhikkhū etadavocuṃ: “yametaṃ, āvuso khemaka, ‘asmī’ti vadesi, kimetaṃ ‘asmī’ti vadesi? Rūpaṃ ‘asmī’ti vadesi, aññatra rūpā ‘asmī’ti vadesi? Vedanaṃ … saññaṃ … saṅkhāre … viññāṇaṃ ‘asmī’ti vadesi, aññatra viññāṇā ‘asmī’ti vadesi? Yametaṃ, āvuso khemaka, ‘asmī’ti vadesi, kimetaṃ ‘asmī’ti vadesī”ti? “Na khvāhaṃ, āvuso, rūpaṃ ‘asmī’ti vadāmi; napi aññatra rūpā ‘asmī’ti vadāmi. Na vedanaṃ … na saññaṃ … na saṅkhāre … na viññāṇaṃ ‘asmī’ti vadāmi; napi aññatra viññāṇā ‘asmī’ti vadāmi. Api ca me, āvuso,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asmī’ti adhigataṃ ‘ayamahamasmī’ti na ca samanupassāmi.
Seyyathāpi, āvuso, uppalassa vā padumassa vā puṇḍarīkassa vā gandho. Yo nu kho evaṃ vadeyya: ‘pattassa gandho’ti vā ‘vaṇṇassa gandho’ti vā ‘kiñjakkhassa gandho’ti vā sammā nu kho so vadamāno vadeyyā”ti? “No hetaṃ, āvuso”. “Yathā kathaṃ, panāvuso, sammā byākaramāno byākareyyā”ti? “‘Pupphassa gandho’ti kho, āvuso, sammā byākaramāno byākareyyā”ti. “Evameva khvāhaṃ, āvuso, na rūpaṃ ‘asmī’ti vadāmi, napi aññatra rūpā ‘asmī’ti vadāmi. Na vedanaṃ … na saññaṃ … na saṅkhāre … na viññāṇaṃ ‘asmī’ti vadāmi, napi aññatra viññāṇā ‘asmī’ti vadāmi. Api ca me, āvuso,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asmī’ti adhigataṃ ‘ayamahamasmī’ti na ca samanupassāmi.
Kiñcāpi, āvuso, ariyasāvakassa pañc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bhavanti, atha khvassa hoti: ‘yo ca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anusahagato asmīti māno, asmīti chando, asmīti anusayo asamūhato. So aparena samayena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udayabbayānupassī viharati—iti rūpaṃ, iti rūpassa samudayo, iti rūpassa atthaṅgamo; iti vedanā … iti saññā … iti saṅkhārā … iti viññāṇaṃ, iti viññāṇassa samudayo, iti viññāṇassa atthaṅgamo’ti. Tassimesu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udayabbayānupassino viharato yopissa hoti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anusahagato ‘asmī’ti, māno ‘asmī’ti, chando ‘asmī’ti anusayo asamūhato, sopi samugghātaṃ gacchati.
Seyyathāpi, āvuso, vatthaṃ saṃkiliṭṭhaṃ malaggahitaṃ. Tamenaṃ sāmikā rajakassa anupadajjuṃ. Tamenaṃ rajako ūse vā khāre vā gomaye vā sammadditvā acche udake vikkhāleti. Kiñcāpi taṃ hoti vatthaṃ parisuddhaṃ pariyodātaṃ, atha khvassa hoti yeva anusahagato ūsagandho vā khāragandho vā gomayagandho vā asamūhato. Tamenaṃ rajako sāmikānaṃ deti. Tamenaṃ sāmikā gandhaparibhāvite karaṇḍake nikkhipanti. Yopissa hoti anusahagato ūsagandho vā khāragandho vā gomayagandho vā asamūhato, sopi samugghātaṃ gacchati. Evameva kho, āvuso, kiñcāpi ariyasāvakassa pañcorambhāgiyāni saṃyojanāni pahīnāni bhavanti, atha khvassa hoti yeva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anusahagato ‘asmī’ti, māno ‘asmī’ti, chando ‘asmī’ti anusayo asamūhato. So aparena samayena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udayabbayānupassī viharati. ‘Iti rūpaṃ, iti rūpassa samudayo, iti rūpassa atthaṅgamo; iti vedanā … iti saññā … iti saṅkhārā … iti viññāṇaṃ, iti viññāṇassa samudayo, iti viññāṇassa atthaṅgamo’ti. Tassa imesu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udayabbayānupassino viharato yopissa hoti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anusahagato ‘asmī’ti, māno ‘asmī’ti, chando ‘asmī’ti anusayo asamūhato, sopi samugghātaṃ gacchatī”ti.
Evaṃ vutte, therā bhikkhū āyasmantaṃ khemakaṃ etadavocuṃ: “na kho mayaṃ āyasmantaṃ khemakaṃ vihesāpekhā pucchimha, api cāyasmā khemako pahosi tassa bhagavato sāsanaṃ vitthārena ācikkhituṃ desetuṃ paññāpetuṃ paṭṭhapetuṃ vivarituṃ vibhajituṃ uttānīkātuṃ. Tayidaṃ āyasmatā khemakena tassa bhagavato sāsanaṃ vitthārena ācikkhitaṃ desitaṃ paññāpitaṃ paṭṭhapitaṃ vivaritaṃ vibhajitaṃ uttānīkatan”ti.
Idamavoca āyasmā khemako. Attamanā therā bhikkhū āyasmato khemakassa bhāsitaṃ abhinanduṃ. Imasmiñca pana veyyākaraṇasmiṃ bhaññamāne saṭṭhimattānaṃ therānaṃ bhikkhūnaṃ anupādāya āsavehi cittāni vimucciṃsu, āyasmato khemakassa cāti.
saṃyutta nikāya 22
connected discourses on the aggregates
89. Khemaka
On one occasion a number of elder bhikkhus were dwelling at Kosambi in Ghosita’s Park. Now on that occasion the Venerable Khemaka was living at Jujube Tree Park, sick, afflicted, gravely ill.
Then, in the evening, those elder bhikkhus emerged from seclusion and addressed the Venerable Dasaka thus: “Come, friend Dasaka, approach the bhikkhu Khemaka and say to him: ‘The elders say to you, friend Khemaka: We hope that you are bearing up, friend, we hope that you are getting better. We hope that your painful feelings are subsiding and not increasing, and that their subsiding, not their increase, is to be discerned.’”
“Yes, friends,” the Venerable Dasaka replied, and he approached the Venerable Khemaka and delivered his message.
The Venerable Khemaka answered: “I am not bearing up, friend, I am not getting better. Strong painful feelings are increasing in me, not subsiding, and their increase, not their subsiding, is to be discerned.”
Then the Venerable Dasaka approached the elder bhikkhus and reported what the Venerable Khemaka had said. They told him: “Come, friend Dasaka, approach the bhikkhu Khemaka and say to him: ‘The elders say to you, friend Khemaka: Thes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friend, have been spoken of by the Blessed One; that is, the form aggregate subject to clinging, the feeling aggregate subject to clinging, the perception aggregate subject to clinging, the volitional formations aggregate subject to clinging, the consciousness aggregate subject to clinging. Does the Venerable Khemaka regard anything as self or as belonging to self among thes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Yes, friends,” the Venerable Dasaka replied, and he approached the Venerable Khemaka and delivered his message.
The Venerable Khemaka replied: “Thes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have been spoken of by the Blessed One; that is, the form aggregate subject to clinging … the consciousness aggregate subject to clinging. Among thes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I do not regard anything as self or as belonging to self.”
Then the Venerable Dasaka approached the elder bhikkhus and reported what the Venerable Khemaka had said. They replied: “Come, friend Dasaka, approach the bhikkhu Khemaka and say to him: ‘The elders say to you, friend Khemaka: Thes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friend, have been spoken of by the Blessed One; that is, the form aggregate subject to clinging … the consciousness aggregate subject to clinging. If the Venerable Khemaka does not regard anything among thes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as self or as belonging to self, then he is an arahant, one whose taints are destroyed.’”
“Yes, friends,” the Venerable Dasaka replied, and he approached the Venerable Khemaka and delivered his message.
The Venerable Khemaka replied: “Thes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have been spoken of by the Blessed One; that is, the form aggregate subject to clinging … the consciousness aggregate subject to clinging. I do not regard anything among thes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as self or as belonging to self, yet I am not an arahant, one whose taints are destroyed. Friends, the notion ‘I am’ has not yet vanished in me in relation to thes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but I do not regard anything among them as ‘This I am.’”
Then the Venerable Dasaka approached the elder bhikkhus and reported what the Venerable Khemaka had said. They replied: “Come, friend Dasaka, approach the bhikkhu Khemaka and say to him: ‘The elders say to you, friend Khemaka: Friend Khemaka, when you speak of this “I am”—what is it that you speak of as “I am”? Do you speak of form as “I am,” or do you speak of “I am” apart from form? Do you speak of feeling … of perception … of volitional formations … of consciousness as “I am,” or do you speak of “I am” apart from consciousness? When you speak of this “I am,” friend Khemaka, what is it that you speak of as “I am”?’”
“Yes, friends,” the Venerable Dasaka replied, and he approached the Venerable Khemaka and delivered his message.
“Enough, friend Dasaka! Why keep running back and forth? Bring me my staff, friend. I’ll go to the elder bhikkhus myself.”
Then the Venerable Khemaka, leaning on his staff, approached the elder bhikkhus, exchanged greetings with them, and sat down to one side. The elder bhikkhus then said to him: “Friend Khemaka, when you speak of this ‘I am’ … what is it that you speak of as ‘I am’?”
“Friends, I do not speak of form as ‘I am,’ nor do I speak of ‘I am’ apart from form. I do not speak of feeling as ‘I am’ … nor of perception as ‘I am’ … nor of volitional formations as ‘I am’ … nor of consciousness as ‘I am,’ nor do I speak of ‘I am’ apart from consciousness. Friends, although the notion ‘I am’ has not yet vanished in me in relation to thes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still I do not regard anything among them as ‘This I am.’
“Suppose, friends, there is the scent of a blue, red, or white lotus. Would one be speaking rightly if one would say, ‘The scent belongs to the petals,’ or ‘The scent belongs to the stalk,’ or ‘The scent belongs to the pistils’?”
“No, friend.”
“And how, friends, should one answer if one is to answer rightly?”
“Answering rightly, friend, one should answer: ‘The scent belongs to the flower.’”
“So too, friends, I do not speak of form as ‘I am,’ nor do I speak of ‘I am’ apart from form. I do not speak of feeling as ‘I am’ … nor of perception as ‘I am’ … nor of volitional formations as ‘I am’ … nor of consciousness as ‘I am,’ nor do I speak of ‘I am’ apart from consciousness. Friends, although the notion ‘I am’ has not yet vanished in me in relation to thes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still I do not regard anything among them as ‘This I am.’
“Friends, even though a noble disciple has abandoned the five lower fetters, still, in relation to th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there lingers in him a residual conceit ‘I am,’ a desire ‘I am,’ an underlying tendency ‘I am’ that has not yet been uprooted. Sometime later he dwells contemplating rise and fall in th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Such is form, such its origin, such its passing away; such is feeling … such is perception … such are volitional formations … such is consciousness, such its origin, such its passing away.’ As he dwells thus contemplating rise and fall in th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the residual conceit ‘I am,’ the desire ‘I am,’ the underlying tendency ‘I am’ that had not yet been uprooted—this comes to be uprooted.
“Suppose, friends, a cloth has become soiled and stained, and its owners give it to a laundryman. The laundryman would scour it evenly with cleaning salt, lye, or cowdung, and rinse it in clean water. Even though that cloth would become pure and clean, it would still retain a residual smell of cleaning salt, lye, or cowdung that had not yet vanished. The laundryman would then give it back to the owners. The owners would put it in a sweet-scented casket, and the residual smell of cleaning salt, lye, or cowdung that had not yet vanished would vanish.
“So too, friends, even though a noble disciple has abandoned the five lower fetters, still, in relation to th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there lingers in him a residual conceit ‘I am,’ a desire ‘I am,’ an underlying tendency ‘I am’ that has not yet been uprooted…. As he dwells thus contemplating rise and fall in th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the residual conceit ‘I am,’ the desire ‘I am,’ the underlying tendency ‘I am’ that had not yet been uprooted—this comes to be uprooted.”
When this was said, the elder bhikkhus said to the Venerable Khemaka: “We did not ask our questions in order to trouble the Venerable Khemaka, but we thought that the Venerable Khemaka would be capable of explaining, teaching, proclaiming, establishing, disclosing, analysing, and elucidating the Blessed One’s teaching in detail. And the Venerable Khemaka has explained, taught, proclaimed, established, disclosed, analysed, and elucidated the Blessed One’s teaching in detail.”
This is what the Venerable Khemaka said. Elated, the elder bhikkhus delighted in the Venerable Khemaka’s statement. And while this discourse was being spoken, the minds of sixty elder bhikkhus and of the Venerable Khemaka were liberated from the taints by noncling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