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학년도 정시 서울대학교 논술고사 문제
【논제】사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가를 논술하시오.
※ 아래의 내용을 반드시 논술문에 포함시킬 것.
1.【제시문 1】에 드러나 있는 사물의 인식 방법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이에 근거하여【제시문 2】의 내용을 논할 것.
2. 다음 문장들을 논술에 활용하되, 그 가운데 한 문장을 반드시 직접 인용할 것.
① 큰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큰 깨달음이 없다. 의심나는 것을 쌓아놓고 모호하게 두는 것은 캐묻고 따지는 것만 못하다. (홍대용, 담헌집) ②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공자, 논어) ③ 사실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해석뿐이다.(F. W. 니체, 권력에의 의지) ④ 진리를 발견하는 것보다도 오류를 인식하는 편이 훨씬 쉽다. 오류는 표면에 나타나 있으므로 쉽게 정리할 수 있지만, 진리는 깊은 곳에 숨겨져 있으므로 그것을 탐구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J. W. 괴테, 잠언과 성찰) ⑤ 어떠한 사람의 지식도 그 사람의 경험을 초월하는 것은 아니다. (J. 로크, 인간 오성론)
【제시문 1】
강물은 두 산 사이에서 흘러 나와 돌에 부딪혀 싸우는 듯 뒤틀린다. 그 성난 물결, 노한 물줄기, 구슬픈 듯 굼실거리는 물갈래와 굽이쳐 돌며 뒤말리며 고함치는, 원망하는 듯한 여울은 장성을 뒤흔들어 쳐부술 氣勢가 있다. 수만의 전차와 수만의 군사와 수만의 포대와 큰 북으로도 그 퉁탕거리며 무너져 쓰러지는 소리를 충분히 形容할 수 없을 것이다. 모래 위엔 엄청난 큰 돌이 우뚝 솟아 있고, 강 언덕엔 버드나무가 어둡고 컴컴한 가운데 서 있어서, 마치 물귀신들이 서로 다투어 사람을 엄포하는 듯한데, 좌우의 이무기들이 솜씨를 試驗하여 사람을 붙들고 할퀴려고 애를 쓰는 듯하다. 어느 누구는 이 곳이 전쟁터였기 때문에 강물이 그렇게 운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때문이 아니다. 강물 소리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나의 居處는 산중에 있었는데, 바로 문 앞에 큰 시내가 있었다. 해마다 여름철이 되어 큰 비가 한 번 지나가면, 시냇물이 갑자기 불어서 마냥 전차와 기마, 대포와 북소리를 듣게 되어, 그것이 이미 귀에 젖어 버렸다. 나는 옛날에, 문을 닫고 누운 채 그 소리를 區分해 본 적이 있었다. 깊은 소나무에서 나오는 바람 같은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淸雅한 까닭이며,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흥분한 까닭이며, 뭇 개구리들이 다투어 우는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교만한 까닭이며, 수많은 축(筑)*의 격한 가락인 듯한 소리, 이것은 듣! 는 사람이 노한 까닭이다. 그리고 우르릉 쾅쾅 하는 천둥과 벼락같은 소리는 듣는 사람이 놀란 까닭이고, 찻물이 보글보글 끓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韻致 있는 性格인 까닭이고, 거문고가 궁우(宮羽)**에 맞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슬픈 까닭이고, 종이창에 바람이 우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疑心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소리는, 올바른 소리가 아니라 다만 자기 흉중에 품고 있는 뜻대로 귀에 들리는 소리를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어제 하룻밤 사이에 한 강을 아홉 번이나 건넜다. 강은 새외(塞外)로부터 나와서 장성을 뚫고 유하, 조하, 황화, 진천 등의 여러 줄기와 어울려 밀운성 밑을 지나 백하가 되었다. 내가 어제 두 번째 배로 백하를 건넜는데, 이것은 바로 이 강의 下流였다. 내가 아직 요동 땅에 들어오지 못했을 무렵, 바야흐로 한여름의 뙤약볕 밑을 지척지척 걸었는데, 홀연히 큰 강이 앞을 가로막아 붉은 물결이 산같이 일어나서 끝을 볼 수 없었다. 아마 천리 밖에서 暴雨로 洪水가 났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을 건널 때에는 사람들이 모두들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기에, 나는 그들이 모두 하늘을 향하여 묵도를 올리고 있으려니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랜 뒤에야 비로소 알았지만, 그 때 내 생각은 틀린 생각이었다. 물을 건너는 사람들이 힘차게 돌아 흐? 4?물을 보면, 굼실거리고 으르렁거리는 물결에 몸이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아서 갑자기 현기증이 일면서 물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그 얼굴을 젖힌 것은 하늘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숫제 물을 피하여 보지 않기 위함이었다. 사실, 어느 겨를에 그 잠깐 동안의 목숨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으랴! 그건 그렇고, 그 危險이 이와 같은데도, 이상스럽게 물이 성내어 울어 대진 않았다.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요동의 들이 넓고 평평해서 물이 크게 성내어 울어 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물을 잘 알지 못하는 까닭에서 나온 誤解인 것이다. 요하가 어찌하여 울지 않았을 것인가? 그건 밤에 건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낮에는 눈으로 물을 볼 수 있으므로 그 위험한 곳을 보고 있는 눈에만 온 정신이 팔려 오히려 눈이 있는 것을 걱정해야만 할 판에, 무슨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는 말인가? 그런데, 이젠 전과는 반대로 밤중에 물을 건너니, 눈엔 위험한 光景이 보이지 않고, 오직 귀로만 위험한 느낌이 쏠려, 귀로 듣는 것이 무서워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아, 나는 이제야 道를 알았도다. 마음을 잠잠하게 하는 자는 귀와 눈이 누(累)가 되지 않는데,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밝아져서 큰 병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까지 나를 시중해 주던 마부가 말한테 발을 밟혔기 때문에, 그를 뒷수레에 실어 놓고, 내가 손수 고삐를 붙들고 강 위에 떠 안장 위에 무릎을 구부리고 발을 모아 앉았는데, 한번 말에서 떨어지면 곧 물인 것이다. 거기로 떨어지는 경우에는 물로 땅을 삼고, 물로 옷을 삼고, 물로 몸을 삼고, 물로 性情을 삼을 것이라. 이러한 마음의 判斷이 한번 내려지자, 내 귓속에선 강물 소리가 마침내 그치고 말았다. 그리하여, 무려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도 두려움이 없고 태연할 수 있어, 마치 방 안에서 편안히 앉아있는 것과 같았다. 옛적에 우(禹)가 강을 건너는데, 누런 용이 배를 등으로 져서 지극히 危險했다 한다. 그러나 生死의 判斷이 일단 마음속에 정해지자, 용이거나 지렁이거나, 혹은 그것이 크거나 작거나 간에 아무런 關係도 될 바가 없었다 한다. 소리와 빛은 모두 外物이다. 이 외물이 항상 사람의 耳目에 누(累)가 되어, 보고 듣는 機能을 마비시켜 버린다. 그것이 이와 같은데, 하물며 강물보다 훨씬 더 험하고 위태한 人生의 길을 건너갈 적에 보고 듣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致命的인 병이 될 것인가? 나는 또 나의 산중으로 돌아가 앞내의 물 소리를 다시 들으면서 이것을 經驗해 볼 것이려니와, 몸 가지는데 교묘하고, 스스로 총명한 것을 自信하는 자에게 이를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다.
* 축(筑) : 거문고 비슷한 현악기. ** 궁우(宮羽) : 宮과 羽는 옛날의 음계 이름.
【제시문 2】
어느 산골에 작고 깊은 우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우물은 흔히 볼 수 있는 우물과는 다른 모습이었어요. 우물 벽에는 구멍이 숭덩숭덩 나 있고 돌이 여기저기 삐져나와 있었습니다. 깊은 바닥 한가운데에는 진흙 웅덩이도 있었습니다. 밑바닥 쪽은 언제나 어둑하였지요. 이 우물 안에 페페, 필라, 페트라, 푸투라고 하는 개구리 네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좁고 어두운 곳이었지만 네 마리의 개구리가 살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개구리들은 이 우물 안에서 아무런 불만도, 걱정도, 다툼도 없이 아주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개구리들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편하고 단순했습니다. 우물 밑바닥에서 개구리들이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보면, 가끔씩 가마득히 하늘이 보였습니다. 하늘은 밝고 푸르렀으며, 작고 동그랬습니다. 개구리들의 먹이는 여기저기 널려 있었습니다. 우물 안으로 날아든 맛 좋은 파리와 날벌레, 벽을 기어 다니는 벌레들은 모두 개구리들의 재빠른 혓바닥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개구리들은 배불리 벌레들을 잡아먹고는 저희들끼리 즐겁게 놀았습니다. 우물 안 진흙 웅덩이에서 팔짝팔짝 뛰어다니기도 했고, 우물 벽을 타고 오르다가 뛰어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제 자리에서 발 구르기를 하며 놀다가 싫증이 나면 솟구쳐 뛰어올라 보기도 하였지요. 우물 안으로 빗방울이 내리칠 때면 개굴개굴 노래도 부르며 춤을 추기도 했답니다. 그러면서 개구리들은 좁고 어두? ?우물과 가마득하게 올려다 보이는 하늘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페페가 친구들과 떨어져서 혼자 우물 벽을 기어올랐습니다. 개구리들은 항상 우물 안에서 놀다가 가끔 벽을 타고 위로 올라가 보기도 하였지만, 캄캄한 구멍이나 불쑥 솟아나온 돌멩이를 중간에서 마주치면 오싹 겁이 나서 더 이상 위로 오르지 못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 내려오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페페는 늘 우물 꼭대기로 작게 보이는 하늘이 궁금하였답니다. 그래서 꼭 한번 우물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페페는 우물 안의 벽에 붙어 후미진 곳에서 쉬기도 하며 돌 틈을 비집고 벽을 기어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물 꼭대기 바로 아래에 튀어 나온 돌멩이에까지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페페는 크게 한 번 도약을 해서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그런데 페페는 깜짝 놀랐어요. 예전에 보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너무도 밝아서 페페의 눈을 아프게 할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태양이었습니다. 페페는 놀라서 바로 우물 안으로 황급하게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친구들에게로 되돌아가 소리쳤습니다. 이봐 필라, 페트라, 푸투! 이리 좀 와 봐.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어. 페페, 왜 그래? 무슨 일인데? 페페, 너 어디 갔다가 오니? 뭐가 문젠데? 필라와 페트라와 푸투가 뛰어오면서 물었습니다. 내가 저 꼭대기까지 올라갔었어. 간신히…… 무슨 소리야? 네가 혼자 어떻게? 그런데 저기서 아주 크고 눈부신 빛을 보았어! 정말로? 필라와 페트라가 놀란 눈으로 다가섰습니다. 그래. 그 빛나는 것을 보는 순간 나는 겁이 나서 눈을 감고 우물 안으로 뛰어 들어온 거야.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믿기 어려운 걸? 페트라가 말했습니다. 필라도 눈을 치켜뜨고는 손을 내둘렀습니다. 페페, 그건 아니야. 네가 무얼 잘못 본 거지. 우린 여기서 한평생을 살았어. 여기서 우리는 저 꼭대기의 작고 둥그스름한 푸른 하늘만을 보아 왔어. 저것이 우리들 세계의 크기이자 진실이야. 너는 정말로 눈이 멀었구나. 그렇지만 내 말은 사실이야. 페페는 계속 주장했습니다. 푸투는 아무 생각도 없다는 듯이 눈만 두리번거렸습니다. 페트라는 흥미가 없다는 듯이 진흙 웅덩이로 뛰어가 버렸고, 필라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페페는 친구들을 설득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친구들이 그 크고 환한 빛을 스스로 직접 보기 전에는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필라, 너도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니? 제발 내 말을 믿어줘. 네가 직접 한번 저 꼭대기 위로 올라가보지 않을래? 저쪽 오른편 구석으로 돌아가서 돌 틈으로 기어오르면 불쑥 튀어 나온 돌멩이에 도달하게 될 거야. 그 돌멩이까지 오르는 것도 굉장한 힘이 들어. 그러나 그 돌멩이 위에 오르기만 하면 바깥세상을 보기가 쉽지. 거기서 펄쩍 한번 뛰어오르면 우물 바깥으로 나갈 수 있어. 만일 바깥으로 뛰어 나가지 못하고 우물 턱에 걸리면 너는 이 바닥으로 처박히게 될 거고. 자, 봐! 그런데 네가 그 곳에 도달하면 넌 내가 보았던 그 크고 환한 빛을 보게 될 거야! 참, 그 빛을 너무 오랫동안 쳐다보지 마. 네 눈이 상할 걸. 페페는 흥분된 목소리로 설명했습니다. 필라, 네가 그걸 보고 오면 페트라도 쉽게 내 말을 믿겠지. 그래, 좋아. 필라가 대답했습니다. 페페, 그건 너무 위험해. 제발 그만 둬. 푸투는 겁을 잔뜩 먹고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필라는 페페의 말대로 하여도 해로울 게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팔다리 운동을 하고 목을 돌리고 무릎 운동을 하며 몸을 푼 후에, 필라는 벽을 기어올랐습니다. 우물 벽에는 여기저기 어둑한 구멍이 있고 미끈거렸지만, 그럭저럭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필라는 튀어 나온 돌멩이 위에 올라서서 크게 한 번 숨을 쉰 후, 힘껏 돌바닥을 박차고 위로 뛰어올랐어요. 그러나 우물 턱에 머리를 부딪치고는 돌멩이 위로 내리박히고 말았습니다. 필라는 머리통이 아팠지만 다시 한번 도전했습니다. 얏 하고 뛰어 올라 우물 턱을 간신히 손으로 잡았지만 몸이 다시 미끄러져 내렸습니다. 필라의 도전은 계속 되었습니다. 이 과정이 한 시간이나 되풀이되었고, 필라는 상처투성이가 되었답니다. 어느덧 저녁이 되었습니다. 사방이 어둑해지면서 앞뒤를 분간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필라는 거의 자포자기의 상태였습니다. 정확한 거리를 가늠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무엇보다도 몹시 피곤했습니다. 필라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곧 잠에 빠져 버렸습니다. 필라가 잠에서 깼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필라는 주위가 훤하게 밝아졌음을 알고 의아해 했습니다. 우물 위로 하늘이 훤하게 트여 있었습니다. 필라는 용기를 얻어 자세를 고쳐 앉고는 다시 몸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거리를 가늠하고, 약간 뒤로 움츠렸다가, 셋을 센 후에 뒷다리에 있는 힘을 다 주고 솟구쳐 뛰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멋지게 우물 턱 위에 올라섰습니다. 페페가 말했던 크고 빛나는 것이 뭐지? 필라는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부드러우면서도 밝고 둥그런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필라는 몹시도 혼란스러워졌습니다. 페페가 말한 것이 저건가? 눈이 멀 정도로 밝은 빛이랬는데. 저 빛은 너무도 부드럽고 곱잖아? 필라는 달을 지긋이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둥그런 달빛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고 말았습니다. 한참 뒤에 필라는 사방을 두리번대다가 조심스럽게 다시 우물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필라가 돌아오자, 페페와 페트라와 푸투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필라에게 달려왔습니다. 그래, 필라야. 너도 그 환하고 강렬한 빛을 봤지? 페페가 흥분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아니야. 강렬하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것은 부드러운 느낌이었어. 난 그 빛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니까. 뭐? 2초 이상 빛을 보면 눈이 멀고 만다구. 아냐. 그건 크고 둥글고 곱고 부드러웠어. 그래? 네가 뭔가 잘못 봤나보다. 그게 아닌데…… 페페가 필라의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내가 알아. 필라도 지지 않고 페페에게 말했습니다. 이때 페트라가 끼어들었습니다. 그만들 해. 너희들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난 누구 이야기를 믿어야할지 모르겠어. 페페는 머뭇거리고 있는 페트라에게 다가섰습니다. 페트라를 설득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페트라, 넌 내 말을 믿지? 내가 제일 먼저 저 꼭대기 위로 나가 보았잖니? 내가 개척자야. 필라는 저기까지 올라가는데 지쳐 쓰러졌었다고 하지 않았니?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하늘을 쳐다보아서 뭔가 혼동하고 있는 거야. 페페의 말을 들은 페트라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곁에서 보고 있던 필라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냐, 페트라. 그렇지 않아. 내가 분명히 두 눈으로 보았어. 은은하게 빛을 내는 하늘의 둥근 것을 보았다니까. 넌 내 말을 믿어야 돼. 내가 페페보다 뒤에 올라가 보았으니, 내 생생한 경험이 맞지. 필라가 힘주어 하는 말에 페트라는 둘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어쩔 줄 몰라 하였습니다. 페페와 필라는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야단이었습니다. 둘의 논쟁은 페트라가 질릴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페트라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발 둘 다 이젠 그만해! 너희 둘 다 옳다. 아…… 음…… 페페와 필라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을 더듬었습니다. 아니면, 둘 다 잘못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 페트라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어. 우리 모두가 가서 확인해 보는 거. 우리 모두. 페트라의 뜻밖의 제안에 둘은 손뼉을 쳤습니다. 그래, 우리 모두 가보자. 우리 모두. 난 필라가 다칠까봐 내내 걱정만 했다. 나는 안 갈래. 너희들이 무얼 보았든지 그게 우리들의 삶과 무슨 상관이니? 푸투는 그냥 진흙 웅덩이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페페가 약간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습니다. 페트라, 너 정말 저기까지 가 보겠니? 너무 힘들어서 너는 못 올라 갈 거야. 난 할 수 있어. 좋아. 내 생각도 페트라는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봐. 푸투는 언제나 저런 식으로 빠지니까 그냥 내버려 둬. 페페, 우리 둘이서 페트라를 도우면 돼. 필라가 페트라의 손을 잡았습니다. 개구리 세 마리는 다음날 푸투가 채 일어나기도 전에 이른 새벽부터 우물 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예상했던 대로 페트라가 자꾸 뒤쳐졌습니다. 어려운 등반이었습니다. 방향을 잘못 잡기도 했으며, 이끼에 미끄러지기도 했습니다. 뱀이 옆을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되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페트라가 몇 번이나 돌 틈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바람에 필라와 페페가 페트라를 붙잡아 끌어 올려야 했습니다. 우물 꼭대기 바로 아래의 돌멩이 위에 이르기까지 거의 한나절을 보냈고, 돌멩이 위에서 우물 턱으로 뛰어 오르는 데에 힘을 다 쏟았습니다. 개구리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페트라가 마지막으로 우물 턱으로 뛰어 오르는 순간, 페페와 필라는 뛰어오르는 페트라의 손을 위에서 꽉 잡아 이끌었습니다. 드디어 페트라가 우물 턱 ? ㎎?올라왔습니다. 세 마리의 개구리들은 서로 힘을 합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때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해가 서쪽 지평선 위로 넘어가면서 붉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개구리들은 이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았습니다. 페페와 필라는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페페는 이것이 자신이 전에 보았던, 馨×?빛이 눈부시게 비치던 물체와 똑같은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필라 역시 자신이 밤하늘에서 보았던 것보다 이 물체가 확실하게 더 밝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기 저게 너희들이 말한 것이니? 페트라가 물었습니다. ?? 페페와 필라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좀 더 기다려보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페트라가 제안했습니다. 좋은 생각이야. 필라가 대답했습니다. 개구리 세 마리는 처음으로 일몰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광경은 정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이 경험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하늘에 달과 별들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개구리들은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개구리들은 밤을 꼬박 새우며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새벽이 되자, 빛나는 아침 해가 떠올랐습니다. 사방이 눈부시게 환해지고 나뭇잎들도 반짝거렸습니다. 필라, 페트라, 페페는 실눈을 뜨고 이 빛을 보았고, 점차로 빛에 익숙해지게 되었습니다. 개구리들은 점차로 서서히 새로 발견한 놀라움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사방에 나무들과 풀이 우거져 있고, 꽃 위로 나비들이 날고 있었습니다. 페트라가 말했습니다. 봤지? 너희들 둘이 한 말이 모두 맞네. 우리가 서로 도와 여기까지 올라오기를 잘했어. 이렇게 많은 것을 다 보게 되었으니. 푸투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개구리들은 자신들이 살았던 우물보다 더 넓고 복잡한 새로운 세계가 무한하게 펼쳐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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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1]
서울대 정시 논술은 올해 3년 만에 부활했다. 장문의 제시문, 시사적인 이슈보다는 본원적이고도 보편적인 주제를 선호하는 논제 등 형식은 예전 그대로였다. 다만 다음 문장을 논술에 활용하라는 요구사항이 새로운 점이었다. 사물에 대한 인식을 묻는 논제와 2개의 제시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기계 문명과 인간의 관계를 물었던 지난해 4월 모의고사나 지식인의 바람직한 자세를 물었던 지난해 11월 수시 시험보다 난이도는 분명 낮았다.
하지만 서울대 논술이 어려운 것은 2500자라는 방대한 분량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분량이 길면 형식보다는 내용에 대한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읽은 소설이나 우화 등에서 쓸거리를 많이 찾아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대 논술은 독서량이 많은 친구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제시문 1]은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일야구도하기에서 인용한 것으로서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글이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처럼 인식론 중에서 주관론 입장에 서 있다. [제시문 2]는 우물 안 개구리 우화를 각색한 것으로 경험론에 가깝다. 참고문들은 동서고금의 유명 철학자들의 인식론에 관한 명언들 5개가 쓰였다.
참고문들은 주관론, 경험론, 불가지론을 골고루 섞어 안배했다. 이런 점들을 보건대 주관론이나 경험론이 모두 부분적인 진리인 만큼 어느 한 쪽을 두둔하기보다는 이들 진리들을 묶어 하나의 완성된 인식론의 틀을 구성해 내기를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논제는 정과 반의 과정을 거쳐 결론에서 합을 제시할 수 있는 이른바 변증법적인 접근이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인식론 같은 철학적인 논제는 학생들이 충분히 대비할 수 있지만 제시문과 참고문에 집중해서는 좋은 글을 쓰기가 어렵다. 서울대는 논증력과 표현력보다 창의성을 더 높이 사는 학교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베이컨의 동굴의 우상이라든지, 장님 코끼리 만지기 등 남들 다 아는 배경지식에 의존해서는 창의적인 글을 쓰기가 어렵다. 이때 평소에 철학 우화를 많이 읽어 둔 학생이라면 창의적인 답안을 작성하기에 유리하다. 인식론에 관한 다양한 우화를 소개하면서 주관론과 경험론 사이의 접점을 찾아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었다면 높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다.
<논제 파악하기>
이 논제가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사물에 대해 올바른 인식에 이를 수 있느냐입니다. 사물과 해석을 물어 본 2003 연대, 2004 고대에 이어 이번에는 서울대가 이 주제를 건드렸습니다. 논제에서는 먼저 주관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경험론에 대한 논지를 전개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배경지식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 아예 5가지 문장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필요하면 골라서 쓰라는 것이지요. 사물에 대한 인식론을 묻는 논제는 주관론을 택해서 경험론을 공격할 수 있고 반대의 입장에서 주관론을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양한 참고문을 인용하라고 한 점, 그리고 우물 안 개구리 우화가 경험론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론의 부분적인 객관성을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자를 절충한 일종의 양시론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제시문 및 참고문 분석하기>
첫 제시문은 한 마디로 일체유심론이지요. 두 번째 제시문은 일종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입니다. 이른바 경험적 인식의 부분성입니다. 두 제시문은 인식의 주관론과 경험론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지요. 첫 제시문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대입 시험을 치른 사람이라면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20수년 전에 배운 내용이지만 국어교과서에서 피천득의 인연과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나는 어제 하룻밤 사이에 한 강을 아홉 번이나 건넜다.는 대목만큼은 외울 정도로 기억이 생생합니다. 두 번째 제시문은 대학입학 논술시험이 아니라 초등학생을 위한 철학 동화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난해한 제시문을 선호하던 서울대가 왜 이렇게 쉽고 평이한 제시문을 실었을까요? 논술 시험이 3년만에 부활한데다 고교 등급제 파문에 논술이 고액 과외를 조장한다느니 하는 이슈로 지난 한 해 교육계가 안팎으로 시끄러웠습니다. 다들 서울대 논술이 어떻게 나올까에 초미의 관심이 집중하고 있었지요. 문제를 어렵게 낼 경우 서울대가 아주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이번에는 다섯 개의 인용문을 보지요. 첫 번째 홍대용의 인용문은 의심 혹은 회의가 철학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데카르트의 코기토와 맞아떨어집니다. 주관적 관념론이지요. 두 번째 공자님 말씀은 내가 눈으로 보는 것만 믿는다는 유명론, 경험주의와 만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해석입니다. 세 번째 니체의 말은 전형적인 주관론입니다. 네 번째 괴테의 말은 진리의 어려움, 불가지론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로크는 경험론 그 자체입니다. 불가지론 1, 주관론 2, 경험론 2로 안배를 잘 해 놓았군요. 주관론을 논하고 경험론을 논한 다음 이것들을 극복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고 아니면 둘 중에 하나를 골라 뚝심 있게 밀고 나가면서 다른 쪽을 비판할 수 있을 겁니다. 논술 시험에 정답이 있을 수 없지만 제가 보기에는 제일 안전한 방법은 이 둘을 융합하는 것입니다. 둘 중에 하나가 맞고 틀리다 문제가 아니라 둘 다 부분적으로 진리이고 중요한 것은 이들을 모아 하나의 체계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에서 승부가 갈리지 않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첫번째 제시문보다 두 번째 제시문이 해결의 열쇠입니다. 경험론을 강조하면서도 관찰자의 위치 혹은 관점에 따라 달라 보일 수 있다는 상대주의까지 포괄하고 있으니까요. 이는 절대적인 진리의 추구가 아닌 상대성을 고려하면서 흑백 논리를 피하라는 주문으로 보입니다. 양자를 수렴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했을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브레인스토밍> 서울대는 우화를 좋아합니다. 지난 해 모의고사에서는 도입부에 원숭이 꽃신을 길게 인용한 친구가 1등을 했었습니다. 이번에는 외국의 시민교육기관의 자료집에 나와 있는 우화를 제시문으로 각색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다양한 우화들을 인용할 작정입니다. 인식론에 관한 한 동양철학이 서양철학을 최근에는 견인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신비주의로 비판받았지만 서양철학의 근본적 한계가 폐쇄적인 인식론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면서 세계의 다중성을 인정한 동양철학의 인식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지요. 물리학에서도 불확정성의 원리가 등장해 동양철학의 인식론을 받쳐주고 있습니다. 이 주제로는 정말 많은 거리가 있는데 얼마 전에 읽은 버트란드 러셀의 인식론에 관한 재미난 우화가 떠오릅니다. 한번 인용해 보겠습니다. 양계장의 닭들은 매일 아침 모이를 주는 주인의 손을 애타게 기다린다. 그제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기 때문에 닭들은 오늘도 주인의 손이 나타나자 포만에 대한 행복한 기대로 충만하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주인의 손이 갑자기 닭의 목을 잡아 비틀어 버린다. 닭은 영문도 모른 채 자비의 손에 의해 비참하게 죽어간다. 자기네들이 언젠가는 켄터기 프라이드 치킨이 될 줄 모르는 닭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주인의 손은 곧 먹이를 주는 손으로 받아들이기 되지요. 경험론적 인식의 한계를 지적하는 우화였습니다. 경험론에 대한 비판 거리로 딱이지요. 주관론에 대한 우화는 많습니다. 한비자에 보면 지자의린(智者疑隣)이라는 고사성어가 등장합니다. 지자의린은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송(宋)나라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큰비가 와서 그의 집 담장이 무너졌다. 아들이 말하기를 수리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도둑이 들 것입니다라고 했다. 마침 이웃집의 한 노인도 같은 말을 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 부잣집에 도둑이 들어 많은 물건을 훔쳐갔다. 이에 부자는 자기 아들은 아주 총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웃집 노인은 도둑으로 의심했다.』 감정의 친소(親疎)에 따라 사물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인간은 자신과 얼마나 친근하고 소원한가에 따라 서로 다른 감정이 생겨나고, 이런 감정이 개입됨으로써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할 외부 상황을 오인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주관론에 대한 반론으로 적절한 사례가 된다 하겠습니다. 인간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는 이른바 거울의 법칙도 주관론에 해당합니다. 주관론은 이처럼 편견, 제 눈의 안경 등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내포돼 있습니다. 전에 사마천의 사기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을 읽었습니다. 사기는 권력자가 읽으면 지배의 원리와 기술을 가르쳐주고 반역자가 읽으면 저항의 논리와 전술을 가르쳐주며 은둔자가 읽으면 세상의 덧없음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합니다. 또 같은 사람이 같은 부분을 읽어도 때에 따라서 다른 느낌을 받는다고도 하지요. 9번 건넜지만 모두 다른 느낌이었다는 제시문 1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 주관론과 경험론을 동시에 비판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공자님 말씀 중에요. 여씨춘추를 보면 공자가 제일 아끼는 안회가 자기 몰래 밥을 지어먹은 뒤 자기에게 한 술 들기를 권하자 너는 가장 깨끗한 밥을 선조에게 먼저 갖다 드렸구나라고 했답니다. 공자는 안회의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제일 아끼는 제자에게 실망을 하기 싫어서 그런 식으로 자기 위안을 한 것이지요. 그 대답을 듣자 안회가 밥에 재가 들어가 버리기 아까워서 손으로 퍼먹었다고 했습니다. 공자는 그제야 내가 내 눈을 믿었으나 그것도 정말 믿을 게 못되고, 내 마음을 의지하였으나 그것도 확실한 것이 아니구나!라고 답했다는 일화입니다. 구술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지요. 이제는 이런 배경지식들을 갖고 글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주장 만들기>
중요한 것은 남의 말이 아니라 제 의견이겠지요. ① 눈에 보는 것만 믿다가는 큰 코 다친다. ② 극단적인 관념론은 편견과 만나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할 외부 상황을 오인할 수 있게 만든다. ③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문화적 상대성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④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경험론과 동양의 관념론이 모두 필요하다.
<근거 만들기>
① 버트란드 러셀의 인식론에 관한 우화 ② 인용문 1,2, 5와 제시문 1, 2 ③ 다양한 집단이 등장하고 거기에 맞는 담론이 형성되면서 인식론적 상대주의가 등장하고 있는 추세 ④ 세계의 다중성을 주장한 듀이와 퍼스는 동양철학과도 만난다. ⑤ 공자와 안회의 우화
<개요짜기>
서론 : 러셀의 우화로 시작, 러셀의 우화는 경험을 만병통치약으로 치는 경험론을 비판하고 있다.
본론 1 : 제시문 1분석, 일체유심조요 눈과 귀에 의존하는 것은 마음을 흐리게 한다. 본론 2 : 제시문 2분석, 우물안 개구리들은 우물 밖으로 나와 변화하는 것 그 자체가 이 세상의 진실이라는 것을 느꼈다. 본론 3 :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도달하려면 경험론과 관념론이 모두 필요하다. 본론 4 : 다원화되는 이 사회는 관념론과 경험론의 통합을 원한다.
결론 : 공자와 안회의 일화, 마음도 아니고 눈도 아니고 안회의 말이 진리였다.
<논술문 쓰기> 2600자
양계장의 닭들은 매일 아침 모이를 주는 주인의 손을 애타게 기다린다. 그제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기 때문이다. 닭들은 오늘도 주인의 손이 나타나자 먹이를 기대하며 반갑게 주인을 맞이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주인의 손이 갑자기 닭의 목을 잡아 비틀어 버린다. 닭은 영문도 모른 채 자비의 손에 의해 죽어간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의 인식론에 관한 유명한 우화이다. 언젠가는 고기로 쓰일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닭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주인의 손은 언제나 먹이를 주는 축복의 손으로 받아들인다. 주인이 먹이를 주는 목적을 알 길이 없는 닭들이기에 죽기 직전까지도 먹이를 기대하다 이유를 모른 채 죽어가는 것이다. 러셀은 이 우화에서 경험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극단적 경험론자들의 자세를 꼬집고 있다. 제시문 1 역시 러셀의 우화처럼 경험론에 대한 반대의 입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글은 연암 박지원이 하룻밤에 같은 강을 아홉 번 건너면서 느낀 감회를 적은 것으로 자신의 마음 상태에 따라 한 사물이 어떻게 다르게 인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밤에 건널 때는 낮에는 들리지 않았던 강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죽음에 대해서 초연해지자 그 울음소리가 그쳤다는 대목에서 바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일체유심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암은 한 술 더 떠 소리와 빛은 모두 외물이며 사람의 판단 기능을 마비시켜 버린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물론 극단적인 관념론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 외부와 차단된 마음은 언제든 편견과 만나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할 외부 상황을 오인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제시문 1이 경험보다 주관적 관념을 우위에 둔 동양적인 인식론을 대변해주고 있다면 제시문2는 경험적인 것의 중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외부 세계와 차단된 우물 안 개구리들이 경험의 폭을 넓혀 가는 과정 속에서 세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이다. 언뜻 보기에는 지극히 서구적인 경험론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특이한 점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져보고 저마다 다른 평가를 내렸듯이 개구리들도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낮에 본 태양과 밤에 본 달과 별이 이 세상의 진실은 진실이되 부분적 진실이었던 것이다. 우물 밖으로 나온 개구리들은 낮과 밤이 교차하는 일몰과 일출의 과정을 죽 지켜보면서 변화하는 것 그 자체가 이 세상의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경험론을 강조하면서도 경험은 언제나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이 우화는 인정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제시문 2의 경험론과 제시문1의 관념론이 모두 필요하다. 제시문만 살펴보면 서양은 경험론, 동양은 주관론으로 구분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성급한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서양과 동양은 하류에서 갈라지고 상류에서 다시 만난다. 큰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큰 깨달음이 없다는 홍대용의 말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코기토와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는 공자의 말은 서양의 유명론과 경험주의 철학과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또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듀이의 실증주의 철학에서는 세계의 다중성을 인정한 동양철학의 영향을 읽을 수 있다! . 따라서 서양철학의 경험론은 이제 한 물 갔으니 동양의 주관론에서 대안을 찾자는 주장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하겠다. 동양철학을 주관론, 서양철학을 경험론으로 단정지을 수도 없거니와 경험론이 잉태한 효율성과 합리성은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집단이 등장하고 있으며 각 집단은 그들 스스로의 담론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열린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인식론 영역에 적용해볼 때 현대 사회는 존재 가치를 차별성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서 상대주의가 힘을 얻고 있다. 인식론적인 상대주의는 문화적 상대성의 바탕이 되는 것으로 절대적인 진리보다는 진리의 상대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각 집단에게는 집단 고유의 가치가 있고 타인이나 다른 사회의 가치관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경험론의 특징을 띄고 있다. 하지만 각 집단이나 개인의 고유한 시각이나 가치관을 높이 산다는 점에서 주관론적인 특징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례를 볼 때 우리에게는 주관론이든 경험론이든 어느 한쪽의 진리를 절대시하기보다는 진리의 상대성을 인정하며 양자를 수렴해 가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겠다. 경험론과 주관론은 '언제나 함께 있어 좋은 존재'다. 이와 관련 공자와 그 제자 안회 사이에서 있었던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전란 중에 굶기를 밥먹듯 했던 시절의 일이었다. 안회가 밥을 지어 먼저 퍼먹은 뒤 공자에게 나중에 한 술 들기를 권하자 공자가 너는 가장 깨끗한 밥을 선조에게 먼저 갖다 드렸구나라고 했다. 공자는 안회의 태도가 괘씸했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제일 아끼는 제자에게 실망을 하기 싫어서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말을 했던 것이다. 그 대답을 듣자 안회가 밥에 재가 들어가 버리기 아까워서 손으로 퍼먹었다고 했다. 공자는 그제야 내가 내 눈을 믿었으나 그것도 정말 믿을 게 못되고, 내 마음을 의지하였으나 그것도 확실한 것이 아니구나!라고 답했다. 진실은 공자의 마음도 아니었고 눈도 아니었고 바로 안회의 말에 있었던 것이다.
[해설 2]
Ⅰ. 출제 의도
□ 서울대학교 논술고사는 (1) 논제의 핵심을 정확히 이해하고, (2) 문제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그 내용을 분석한 후, (3) 그에 따라 설정된 주장들을 자신의 논지로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4) 합리적이면서도 일관성 있게 논증하는 능력과 함께 (5) 창의적 사고력과 표현력이 적절히 조화되어 나타나는지를 아울러서 평가 한다.
□ 2005학년도 정시모집 논술고사는 이러한 능력을 평가하기 위하여 ‘인간이 사물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식의 부분성 및 주관성의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들을 학생들에게 제시문으로 주고 그것을 소재로 자신의 논지를 발전시키도록 하였다.
Ⅱ. 문항 구성
□ 2005학년도 정시모집 논술고사는 두 개의 제시문을 사용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그 두 글이 함의하는 요지를 연결하여 자신의 주장을 완성하도록 하였다. 두 개의 제시문은 직접적으로 어떠한 주장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기보다 비유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답안을 작성할 때 다양한 맥락을 인도해 줄 수 있는 짧은 참고문들을 별도로 제시함으로써 그것들을 직접 인용하거나 혹은 사고의 단초로 삼을 수 있도록 하였다.
□ 학생들은, 【제시문 1】을 읽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한 후 그것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초반부에 제시한다. 그리고 그 관점을 적용하여 【제시문 2】의 내용을 분석하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설명하되, 사물의 인식과 관련하여 이야기의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핵심 요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고의 유추를 인도해 줄 수 있는 다섯 개의 짧은 참고문을 필요에 따라 활용하되, 그 중 하나는 반드시 자신의 글 속에 직접 인용하여야 한다.
□ 【제시문 1】은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朴趾源)이 1780년(정조 4) 청(淸)나라 고종(高宗)의 칠순연(七旬宴)을 축하하기 위하여 파견된 사신 일행의 수행원으로 중국에 다녀온 견문을 기록한 책인 『열하일기(熱河日記)』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의 한 부분이다. 이 글은 그가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면서 느낀 감회를 적은 것으로, 자신의 마음 상태에 따라 동일한 사물이 어떻게 다르게 인식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 【제시문 2】는 외국의 한 시민교육기관의 자료집에 나와 있는 우화를 각색한 것으로서, 무지의 상태에 놓여 있던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 몇 단계를 거치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인식을 확대해 가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기존의 ‘우물안 개구리’나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담고 있는 의미구조를 넘어서 새로운 쟁점들을 담고 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밖에는 언제나 태양(진리)이 떠 있으며 그리고 누구라도 동굴 밖으로 나가면 동일한 태양을 볼 수 있다고 전제하는 반면, 이 우화에서 밖의 세계는 변화와 모순을 함께 포함하는 총체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또한 관찰자가 보는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는 세계이기도 하다.
□ 위의 두 제시문을 보면 첫 번째 제시문이 ‘보이는 것의 주관성’을 강조하는 반면, 두 번째 제시문은 ‘부분적이고도 경험적인 객관성’을 전제로 한다. 중요한 핵심은 이들 부분적 진리들을 하나의 체계적 구조로 구성해 냄으로써 부분들 속에 숨겨져 있는 진리의 편린들을 하나의 체계 안에서 완성해 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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