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시산맥 작품상 후보작품 - [추천사유] - 박종인

[박종인]

시베리아행 기차를 탄다

                                                                             최금진

담양 대숲에 와 너에게 가는 기차를 탄다 날마다 새로 가보는 나라

추위는 가지에 돋고 동충화초, 죽음을 빨아먹고 자라난 망상 속에

밤새 철로를 놓아주던 눈들은 시베리아로 노역하러 가고

호수 위를 걷는 소금쟁이의 기적을 믿던 사랑, 인간 이하의 짓

어머니는 담양에 와서 자꾸 이곳 사람들 말을 못 알아먹고

빵을 나눠먹을 늙은 개 한 마리 없이 대숲을 걷는다

대나무숲에 내리는 눈은 은하수처럼 푸르고

눈을 감으면 내 속에 들어오고, 눈을 뜨면 숲이 되는 동안

어머니는 관절염을 질질 끌고 오일장에 나가 내 우울증을 위해 약재를 사고

시베리아행 열차는 겨울에 떠나고, 겨울은 외로운 자들이 지어 놓은 낡은 건물

사랑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비굴한 짓, 너와 내가 죽으면

어느 플랫폼에서 다른 기차를 갈아타며 인사를 나눌까

화장지처럼 둘둘 풀려서 날아가는 새들아, 북쪽 어느 추운 해변에서

너는 나를 같은 성씨를 갖는다. 어머니는 각서를 쓰라 하고

똑바로 살 마음이 내겐 없는데, 기차를 타고 어디까지 가야 너와 헤어질까

나는 어린 왕자, 나는 이상한 아저씨, 나는 라엘리안 나는 시베리아행 기차

나는 세상을 에언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을 다 꿰뚫어 볼 수 었다

대숲에서, 시베리아유민들의 얼어터진 유배의 역사를 읽는다

-제4회 시산맥 작품상 후보작품

최금진시인의 시베리아로의 유배

                                                    [추천사유] - 박종인

시베리아 하면 추위가 연상된다. 겨울의 평균 온도가 영하 즉 -14도에서 -48도이다. 최금진 시인의 <시베리아행 기차를 탄다>의 시베리아는 문자적 기온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사랑 “동충화초, 죽음을 빨아먹고 자라난 망상 속에 밤새 철로를 놓아주던 눈물은 시베리아로 노역하러 가고”의 동충화초에 해당하는 여인의 죽음이 눈물까지 말리고 화자의 마음을 시베리아 기온으로 내리게 함을 가리킨다. 다르게 표현하면 그만큼 화자의 마음이 춥고 시리다는 말이다. 담양 대나무 숲 역시 침엽수가 많은 시베리아를 연상케 했으리라 “너는 나를 같은 성씨를 갖는다”라는 글귀는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성씨를 가진’ 아이를 잉태한 듯하고 “각서를 쓰라”하는 어머니의 반대는 본의 아니게 책임 회피의 태도를 보이게 하여 여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모양이다.

요즈음이야 만나고 헤어짐이 다반사지만 예전엔 연애사건이 큰 이슈였다. 아이의 잉태는 매우 심각한 것으로서 처녀 혼자 감당하다가 인위적 낙태도 어려워져 자살로 이어지기도 했다. 위의 시 인용 부분은 어머니로 말미암은 비극을 사람들이 탓하는 것일까? “어머니는 담양에 와서 이곳 사람들 말을 못 알아먹고 빵을 나눠 먹을 늙은 개 한 마리 없이 대숲을 걷는다”라고 한다.

“너와 내가 죽으면 어느 플랫폼에서 다른 기차를 갈아타며 인사를 나눌까“라는 부분도 성서 마태 5 : 32 과 같이 화자도 죽음만이 다른 사랑으로 갈아타는 것을 허용한다. 절실함, 간절함도 우울증을 불러들일 정도였다. 그것은 지고지순함을 상실하고 쉽게 헤어지고 갈아타는 오늘날의 세태를 부끄럽게 한다. “똑바로 살 마음이 내겐 없는데, 기차를 타고 어디까지 가야 너와 헤어질까”라고 되뇌는 것 역시 언제까지나 그 여인에게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역설적 표현이다

  하지만 “남자는 다 도둑이다”라는 속어처럼 이루기 어려운 사랑임에도 온갖 감언이설로 꾀다가 아이를 가졌다는 말에 꽁무니를 빼는 속성, 그것이 위의 시에도 나타난다. 시작부터 불가능한 사랑을 예견했기에 “호수 위를 걷는 소금쟁이의 기적을 믿던 사랑”이라 명명하지 않은가? 결국, 감당하지 못하고 비굴하게 어머니의 각서를 빙자하여 어떤 이유로인가 죄인이 된 화자는 시베리아로 유배를 가는 것이다.

여기서 화자는 죄인을 태운 기차이고 시간은 철로가 될 것이다. 시베리아도 두 달의 여름 기온은 영상 5-23도인데 시에서의 화자는 어머니가 우울증 약을 사러 갈 정도로 스스로 겨울을 만들고 외로운 자들이 지어 놓은 건물이 겨울이라 한다. 이 시의 화자는 그만큼 양심의 기능이 잘 발휘하여 ‘사랑이 비굴한 짓’ ‘인간 이하의 짓’이라고 자책한다.

화자의 표현처럼 어쩌면 잘못된 사랑은 가장 비굴하고 인간 이하의 짓인지 모른다. 성서에도 그 점이 나타난다. 사무엘하 13 : 1-39에 암논이 이복누이인 다말 에게 사랑을 느끼고 넘을 수 없는 선까지 가 비극을 초래한 예가 있다. 그 경우 사랑이 죽음을 낳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랑은 유배되어가는 죄인의 심정이 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정말 굉장한 위력을 지니지 않았는가? 사랑이 지옥과 천국이 되게도 하고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고 위의 시처럼 시베리아가 되게도 하지 않은가?

  또한, 위의 시에는 참으로 많은 생각이 투영되어 있다. “나는 어린 왕자, 나는 이상한 아저씨, 나는 라엘리안 나는 시베리아행 기차” 이 부분에서도 사랑의 변해가는 감정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표현한 듯싶다. 세상을 예언하리만큼, 사람들을 꿰뚫어 볼 수 있으리만큼. 시베리아 유배의 역사를 읽을 만큼 많은 고통과 번민 속에서 통달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아픈 만큼 성숙해 졌다는 것일까?

  또 다른 면으로 시베리아행 기차는 “같은 성을 갖는다”라는 의미에서 이복동생일 가능성도 시사한다. 어머니의 각서 요구에서 넘을 수 없는 사랑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기 때문이다. 짝사랑의 스토커 행동으로 연상되기도 하는 위의 시는 화자의 좌절된 사랑의 내면을 시베리아를 빌려 점점 고도의 세계로 나가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사랑이 죄인을 만들고 시베리아로 유배되어 가기까지의 과정이 실감 난다. 그 마음의 상태는 어떤 상황을 대입해도 맥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좋은시의 모호성은 상상력을 증폭시킨다. 최금진 시인의 시가 여러 가지로 읽히는 것은 그 면에서 성공했다는 증거이다.

  그에 더하여 최금진 시인의 시는 일상으로부터 발견한 깨달음을 시로 승화시키는 것인데 위의 시에서도 아픔. 죄의식이, 세상을 꿰뚫는 안목으로 바뀌고 있다. 더욱이 위의 시가 가져다주는 특별한 의미는 화자의 비밀스러운 내적 세계를 죄인의 심정으로 고백하듯 드러내는 인간미와 진정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자의가 아닌 타자에 의해서 좌지우지되어버린 사랑, 삶과 정신세계에 투영된 이루지 못한 결핍과 실재하는 갈등의 내면세계를 의도적인 직간접적 사용법으로 현실감 있게 엮어낸 점이 돋보인다. 현재에서 과거로 미래로의 왕래를 통해 시베리아라는 상상력을 동원해서 죽음으로 말미암은 고통, 절망을 유배의 역사로까지 확대 적용한 저력이 보이는 이 시를 작품상 후보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