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살자의 도피성 3 (수 20:6)
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오늘도 “오살자의 도피성” 시간입니다. 도피성은 실수로 살인한 자를 위하여 그의 피의 보수자들에게서 그 생명을 보존토록 마련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리고 도피성은 예수 안에서 죄인이 구원 받는 원리를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계속하여 도피성이 보여주는 구속의 진리는 무엇일까요?
5. 심령이 보호 받는 은혜입니다.
수20:4-5에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했습니다.
도피성 운영 방침이 나타납니다. 부지 중에 오살한 자를 도피성에서 받아주어 거주하게 하고 보호합니다. 그런데 도피성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잡혀 죽기 전에 도망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다가 잡혀 죽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넓게는 죽기 전에 예수 믿어야 한다는 것이고, 좁게는 범죄한 즉시 회개하라는 교훈입니다. 회개는 늦을수록 손해입니다. 율법과 사탄이 우리를 참소하기 전에 전에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4절에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했듯이 회개란 자기의 잘못을 고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속히 회개할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엡4:26-27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했습니다. 요일1:9에도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했습니다.
성도는 죄인이지만 의인이요, 의인이지만 죄인입니다. 예수 공로로 의인이지만 또한 하나님을 멀리하고 의지하지 못해 범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죄인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면 승리하는데 기도하지 않고 승리의 복음에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범죄도 믿음이 없어 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없어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고백하며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도피성에 들인 후에 문을 단단히 닫아주십니다. 아무리 피의 보수자가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내게로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6:37) 하셨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 하셨고,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았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8-29)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 오면 심판이 없습니다. 요5:24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율법의 정죄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용서와 구원과 새로움과 능력과 복과 영생과 영광과 사랑과 평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속죄의 진리에 서서 자기를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6. 어떤 일이 있어도 구속의 진리에 서시기 바랍니다.
민35:26-27에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 성 지경에 나갔다 하자 피를 보수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위하여 피 흘린 죄가 없나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피성 밖으로 나 가면 안 됩니다. 부모가 돌아가셨든지 급하게 볼 일이 있어도 도피성을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나갔다가 잡혀 죽어도 보수자의 잘못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히6:4-6에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했습니다.
히10:26-27에도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여기 짐짓죄란 “일부러 죄”를 가리키는데 전체적인 문맥으로 보면 예수를 배반하고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혹은 그리스도를 떠난 것은 아니지만 속죄의 진리를 모르거나 굳게 서지 못할 때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롬10:2-3에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했습니다.
롬9:31-32에는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했습니다. 우리 성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지만 속죄의 복음에 서지 않으면 영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속죄의 담대한 믿음에 서시기 바랍니다.
7. 안식과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도피성에 있으면 오살자가 완전한 해방을 맞을 날이 옵니다. 수20:6에 "그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나 당시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가 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그 성읍의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했습니다. 오살자의 해방 조건은 두 가지인데 즉 재판을 받아 무죄 판결이 선고되거나 대제사장이 죽을 때입니다.
여기에 깊은 비밀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예수 공로로 무죄판결이 내려졌습니다. 히10:14-18에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대제사장이 죽으면 법적으로 자유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죽음은 도피성의 죄인들에게는 희소식이었습니다. 그 날이 모든 죄를 탕감 받는 날입니다.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피의 보수자가 손을 대지 못합니다. 손을 대면 그것은 불법으로 도리어 그가 당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제물 되시고 대제사장도 되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만민의 죄를 위하여 속죄의 어린양으로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죄인들이 죄에서 완전한 해방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된 일입니다. 이것이 도피성 진리의 절정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죽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 시대입니다. 신약시대는 이미 대제사장 되신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죽음으로 완전한 구원을 이루어 놓으셨기에 누구든지 믿고 양심의 자유를 누리면서 회개만 하면 됩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히7:23-25에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원죄와 자범죄로 영벌에 처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셔서 아버지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변호하심으로 우리는 영원한 자유와 안식을 누립니다. 주님을 믿되 그 은혜까지 온전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피의 보수자에게 잡혀죽지 말고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죄에서의 참된 자유와 해방을 누리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살자의 도피성 4 (수 20:7-9)
7.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8.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오늘은 도피성 마지막 시간으로 “도피성의 이름으로 본 예수”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에 도피성이 요단강 동편에 베셀, 길르앗라못, 바산 골란 3곳이고, 요단강 서편에는 갈릴리 게데스, 세겜, 헤브론 3곳(수20:7-8) 모두 6성입니다.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그 이름 역시 어떤 귀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6개의 도피성 이름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요?
1. 도피성은 거룩하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도피성으로 “갈릴리 게데스”가 있는데 요단강 서편 납달리 산지에 있는 갈릴리에 위치한 도피성입니다. 가나안 정복 이전 여호와의 성막이 잠시 머물렀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게데스”는 히브리어로 ‘코데쉬’로서 성화 성결 지성소 지성물 등의 의미로서 ‘거룩한 곳’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거룩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이 거룩하신 예수님께 피하면 우리들도 거룩해집니다. 그래서 히2:11에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랬고, 고전1:30에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 거룩함-이 되셨”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거룩합니다. 그래서 고전3:16-17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님의 피 공로 의지하여 성소는 물론 지성소 하나님 앞에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2. 도피성은 빛 되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도피성 중 “바산 골란”이 있는데 요단강 동편의 므낫새 반지파의 성읍으로 바산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바산은 비옥하다는 뜻으로 풍요로운 초원으로 펼쳐져 있는 비옥한 광야입니다. 이곳이 풍요로운 이유는 바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골란고원이 해발 1,000m에 위치해 있어 강우량이 많기 때문입니다.
골란고원은 1.176km2의 암석지대로서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합니다. 지대가 높아서 보이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시원한 곳입니다. 1967년 6일 전쟁 때도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 곳으로 ‘골란’은 발가벗기다, 밝히다, 알게 하다, 선포하다, 드러내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 낱말은 말씀을 연상하는 낱말들입니다.
이처럼 예수 안에 오면 어떤 비밀도 다 풀립니다. 성경이 어렵다 해도 예수로 해석하면 해석됩니다. 그래서 고후3:15-16에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인봉된 책도 어린양 예수님이 모두 떼어 개봉하시는 것처럼 수건으로 덮힌 성경말씀도 예수로 해석하면 다 해석됩니다.
그 뿐 아니라 히4:12-13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한 것처럼 예수 앞에 나오면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기까지 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건 세상 사람들은 절대 모르는 진리입니다.
3. 도피성은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도피성 중에 “길르앗 라못”은 요단 동편의 갓지파의 영내에 있는데 길르앗 라못은 ‘룸’ 자랑하다 양육하다 세우다. 높아지다 라는 의미의 단어와, ‘갈랄’ 옮기다. 굴리다. 떠나게 하다. 라는 뜻의 단어와, ‘에드’ 증거, 증인이라는 뜻의 세 단어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예수 안에서 양육 받아 모든 죄를 떨어버리고 성령 받아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어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을 연상시킵니다. 그래서 딛2:11-13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 다 했습니다.
여기서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발견합니다. 사람은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영이 임하시면 온전해집니다. 사도들이 성령 받고 온전해졌습니다. 또한 온전하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온전해집니다. 이런 본받는 면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히12:1-2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했습니다. 이 온전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4. 도피성은 죄를 심판하시는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도피성 중에 “베셀”이 있는데 베셀은 르우벤 지파의 영내 평지 광야에 있었습니다. 원어로는 베체르인데 삭재하다, 절단하다, 베어내다, 견고하다, 은밀한 일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할례를 연상시키는 단어로 이처럼 예수 믿으면 세상의 부정한 것, 세상 정욕과 은밀한 죄까지도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롬2:29에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그랬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죄악을 수술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계 7장의 흰옷 입은 무리와 같이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었느니라”(계7:14) 한 것처럼 성도는 환난 속에서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환난이 우리를 정하게 한 것이 아니라 환난 가운데 더욱 주님을 붙잡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119:67에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했고, 딛3:5-6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황무지에서 만나서 은혜로 씻어주십니다.
5. 도피성은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도피성 중에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이 있습니다. 옛 이름 기럇아르바는 ‘4의 도시, 네 구역의 성읍, 혹은 유명한 네 사람의 성읍’이란 뜻입니다. 헤브론은 남부 유다에 있는 도피성으로 그 뜻은 ‘연합, 동맹, 묶다, 결합하다, 연결하다, 연합하다, 교제하다.’ 라는 뜻입니다. 4개의 도시가 잘 연합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곳을 갈렙이 정복했으니 그 믿음이 위대합니다.
이처럼 예수 믿는 자는 예수님과 신비적 연합이 되어 있고 믿는 지체들과도 영적으로 하나 됩니다. 그래서 엡4:15-16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으면 서로 통합니다. 슬플 일이 없는데 슬프다면 슬픔을 당한 가정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대상이 생각나지 않거든 누군가 슬픔을 당한 가정을 위로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함으로 우리 모두는 더욱 믿음이 자라고 평안해집니다.
그리고 연합에는 생명적 연합과 인격적 연합이 있는데 생명적 연합은 예수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신비적 연합이고, 인격적 연합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제하고 말씀을 따름으로서 한 마음 되는 연합입니다. 예수 믿음으로 신비적 연합은 이루어졌으니 인격적 연합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 때 신비적 연합까지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6. 도피성은 충성의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도피성 중에 “세겜”, 세겜은 에브라임 산지 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세겜은 어께, 목, 산마루, 아침, 새벽, 부지런히, 끊임없이, 일찍이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짐을 어께에 메거나 목에 거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세겜은 짐을 어께에 메거나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일하는 농부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이처럼 계19:11에 보면 예수 이름이 충신과 진실입니다. 성령의 열매 가운데도 충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부지런해지고 충성스러워집니다. 도피성은 도피 외에도 신앙훈련소입니다. 도피성은 레위지파의 성으로 부지런하지 않으면 함께 살 수 없습니다. 제사장의 생활이 그렇듯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하고 양들을 돌보고 밤에 기도하고 부지런하지 않고는 맞추어 살 수 없습니다. 살인자도 제사장의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함께 삶을 같이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부지런한 믿음을 훈련해야 합니다. 게으른 순간 사탄이 그만큼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래서 롬12:11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했고, 벧전4:7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피할 곳은 없습니다. 도피성되신 예수께로 오시기 바랍니다. 예수께로 오면 죄가 피해지고 게으름도 피해지고 세상도 피해집니다. 저주와 슬픔과 사탄도 달아납니다. 그리고 우리를 온전케 하고 영광스럽게 하고 위대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 피하면 피할 곳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잘 경외함으로 도피성 되신 예수님께 온전히 피해서 가장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