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오백마흔세 번째
함묵경청緘黙傾聽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정호승 시인은 우리의 외로움이 숙명이라고 합니다. 외로움은 젊을 때든 나이 들어서든 누구에게나 불쑥불쑥 찾아오는 손님입니다. 실은 언제 왔는지도 알지 못하게 슬며시 다가옵니다. 어쩌면 늘 우리 곁에 늘 있었는데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불현듯 손끝에 잡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정온鄭蘊이 제주도에 유배 중일 때 그의 아들이 전염병으로 인해 산사에 피접하게 되자, 행여 아들이 외로워할까 봐 보낸 편지에서 “잠깐 동안의 걱정이니 말할 것 없다.”라며 아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부모로서 여전히 관심을 갖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신호겠지요. 외로움은 타인과의 단절을 느꼈을 때 알아차리게 됩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 여러 이유로 접촉이 뜸해지기에 더욱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한 사람들은 자기 삶을 지키며 남과 비교하지 않고 언제나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경제적인 욕심이나 자식에 대한 집착 때문에 그런 듯싶습니다. 집착이 외로움을 불러들입니다. 외로움을 불러들이는 또 다른 처세는 체면과 고집으로 인간관계가 딱딱해진 겁니다. 덜어낼수록, 내려놓을수록 노년의 외로움도 덜어진답니다. 예로부터 나이 들면 함묵경청緘黙傾聽, 입을 다물고 조용히 들으라 했는데 입이 근질근질해 참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경청은 배워야 할 예술이라고까지 했는데 배우지 못한 겁니다. 정호승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걷는다면 함께 걷는 이웃이 많아질 텐데, 이도 쉽지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