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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9(월)
아름다운 동행! 네팔로 GO! GO!
새벽 4시 40분 히말라야 트레킹 여행을 떠나기 위해 우리 일행들은 청주시 산남동 키즈클럽(산남동)에서 만났다.
카고백에 개인짐을 싣고 5시에 청주를 출발하여 천안에서 4명, 인천공항에서 1명이 합류하여 총22명이 모였다. 첫 만남은 어색했지만 “히말라야 오지 마을 체험단”이라는 공동체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모두들 능수 능란하게 박연수 대장님의 지시에 따라 카고백을 20kg을 넘지 않도록 정리하여 짐을 먼저 부치고 9시 40분 네팔행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처음으로 영일이와 지일이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해외여행이라 설렘이 두 배였다. 영일이와 지일이는 엊그제까지 프랑스 여행인줄만 알고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다가 여행지가 네팔이란 말에 실망을 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영일이가 히말라야 트레킹에 조금씩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다. “가슴이 설렌다고…….”
네팔 카투만두 공항의 이상 기류로 우리는 예상시간 보다 2시간이 더 걸려 8시간 만에 도착하였다.
도착하니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 네팔의 국제공항은 우리나라의 작은 도시 버스정류장 같은 느낌이었다. 네팔은 우리나라의 60~70년대 정도의 수준이었다. 메케한 매연 냄새. 도로는 신호등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동자는 한없이 크고 맑았다. 웃는 모습이 아직도 순수함 그 자체 우리 체험단이 하루 밤 묵을 숙소는 예전에 왕궁으로 쓰였던 YAK & YETI 호텔에 도착하였다. 호텔 관계자 분께서 로비에서 환영의 표시로 하얀 천을 목에 둘러 주면서 “라마스테” 인사로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우리를 환대 해 주었다. 왕궁으로 쓰였던 호텔이라 그런지 가구며 외관 모두 근사하였다. 네팔에 이런 호텔이. 오늘밤은 왕비가 되어보나…….
저녁은 카투만두 시내의 한 음식점에 들러 맛있는 치킨시슬러와 스테이크, 맥주를 맛나게 먹었다. 오늘은 TV에서만 보던 히말라야 산 아래 카투만두에서 단잠을 자게 된다.
네팔은 아열대 몬순기후로 2℃~40℃로 우리나라 겨울보다 춥지 않았다.
2012.1.10(화)
아침 6시 27분 호텔을 출발
아침식사는 8시 30분경 담푸스를 가는 중간 휴게소에서 호텔에서 간편하게 준비해 온 빵, 바나나, 사과, 계란, 네팔식 카레밥을 먹었는데 영일이는 맛이 없다고 찡찡됐다.
오늘은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담푸스를 향해 고속도로(빌티지가라말카)를 씽씽 달렸다. 고속도로라고는 하지만 비포장도로에 왕복 2차선이며, 좁은 도로를 서로 앞 다투면서 달리려고 계속 빵빵거리며 달려와 조금만 방심하면 바로 아래 협곡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 정말 두려웠다. 대형 화물트럭이 쉼없이 달리는데, 네팔의 물자는 거의 대부분 인도에서 수입을 한다고 한다. 깊은 협곡을 돌아 긴 강(트리슐라강)의 물이 한없이 흘러 가고 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만 같은 안개폭포에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높은 산 여기저기에 다랭이논, 히말라야에 사는 사람들은 산을 깎아 다랭이논을 만들고 거기서 나온 돌로 집을 짓는다고 한다. 그 높은 산에 어떻게 집을 짓고 살까?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의 목적지로 가는 도중 앞차의 사고로 차량이 즐비하게 멈추어 서있다. 네팔에서는 사고 처리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다행히 사고차량이 금방 처리가 되어 우리는 다시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었다. 우리 오지마을 체험단 일행 중 슬리퍼를 준비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 잠시 차를 세우고, 우리나라 시골 장이 서는 모습과 흡사한 시장에서 본인들이 원하는 슬리퍼를 구입했다. 메케한 매연냄새에 벌써부터 코와 목이 또 아파온다. 우리나라 60~70년대에 머물고 있다는 네팔. 3시 30분경 패디에서 담푸스로 가기 위해 지프차로 갈아탔다. 가는 도중에 저 멀리에 안나푸르나 고봉들이 조금씩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저기를 간다. 가슴이 벌써부터 설렌다. 깊은 협곡을 지나 5시경에 담푸스의 사쿠라 롯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 밤부터 침낭생활이다. 새로운 경험에 영일, 지일이가 조금씩 마음을 열고 기대에 부풀어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든다. 개인 카고백을 지정된 방에 옮겨 놓은 후 체험단원 모두 다이닝룸에 모여 각자 자기소개를 간단하게 하고, 박연수 대장님께서는 내일 일정을 말씀해주셨다. 박연수 대장님과 한 이불을 덮고 사시는 한은순 선생님이 정성스럽게 네팔에 대한 일정과 정보들을 보기 싶게 알 수 있도록 책자로 만들어 주셔서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청소년대원들이 돌아가며 논어 한 구절을 읽고 의미를 되새기며 하루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대장님은 각자 수통에 따뜻한 물(따또바니)을 받아 침낭 속에 넣어 보온을 유지하도록 당부를 하셨다. 아침에 그 수통의 물로 가볍게 세수와 양치질을 하는 것이라고 자상하게 일러주셨다. 하나씩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되었다. 저녁은 맛난 돼지고기 수육과 된장국, 상추쌈이었다. 한국에서 맛보았던 음식을 머나먼 히말라야산맥 일원에서 먹을 수 있는 것에 너무 신기하고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음식 맛처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네팔요리사들이 박대장님이 준비해 온 재료들을 박대장님이 일러주신 그대로 요리를 해서 준비 했다고 한다. 역시 국적을 불문하고 전문가들은 자기 나름의 영역을 잘지켜주고 표현하는 것에도 다시 한 번 놀랬다. 아무튼 우리 체험단원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먹을 수 있도록 맛난 저녁을 준비해준 네팔 요리사분들게 정말이지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다이닝룸 저편에 솟아오른 달빛이 엄청 밝았다. 달빛아래 선명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를 베개 삼아 행복한 단잠에 들어갔다.
2012.1.11(수)
우리는 하나! 난두룩 아이들과 동심의 세계로.
새벽 6시 기상, 청소년들은 30분 먼저 일찍 일어나 점호를 했다. 집에서는 아침잠이 많은 영일 이는 더 자고 싶다고 항상 투정부리곤 했는데, 여기서는 단체생활이라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하였더니 힘겹게 일어나 점호를 하고 왔다. 그래도 영일, 지일이가 안나푸르나 트래킹 내내 잘할 것이라 믿어본다.
롯지에서 미역국을 먹고 히말라야 오지마을 체험단원들은 모두 모여 “나눔의 행복, 소통의 즐거움,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어제 달빛에 비친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가 오늘 아침에는 더 선명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우리가 간다. 기다려 다오.
임종헌 대원이 청소년 대원들을 인솔하여 먼저 출발하고 어른들이 뒤를 이어 따라갔다. 아침/저녁은 추웠지만 한낮은 우리나라 초가을 정도의 날씨로 여행하기 정말 좋은 날씨였다. 두꺼운 겨울 등산복을 아침에 입고 나서서 그런지 걷다 보니 더웠다. 산 여기 저기 예쁜 꽃들도 볼 수 있었다. 점심은 툴카에서 맛있는 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여 가는 도중 투루카라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두 시간 정도 걷고 나니 우리는 난두룩에 도착하게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준비해온 학용품과 옷 등을 준비하여 서둘러 난두룩 초등학교로 갔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이하 학교관계자 분과 학생들이“라마스테” 인사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예쁜 꽃으로 엮은 목걸이도 걸어 주었다. 어제 저녁 청소년대원들은 난두룩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할 노래며 게임 준비를 했었다. 우리 일행들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어릴적 동네 아이들과 함께 하고 놀았던, 꼬리잡기 놀이를 그곳의 아이들과 어우러져 신명나게 놀이를 한 후 준비해 간 선물과 기부금을 전달하였다. 옷과 신발은 남루하였지만 그 커다랗고 호수 같은 눈동자에서 히말라야 아이들의 순수함을 보았고, 꼬리를 놓지 않으려고 내 허리를 꼭 감싸 않을 때 참 행복하고 따뜻한 체온을 함께 느꼈던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한 소중한 시간들이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남을 것 같고, 우리는 하나라는 생각을 다시 해 본다. 그 어릴 적 지리산의 한 시골마을(산청)에서 여름 밤하늘 별을 새던 한 소녀가 오늘밤은 이 낯선 땅 히말라야의 한 조그마한 마을 난두룩에서 그 별을 바라보고 있다. 하늘을 빼곡히 수놓은 별과 은하수들, 별이 쏟아진다는 말이 실감났다. 네팔의 오지마을의 전력은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발생하여 사용한단다. 오늘은 수력발전기가 고장 나서 촛불을 켜고 지내야 했다.
부산에서 온 여자 두 분을 헝그리 롯지 앞에서 만났는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다녀온 이야기를 생생히 들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트래킹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기상조건 등 정상을 갔다 온 경험담을 생생하게 듣다 보니 내일 트래킹 할 것이 걱정이 앞선다. 이 곳 밤하늘의 맑고 밝은 별/달과는 상반된 날씨에 조금은 걱정되지만 행운의 여신은 우리 곁에 있을 거라 확신하고 멋진 트래킹이 되길 간절히 기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2012.1.12(목)
6시에 기상하니 커다란 보름달이 아직도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난두룩에서 멋진 밤을 보내고 다시 출발이다. 아침에 어김없이 우리는 구호를 외치고 출발하였다. 오늘은 뉴브릿지 → 지누단다→ 촘롱(2170m)까지 트래킹을 했다. 뉴브릿지의 긴 다리를 건너기전에 울창한 숲속 나무위에 있는 원숭이를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동물원에서나 보던 원숭이를 자연의 상태에서 보다니 너무나 놀라웠고, 너무나 멋진 긴 물줄기의 폭포도 보았다. 아름다운 풍경들, 그리고 일행들과 걸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지누단다에서 맛있는 냉면을 먹고 다시 출발하였다. 주위에 펼쳐진 다랭이논들과 예쁜 마을을 지나서 촘롱에 도착할 쯤 화창하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눈이 오기 시작하였다. 바람도 차가웠다. 변화무쌍한 날씨, 솜사탕 같은 눈이 하늘이 뚫린 것처럼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멋진 풍경에 매료되어 힘든 건 잠시 뒤로 한 채 잠시 그 자리에 머물렀다. 오늘은 다른 날 보다 경사가 가파른 곳을 많이 오르락내리락해서 그런지 저녁에 왼쪽다리에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당장 내일 트레킹이 걱정이 되었다.
산행 초보인 나에게 대장님은 신발끈매는 법을, 한은순 선생님께서는 스틱 잡는 법을, 신선미 대원님은 모자 쓰는 방법, 변상규 대원님이 계단 올라가는 법(피로감을 줄이기 위해 계단은 지그재그로)을 알려주셨다. 감사한 분들이 많아서 산행초보인 나는 행복했다. 감사해요. 대원여러분. 여러분들이 있어 저는 행복했습니다. 참 한은순 선생님께서 직접 오셔서 파스랑 소염제도 챙겨주시고. 감사 감사
2012.1.13(금)
아침에 북어국을 먹고 촘롱에서 트레킹을 시작했다. 어제 촘롱에서 오미숙선생님을 만났다. 안나푸르나에 눈이 많이 와서 같이 동행하던 일행 중 한분이 트래킹할 장비문제와 개인적인 사정으로 더 이상 같이 트레킹을 할 수 없다고 하여, 오늘부터 우리대원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초등학교 여선생님으로 한 달가량 네팔과 인도여행을 계획하고 오셨다고 한다. 여자 혼자서 이렇게 힘든 여행을 하시는 것에 대단하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대장님께서 촘롱에서 눈이 이렇게 많이 온 건 처음 보신다고 혹시 안나푸르나에도 눈이 많이 왔으면 가지도 못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약간 걱정이 되었지만 다시 힘차게 트래킹을 시작했다. 왼쪽 무릎이 조금씩 아파오고 있는데 한은순 선생님이 챙겨주신 약을 먹고 조금 지나니 괜찮아졌다. 다행이다.
시누와를 지나 쿨디카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다시 밤부로 향했다. 밤부는 대나무가 많은 곳이라고 한다. 밤부에 도착해서 잔치국수를 맛나게 먹었고 올라가는데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가는 도중 토하고 나니 속히 편했다.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가는 도중 가이드(양띠)가 내가 힘들어 하는 모습에 고맙게도 배낭을 자기가 멘다고 했다. 양띠의 고마운 마음만 받기로 하고 계속 트래킹을 진행했다. 눈 속에 비친 풍경은 ‘나니야 연대기’에 나오는 장면으로 내가 꼭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느낌. 6시간의 산행으로 많이 힘이 들었다. 천천히 발을 내딛어 도반(2,600m)에 이르렀다. 오늘 난 또 나 스스로에게 아픈 다리 이끌며 올라 온 나에게 박수를 보내본다. 저녁은 참치찌기를 맛나게 먹었다.
2012.1.14(토)
도반에서는 8시에 기상. 평소보다 늦은 기상.
아침에 미역국을 먹고 우리 일행들은 또 트래킹을 시작하였다. 밀림숲길 같은 산속 눈길을 걸어서 히말라야 롯지에 도착하여 아침에 준비한 간식(계란과 마)을 간단하게 먹었다. 두 시간동안을 마차푸차레의 뒷면을 보면서 쭉 올라갔다. 흰쿡 동굴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고 또 두 시간 정도 걸어서 데우랄리(3,200m)에 도착 점심은 맛난 자장면과 짜장밥을 먹었는데 가는 도중 또 속이 안 좋아 또 토했다. 저녁은 카레로.
6시간 산행을 했다. 오늘은 다른 날 보다 많이 힘들었다. 고도가 높아져서 그런지 손과 얼굴이 붓고 무릎에 또 통증이 왔다. 그러나 내일이면 드디어 안나푸르나에 간다는 설렘이 더 커서일까 이 정도의 아픔은 참을 수 있었다.
가이드(양띠)는 고소증세가 심해져 두통을 호소했다. 심한 두통으로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만, 심각한 고소증세로 내일은 우리랑 더 이상 같이 올라 갈 수가 없을 것 같다. 대장님은 많은 등반경험으로 체득한 지식 때문에 아플때 늘 가까이 하던 우리의 훌륭한 의사선생님이시기도 했다. 그래서 양띠도 대장님의 처방(?) 따라 고소증세에 좋다는 약을 먹었다. 아무리 고산 트래킹 경험이 많은 현지인들도 고소 증세를 느끼는 가 보다.
2012.1.15(일)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에 드디어 내가 왔다!!
데우랄리에서 북어국을 먹고 다시 출발
오늘 나는 히말라야 신들만이 산다는 신의 영역에 들어섰다. 신의 영역은 선택받은 사람만이 올 수 있다고 한다. 신의 영역에 발을 내딛는 순간 왠지 모를 전율을 느꼈다.
일행들 모두는 신의 영역을 지나오면서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잠시 기도를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여 컵라면을 맛나게 먹고 다시 출발
눈앞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보였다. 트래커들 중 많은 사람들은 고소 때문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오르지 못하고 마차푸차레까지만 와서 멀리서만 안나푸르나를 보고 아쉽게도 하산을 하는 경우를 보았다. 다행이도 우리 일행은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풍요의 여신이 기다리는 베이스캠프를 향해 나아갔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장님 말씀하시길 가깝고도 먼 곳, 먼 곳 같지만 가까운 곳이라고. 정말 그말이 딱 맞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숨을 쉬기가 힘이 들었다. 그래서 발걸음도 더 천천히 내딛을 수밖에 없었다. 안나푸르나 고봉들로 둘러싸여 있는 그 한 가운데 믿기지 않았지만 내가 있었다. 네팔에 온 둘째날, 안나푸르나를 향해 실질적으로 트래킹 하던 첫째날 아침에 하룻밤 묵었던 롯지 저 멀리서 보았던 그 눈 덮인 설산이 바로 내 앞에 있지 않는가. 자연의 위대함에 또 한 번 놀랐다. 이곳은 신이 허락한 자만이 올 수 있는 신성한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 내가 있는 것이다. 우리 일행 모두는 다 축복받은 사람들…….
경이롭다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잠시 눈의 한가운데 서 있는 나를 사막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은 적막함도 느꼈다. 안나푸르나 롯지에 도착한 일행들 중 많은 사람들 연지와, 상헌이, 덕규, 우리아들 영일, 지일, 지헌이, 재건이 모두들 고소 때문에 두통을 호소했고 연지는 계속 토했다. 고소병을 이기려면 물도 많이 먹고 보온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대장님이 누누이 일러 주셨다.
저녁에는 촛불의식이 있었다. 혼자라면 외롭고 힘든 길이였을텐데 우리 함께라서 서로 의지가 되고 서로에게 고맙고, 그리고 이 먼 곳까지 온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오늘은 배종영 대원의 생일이라 최대만대원이 피자를 샀고, 김기남 대원이 가져온 초코파이로 케익을 대신하여 축하를 해 주었다. 배종영 대원은 오늘 생일이지만 그 예전에 등반했던 대원이 여기 안나푸르나에서 새루트 개척을 하려다 실종된 대원 생각에 울컥하신 것 같다. 나도 눈물이 …….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라는 말이 생각났다.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를 우리에게 보여준 신에게 감사하며 신이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이유가 있을거란 생각을 잠시 했다.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항상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하라고 배려하라고…….
2012.1.16(월)
아침에 눈을 뜨니 많은 눈이 밤새 내렸다. 오늘 일정은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려다 돌아가신 두 분에 대한 추모를 하고 하산을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눈이 너무 많이 오고 계속 내려 길을 뚫고 우리 체험단이 행사를 치르기로 예정했던 장소까지 가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베이스 캠프 주위에서 간단하게 추모를 하는 것으로 하고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눈이 계속 내리고 있어서 안나푸르나 고봉들을 볼 수가 없어서 많이 아쉬웠지만 나름 또 다른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하산하면서 길을 찾을 수가 없어서 많이 위험했지만 셀파들이 먼저 길을 내어주셔서 문제가 없었다. 고마운 분들이다. ABC에서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까지 1시간 정도 걸어서 도착했다. 어제 MBC에서 ABC까지 거의 두 시간 삼십분 정도 걸어서 정상에 도착했는데.
데우랄리 롯지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간식(초콜릿, 사탕)을 먹고, 다시 올라갈 때 무사히 트래킹 하여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기원했던 신의영역을 지나왔다. 히말라야 롯지에서 점심으로 카레 밥을 먹고 출발하였다. 너무 빨리 걸으면 이 아름다운 설산의 풍경을 보지 못할까봐 천천히 마음속에 히말라야를 품고 내려왔다. 눈 속을 걸어 내려오다 보니 내리고 있던 눈이 비로 바뀌었다. 밤부에 도착해서 저녁은 맛난 배추국을 먹었다.
2012.1.17(화)
오늘 일정은 밤부를 출발 → 시누와 →촘롱 → 지누단다 → 간두룽까지이다.
지나오는 길에 오늘은 하루 종일 촘롱마을에 음악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어느 집에 아이가 태어나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염소도 잡고 다들 먼 곳 마을에서 촘롱까지 축제를 즐기러 온다고. 여기저기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염소 떼도 보고 긴 강줄기를 따라 한없이 걸었다. 강 건너 우리가 하룻밤 머물렀던 헝그리 롯지 즉 난두룩 마을도 보였다. 오늘 날씨는 봄날씨다. 여기저기 이름 모를 예쁜 꽃들이 피어있고, 집안 곳곳에도 예쁜 꽃들이 피어 있었다.
저녁에 큐미에 도착했는데 6일동안 씻지 않은 머리를 감으려고 했는데, 수력발전소 고장으로 여기도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는 여기 현지인이 되었는지 세수를 안하고 머리를 안감아도 적응이 되나 보다.ㅋㅋ. 저녁은 최윤철 변호사님이 염소를 사 주셔서 맛나게 먹었다. 최윤철 변호사님은 속이 아파서 계속 롯지에만 계셨다.
트래킹 도중에 네팔여행사 사장내외 즉, 파상내외 두 부부간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점심식사 후부터 티격태격 하는 모습을 목격한 신랑이 둘간에 화애도 시킬 겸해서 롯지 마당주변에 즐거운 캠프파이어 장을 열었다. 포터, cook, 가이드, 우리 대원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었다. 유명렬 대원의 유머는 여기서도 발동하여 우리에게 웃음을 안겨주었다. 우리 신랑 김재년 대원도 네팔 현지인들과 함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뚱뚱한 몸매를 유연하게 돌렸다. 이곳 분들은 다들 흥이 좋으신 것 같다. 하루 종일 고단하실텐데도 모두들 “레쌍삐리리.레쌍삐리리…….”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가이드(리쌍)와 양띠도 언제 부부싸움을 했느냐 하듯이 흥겹게 춤을 추고 입을 맞추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우리의 삶도 순진하고, 행복하게 사는 이 부부처럼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12. 1.18(수)
출발 전 또 파이팅을 외치고 꼬마대장(형빈군)을 선두로 해서 출발하였다.
큐미를 출발하여 싸우리바잘(쇠로 된 다리)을 건너 우리 대원들은 트레킹을 했다. 유명렬대원, 오미숙선생님, 락파스님, 양띠와 나는 뒤에 처져 있었다. 유명열대원이 차를 타고 가자는 제안에 모두 ok!! 차를 타고 달리고 있는데 꼬마 대장이 차안에 우리 일행이 타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나도 태워달라고 너무 힘차게 달려와 기사님도 어쩔 수 없으셨는지 형빈군을 태우고 비레탄티로 향하였다.
일행들과 함께 걸어서 내려오지 않아 약간의 미안함도 있고 쓰릴도 있고…….일찍 비레탄티에 도착해서 시장구경을 하였다. 일행들이 하나 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대장님한테 혼나지는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이도 잘 넘어갔다. 휴~~
점심식사는 비렌탄티에 위치한 식당에서 요리사들이 준비해준 감자 수제비를 맛나게 먹고, 버스를 타기 위해 나야폴까지 가야했다. 나야폴에 도착해서 그동안 우리 짐을 지고 힘들게 이동하느라 수고해준 포터들과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고맙고 아쉬웠다.
우리의 짐이 들어 있는 카고백을 버스에 싣고 2시간을 더달려 포카라에 있는 ABC 캠프리조트에 도착했다. 리조트에 도착하자마자 8일동안 우리의 맛있는 음식을 해주신 요리사분들과 헤어지는 시간을 가졌다. 너무나 아쉽고 고맙고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요리사분들과 헤어지고 방배정을 받자마자 그간(8일동안) 씻지 못해 가장 힘들었던 것을 해결하기 위해 세면장으로 향했다. 모든 대원들이 한결같이 저와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오랜시간동안 씻지 못해 불편했던 것을 나름 해결하고 나니 온 세상이 내것같고 행복한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 일행은 포카라 시내를 구경하고, 한국인이 경영하는 “낮술”이라는 삼겹살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오늘 저녁 값은 유명렬 대원이 통크게 쏘셨다. 그동안 트래킹하느라 힘들었던 대원들의 심신에 영양보충을 위해 한편으론 아무사고없이 트래킹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정말 통크게 쏘셨다. 낮술에서의 저녁식사는 이번 트래킹의 하이라이트라 생각된다. 서로 대원끼리 어우러져 음주와 가무로 하나가 되었다. 낯선 이국땅의 밤하늘에 달빛이 우리 대원들의 머리위에 춤을 추듯이 우리의 몸과 마음도 달빛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오지마을 체험단원들과 맺은 이 소중한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오늘 밤은 유난히도 밝은 달빛이라 그런지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이 행복감이 영원이 지속되었으면…….
2012.1.19(목)
아침 일찍 영일이 아빠랑 둘이서 포카라 시내를 둘러보았다. 태권도공원과 호수도 보고 참 여유로워보였다.
8시에 ABC캠프 리조트내 식당에서 간단하게 빵과 햄으로 식사를 하고 페와호수로 이동 뱃놀이를 했다. 대장님, 최대만 대원, 한은순 대원, 영일아빠랑 배를 타고 호수 한가운데 흰두사원에 들러 구경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한참 배를 타고 도는데 저 멀리 우리가 보았던 안나푸르나 고봉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고봉들이 페와호에 비치어 멋진 그림을 연출해 주었다. 하늘에는 페러 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참으로 여유로워 보였다. 1시간동안 배를 타고 우리는 10시 30분 카투만두로 이동하기 위해 포카라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비행기 시간이 맞지 않아 근처 잔프리 대학을 둘러보았다. 잔프리 대학은 인도와 협력한 대학으로 네팔 제2의 공과대학이라고 했다. 그동안 보아온 네팔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깔끔한 옷차림에 세련되어 보였다. 그리고 도서관을 들러 보았다. 장서는 약 20,000여권으로 두 명이 오전, 오후 나누어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저와 남편) 대학교 사서라는 말에 배우 반가워했다.
대학을 둘러보고 주위 식당에서 만두를 간단하게 먹고 경비행기에 탑승하였다. 우리 일행들은 예쁜 승무원과 사진 찍기에 바빴고 그리고 경비기를 타고 본 히말라야 산들도 장관이었다. 그런데 영일아빠는 경비기에 몸을 실은 게 불안하다고…….덩치에 안맞게 겁쟁이다.ㅋㅋ. 약 20분 정도 비행을 마치고 우리는 카투만두 공항에 도착해서 카고백을 찾아 첫날 묵었던 YEK&YETI 호텔로 갔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목에 하얀 천을 씌어주시며 환영을 해주었고 따뜻한 차도 주었다.
저녁에는 카두만두의 시내 카멜거리로 나갔다. 카트만두의 제일 번화가라고 한다. 빵빵거리는 택시에 줄지어 달리는 오토바이들로 정신이 없었다. 저녁에는 네팔음식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락파스님 친구가 운영하는 음식점을 들렸는데 입에 맞지 않아 다들 배부르게 저녁을 먹지는 못했다. 저녁을 먹고 일행들은 각자 한국에 돌아가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시장과 마트에 들렀다. 우리도 히말라야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일람차와 풋크림을 샀다. 그리고 이곳 커피 맛이 최고라고 해서 커피를 샀다. 대장님과 한은순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새 그림이 그려진 것으로 골라 샀는데 새 그림은 공정무역을 하는 것을 표시 한 것이라 한다. “공정무역”이란 내가 산 물건의 값이 다국적기업이 아닌 그 지역과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되어 이곳 원주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간다고 한다.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며 본다. 돌아 올 때는 릭샤꾼이 끄는 인력거를 타고 올까 했는데 매연이 너무 심해서 200루피를 내고 택시를 타고 호텔로 들어왔다.
그리고 네팔에서의 마지막이라 하니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는 몇몇이 모여 옥류관(북한주민이 운영하는 음식점)에 들러 북한음식을 간단하게 먹었다.
네팔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아쉽게도 내일이면 이곳을 떠난다. 신선미 대원(참고로 최윤철변호사님 아내)은 떠나기 아쉬워 하루 더 머물고 싶다고 한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2012.1.20(금)
아침 일찍 신선미 대원이랑 풋크림이 더 필요해서 어제 갔던 카멜거리의 시장으로 다시 갔다. 여기는 상점문을 9시 30분에 연다고 들었는데 정말 상점문을 연 곳이 거의 없었다. 우리 같으면 빨리 문을 열어 더 많이 팔고 싶을 것 같은데…….한참을 둘러보고 9시 30분경이 되어 우리는 몇 군데를 들러 겨우 우리가 찾던 풋크림을 더 살 수가 있었다. 박대장님께서 오전 11시 30분까지는 모든 짐정리를 마치고 호텔 로비에 집결하라 말씀하셔서 우리는 서둘러 시내 볼일을 서둘러 마쳤다.
집결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호텔까지 걸어가기 보다는 택시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짧은 거리지만 택시를 탔다. 그런데 호텔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차가 막혀서 택시로 5분 거리를 40분 넘게 돌고 돌아서 호텔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신선미 대원은 어제까지만 해도 이곳에 더 있고 싶다고 했는데 오늘 심한 매연에 빨리 이제 떠나고 싶다고…….점심을 간단하게 롯데리아에서 먹고 네팔시내가 다 내려다보이는 힌두교와 불교가 공존해 있다는 몽키사원에 들러 구경을 했다. 여기 저기 원숭이들이 보였다. 손에 먹을 것을 가지고 있으면 잽싸게 낚아채 간다고 조심하라고 한다. 우리는 몽키사원을 둘러보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카트만두 공항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그동안 고생한 가이드 파샹과 양띠, 락파스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오후 3시 40분 비행기로 인천공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2박 13일의 긴 네팔 트레킹을 마치면서-
영일, 지일, 우리 가족 모두는 지금 네팔 앓이를 하고 있다. 처음에 출발할 때는 프랑스인 줄만 알고 있다가 여행지가 네팔이라는 걸 알고 실망하는 것 같았는데 아직 아이라 그런지 곧 잘 적응하고 너무너무 좋았다 한다. 다음에 이번 멤버들과 또 히말라야를 가보고 싶다고 영일이가 계속 얘기한다.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아침 점호하와 1분 스피치 하는 것을 무척이나 부담스러워 하더니만.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계속 입에 “레쌍삐리리, 레쌍삐리리”가 맴돈다. 제일 많이 듣고 했던 말 “라마스테” 인사말이었다. 큰 눈을 가진 그 곳 사람들, 예쁜 마을들, 다랭이 논, 안나푸르나 고봉들, 깊은 협곡,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우리의 무거운 짐을 그 높은 곳까지 옮겨 준 셀파(포터), 우리에게 힘내서 트레킹 하라고 맛난 한국음식을 해준 cook, 파쌍, 양띠 부부 가이드, 그리고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5개국어를 하는 통역가 멋진 락파 스님(청주 사창동에서도 잠시 살았다고). 마지막에 포터들과 악수하는데 괜시리 코끝이 시큰거렸다. 한 포터는 힘차게 손을 잡아 주는데 많이 아쉽고 고마웠다. 짐을 나르는 포터들 하루 일당이 우리 돈으로 5~6천원 정도라고 했던 것 같다. 그분들은 그 힘든 일을 하면서도 그 돈으로도 많이 행복해 한다고
때론 맨발로, 슬리퍼로, 아이젠도 없이 낡은 운동화를 신고 그 높은 곳에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오르는 포터들의 힘겨운 삶을 잠시 생각했다. 락파스님은 다음에 포터들을 위해 아이젠을 만들어 나눠주고 싶다고. 트래킹을 마치고 내려와서 아이젠을 못 주고 온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나눔의 행복, 소통의 즐거움, 우리는 하나” 라는 우리 히말라야 오지마을 체험단의 슬로건처럼 이번 여행은 일반적으로 경험했던 외국 관광여행과는 달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고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난두룩 초등학교에서 우리가 준비해간 헌옷과 학용품을 받으며 좋아하던 아이들의 모습, 꼬리잡기 놀이를 같이 하며 즐거워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게 해 준 이번 여행을 나 스스로 사람냄새 나는 여행이었다고 기억하고 싶다. 이번 여행을 처음부터 준비해주신 산악인이라고 믿기지 않고, 만삭의 임산부와 같이 탐스런 배를 지니고 계신, 목소리가 멋진 박연수 대장님, 그리고 꼼꼼하게 네팔정보를 책 속에 담아 오시고 맛난 간식까지 만들어 주신 한은순 선생님, 청소년 대원을 훌륭하게 이끌어 주신 임종헌 대원님, 우리들의 멋진 모습들을 담아내려고 분주하셨던 변상규 대원님, 뒤에서 우리 일행들을 책임졌던 우리 간식을 무겁게 메고 다니셨던 배종영 대원(선크림을 바르지 않아 얼굴이 벌겋게 타서 내가 나중에는 현지인으로 잠시 착각을 한 적도 있다. ㅋㅋ)
그리고 아이 키우는 데는 참용기(참고, 용서하고, 기다려라)가 필요하다고 가르쳐 주셨던 최윤철 변호사님과 예쁜 부인 신선미 대원님,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항상 좋은 가르침을 주셨던 최대만 기자님, 그리고 우리에게 항상 웃음을 안겨 주셨던 유명열 대원과 영화감독처럼 멋진 포스의 김기남 대원, 그리고 지헌이, 영일이 지일이가 좋아했던 재건이(다음에 커서 대학가서 서울에서 만나면 술을 사준다고 좋아함), 청소년 대표를 맡았던 지원식, 따뜻한 남자이며 작곡을 공부하고 있는 덕규, 그리고 예쁜 연지와 사귀고 있는 상언이, 그리고 항상 지칠 줄 모르고 우리대원들을 제일 앞에서 이끌어 준 꼬마대장 박형빈(초등학교2)군과 누나 윤지 마지막으로 다리가 아파서 이번 여행을 망설이고 있던 나에게 이런 멋진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나를 잡아 주었던 남편 김재년, 여행 내내 정숙자 장하다고 용기를 주어 고마웠다. 그리고 어린애 취급한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충고를 받았던 아직은 여리지만 이번 여행으로 조금 성숙해 진 우리 아들 영일, 지일 이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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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웃는 모습이 아름다운 분입니다 좋은 기억 오래동안 간직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