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주 와 아들
조선 제7대 임금 세조(世祖)는 在位 13년동안 많은 치적을 쌓은 유능한 군주였다
세조가 무력으로 어린 조카 단종(端宗)을 내치고 등극하자
이에 집현전 학사로서 세종의 총애를 받던
성삼문ㆍ박팽년ㆍ하위지ㆍ이개ㆍ유성원ㆍ유응부 등이 중심이 되어
반역자를 응징하고 단종복위를 하려다가
변절자 김질의 밀고로 계획이 무산되고 모두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역사는 이들을 사육신(死六臣)이라 부른다
이날 해질무렵 신숙주는 퇴청하여 집으로 돌아오자
부인 윤씨의 눈초리가 매섭게 번쩍였다
'아니,대감........!
윤씨 부인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오늘 성승지와 유대감등이 국문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소첩은
대감께서 그들과 함께 순절 하시려니 생각하여 뒤를 따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살아서 돌아 오셨습니까?
폐부를 무섭게 찌르는 말이었다
이말에 신숙주는 차마 아내의 눈을 바로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며
저것들 때문에..... 하고 어린자식들을 손가락 질 했다
허........!
윤씨 부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부끄럽고 수치스럽소!
대감의 그명망이 가석하기 짝이 없소!
당신의 뻔뻔하고 더러운 얼굴을 본 눈을 씻어야 하겠소
윤씨 부인은 저주의 말을 퍼붓고
남편의 얼굴에 침을 뱉고는 총총히 내실로 들어가 벼렸다
그리고
들보에 목을매어 이승을 하직 했다
변절자 신숙주는 동료들뿐만 아니라
부인에게 까지 짐승으로 매도되는 등 굴욕을 당했다
쉽게 상하는 ' 녹두나물' 이 '숙주나물' 로 불리게 된것도 이때 부터라고 한다
윗물이 맑지 못하면 아랫물도 맑지 못한법
이런 변절자 아버지 에게 어찌 바른 아들이 있을수 있으리오,
신숙주의 아들인 '신정 ' 은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나이 삼십도 되기전에 재상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신정은 욕심이 지나친 위인 이었다
게다가 어리석기 까지 했다
고령현 에서 제일 세도 있고 부자라는 말을 들은 신정은
어느 절의 종이 탐이나서 뺏으려고 했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어보(御寶) 를 위조한
공문을 만들어 빼앗으려 하다가 그만 탄로가 나서 옥에 갇혔다
어보를 위조한 죄는 참수를 면할수 없는 중죄 였다
어느날 성종은 대궐밖으로 거동 하였다가
신정 이 갇혀 있는 의금부 앞을 지나게 되었다
잠시 멈추어라
성종은 행차를 멈추게 한후 죄인 신정을 불러 오게 했다
이윽고 신정 이 포승줄에 꽁꽁 묶여 나와 무릎을 꿇었다
성종은 측은한 생각이 들어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나라의 공이 큰 훈신의 아들로서 지금 사형을 받게 되었다
너의 그런 모습을 보니
네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과인의 마음도 아프다
만일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히고 뉘우친다면
즉시 석방하여 네 아버지 공훈에 보답하겠다
성종은 은전을 베풀어 죽을 죄인 신정 에게 살길을 열어 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리석고 교활한 신정은
끝까지 자기의 행동을 합리화 시키면서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네가 한짓을 바른대로 말하라!
성종은 몇번이나 타이르며 기회를 주었다
전하, 정말 억울하옵니다
전하께옵선 어찌하여 소신의 말을 믿지 않으십니까?
정말 안타깝고 답답 하옵니다
전하, 거듭 말씀 드리지만......
신정은 임금앞에서 얼굴을 찌푸리며 마구 언성을 높였다
참다 못한 성종은 대로 하여 고함을 질렀다
미련하게 고집이 센놈이로다
당장 옥에 다시 가두고 철저히 죄상을 밝히도록 하렷다 !
추상같은 어명에 따라
의금부에서 신정의 죄상을 따지고 의논 했다
얼마후에 그 결과를 판부사(判府事 ) 강희맹 이 성종께 아뢰었다
죄인 신정은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어보를 위조하여 사욕을 채우려 했습니다
국법에 따라 사형에 처하는것이 지당한 줄로 아뢰옵니다
알았다
성종은 즉시 법대로 하라고 윤허를 내렸다
그리하여 신정은
신숙주의 시체가 썩기도 전에 탐욕과 교만한 성품으로 결국 참수를 당했다
#그 아비의 失德이 집안을 결국 패가망신 시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