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G90
현대자동차그룹의 위상이 역대급으로 높아졌다. 글로벌 톱5 자동차 그룹 목표는 달성하지 오래고 전기차 분야에서는 해외에서 각종 상을 휩쓸며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급등한 가치와 실력을 확인하려면 브랜드 이미지 리더의 역할을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총동원한 기함을 타보는 것이 마땅하다. 이번에 시승한 차량은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 G90(지나인티)다.
현대차는 1999년 1세대 에쿠스를 시작으로 일찍이 대형 세단 F세그먼트 경쟁에 뛰어들었다. 2009년에는 2세대 모델로 거듭났으며, 2015년 제네시스를 별도의 브랜드로 독립시키며 EQ900으로 차명을 변경했다. 부분변경을 거쳐 G90 이름을 붙였다. G90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최고 모델이지만 ‘국내 한정’이라는 수식어가 뒤를 따랐다. 쟁쟁한 프리미엄 플래그십 세단 사이에서 G90가 설 자리는 변변치 않았다. 이제는 다르다. 완전히 새롭게 재탄생한 G90는 독일산 프리미엄 세단과 나란히 비교해도 부족함은 없다. 제네시스가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프리미엄 브랜드로 발돋움하기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차에 다가가면 자동으로 스르륵 튀어 나오는 도어 손잡이는 또다른 매력이다. 차량에 탑승해 버튼만 누르면 문이 닫힌다. 고급 호텔에 와있는 듯한 호사스러움을 누릴 수 있다. 다른 제네시스 모델과 달리 12.3인치 계기반과 12.3인치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가 하나의 패널로 연결된다. 계기반 양 옆으로 솟구친 두 개의 바는 전통 가옥의 처마를 오마주한 듯한 느낌이다. 디지털이라는 최신 트렌드를 쫓은 공조기 조작부는 사용성이 높다. 조작부가 직각에 가까워 해가 강하게 들이칠 때 디스플레이가 명확히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 게 작은 단점이다. 플래그십 모델답게 ‘이런 기능까지 필요할까’ 싶을 만큼 수 많은 편의장비를 마련했다. 직관적인 UI 사용으로 손쉽게 사용설명서를 들여다 보지 않아도 금세 익숙해진다. 동그란 다이얼식 기어는 후진을 넣을 때마다 부르르 떨며 정확한 기어 변속을 알린다.
센터 콘솔에 달린 지문인식 버튼에 손가락을 올리면 운전자를 인식한다. 이후 시동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 수 있다. V6 3.5L 가솔린 터보 엔진이 깨어난다. 제네시스는 2025년부터 전기차만 출시한다고 밝힌 만큼 마지막 내연기관 세대다. 엔진은 부드럽다. 8단 자동변속기는 좋은궁합을 선보인다. 최고출력 380마력, 최대토크 54.0kg.m의 힘을 네 바퀴로 쏟아낸다. 네 개의 바퀴를 떠받든 에어서스펜션과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을 모른 채 넘어 갈 수 없다. G90의 유연한 움직임을 완성한 1등 공신이다. 각 모드에 따라 자동으로 높낮이와 감쇄력을 조절해 최적의 승차감을 제공한다. 스포츠 모드에선 단단하게 조여 안정감을 더한다. 고속 차선 변경에도 불쾌함은 없다. 안정감은 코너에서도 동일하다. 5m가 넘는 덩치가 부담스럽지 않다. 네비게이션 정보와 연동을 통해 과속 방지턱을 만나기 전 앞 바퀴를 10mm 살짝 들어 올리는 기능도 있다.
저속에서는 앞 바퀴와 반대방향으로 최대 4도 틀어준다. 고속에서는 같은 방향으로 각도를 돌리는 뒷바퀴 조향 장비의 존재감이 확실하다. 운전을 이어 나가며 발견한 특이한 점은 사각지대 감지 경보음, 네비게이션 안내음, 방향지시등 소리가 운전석 헤드레스트 스피커로만 들리게 조절이 가능하다. 2열에 앉은 VIP의 온전한 휴식을 돕기 위한 배려다.
일반적인 시승이라면 대부분 시간을 1열에서 보냈겠지만 이번에는 운전대를 넘기고 2열로 넘어왔다. 동승 운전자에게 G90에만 제공되는 쇼퍼 모드로 주행을 부탁했다. 2열 승객에 특화된 주행 모드다. 가속, 제동, 서스펜션 등 차량의 움직임과 짝 지어진 모든 기능이 오롯이 2열 승객 중심이다. 특히 서스펜션의 변화가 극적이다. 쇼퍼 모드로 주행하면 앞 서스펜션은 중간 정도의 탄탄함을 지니고, 뒷 서스펜션은 부드럽게 조율한다. 운전자가 할 일은 버튼을 눌러 드라이브 모드를 바꾸는 것이 전부다.
자동차 전문기자를 자처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가끔 멀미를 한다.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운전자의 능숙도에 따라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지옥이 되기도 한다. 웬만하면 직접 운전을 하거나 아니면 1열에 앉는 것을 선호한다. G90의 2열은 1열 만큼 만족스럽다. 불쾌한 진동을 거의 느낄 수 없다. 그렇다고 한 없이 물렁하지 않다. 조율이 잘 된 서스펜션이 지금까지 타왔던 국산차 중 단연 으뜸이다.
저속에서는 외부와 완벽히 분리된 듯 고요하다. 실내에서는 바스락거리는 작은 소리도 크게 부각된다. 도어 클로징에 이중 접합 유리와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 덕분이다. 불법 튜닝한 머플러를 장착한 오토바이가 옆을 지나가도 귀를 찌르지 않는다. 시승하는 날 바람이 강하게 분 탓인지 시속 100km 이상 고속에서는 올라갈수록 약간의 풍절음이 들린다. 신경이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하체와 엔진 방음이 워낙 잘 된 덕인지 2열에 앉으면 C필러에 맴도는 풍절음이 부각된다.
정지 상태에서 동승한 기자를 2열에 앉혔다
2열에는 수 많은 편의장비가 존재한다. 이를 통제하기 위한 컨트롤 패널이 센터 암레스트에 위치한다. 시트, 공조, 마사지, 조명, 커튼 등을 세세하게 조작할 수 있다. 2열에 왔으니 ‘REST’ 버튼을 누르고 호사를 누려 본다. 등받이는 눕고, 종아리 받침대가 올라온다. 1열 시트는 최대한 앞으로 당겨지고 받 받침대를 내려 놓는다. 모든 과정이 부드럽게 작동한다. 마사지 버튼을 누르면 10개의 공기 주머니와 2셀 쿠션이 온 몸을 주무른다. 심지어 발바닥까지 세심하게 챙긴다. 이 상태에서 터치 패널을 이용해 선루프, 2열 유리, 뒷 유리까지 커튼을 전개하면 프라이빗한 나만의 공간이 완성된다. 전동으로 각도 조절이 되는 10.2인치 인포테인먼트 모니터를 이용해 바쁜 시간을 쪼개 뉴스를 챙겨 볼 수도 있다. 2열 센터 콘솔 박스 안에는 무선 충전기는 물론 작은 살균기를 마련했다. 언제 이런 호사를 누리겠나 싶다.
초보 운전자도 베테랑처럼 만드는 운전자 주행 보조 장비도 가득하다. 앞 차와 간격을 조정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 중앙 유지 장비는 기본이다. 여기에 고속도로 주행보조 2가 적용되어 있다. 방향지시등 조작만으로 차선을 변경할 수 있다. 모든 상황에서 사용할 수는 없지만 스티어링휠 조차 돌리기 귀찮을 때 사용하기 좋다. 수 많은 운전자 주행 보조 장비 중 가장 마음에 든 장비는 정전식 스티어링휠이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한 기능이냐고 할 수 있지만 현대차그룹이 만들어 판매하는 차량 중 유일하게 적용된 모델이 G90다. 차선 중앙 유지 장비가 탑재된 차량을 운전하다 보면 분명 스티어링휠을 잡고 있는데 '스티어링휠에서 손을 떼지 말라'는 경고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약간 스티어링 휠을 돌리거나 스티어링휠에 위치한 버튼을 조작해 경고를 해제해야 한다. 이런 불편함을 해소한 게 정전식 스티어링휠이다. 운전자 주행보조장비 선구자 격인 테슬라에도 없는 기능이다.
G90의 기본 가격은 9100만원부터다. 여기에 각종 옵션을 더한 시승차의 가격은 1억3003만원. 더 넓은 2열 공간을 자랑하는 롱휠베이스는 1억6700만원부터다. 모든 옵션을 모두 더하면 1억8천만원을 넘어선다.
G90는 단연코 지금까지 나온 국산 대형 세단 중 최고를 뛰어 넘어 독일 '벤비아' 플래그십과 비교할 만한 최초의 모델이다. 그래서인지 가격대도 1억원을 넘어선다. 더 이상 국산이라는 족쇄로 G90 가치를 평가절하 할 수 없다. S클래스는 아직 넘사벽일지 몰라도 7시리즈, A8과는 견줘볼만한 상품성을 갖췄다. G90의 가치를 제대로 누리려면 2열 탑승이 꼭 필요하다.
한 줄 평
장점 : 호화스러운 편의장비와 국산 모델 중 최고의 N.V.H.
단점 : 2열에서 들리는 C필러 풍절음
제네시스 G90
엔진
V6 3.5L 가솔린 터보
변속기
8단 자동변속기
구동방식
AWD
전장
5275mm
전폭
1930mm
전고
1490mm
축거
3180mm
공차중량
2110kg
최고출력
380마력
최대토크
54.0kg.m
복합연비
8.3km/L(20인치, 빌트인캠)
시승차 가격
1억3003만원
남현수 에디터 hs.nam@cargu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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