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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재학 시인의 시 10편
산벚나무가 씻어낸다
다 팽개치고 넉장거리로 눕고 싶다면
꽃핀 산벚나무의 솔개그늘로 가라
빗줄기가 먼저 꽂히겠지만
마음 구부리면 빈틈이 생기리라
어딘들 곱립든 군식구가 없겠니
그곳에도 두 가닥 기차 레일 같은 운명을 종일 햇빛이 달구어내지
먼저 온 사람은 나무둥치에 파묻혀 편지를 읽는다
風磬이 소리 내는 건 산벚나무도 속삭일 수 있다네
달빛이나 바람이 도와주지만
올해 더욱 가난해진 산벚나무家
울어라 울어라, 꽃핀 산벚나무가 씻어내는 아우성
봄비가 준비된 밤이다
지붕
버려둔 시골집의 안채가 결국 무너졌다 개망초가 기어이 웃자랐다 하지만 시멘트 기와는 한 장도 부서지지 않고 고스란히 폴싹 주저앉았다 고스란히라는 말을 펼치니 조용하고 커다랗다 새가 날개를 접은 품새이다 알을 품고 있다 서까래며 구들이며 삭신이 다치지 않게 새는 날개를 천천히 닫았겠다 상하진 않았겠다 먼지조차 조금 들썩거렸다 일몰이 깨금발로 지나갔다 새집에 올라갈 아이처럼 다시 수줍어하는 기왓장들이다 저를 떠받쳤던 것들을 품고 있는 그 지붕 아래 곧 깨어날 새끼들의 수다 때문이 아니라도 눈이 시리다 금방 날개깃 터는 소리가 들리고 새집은 두런거리겠다
소래 바다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소래 포구의
난전에서 본다, 벌써 귀밑이 희끗한
늙은 사람과 젊은 새댁이 지나간다
아버지는 서른여덟에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지난날
장사를 하느라 흥해와 일광을 돌아다니며 얻은
병이라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부턴가
소래에 오고 싶어 하셨다
아니 소래의 두꺼운 시간과 마주한 뻘과 협궤 쪽에 기대어 산
새치가 많던 아버지, 바닷물이 밀려나가는
일몰 끝에서 그이는 젊은 여자가 따르는
소주를 마신다, 그이의 손이 은밀히 보듬는
그 여자의 배추 살결이
소래 바다에 떠밀린다
내 낡은 구두 뒤축을 떠받치는 협궤 너머
아버지는 젊은 여자와 산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水路를 따라 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주네
결코 눈뜨지 말라
지금 한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떼 가득 찬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의 무늬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뜨면 여느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 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을 만질 때
나는 새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소나무
한 발만 더 디디면 벼랑인데 바로 거기서 뿌리를 내리는 소나무가 있다 자세히 보면 소나무는 늘 바르르 떨고 있는데, 에멜무지로 금방 새로 변해 날아가도 아무도 탓하지 않을 아슬함으로 잔뜩 발돋움한 채 바르르 떨고 있는데, 아직도 훌쩍 날아가지 않고 서 있는 저 나무가 기다린 것은 무어냐
흰뺨검둥오리
그 새들은 흰 뺨이란 영혼을 가졌네
거미줄에 매달린 물방울에서 흰색까지 모두
이 늪지에선 흔하디흔한 맑음의 비유지만
또 흰색은 지느러미 달고 어디나 갸웃거리지
흰뺨검둥오리가 퍼들껑 물을 박차고 비상할 때
날개 소리는 내 몸속에서 먼저 들리네
검은 부리의 새떼로 늪은 지금 부화 중,
열 마리 스무 마리 흰뺨검둥오리가 날아오르면
날개의 눈부신 흰색만으로 늪은 홀가분해져서
장자를 읽지 않아도 새들은 십만 리쯤 치솟는다네
흰뺨검둥오리가 떠메고 가는 것이 이 늪을 포함해서
반쯤은 내 영혼이리라
지금 늪은 산산조각나기 위해 팽팽한 거울,
수면은 그 모든 것에 일일이 구겨지다가 반듯해지네
늪의 內簡體를 얻다*
너가 인편으로 붓틴 褓子에는 늪의 새녘만 챙긴 것이 아니다 새털 을 플자 믈 우에 누웠던 亢羅 하도 한 움큼, 되새 떼들이 방금 고 간 발자곡도 구석에 꼭두서니로 염색되어 잇다 수면의 믈거울을 걷어낸 褓子 솝은 흰 낟달이 아니라도 문자향이더라 람을 떠내자 수생의 초록이 눈엽처럼 하늘거렸네 褓子와 은 초록동색이라지만 초록은 순순히 결을 허락해 머구리밥 이 너 과두체 內簡을 챙겼지 도근도근 도 안감도 대되 雲紋褓라 몇 점 구에 마 적었구나 소솜에 游禽이 적신 믈방올들 내 손 에 미끄러지길래 부르르 소름 돋았다 그 만 고요의 눈를 보니 너 담담한 줄 짐작하겠다 빈 褓子는 다시 보다 아아 겨을 늪을 褓子로 싸서 인편으로 받기엔 어이 너무 차겠지 向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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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언니가 여동생에게 보내는 내간체의 느낌을 위해 본문에 남광우의 『교학고어사전』(교학사, 1997년)를 참고로 한 고어 및 순우리말과 한자말 등을 취사했다.
** 현대어 본문은 다음과 같다.
너가 인편으로 부친 보자기에는 늪의 동쪽만 챙긴 것이 아니다 새털 매듭을 풀자 물 위에 누웠던 亢羅 하늘도 한 움큼, 되새 떼들이 방금 밟고 간 발자국도 구석에 꼭두서니로 염색되어 있다 수면의 물거울을 걷어낸 보자기 속은 흰 낮달이 아니라도 문자향이더라 바람을 떠내자 수생의 초록이 새순처럼 하늘거렸네 보자기와 매듭은 초록동색이라지만 초록은 순순히 결을 허락해 개구리밥 사이 너 과두체 내간을 챙겼지 도근도근 매듭도 안감도 모두 雲紋褓라 몇 점 구름에 마음 적었구나 삽시간에 游禽이 적신 물방울들 내 손등에 미끄러지길래 부르르 소름 돋았다 그 많은 고요의 눈맵시를 보니 너 담담한 줄 짐작하겠다 빈 보자기는 다시 보낸다 아아 겨울 늪을 보자기로 싸서 인편으로 받기엔 얼음이 너무 차겠지 向念
절벽
절벽은 제 아랫도리를 본 적 없다
직벽이다
진달래 피어 몸이 가렵기는 했지만
한 번도 누군가를 안아본 적 없다
움켜쥘 수 없다
손 문드러진 天刑 직벽이기 때문이다
솔기 흔적만 본다면
한때 절벽도 반듯한 이목구비가 있었겠다
옆구리 흉터에 꽈리튼 직립 폭포는
직벽을 프린트해서 빙폭을 세웠다
구름의 風磬을 달았던 휴식은 잠깐,
움직일 수도 없다
건너편 절벽 때문이다
더 가파른 직벽과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막
빙하가 있는 산의 밤하늘에서 백만 개의 눈동자를 헤아렸다 나를 가만히 지켜보는 별과 나를 쏘아보는 별똥별들을 눈 부릅뜨고 바라보았으니 별의 높이에서 나도 예민한 눈빛의 별이다 별과 별이 부딪치는 찰랑거리는 패물 소리는 백만 년 만에 내 귀에 닿았다 별의 발자국 소리가 새겨졌다 적막이라는 두근거림이다 별은 별을 이해하니까 나를 비롯한 모든 별은 서로 식구들이다
취산화서*
수국 곁에 내가 있고 당신이 왔다 당신의 시선은 수국을 지나 나에게 왔다 수국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잠깐 숨죽이는 흑백사진이다 당신과 나는 수국의 그늘을 입에 물고 있다 정지화면 동안 수국의 꽃색은 창백하다 왜 수국이 수시로 변하는지 서로 알기에 어슬한 꽃무늬를 얻었다 한 뼘만큼 살이 닿았는데 꽃잎도 사람도 동공마다 물고기 비늘이 얼비쳤다 같은 공기 같은 물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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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聚散花序, 꽃대 끝에 한 개의 꽃이 피고 그 주위 가지 끝에 다시 꽃이 피고 거기서 다시 가지가 갈라져 끝에 꽃이 핀다. 수국의 꽃차례이다.
내소사 韻
꺼칠한 입술로 핥아보는 내소사 눈이라면
몸 안의 것을 차례차례 버리고
대웅전까지 무르팍으로 기어가려 한다
모든 입이 먼저 눈에 파묻히리라
내소사를 찬양하는 목판본 읽은 새청 입만 남고
눈과 함께 꽁꽁 얼어붙으리라
열 개의 죄악, 열 개의 손가락이 끊어지리라
내가 못하면 나한이 와서 잘라버리리라
뱉어야 할 것마저 마구 삼켰던 위장과
동굴에 가까운 소리의 입구,
내 시선에 들어와서 비로소 악이었던 것들의 배후인
검은 눈알을 꺼내어
전나무숲의 말없음이나 눈 위에 쏟으면
뼈만 남아 내소사 설경과 다름없이 고요해질
몸!
타이프라이터 애인
-서정춘 선생님에게
나에게 타이프라이터 치는 애인이 있지
내가 <ㄷ>을 말하기도 전에 <ㅏ>와 <ㅇ>을 더하여 <당신>의 비음을 빌미로 포옹하는 여자
만약 <ㅇ>을 찍어 이데올로기라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 <잎새, 아름다움, 아리아> 등의 미학을 준비하는 여자
네 잎 클로버 사이로 그 입을 들여다보면 모든 말의 구근이 군량미처럼 쌓여 있다네
비오는 날, <ㅂ>에 <ㅣ>를 찔러보면 벌써 고조되는 여자
짦은 앎을 탓하지 않고 자음과 모음을 뒤섞어 내 시를 대신 베껴주는 부지런한 사랑이여
한때 나는 천 개의 혀를 가진 타이프라이터를 사랑했네
송재학
195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포항과 금호강 인근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1982년 경북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한 이래 대구에서 생활하고 있다. 1986년 계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첫시집 『얼음시집』을 비롯해 『살레시오네 집』, 『푸른빛과 싸우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기억들』, 『진흙얼굴』, 『내간체를 얻다』, 『날짜들』, 『검은색』, 『슬프다 풀 끗혜 이슬』, 『아침이 부탁했다, 결혼식을』등의 시집과 산문집 『풍경의 비밀』과 『삶과 꿈의 길, 실크로드』를 출간했다.
김달진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상화시인상 , 이상시문학상, 편운문학상, 전봉건문학상, 목월문학상, 송수권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첫댓글 '늪의 내간체를 얻다' 낭송 할게요 - 금강 합장-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이정아 낭송하겠습니다
지붕 " 하겠습니다 - 김태경
안녕하세요ᆢ
저는 "소래 바다는"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내소사 운 / 낭송하겠습니다.
신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감하겠습니다
여름철 무더위에 건강에 유의하세요
김금주 회장님, 8월 목시 파이팅!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늦었네요~!()
고맙습니다 회장님
목시 신청해 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따뜻한 낭송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