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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하여』 둘째 부분: 속사람: 믿음 안에서의 자유(상)
코람데오 추천 4 조회 235 24.12.02 08:43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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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12.02 09:10

    첫댓글 매우 좋은 포스팅입니다.
    작성자님의 인트로에서 루터의 1차 자료를 요약해 주니 보기가 더욱 편하군요.

  • 24.12.02 15:37

    네, 공감합니다.

  • 24.12.02 09:14

    옛 언약은 통칭 구약이고 신약은 통칭 신약인데, 칼빈 츠빙글리 등의 개혁주의에 비해서... 루터는 신구약의 단절 내지 엄격한 구분을 하는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도덕률폐기론자나 구원파 스타일의 이단들이 루터에 대한 비난은 없지만 칼빈에 대해 집요한 비난을 하는 이유는 도덕률폐기론이 루터의 신학에서는 그나마 비빌 언덕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 것 같습니다. 칼빈은 수사관처럼 치밀하거든요.

  • 24.12.02 15:41

    맞아요. 칼빈은 이단에 대해서 수사관 같은 치밀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24.12.02 09:20

    루터가 율법과 복음을 대립시킨 것에서는 오해나 오류를 조장할 가능성이 다른 주요 개혁자에 비해서 더 있어 보이기는 합니다.
    -------------------------------------------------

    "루터가 율법과 복음을 대립시킨 것과는 달리, 츠빙글리는 율법을 복음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었다." -->

    츠빙글리의 주장처럼 율법과 복음은 첨예한 대립이 아니라 구분되며, 불연속만이 아니라 연속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예가 주기도문인데 이는 십계명을 요약한 것입니다.

    https://cafe.daum.net/1107/bzn6/30

  • 24.12.02 15:53

    링크 본문은 대강 기억나지만, 댓글 서두에서 루터의 마인드를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 24.12.02 12:33

    하나님의 율법은 ① 초등학문으로서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기능이 있고, ② 인간의 악함과 행동을 억제하는 역할이 있으며, 그에 더해진 ③번째 목적이자 용도는 신자들에게 성화(sanctification)의 길과 방향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 루터교(Lutheran) 전통은 율법의 ①•② 용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개혁파(Reformed) 신학자들은 율법의 ③번째 용도에 자리를 제공하며,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을 통해 성장하는 개념인 성화를 더욱 강조합니다. 이러한 율법의 용도에 대한 이해는 개혁주의의 원조인 칼빈의 주장을 벤치마킹 한 것입니다. 구분선 아래에서 칼빈이 말한 율법의 3번째 용도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이전에 올린 초판이 아니라 1559년판 기독교강요).

    https://cafe.daum.net/1107/Y4cZ/106

  • 24.12.02 15:59

    루터와 칼빈주의 모두 훌륭하지만 율법에 대한 균형잡힌 이해는 칼빈주의 쪽에 도 있는 것 같습니다.

  • 24.12.02 12:35

    아래 글도 함께 보면 더욱기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칼빈, 율법의 용도(초판 기독교강요)

    https://cafe.daum.net/1107/Y4cZ/82

  • 24.12.02 16:05

    초판 기독교 강요를 보니 서술체로 더 이해가 잘 되는 갓 같습니다.

  • 24.12.02 16:08

    몇 가지 어려운 표현이 있지만 영혼이 믿음을 통해 말씀의 감동을 받는다!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좋은 포스팅을 통해서 성찰하고 배웁니다.

  • 24.12.04 20:33

    공감합니다.

  • 작성자 24.12.02 16:29

    가톨릭 교회가 구원의 조건으로 선행을 강조하고 온갖 고행과 비성경적인 방법들을 동원하니까 루터로서는 그것에 대한 강한 반발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겠죠. 의롭게 되는 것은 그런 외적인 행위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직 내적인 것, 영혼을 의롭게 하고 거룩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가능한데 그것이 믿음이라는 거죠. 루터는 믿음의 위대한 능력을 그 자신이 오랫동안 방황하고 번뇌하다가 발견한 그것이 너무나 크고 기뻤기 때문에 믿음의 능력에 대해서 이렇게 휘몰아치며 글을 썼던 것으로 이해합니다.

  • 24.12.02 16:35

    네, 알겠습니다. 방향을 잡아주신 대로 잘 읽고 은혜를 얻습니다.

  • 작성자 24.12.02 16:36

    더구나 자신을 파문하려는 교황을 어떻게든 성경을 통해서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 행위가 얼마나 구원과 칭의에 아무런 기여를 못하는가를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여실하게 드러나기도 하죠.

  • 24.12.02 16:54

    네, 좋은 포스팅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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