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주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믿고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자입니다. 그렇게 믿기를 거부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불행입니다. 왜냐면 영벌, 즉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왜 영원히 평안할 영생을 버리려고 하나요?
그러나 주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이 세상에서의 고난과 상관이 없을 수 없습니다. 나부터 듣기 싫고 인정하기 싫고 그래서 받아들이기 싫은 말이 바로 '고난' 그 두 글자입니다.
고난은 그 특징이 험난입니다. 그것도 잠깐 험하면 될듯 한데 그 고난의 시기가 길면 이건 정말 고통 그 자체, 죽을 맛입니다. 그래서 나는 찬송가 370장을 좋아하면서도 그 후렴구 때문에 늘 부르면서, 또 들으면서 불편했었습니다.
'내 앞 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그리스도인,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된 천국의 백성에게는 고난이 예외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믿기를 거부하여 하나님의 자녀되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살 동안에 부자도 되게 하시고 권력도 갖게 하시고 출세도 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 보다 더 잘되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가 문제이지요. 그 영혼이 지옥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신 예수님을 깊히 생각할 수 있는 기회이므로 유익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사모할 수 있게 하시니 내 신앙을 더욱 견고케 하여 유익하고 감사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인격이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므로 내 성품이 그리스도의 향내를 낼 수 있게 하므로 유익합니다.
그래서 나는 찬송가 370장의 후렴구를 더욱 소중하게 내 마음에 품기로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손과 발에 못박히심을 받아들이심 같이, 그리고 험한 가시채를 이마와 머리에 쓰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립보서1:29)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브리서13:12)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베드로전서3:17)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4:13)
찬송가 '주 안에 있는 나에게'에 대한 소감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베드로전서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