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은 청나라의 청태종이 조선을 침략한 전란입니다. 조선의 임금인 인조14년, 그러니까 1636년 12월 부터 이듬해인 1637년 1월 까지 이어진 전란이었지요. 조선이 초토화 되었던 참으로 굴욕적인 전쟁이었습니다.
인조 임금이 최후의 보루인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들어 갔을 때, 따라간 관료중에 남 이웅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조선이 전쟁에 패하여 세자가 볼모로 청나라에 잡혀 갔을 때에 세자를 모시고 함께 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부인인 남평 조씨가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그 심정을 일기로 남겼습니다. 그 일기가 '숭정 병자일기'인데 줄여서 그냥 '병자일기'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기는 만3년 10개월 동안 씌어졌으며, 1640년 8월 9일자로 끝을 맺지요.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에 일기를 쓴 남평 조씨는 63세의 나이였다고 합니다. 일기는 전부 한글로 씌어졌으며, 그 문체가 참으로 수려하고 귀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고대하던 남편 남 이웅은 떠난지 1년 반만인 1638년 5월에 조선에 돌아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일기 중에 부인의 간절하고 애끓는 신앙심이 돋보인 글이 있어서 한번 옮겨 보고자 합니다. 부인의 애끓는 기도의 하소연이라고 불러도 될듯 싶네요.
'이해도 다하여 가니 심양 행차는 어느 날에나 기대할까? 아침이면 햇님을 우러러 빌고 달 밝을 때면 달님에게 빌며 천지일월성신(天地日月星辰)께 절하여 빈다.
그러나 나의 정성이 부족한가? 하늘께서 감동을 아니 하시는가? 평생에 하느님을 원망하는 말을 입에 내지 아니하고 평생에 사나운 일을 아니 하려고 하였는데도 한 자식도 없고 이렇게 매양 가슴을 썩이며 지내니 하늘이시여 높으시나 높으시나 살펴보소서.'
이 일기는 1637년 11월 22일에 쓴 것입니다. 남편이 청나라에 들어간지 몇달이 지난 시기이지요. 빨리 돌아 올것을 고대하고 있는 마음에 그 몇달은 마치 수십년의 세월처럼 길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전해진 바로는 원래 자식이 있었지만 다 죽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병으로 잃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도 '한 자식도 없다'고 자기 신세를 한탄하는 모습이 나와 있지요. 그러니 오직 남편만 기대고 살수 밖에 없는 여인으로서 얼마나 외로웠겠습니까? 노령의 나이에다 전란으로 황폐해진 나라의 열악한 환경에서 살기도 어려웠겠지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간절히 기도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침에는 햇님을 바라보고 기도하고, 밤에는 달님을 바라보며 빌었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빈다는 것은 빌 대상이 있어야 하지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병자호란 당시에는 조선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때이지요.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을 때입니다. 물론 당시 중국인 명나라를 통해서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이 전해졌는지는 모릅니다. 명나라를 오갔던 조선의 사신들이 명나라에서 혹시 들을 수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조금이나마 보고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확실치 않은 개인적인 상상일 뿐입니다.
조선에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이 전해진 것은 먼저 천주교에 의한 것입니다. 그 때가 18세기이며 1700년 후반기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을 왕래하던 조선의 사신들에 의하여 전래된 천주교 서적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소식이,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이 조선에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지요.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자인 이 승훈은 1784년 에 조선천주교회를 창설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일기를 쓴 남평 조씨는 1600년대에 일기를 썼으니, 그 때까지 조선에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아는 지식이 없었을 뿐더러 공식적인 신앙 생활도 하였을리가 없지요.
개신교가 조선에 전래된 최초는 1832년에 네델란드의 귀츨라프 목사가 황해도, 충청도 등지의 해안가에서 한문성서를 조선에 전해주는 선교활동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면, 일기에서 남평 조씨는 어떻게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하였을까요? 먼저 이 부인은 하늘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천지라고하여 땅도 언급을 했지만, 농경 사회에서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수 없지요. 그리고 했빛도 하늘의 해에서 비추어주는 것이니, 생명 같은 햇빛이 없으면 살수가 없는 환경이 되니 자연히 땅 보다는 하늘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늘을 지배하는 절대자를 바로 하느님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공동번역성경에도 하느님이라고 표현을 하지만, 사실상 창조주는 하느님이 아니고 하나님이시지요. 단 하나
뿐인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저 하늘만 다스리는 자연의 신, 즉 하느님, 혹은 하늘님은 아니신 것입니다. 하느님이 무형의 신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실재하시는 실체적인 하나님이시지요.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나아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에 관하여 이와같이 성부 하나님께 호소하는 내용이 성경에 나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17:2,3).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했을 조씨 부인은 아마도 그녀의 순수한 심령 탓에 분명치는 않지만 우주 삼라만상을 다스리시고 모든 생명의 주인되시는 절대자가 존재하고 있음을 신앙적으로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을 언급하고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기억해 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천지일월성신을 섬기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신명기4:19).
천지일월성신은 사람에게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상일 뿐이지요. 그 천지 만물을 누리며 살게 하신 하나님의 은택에 감사하고 찬양할 뿐이지, 그것이 숭배나 미신적인 토속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이라고 부르며 절대자를 향하여 남편의 귀환을 애타게, 애끓는 심정으로 빌었던 조씨 부인을, 아마도 하나님께서 보고 계셨고, 또 그 간구를 들을신것이 아닌가도 싶네요. 어쨋든 부인의 간절한 소원대로 1년 반만에 남편인 남 이웅이 무사히 돌아왔으니 말입니다. 전란에 피난하여 무인도에 가있었던 조씨 부인은 남편의 귀환 소식을 듣고 서울 집으로 올라와 남편을 만났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는 사람들의 기도를 다 들으시고 또 응답하십니다. 합당하다고 여기시는 기도에 응답하시지요.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도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간절할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33:2,3).
여러분,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구주로 믿으시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죄사함을 허락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의롭다 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값을 다 치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를 다 씻음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救贖)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에베소서1:7).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러니까 전도를 받거나 스스로이던지 예수님 앞에 나와서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예정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그렇게 구원을 받게 될 것을 미리 아시고 예정해 두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입니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에베소서1:11).
영원히 쇠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영생이 곧 우리 각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기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