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환상 상상의 산물 ㅡ 낭만주의부터 ㅡ있을 법한 상상만 ㅡ리얼리즘 ㅡ현대 복잡 감성 표현 불가. ㅡ 환상도 차용 ㅡ마술적 리얼리즘.중남미 문학 ㅡ한국 미래파 경향 백년간의 고독 ㅡ 해리포터 판타지 소설
2003년 등단한 황병승(35) 무의식의 시인ㅡ 그만큼 모호하고 난해하다 “하늘의 뜨거운 꼭짓점이 불을 뿜는 정오// 도마뱀은 쓴다/ 찢고 또 쓴다//(악수하고 싶은데 그댈 만지고 싶은데 내 손은 숲 속에 있어)…”(‘여장남자 시코쿠’) 이 이미지의 분열적 분방함과 해체적 언술을 두고 그는 “새로운 문화현상과 비주류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굳어져버린 주류의 언어와 문법으로 풀어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ㅡ시의 길이 꼬이고 뒤틀리고 갈라지고 끊김이 불가피했다는 것.
이들 시의 메커니즘은 다양하다. 빛이나 공기 입자의 산란처럼 어지럽게 좌충우돌하는 사유의 혼종성, 세계와 자아의 대립과 반영을 넘어 자아분열적이기까지 한 현란한 이미지, 성적ㆍ관능적 환상과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한 상징 등…. 이성과 관념 이전의 원초적 시어들이 은닉하고 있는 ‘무엇’을 감지하기 위해 ㅡ새로운 시 독법이 필요하다
이들 시에 대한 비판 -문학의 본령은 문자를 통한 소통 암호에 가까운 자의적 기호와 자폐적 무의식의 흔적들이 어떻게 문학인지 모르겠다. -환상이 없는 문학은 없다. 두보의 시에도, 카프카의 글에도 환상은 있다. 하지만 이들의 시는 삶의 리얼리티를 상실한 채 머리(환상) 속에서 떠오른 느낌들을 시적 긴장 없이 풀어놓은 것 -하나 하나의 작품을 놓고 보면 참신하지만 모아놓고 보면 시를 형성하는 문법이나 문장을 엮는 방법 등이 흡사하다. 일종의 유행이다
반론 -나는 말쑥하고 균형 잡힌 시를 혐오한다. 안정감 있고 깨달은 자는 침묵하면 좋겠다. … 나는 내가 쓴 시에 관해서 말하기가 뭐하다. 낯설고 잘 모르겠고, 몰라서 쓴다.… ‘노력’해야 한다면 그때는 안녕. (김이듬, ‘시와 반시’여름호-현대시와 퇴폐)
-시단에서 유일하게 죄악인 것이 있다면 바로 다양한 꼴을 못 보아주는 태도이다. 시적으로 봐도 그렇고 생물학적 측면에서도 굉장히 위험한 태도다.… 자신 안에 스스로 잡종의 비율을 높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언, ‘웹진 문장’ 10월호-우리 시의 다양성과 새로움)
-아름다움은 움직이는 거다. … 황현산(고려대 불문) 교수 “한국 현대시단의 양대 흐름을 형성했던 농경사회적 정서와 도시적 정서의 굳은 틈을 비집고 서울의 하위정서 혹은 지방도시적 정서들이 새로운 경향을 형성하는 듯하다”며 “하기에 따라서는 향후 2~3년 내에 시단의 지형도가 바뀔 수도 있을 것” 소통의 문제와 관련, 그는 “승리한 자의 말은 상식에 근거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소통되지만, 억압 받는 자는 말 한 마디 하기도 힘들고 하더라도 타박 당하기 일쑤”라며 “하지만 그 말은 우리가 반드시 소통해야 할 말“
2003년 김행숙씨의 첫 시집 ‘사춘기’(문학과지성사)의 해설에 이장욱(시인ㆍ소설가ㆍ평론가)씨는 “우리가 도달해가는 현대시의 어떤 징후”라는 조심스러운 표현을 쓴 바 있다. 이제 그 징후는 좋든 싫든 하나의 도도한 경향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최근 젊은 시인들의 경향이 우리 현대시의 다양성을 확장하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지배적 경향을 형성할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최근 낸 비평집에서 이들 젊은 시인들의 경향을 ‘미래파’라 명명한 권혁웅(시인ㆍ평론가)씨는 “60년대의 김수영, 80년대의 이성복이 당대 시단에 충격을 준 것처럼, 이들 시가 낯설고 불편한 것은 새로운 미학과 세계관을 한 발 앞서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라 했다.이들의 작품이 가까운 미래에 우리 시의 분명한 대안이라는 것을 인정할 날이 올 것이다.”(‘미래파’ 171쪽)
여장남자 시코쿠 - 황병승(1970~ )
하늘의 뜨거운 꼭지점이 불을 뿜는 정오
도마뱀은 쓴다
찢고 또 쓴다
(악수하고 싶은데 그댈 만지고 싶은데 내 손은 숲 속에 있어)
양산을 팽개치며 쓰러지는 저 늙은 여인에게도
쇠줄을 끌며 불 속으로 달아나는 개에게도
쓴다 꼬리 잘린 도마뱀은
찢고 또 쓴다
그대가 욕조에 누워있다면 그 욕조는 분명 눈부시다
그대가 사과를 먹고 있다면 나는 사과를 질투할 것이며
나는 그대의 찬 손에 쥐어진 칼 기꺼이 그대의 심장을 망칠 것이다
열두살, 그때 이미 나는 남성을 벗고 나온 위대한 여성 미래를 점치기위해 쥐의 습성을 지닌 또래의 사내아이들에게 날마다 보내던 연애편지들
(다시꼬리가 자라고 그대의 머리칼을 만질수있을 때까지 나는 약속하지 않으련다 진실을 말하려고 할수록 나의 거짓은 점점 강렬해지고)
어느날 누군가 내 필통에 빨간 글씨로 똥이라고 썼던적이 있다.
(쥐들은 왜 가만히 달빛을 거닐지 못 하는 걸까)
미래를 잊지 않기 위해 나는 골방의 악취를 견딘다. 화장을 하고 지우고 치마를 입고 브래지어를 푸는 사이 조금씩 헛배가 부르고 입덧을 하며
도마뱀은 쓴다.
찢고 또 쓴다.
포옹을 할 때마다 나의 등뒤로 무섭게 달아나는 그대의 시선!
그대여 나에게도 자궁이 있다 그게 잘못인가 어찌하여 그대는 아직도 나의 이름을 의심하는가
시코쿠 시코쿠
붉은 입술의 도마뱀은
장문의 편지를 입에 물고 불속으로 사라진 개를 따라* 쓰러진 저 늙은 여자의 침묵을 타넘어
뛴다 도마뱀은
창가의 장미가* 검붉은 이빨 불을 먹는 정오.#
숲속의 손은 편지를 받아들고* 꼬리는그것을 읽을 것이다.
(그대여 나는 그대에게 한번더 강렬한 거짓을 말하련다)
기다리라, 기다리라!
ㅡㅡㅡㅡㅡㅡㅡ
간략하고 정교하게 짜여진, 훌륭한 ‘실패의 미학’ 입문. 도마뱀은 쓸 수 없는 손으로 쓸 수 없는 것을 쓰려 한다. 그 노력이 꼬리 잘린 도마뱀을 여장 남자 시코쿠로 만들지만, 예술의 불가능한 궁극은 성(性)의 극복이다. 이 뒤로, 도마뱀은 쓰지 않고 뛰지만 ‘숲 속의 손은 편지를 받아 들고/꼬리는 그것을 읽’고, 시인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렬한 거짓’을 말할 밖에 없다. <김정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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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장남자 시코쿠 - 황병승(1970~ )
하늘의 뜨거운 꼭지점이 불을 뿜는 정오
도마뱀은 쓴다
찢고 또 쓴다
(악수하고 싶은데 그댈 만지고 싶은데 내 손은 숲 속에 있어)
양산을 팽개치며 쓰러지는 저 늙은 여인에게도
쇠줄을 끌며 불 속으로 달아나는 개에게도
쓴다 꼬리 잘린 도마뱀은
찢고 또 쓴다
그대가 욕조에 누워있다면 그 욕조는 분명 눈부시다
그대가 사과를 먹고 있다면 나는 사과를 질투할 것이며
나는 그대의 찬 손에 쥐어진 칼 기꺼이 그대의 심장을 망칠 것이다
열두살, 그때 이미 나는 남성을 벗고 나온 위대한 여성 미래를 점치기위해 쥐의 습성을 지닌 또래의 사내아이들에게 날마다 보내던 연애편지들
(다시꼬리가 자라고 그대의 머리칼을 만질수있을 때까지 나는 약속하지 않으련다 진실을 말하려고 할수록 나의 거짓은 점점 강렬해지고)
어느날 누군가 내 필통에 빨간 글씨로 똥이라고 썼던적이 있다.
(쥐들은 왜 가만히 달빛을 거닐지 못 하는 걸까)
미래를 잊지 않기 위해 나는 골방의 악취를 견딘다. 화장을 하고 지우고 치마를 입고 브래지어를 푸는 사이 조금씩 헛배가 부르고 입덧을 하며
도마뱀은 쓴다.
찢고 또 쓴다.
포옹을 할 때마다 나의 등뒤로 무섭게 달아나는 그대의 시선!
그대여 나에게도 자궁이 있다 그게 잘못인가 어찌하여 그대는 아직도 나의 이름을 의심하는가
시코쿠 시코쿠
붉은 입술의 도마뱀은
장문의 편지를 입에 물고 불속으로 사라진 개를 따라* 쓰러진 저 늙은 여자의 침묵을 타넘어
뛴다 도마뱀은
창가의 장미가* 검붉은 이빨 불을 먹는 정오.#
숲속의 손은 편지를 받아들고* 꼬리는그것을 읽을 것이다.
(그대여 나는 그대에게 한번더 강렬한 거짓을 말하련다)
기다리라, 기다리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생각 1* 미래파라고 지칭되는 시인들의 시 중, 젊은이들 사이에서 젤 많이 읽힌 시다. 시의 제목을 보면 여장남자 시코쿠ㅡ는 두 단어의 이미지가 성소수자ㆍ일본 네 섬 중 젤 작은 섬ㅡ여기서 멈추면 약자의 세계를 말하는 의미가 되지만, 상상을 더 확대하면 변태적ㆍ편집광적 경향 높은 일본 문화ㆍ그 문화를 추종하는 젊은 세대 등으로 확장되어 슬퍼진다. 2* 시의 소재도 독특하지만 형식도 새롭다. 즉 시의 소재를 성소수자ㅡ하기사 요즘은 서울 신촌에서 동성애자들 축제도 열린다지만ㅡ로 선택한 것도 눈길을 끌지만 , 형식도 무척 새롭다. 산문적 형식을 시로 끌여들인 김혜순의 기법이 보다 확대되어 활용되었고, 강렬한 이미지 또한 그렇다. 3* 마시자, 한잔의 술ㆍ아니벌써ㆍ왜불러 ㅡ노래가 나올 때 우리 부모가 저것도 노래냐? 했듯이# 언제부턴가 멜로디에서 비트중심으로 바뀐 노래들을 들으며 전혀 공감을 못 느끼게되어 슬픈 것처럼, 그래도 랩을 배우고파 따라하면 왜 트로트로 편곡해 부르냐고 웃어대는 소리가 서글프지마는 않은 것처럼, 4 *이 시를 읽고 결심한 것이 그거다. 천년 후 사람이 읽어도 공감을,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시를 쓰자. 시류에 야합하지 말자. 이 시는 단지 나한테 맞지 않는 거다. 그래서 감동이 없는 것이다. 5 * 한 행이 한 연을 이루는 활용, 괄호의 쓰임, 강렬한 자극적 이미지 ㅠㆍㅠ
한국 문단에 화끈한 논쟁 한 판이 벌어졌다. 이른바 '미래파' 논쟁이다. 최근 주목받는 몇몇 젊은 시인들의 새롭고 낯선 어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놓고 편이 갈렸다. 6~7년 전 문단권력 논쟁 이후 오랜만의 본격 논쟁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 미래파의 등장
'미래파'란 어휘는 지난해 '문예중앙'봄호에서 처음 선보였다. 평론가 권혁웅은 '미래파-2005년, 젊은 시인들'이란 글에서 "새로운 세대가 생산하는 시는 요령부득의 장광설이거나 경박한 유희의 산물이 아니"라며 "이들의 작품이 가까운 미래에 우리 시의 분명한 대안이라는 것을 인정할 날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혁웅은 위 글에서 장석원.황병승.김민정 등 젊은 시인 셋을 인용했다. 이들은 모두 지난해 첫 시집을 발표했고, 첫 시집으론 이례적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여장남자 시코쿠'(랜덤하우스중앙)를 발표한 황병승은 중진 비평가 황현산이 "완전소중 시코쿠"('창작과비평'2006년 봄호)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흥미로운 건 1년 사이 미래파 숫자가 확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미래파가 한 평론가의 재기 발랄한 호명을 넘어 문단 이슈로 떠오른 까닭이 여기 있다. 애초에 호명된 건 셋이었지만, 2000년 전후 등단한 비슷한 어법의 또래 시인들, 예컨대 김행숙.김언.이민하.유형진.이장욱 등도 미래파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다. 언제부턴가 미래파는 '길고 낯설고 섬뜩한 시를 생산하는 요즘 시인들'이란 뜻의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 미래파에 대한 반격
미래파에 대한 급작스런 주목은 끝내 반발을 불러왔다. 몇몇 계간 문예지들이 최근 발간된 여름호에서 미래파를 비판하고 나섰다.
가장 적극적인 건 시 전문 계간지 '시작'이다. '시작'은 "환상.전복.엽기.난해성.무의식 등을 특징으로 한 일군의 젊은 시인과 '다른 미래'를 꿈꾸고 사유하는 시인들을 선정한다"며 김선우.김이듬.박상수.박판식.손택수 등 젊은 시인 18명을 특집으로 다뤘다. 이 특집에서 비평가 이명원은 "권씨는 문단연령론과 문학세대론을 반복함으로써 시단의 혼란을 가중시켰다"며 "선배 시인들의 후배 세대에 대한 이유 있는 경계심을 오히려 부추기는 데 앞장섰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작가세계'도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시 세계 비판'이란 특집을 기획했다. "새롭고 낯선 징후들에 바쳐진 요란한 찬사를 걷어내고 차분한 시선으로 2000년대 상반기의 시적 현상을 돌아볼 필요"를 제기하며, 황병승.장석원.김민정 등에게 "자기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서 한걸음 물러나 관계에 대해 성찰하고 자기 언어의 전략과 한계에 대해서도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기 바란다"(이경수)고 충고했다. 이외에 '창작과비평'이 '2000년대 한국문학이 읽는 시대적 징후'란 특집에서, '실천문학'이 '탈주체론을 넘어서'란 특집에서 젊은 시인들을 다뤘다.
# 미래파는 정의가 아니라 수사다
논쟁의 진원지 '문예중앙'도 여름호에서 관련 특집을 실으면서 전선을 확대했다. 권혁웅은 '행복한 서정시 불행한 서정시'란 글에서 서정시를 두 종류로 나눴다. 시적 주체와 대상이 일치되는 이른바 전통적 방식(또는 정서)의 서정시가 행복한 서정시이고, 그렇지 못한 것이 불행한 서정시라고 구분한 것이다.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는 말장난이나 실험시가 아니라 "시적 주체와 세계가 엇갈리는 비정합적인 불행한 서정시"란 주장이다.
권혁웅의 반론은 문단 일각의 오해에 대한 해명이기도 하다. 권혁웅은 미래파를 '청록파'나 '시문학파'처럼 일종의 동인(同人)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요즘 젊은 시인들의 어법이 기존 문법과 다르다고 해서 말장난이나 환상으로 치부하지 말기를, 또 하나의 진지한 문학으로 바라보기를 당부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권혁웅의 미래파는 "정의(定義)가 아니라 수사(修辭)"(김수이, '세계의문학' 2006년 봄호)다.
'미래파 논쟁'은 한국문학이 새 국면에 진입했음을 암시하는 일종의 지표다. 그들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들의 낯선 어법과 새로운 상상력은 일단 인정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 개인의 별난 실험이 아니라 집단적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에서 미래파는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비평가 박수연은 '서정과현실' 2006년 상반기호에서 "한국적 아방가르드의 진폭은 그들 각각의 개별적 성취로만 여겨졌을 뿐 유사한 지향과 형식을 갖춘 집단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적 경향은 문학사적 사건임이 분명하다"고 의의를 밝혔다.
손민호 기자
손민호기자의문학터치] '미래파' 시인, 이데올로기를 노래하다
중앙일보 2005.12.09 20:34 종합 23면 지면보기
<돌발 퀴즈-1> 아래 두 시를 읽고 감상을 비교하시오.
'아나키스트' 장석원 지음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끝난 것은 사랑이 아니라 혁명이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것이 혁명이라는 반혁명도 존재하고, 반혁명의 혁명을 꿈꾸기에 아직도 미래를 열어보이겠다고 호언하는 방사성 동위 원소 같은 존재들도 있다. 혁명 너머를 생각하지 않는 나의 후배 혁명이는 그래서 오토바이를 조그만 반역의 불수레라고 생각한다.'
<돌발 퀴즈-2> 1번 방식과 동일하오.
'어느 날 나는 친구집엘 놀러갔는데 친구는 없고 친구 누나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우리는 자욱한 세월에 걸친 시련과 고뇌의 시대를 넘어서서 이제야말로 성장과 성숙을 통해 자기 완성의 시대를 형성하여야 할 80년대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성스러운 새 시대의 서장에서 대통령이란 중대한 책무를 맡게 된 본인은…'
어떠신가. 비슷한 정서가 느껴지는가. <퀴즈-1>에서 두 작품은 모두 시대에 대한 좌절을 곱씹는다. 첫째 시는 김수영의 '그 방을 생각하며'(1960년)에서, 둘째는 오늘의 주인공인 장석원 '동방의 서점에는'('아나키스트', 문학과지성사)에서 인용했다. <퀴즈-2>의 처음 시는 황지우의 '숙자는 남편이 야속해'(83년), 다음 시는 다시 장석원의 '김추자에게 보내는 연서'에서 따왔다. 화장실 낙서를 그대로 옮겨와 시라고 우긴 황지우와 제5공화국 대통령 취임 연설문을 통째로 갖다 붙인 장석원의 의도는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게 있다. 그건 장석원(36)이란 신예가 두 거장을 흉내 낸 게 아니란 점이다. 대신 그는 그 전통 위에 있다. 장석원은 요즘 젊은 시인처럼 길고 난해하고 어지럽지만, 요즘 젊은 시인과 다르게 적극적으로 시대를 발언한다. 물론 시대에 개입하는 화법은 21세기적이다. 're-volution, 다시 회전하면, 그대와 내가 벌인 사랑의 육박전'('지난해 ○○여관 때로 △△여관에서' 부분)처럼 '혁명'이라는 거룩한 명제를 희화화하고 개인화할 때 그는 온전히 21세기적이다.
평론가 권혁웅의 재치있는 호명에 따르면 장석원을 비롯한 김행숙.김민정.황병승 등 젊은 시인들은 이른바 '미래파'다. 여태의 문법으로는 해석이 불가한 시 세계란 뜻이다. 기존 문법에 따르면 이들 미래파는 엽기적이고 요설인데다 위악적이다. 하나 명심하시라. 40년 전 김수영과 20년 전 황지우도 당시엔 엽기였고 요설이었으며, 그러므로 미래파였다.
손민호 기자
시대 상황과 문학은 무관하지 않아’ “한국 현대 시문학사” 개정증보판 발간 앞장선 이승하 교수와의 만남
김상훈 기자 승인 2019.03.28 14:1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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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1910년부터 2010년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시문학사를 망라한 “한국 현대 시문학사”가 초판 발행 후 14년 만에 개정 증보판을 발행했다. 개정 증보판 “한국 현대 시문학사”는 2005년 판이 1990년대까지의 시사만을 다뤘던 것을 극복하고자 2000년대 이후의 시사와 한국 시사의 미래를 점친 글을 새로이 수록했다.
“한국 현대 시문학사”는 제목처럼 한국의 시문학사를 현장의 평론가와 학자 11명이 면밀하고 풍성하게 다루고 있다. 1910년부터 2000년대 이후까지 100년 가까운 역사 속에서 벌어졌던 문학 운동과 역사적 사건, 내로라하는 시인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다. 한국의 문학사에서 시 문학사는 소설에 비해 적게 취급된 경향이 있었기에 “한국 현대 시문학사”의 증보판 출간은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환영할만한 일이다.
문학사는 문학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관심사이며, 문학 교육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선에서 창작하는 젊은 문학인들은 문학사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문학 작품을 창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문학사를 배우는 것이 창작과 상관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문학 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문예창작과에서도 문학사는 교육과정에서 제외되거나 축소되는 등의 수모를 겪어야 했다.
문학사를 배우는 것이 정말 창작과 무관한 것일까? “한국 현대 시문학사”의 개정증보판 발간에 앞장선 이승하 교수는 문학과 역사가 무관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욱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뉴스페이퍼는 이승하 교수와 만나 “한국 현대 시문학사” 개정증보판의 의의와 문학사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들어보았다.
- 이승하 교수 “시대상황과 문학은 무관하지 않아... 문학사 모른다면 문학의 흐름 알 수 없어”
문학이 역사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순수론자나 창작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이론이나 지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실리적인 입장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입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승하 교수는 “책을 기술한 사람들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문학사를 쓸 때 제일 앞머리에 시대상황을 기술했다.”고 이야기했다.
1910년대를 기술한 이명찬 교수(덕성여대)는 1910년대의 시대적 배경을 ‘근대로의 이행기’라고 규정하고 근대성을 얻고자 했던 작가와 작품을 사건과 기술했다. 1940년대 문학사를 기술한 유성호 교수는 혼돈과 불확실이 지속되고 있던 해방 직후의 상황을 언급하며 조선문학가동맹과 청년문학가협회를 대비하여 살펴보았다.
이승하 교수는 상의하지 않은 채 기술했던 각각의 학자들이 모두 약속한 것처럼 시대적 배경을 쓴다는 것은 문학과 역사가 불가분의 관계임을 나타내는 사건이라고 이야기했다. “문학에 있어서 사회의식이나 역사의식 같은 것을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일지라도, 들여다보면 그것과 무관하지 않거나, 오히려 더 의식하며 반대편에 서려 한다는 점”에서 문학과 역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순수를 지향하려 했던 청록파조차도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작품을 발표할 수가 없었다며 역사와 문학은 무관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승하 교수는 문학사를 배우지 않는다면 “우리 문학의 흐름을 전혀 모른 채 근년의 등단작이나 약간의 화제성 시집을 보면서 습작기를 보내게 된다.”고 지적했다. 근년의 등단작이나 화제성 시집만을 본 채 보내게 되면 시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협소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방의 시인으로 김소월과 백석만 알고 김동환과 이용약을 모르면 되겠습니까. 김소월과 김영랑도 현실참여시를 썼고 모더니스트 김규동과 전봉건과 휴머니스트 구상이 이산가족의 일원으로서 애끓는 사모곡을 쓰기도 한 시인임을 문학사는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4.19 혁명이 김춘수, 조지훈, 박목월, 김남조 등에게 혁명 기념시를 쓰게 했습니다. 문학사를 알아야지 박노해, 김남주, 김신용, 김해화, 박영근 노동시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 2000년대 한국 시사부터 시단의 미래까지. 한국 시사 망라한 “한국 현대 시문학사”
이승하 교수는 “한국 현대 시문학사”가 다른 문학사 책과 구분되는 지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국시문학사의 전범(典範) 같은 책으로 김용직의 “한국현대시사”, 김재홍의 “한국 현대시의 사적 탐구”, 최동호의 “한국현대시사의 감각” 등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 세 도서는 연대가 60~70년대까지만 이르러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현대’라고 할 수 없어 아쉬웠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현대문학사”가 현대문학사나 민음사, 집문당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출간됐으나 소설에 비해 시는 적게 취급된 감이 없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한국 현대 시문학사”는 1910년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긴 시간의 시사를 담으면서 동시에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개정증보판은 2000년대 이후의 시사를 더하고 미래의 시사를 전망하며 내용을 더욱 충실히 했으며, 가독성을 살리기 위해 디자인을 변경하였고 사진을 여럿 첨부하여 현장의 실감성을 높였다. 특히 사진을 100장 이상 찾아내어 수록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며, 시인의 인물 사진 뿐 아니라 행사 사진이나 시집 표지 등 다양한 사진을 포함했다.
증보판에서 눈여겨볼 것은 2000년대 시문학사와 시단의 미래를 살펴보는 세 편의 글이다. 이경수 교수(중앙대)는 “탈경계 시대 현대시의 모색과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탈경계’를 키워드로 잡고 2000년대 시문학사를 정리했다.
이경수 교수는 “2000년대의 문학은 이념의 차이는 물론 국가와 민족,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가르던 경계를 횡단하여 탈국가, 탈민족, 탈경계의 상상력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며 “오랫동안 한국의 시단을 가르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분할, 그리고 그것을 대표하던 에콜인 창작과비평과 문학과지성 그룹의 구별이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 것 또한 2000년대 시단의 변화로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보았다.
신세대 시인의 약진과 정치적 상상력의 갱신은 2000년대 시의 특징
으로 꼽을 수 있다.
탈국가, 탈민족, 탈서정, 탈장르, 탈경계의 상상력을 보여준 시인들
로는 황병승, 김민정, 장석원, 이민하, 김행숙, 진은영, 김이듬 등을 꼽을 수 있으며, 미래파 시인들의 출연은 신세대의 약진을 읽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2000년대에는 촛불시위와 용산참사, 노무현 대통령 서거, 4대강 사업, 쌍용자동차 노조 파업투쟁, 한진중공업 사태, 밀양 송전탑, 강정마을 등 무수히 많은 정치적 사건이 잇따랐고, 문제의식을 지닌 작가들의 선언과 문학적 실천이 이뤄졌다. 작가들의 문학적 실천은 생존자와 희생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2017년 이후에는 ‘참고문헌없음’ 및 페미라이터 활동, 문단 내 성폭력 고발 등 페미니즘 운동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이경수 교수는 “윤리와 탈경계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던 2000년대의 시단은 이제 비로소 시의 윤리 감각을 제대로 시험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아픈 상처를 도려내고 단단해진 자기 성찰의 근육질을 회복할 것인가, 은폐하고 봉합해온 관습에 따라 시가 추구하는 정신과 이율배반의 길을 갈 것인가.”에 따라 한국 시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문예지는 논쟁적 힘 잃고 독자의 영향력은 방대해져’ 미래의 문학 환경 점검한 이승하 교수
이승하 교수는 “새로운 독자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 21세기의 시와 시인과 독자”라는 글에서 문학 환경의 변화를 점검했다. 이승하 교수는 텍스트의 위상이 추락하는데 반해 독자의 위상은 크게 향상되고 있으며 “독자들이 문학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능동적 생산자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변화는 문학을 둘러싼 제반 질서, 즉 생산-유통-소비의 패턴을 바꾸고 있다.”고 보았다. 독자는 능동적 생산자의 역할뿐 아니라 배급자의 역할, 문학 평론가의 역할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던 쌍방향 소통은 이제 독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작가와 독자가 바로 연결되는 구조에서 작가는 독자의 입맛에 맞춘 작품을 쓸 수밖에 없고, 이는 문학의 사유와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승하 교수는 우리 시의 전망을 다소 비관적으로 바라보았다. 독자가 지배적으로 위치하게 된 구조적 변화에 더해 미당문학상의 중단, 고은 사태, 신춘문예 당선 시의 잇따른 취소 사태 등 악재가 더해졌고,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예지에서 담론을 이끌지 못하고 평론이 제 힘을 잃어버린 것 또한 문제점이다. 문예지에서 청탁되는 글의 95%는 해설과 서평 유의 글이며, 문제를 제기할 자리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승하 교수는 “문예지와 문학평론가들은 현재의 쟁점을 논하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태를 점검하고, 지금 이 시대에 좋은 시가 어떤 시인지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기를 바란다.”며 한국 시의 문제는 독자만을 탓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시에는 사회비판의 기능, 미학의 기능, 애매성을 탐구하는 분석의 기능, 모국어에 대한 확인과 사랑 등의 기능이 있으므로 “우리 시가 절망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바라보고 있다고 전망했다.
이승하 교수는 “한국 현대 시문학사”를 국어국문과 학생이나 문예창작과 학생뿐 아니라 지난 110년 동안의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학생 또한 유의미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문학사가 필연적으로 한국의 근대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각 연대의 앞머리는 문학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 이야기가 장식하고 있기 떄문이다. 이밖에도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나 학원의 국어 혹은 논술 강사선생님한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 현대 시문학사”를 읽어보길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