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진하게 주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이제 조금 더위가 꺾이고 있는 것 같죠 여전히 한낮에는 덥지만 그래도 저녁에 조금 잘 만한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 이제 점점 계절이 바뀌고 있구나를 느끼게 되는데요. 여러분 긴 여름 동안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난 목요일 새벽에 현장과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신 성도님들은 아마 제가 비상입니다고 선포했던 광고를 들으셨을 겁니다. 못 들으신 분들이 계셔서 제가 광고를 다시 드리자면 저희 교회에 기도 제목이 생겼습니다.
새벽 예배에 타교회 성도님 두 분이 개척하면서부터 거의 한 6년 정도 같이 새벽 예배를 드렸던 두 권사님들이 이사를 가시면서 이제 아쉽게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고요.
또 새벽에 제일 먼저 교회에 와서 불을 밝히고 음향을 켰던 우리 여기자 권사님이 지난주에 코로나 확진이 되셔서 예배를 참여하지 못하셨습니다.
또 주중에 모든 예배를 빠짐없이 참여하고 주중 전도까지 참여하시는 우리 임미자 권사님은 엘리베이터가 지금 수리 중이어가지고 무려 11층에서 매일 새벽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오르락내리락 또 수요일 저녁에 전도하러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하시는 중에 무릎에 염증이 생겨서 못 나오실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이렇게 신호등에 확 빨간불이 들어오는 느낌이 드니까 이거는 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목요일 새벽에 비상입니다.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 목사님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새벽 예배에 참여하는 한 명의 성도는 그 교회에 10명의 영혼을 담당한다. 저는 그래서 우리 교회 성도님들 새벽 예배 드리는 인원이 최대로 모이면 한 9명 정도까지 모였거든요. 그래서 제가 우리 교회는 한 90명 정도의 영혼까지는 품을 수 있는 교회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스르륵 지금 몇 분이 확 빠져버리니까 위기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벌써 오늘이 몇 월입니까? 몇 월인지 모르시나요? 네 9월입니다. 벌써 우리 다음 달이면 7주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네요. 그리고 임직식이 이제 50여 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상황도 우리에게는 기도해야 할 때이지만 교회적인 상황도 기도해야 될 때잖아요. 지난 주 중에 또 우리 이은주 집사님 병원에 이렇게 혼자 가서 진료 보고 이러시는데 중간에 통증이 얼마나 심하셨는지 전화가 오셨어요.
너무 통증이 심해서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정말 지금 고군분투하면서 병마와 싸우고 계시는 우리 이윤주 집사님, 또 우리 매일 주 두 번씩 투석을 받고 있는 오람 청년, 또 우리 홍선희 성도님 정말 우리 성도님들 위해서 기도해야 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이 시기에 더욱더 최선을 다해서 예배에 참여하고 더욱더 적극적으로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네 여러분 이렇게 그런데요. 또 저는 한편으로 우리 성도님들을 이렇게 뒤돌아보면 정말 피곤하고 지친 요즘같이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이러한 날씨 가운데서도 불구하고 새벽을 깨우는 우리 교회의 동력자들이 계십니다. 현장에서 온라인으로 저는 그래서 우리 하늘소망교회에 소망이 있는 줄 믿습니다.
또한 주중에 수요일 저녁 기도에는 어쩌면 주중이기 때문에 가장 피곤한 시간이고 또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기 때문에 참 힘든 시간일 텐데 그 시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와서 동력자들을 위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뜨겁게 부르짖는 동력자들이 있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의 역사가 우리 교회 가운데 있을 줄 믿습니다.
더dn나 추우나 매주 금요일이 되면 교회 주변에 노방전도를 나가서 물티슈를 나누고 또 계속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작은 전도팀 동력자들이 있기에 삶 가운데 여러분들 주변에 찾는 이들을 향해서 계속적으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힘쓰는 동력자들이 있기에 하늘 소망 공동체에 하나님께서 귀한 영혼 보내주실 것을 믿습니다.
매주일 한 주 동안 누적된 피로로 인해서 참 피곤할 텐데 늦은 잠을 자고 싶을 텐데 이른 아침부터 교회에 나와서 주일 학교와 청소년부를 담당하는 교사들, 또 차량으로 봉사해 주는 귀한 분들이 계시기에 하늘소망교회에 다음 세대의 소망이 있는 줄 믿습니다.
좁디 좁은 주방에서 구슬땀을 흘려가면서 동력자들의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는 귀한 동력자들이 있기에 하늘 소망교회에 더욱더 깊은 교제가 이루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토요일 날 소수의 인원이 교회에 나와서 교회 우리가 주일날 드리는 예배가 쾌적하게 하기 위해서 수고로이 청소하고 정리하는 동력자들, 또 화분을 관리하는 동력자들, 또 토요일날 모여서 찬양을 연습하고 주일 아침에 또 연습으로 나아가는 찬양팀이 있기에 우리 하늘소망교회에 예배가 활성화되고 더욱더 건강하게 세워질 줄 믿습니다.
저는 이 하나하나 이렇게 묵상하면서 너무 우리 동력자들 한 분 한 분이 귀하고 감사하는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또 자랑스러운 일들이 저 안에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보실 때는 어떨까요? 이 작은 교회 안에서 여러분들이 고군분투하면서 헌신하고 섬기는 그 작은 몸부림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요 여러분들의 지금 이런 행동을 세상 사람들은 이해를 할 수 있을까요? 아니 뭘 저렇게까지 교회를 나가지 아니 일요일날 교회 한 번 나가면 되지 뭘 새 새벽에도 수요일에도 또 뭐 청소한다고 토요일에도 아니 교회 가면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저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아니 피곤할 텐데 좀 푹 쉬지 경제적으로 어려울 텐데 11조쯤 안 내면 더 어렵지 않을까 무슨 모임과 예배는 그렇게도 많은지 그렇게도 할 일이 없어서 저렇게 모임에 참여하는가?
어쩌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고 그들이 그렇게 판단할지 모릅니다. 근데 여러분 오늘 성경에서는 그들이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성도가 예배에 목숨을 걸고 힘들수록 기도의 자리를 찾고 더욱더 모이기에 힘쓰는 그 모든 행위들, 헌신하고 봉사하고 낮은 모습으로 나아가는 그 모습을 세상은 알지 못합니다.
왜요?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신 분들인 줄 믿습니다.
사도 요한이 뭐라고 말합니까?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는가?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베푸셨습니까? 세상에 정말 어떠한 사랑과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누가 나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 바칠까요? 세상에는요 선한 사람을 위해서 또는 아주 위대한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내거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죄인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사람은 단 한 경우도 없습니다. 그런데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으셨다고요. 이것은 놀라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지금 그 사랑을 우리가 받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합니다.
근데 여기서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사랑을 이 놀라운 사랑을 받은 결과가 무엇이냐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번 같이 선포해 볼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를 향해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옆에 분들 보면서 당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멘 거기다 좀 더 첨부하자면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이 짤막한 문장 안에 우리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데요. 수많은 내용들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오늘은 짧은 두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먼저 첫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물려받았습니다. 요한일서 3장 9절을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3장 9절입니다. 시작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아멘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는요 하나님께로부터 낳습니다. 하나님의 씨를 받은 자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DNA를 물려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모든 자식들은 부모의 DNA를 물려받아요. 여러분들 자녀들 볼 때 좀 신기할 때 많지 않나요? 저는 가끔 깜짝깜짝 놀랍니다. 우리 애들을 이렇게 보면요. 되게 감사하게도 이쁜 것만 주신 것 같아요.
근데 그것도 닮았습니다. 보면 자세히 보면 닮았어요. 심지어 발가락의 모양도 닮았더라고요. 또 잠자는 잠자는 모습도 닮았어 식성도 닮았습니다. 여러분들 자녀들도 그렇지 않나요? 심지어 저의 연약한 부분을 닮아서 때로는 가슴 아플 때도 있습니다.
그렇죠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DNA를 물려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우리가 하나님의 DNA를 물려받았을까요? 아담과 하야를 만드실 때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DNA를 우리에게 집어넣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과 하를 만드시고 난 다음에 말씀하신 것은 보시기에 심이 좋았더라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아담과 하야를 만들어놓고 하나님도 만족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 있던 하나님의 형상이 오염되고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그 기능이 상실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안에 있는 DNA가 다시금 회복하게 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히 회복되는 은혜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입니다. 물론 나 자신을 보면 여전히 욕심이 내 안에는 가득하고 내 생각, 내 뜻, 내 주장, 내 자아가 내 정욕이 여전히 살아있는 나의 모습을 볼 때 나는 아직 멀었는데, 내 안에 이게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수 없는데라고 느낄 때가 있죠.
하지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형상은 선하십니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선하십니다. 성령께서 맺어가고 있는 성령의 열매는요. 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안에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죄된 것, 나쁜 것들이 물론 여전히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DNA 선한 것이 분명히 내 안에 숨겨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요.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DNA를 가지고 있는 거룩한 성전이므로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 자신을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근데 여러분 이것도요. 하나님이 마음 아파하시는 깨어짐의 한 증상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나는 왜 이렇게 가진 것이 없지 나는 왜 이렇게 머리가 나쁠까? 나는 왜 이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없고, 나는 이 땅에서 루저 같은 존재야. 쓸모없는 인간이야. 자기를 학대하고 비난하고 그리고 비하하는 것.
여러분 이거는요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는 어떤 형상이 있다고요?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자존감을 다시금 갖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있는 이 하나님의 DNA가 하나님의 형상이 앞으로 우리를 어떠한 미래의 모습으로 이루게 하실까 그 부분이 이어지는 2절과 3절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 요한일서 3장 2절과 3절 읽겠습니다. 시작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아멘 여기서 앞쪽에 있는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이라는 이 말씀이 무슨 말이냐면 우리 안에 있는 DNA 하나님의 형상이 점점 자라고 성장하여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자가 된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되는 그날에는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서게 될 것이라고 하는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듣고 우리는 더욱더 소망을 품고 또 기대를 가지길 원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실수가 있고 못남이 있어서 힘들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DNA가 언젠가 내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주님과 같이 깨끗한 모습으로 거룩한 모습으로 온전한 모습으로 서게 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이 땅에 있는 동안 내가 넘어질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잡고 일어나서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하고 성숙한 길을 택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고 하는 의미는 하나님의 권세를 물려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누구라고요? 하나님의 자녀라고요?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뭐가 주어졌다고요? 권세가 주어졌답니다.
권세는 특별한 능력, 특별한 자격을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특권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대통령의 집무실에 들어가려면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신분도 조회해야 되고요. 또 소지품도 일일이 다 검사를 하고 나서 그러고 나서야 대통령의 집무실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집무실에 아무 때나 들락날락할 수 있었던 존재들이 있습니다. 바로 대통령의 자녀들입니다. 예전 미국 대통령들 자녀들 이었던 사람들이 집무실에 들락날락했던 사진들이 막 이렇게 보이더라고요. 자녀들은 프리패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요? 다른 조건이 없어요 그냥 대통령의 자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그게 바로 권세예요.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이 신부는요. 그냥 우리의 마음을 만족하는 정도의 그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권세입니다. 언제든지 원하기만 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1장 19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수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이 담력이 바로 권세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전에는 성서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던 거 아시잖아요. 아무나 들어갔다가는 죽임을 당합니다. 심지어 제사장도 죄된 모습으로 들어갔다가는 바로 꼬꾸라지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자녀 되어서 언제든지 어느 때든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이 천지만물을 주관하는 분을 우리가 마음대로 만날 수 있는데 그분께 마음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게 얼마나 큰 권세입니까? 또한 이 권세는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또 가졌다고도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9절과 10절 말씀을 우리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빌립보서 2장 9절에서 10절입니다. 시작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여기서 말하는 권세가 어떤 권세냐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굴복하는 권세 예수 이름 안에 이 놀라운 능력과 권세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근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한 말들을 한번 기억해 보십시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또 마가복음 16장 17절에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예수님의 권세 아래 이러한 능력이 있음을 기억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악한 사단은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우리가 죄의 종노릇 할 수 있도록 낙심하고 절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어두운 가운데 살아가도록 우리를 계속 몰아갑니다. 끊임없이 거짓된 마음들, 거짓된 생각들을 우리에게 집어넣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우리를 만듭니다.
여러분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다 내가 하는 생각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물론 나의 생각들이 있지만 때로는 성령이 주시는 생각이 있고 때로는 사단이 주는 생각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기를 비하하고 자기를 학대하는 마음은 누가 주는 생각일까요? 악한 사단이 주는 생각입니다. 나는 실패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마음을 누가 줄까요? 악한 사단이 주는 겁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니 같은 게 무슨 하나님의 자녀냐고, 니가 무슨 성도냐고, 니가 무슨 교회를 다니냐고 여러분들의 마음을 무너뜨릴지 모릅니다.
근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 덕분임을 우리는 기억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뭐가 잘나가지고 뭘 대단한 걸 하나님께 드려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아니요.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것 없지 오히려 연약한 모습 그대로 있을 뿐인데 그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이번에 임직 받는 여성분들도 임직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여러 가지 부담감을 이야기했어요. 내가 아직 신앙의 모습들이 연약해서 제가 아직 뭔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돼서 또 때로는 본이 되지 못해서 이런 것들도 이유를 대는 분들도 계셨고, 뭔가 그리고 임직을 받고 나면 그 이후의 행동들에 대한 부담감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근데 여러분 여러분들이 임직 받는 것은요 여러분들이 헌신을 많이 해서 여러분들이 대단한 신앙을 가져서 여러분들이 앞으로 어떤 대단한 일들을 하라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기에 우리 공동체를 사랑하시기에 임직을 허락하셨고, 여러분들을 통해서 이제 하나님이 이루어 가실 거라고 믿습니다.
다만 여러분들도 마음가짐을 이제 이곳에 집중하면서 하나님이 왜 이것을 허락하셨을까에 대하여 묻고 묻고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여야 됩니다. 임직을 받든지 안 받든지 전혀 상관없이 그냥 여러분들 그대로라면 그거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 때와 하나님의 자녀일 때의 모습이 똑같다. 그것도 문제가 심각한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부터 주일 오후 예배에 임직 준비 7주년 우리 그리고 우리 리셋을 위한 준비를 오후 시간에 집중적으로 할 겁니다. 오전 예배드린 분들은 저는 되도록 다 담아서 오후 예배를 꼭 참여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임직자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우리가 이 시간을 통해서 리셋해야 됩니다. 2024년 하늘소망교회가 리셋을 선포했는데 이제 한 개 한 개 한번 점검해 보자고요. 그리고 한번 리셋해봅시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기대하고 소망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사단은요. 끊임없이 이렇게 말할 겁니다.
야 능력이 있어야 돼. 야 니가 그래도 뭔가를 해야지 그래 니가 뭔가를 그래도 좀 본이 돼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거 아니야
근데 여러분 사단이 바로 예수님을 시험할 때 이런 방법을 썼던 겁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돌을 떡으로 만들 줄 알아야 니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겁니다. 높은 데서 뛰어내려서 니가 안 다쳐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험하는 거예요.
사단은요. 똑같은 모습으로 여러분들을 시험할 겁니다.
야 니가 무슨 그런 마음 상태로 니가 지금 아직도 그렇게 연약한 모습으로 무슨 니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그렇게 니가 정체성을 이야기하느냐 매일 낙심하고 실패하는 니가 무슨 하나님의 자녀냐
라고 우리의 마음에 시험을 할 겁니다.
근데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정체성에 대한 흔들림이 여러분들 안에 들어온다면 그때 여러분들 예수님의 권세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갈지어다.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우리 한번 따라해볼까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단아 물러갈지어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다.
아멘 여러분 오늘 요한일서를 기록한 사람은 사도 요한입니다. 우리가 사도 요한을 별명을 지어준 별명이 있는데요. 사랑의 사도라고 하는 별명이 있습니다. 요한일서를 보면 온통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말씀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이 이 요한에게는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 사도 요한이 처음부터 사랑의 사도였을까요? 우리가 성경을 잘 알고 있지만 요한의 별명이 원래의 별명은 우레의 아들, 천둥번개의 아들이었습니다. 요한은 갈릴리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였는데 별명처럼 성격이 불같고 거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한 사마리아 사람들을 보고 제자였던 이 요한이 뭐라고 했습니까?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저들을 싹 쓸어버리길 원하십니까?
얼마나 무시무시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까? 근데 그랬던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렇게 찬양하는 그러한 사도가 될 수 있었을까요?
요한복음에 보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데요. 요한복음 13장 23절에 보면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또 21장 7절 상반절을 보면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여기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그 제자 이게 누구일까요?
요한입니다.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자기를 향해서 뭐라고 지칭하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자라고 반복해서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이런 겁니다. 요한 사도님이라고 누군가가 부르면 예 저요. 예수님이 사랑 사랑하는 제자 요한입니다. 요한이 그렇게 답하고 있는 거예요. 요한에게 정체성은 나는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라고 하는 정체성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군대에 가면 상관이 툭 건들기만 해도 뭘 해야 되는지 아십니까? 여자분들은 잘 모르시죠? 남자분들은 잘 아십니다. 툭 건들면 이 노효철 이렇게 관등성명을 대야 됩니다. 진짜 얼마나 장난치는지 몰라요. 병장들이 그냥 쑥 건들고 쑥 건들고 막 소리를 크게 안 지르고 정신을 차리 정신 차릴 때까지 계속 건드려 대거든요.
근데 여러분 우리도 마치 요한이 자기가 관능 성명을 내듯이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라고 하는 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니까 그렇게 불같았던 성향의 이 요한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다라는 이 고백을 통해서 우리의 아들에서 사랑의 사도로 변화되게 된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번 한 주간은 좀 거울 앞에 많이 쓰기를 바랍니다. 거울 앞에서 자기 얼굴을 이렇게 쳐다보면서 너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다.
한번 그거 한번 해볼까요? 여러분 거울 보고 이거 말하는 거 이게 굉장히 나에게 많이 영향이 됩니다. 저도 예전에 많이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그럴 때요. 거울 앞에서 설교도 하고 그랬어요. 네 거울 앞에서 할 수 있다 해보자 할렐루야를 외칠 때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근데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굉장히 나에게 영향력을 줍니다. 한번 이번 주는요. 아침 저녁으로 거울 앞에 서서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하나님의 아들 노효철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딸 누구누구입니다. 여러분 한번 선포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 이 믿음으로 여러분들이 선포할 때마다 그 말씀이 여러분들의 삶에 녹아져서 하나님의 정말 사랑받는 자녀로서 삶을 온전히 살아가 이 땅 가운데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나누는 통로가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을 우리가 함께 찬양할 텐데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권세와 특권을 누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이 시대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그러한 통로가 되길 소망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