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묵상:
십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1~4계명)과
사람에 대한 계명(5~10계명)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첫 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고,
사람에 대한 첫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호세아서에 나타난 북이스라엘은
이 두 가지 첫 계명들을 모두 범하고 말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우상들을 섬겼고,
이스라엘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인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난 시간까지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의 근본 죄악이었다.
그런데, 이런 이스라엘을 두고 하나님께서 보이신 반응이 놀랍다.
8절,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give you up)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hand you over)
무슨 말인가?
이렇게 범죄한 이스라엘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절대 포기할 수 없고,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호세아서는 절대 어두운 책이 아니다.
타락하고 범죄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말씀을 읽어보자.
8절,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아드마, 스보임이 무엇일까?
신 29:23,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에는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격분으로 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물을 것이요"
그러니까,
아드마와 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의 곁에 있던 성듭들로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으로 그 성들을 멸하실 때, 함께 멸하신 성읍이었던 것이다.
아마 아드마와 스보임도 소돔과 고모라와 똑같은 죄를 지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
아드마와 스보임같이
북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 후면, 비록 북이스라엘 백성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할 것이지만,
아드마와 스보임처럼 완전히 지구 상에서 사라지는 멸망이 아니고, 그들에게 회복이 있을 것음을 예언하신 말씀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실까?
8절,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절,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한 마디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신 마음때문에
진노를 모두 쏟아내지 아니하시겠다는 말씀인 것이다.
아마도 하박국 선지자는
호세아서에 나오는 이 말씀을 가지고 남유다를 위해 기도했던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에 활동했던 선지자였고,
하박국은 남유다가 멸망하기 직전에 활동했던 선지자였다.
하박국의 기도를 들어보자.
합 3:1~2,
"시기오놋에 맟준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합 3:2)
"나의 긍휼이 불붙듯 하여 내가 나의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리라" (호 11:8~9)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호세아가
하나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다.
9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고,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희망이 있었고,
지금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에 따라 우리에게 진노하시면 어떻게 될까?
우리 중에 한 명도 생존해 있지 못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비참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고,
그 광경은 차마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다윗은 이런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던 것이다.
시 103:8~10,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생존해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우리가 잘나서 이렇게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 가지를 꼭 기억해야 한다.
언젠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끝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 날에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과 특별 은총이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 날에는 하나님께서 긍휼을 배제하시고,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그대로 갚으실 것이다.
그 날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 모두의 고민이 되어야 한다.
우리 자신이 홀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앞에 선다면, 우리는 1초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잔과 심판의 잔을 마시신 분께로 달려가야 한다.
그 분만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이 누구신가?
우리의 소망 예수 그리스도시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긍휼과 은혜를 입은 자로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옵시고,
저희도 저희에게 잘못한 사람들에게 그러한 긍휼과 은혜를 베푸는 자들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저희의 소망이 되시고 저희의 피난처와 견고한 산성이 되신 주님을 의지합니다. 저희의 삶을 인도해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