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잘 믿는 섬김의 삶 막 10:42~45
사람은 각기 나름대로 자기가 하는 일에 최고가 되기를 원한다. 공부하는 학생은 1등을 원하고, 1등인 학생들은 수능 수석을 원하고, 스포츠 선수들은 올림픽 금메달을 원하고, 금메달 선수는 세계신기록 갱신을 원하고, 프로선수들은 최고의 명예인 명예의 전당을 원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이루어야 할 최고봉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과 정반대로 최고로 높은 정상을 정복하는 일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자아가 죽고, 겸손히 낮아지는 것이다.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머리로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가슴으로는 하나님을 삶 속에서 열심히 믿는 균형을 이룬 믿음이다. 성경말씀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아는 말씀을 얼마나 믿고 삶속에서 실천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아는 지식이 하나가 되라고 권고하였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헤르만 헷세의 ‘동방순례’라는 소설이 있다. 순례단을 모집해서 순례길을 떠나는데,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찾아, 어떤 사람들은 돈을 벌 목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찾아 동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순례단 중에 레오(Leo)라는 하인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이 먹고 자고 걷는 동안 언제나 묵묵히 섬기는 일에 열중하였다. 순례자들이 힘들어 할 때 노래를 불러주면서 지친 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레오가 일행 중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가 사라지자 순례자들은 그가 해를 당한 것이 아닌가 걱정하며 찾아 나섰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일어났다. 여행길은 기쁘지 않았고 서로 다투기 시작하여 마침내 순례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레오가 순례단을 이끈 진정한 리더였음을 깨닫게 된다. 먼 후일 그들이 레오를 만났는데 그가 하인이 아니라 그들을 파송한 교단의 지도자였음을 알게 된다. 레오의 리더십이 바로 섬김의 리더십,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다. 헷세는 이 소설에서 예수의 리더십을 그려내고자 했다. 역사는 섬김의 기적을 만들어갈 리더를 찾는다. 섬김이 진정한 리더를 만든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교훈이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의 자리를 달라고 청탁을 했을 때 다른 제자들이 분노했다. 이에 예수님께서 섬김을 받으려 하지 말고 남을 섬기라고 하시며, 자신이 세상에 온 목적도 섬김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섬기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영광의 길이 아니라 섬김의 길 위에 계신다. 제자들은 영광의 길을 걸으려 예루살렘으로 향하였으나 예수님은 종의 길을 걸으려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 세 번씩이나 자신이 겪을 고난과 죽음에 대해 예고하셨지만 제자들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영적 무지에 있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세상적 가치관을 갖고 예수님을 바란 본 것이다. 이 모습이 혹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신앙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가야 한다. 자리를 탐내지 말고 섬기려고 애써야 한다. 예수님의 섬김이 세상을 구원하려는 것이듯 이웃을 섬기는 것은 이웃에게 생명을 주고,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세상을 구원의 길, 생명의 길로 이끌기 위해 세상을 섬기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가 큰자라고 말씀한다.
‘미스터 3000’(2004년 작)이라는 영화를 보면 왕자병에 걸린 이기적 야구 스타 스탠 로스가 등장한다. 인격이 실력을 못 따라가는 스포츠 스타였다. 3천 안타를 친 날 기자회견을 연 스탠은 이제 다 이루었으니 야구를 그만 두겠다고 선언한다. 구단과 감독, 동료들이 다 놀랐다. 평소에도 팀에는 관심 없었고 자기 목표에만 관심을 보인 이기적인 스탠은 미스터 3000 스포츠빠와 쇼핑센터, 중국요리집을 연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러나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투표에서는 계속해서 떨어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스탠 로스의 안타를 검토해보니 시간제한 경기를 2번으로 계산한 것이 있어서 실제로는 안타가 2,997개였던 것이다. 그래서 스탠은 나이 49살에 다시 메이저 리그에 복귀해 남은 세 개의 안타를 채우려고 했고 구단에서도 스탠을 통해 관중 동원을 하려고 허락한다. 하지만 성적이나 관계 등 모든 면에서 쉽지 않았다. 자기처럼 이기적인 선수들을 보고 스탠은 자신의 철없던 모습을 회개한다. 그리고는 감독에게 사과하면서 팀에 기여할 방법을 찾았다. 동료들에게 안타를 잘 치는 방법도 알려주고 슬라이딩으로 1루에 들어가 안타도 만들어내면서 파이팅을 유도하고 팀의 승리에 기여한다. 그래서 복귀 후 58타수 2안타를 만들어낸다. 이제 한 게임만 남겨놓고 있었고 그 게임에서 팀이 이겨야 3위를 하고 스탠이 안타를 쳐야 3천 안타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9회 말, 2, 3루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스탠이 안타를 하나 쳐서 한 점을 불러들이면 게임도 이기고 3천 안타를 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투수는 할아버지 선수로 복귀한 스탠에게 3천 안타를 헌납하고 싶지 않았다. 1루도 비어 있으니 볼을 계속 던진다. 쓰리 볼, 노 스트라이크. 스탠은 4구째, 안타를 칠 욕심을 버리고 희생번트를 댄다. 그리고 1루에서 아웃 되었지만 3루 주자가 홈인하여 팀이 승리했다. 그래서 스탠의 3천 안타는 물거품이 되었다. 하지만 스탠의 모습을 본 동료들과 관중들이 스탠을 연호한다. 스탠, 스탠, 스탠. “We love Stan!"이라는 응원 문구를 보고 눈물을 글썽거리는 스탠은 드디어 성공이 무언인가 깨달은 것이다.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팀 속에서 희생하고 섬기는 일이 함께 하는 진정한 성공임을, 진정한 승리임을 깨달았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막 10:43)
세상은 섬김 받는 사람이 큰 자라고 유혹을 한다. 은밀하게 일하는 사람을 오히려 바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지배당하는 것보다 지배하고 사는 삶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부추기기까지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역설적으로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는 자보다 훨씬 더 큰 자라고 말씀하신다.
신앙의 가치는 지배와 군림이 아닌 섬김에 있다. 스스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제자들의 지배의식을 섬김으로 바꾸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노라.”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섬김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섬기는 삶이야말로 세상에서 큰 자가 되는 삶이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가 으뜸이 된다고 말씀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4)
세속의 문화는 우리가 사는 동안 무엇을 하였느냐에 초점을 두고 성공과 실패를 판단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무엇을 했느냐 보다는 무엇이 되었느냐로 판단하실 것이라고 가르친다. 즉 행함(doing)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being)의 문제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으로 섬김의 본을 보이셨다. 예수님은 섬김을 실천하지 않고 제자가 되는 법은 없고, 으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예수의 마음은 군림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곳에 있다. 예수님의 마음은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에 있다. 세상에서 으뜸이 되기를 원하는가? 자신을 낮추어 섬기는 예수님을 본받으시기 바란다. 으뜸이 되는 유일한 길은 섬김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섬길수록 예수님을 닮아가게 된다. 섬김을 받으려면 받을수록 예수님의 형상과는 멀어지게 될 것이다. 섬김이 없이는 누구도 으뜸이 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섬김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섬김의 극치는 대속물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여 구원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주고자 한 최고의 선물은 구원이었다.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시며 섬긴 것이었다. 영혼을 구원하려면 섬김의 자리로 내려가야 한다. 먼저 손해보고 먼저 희생하고 먼저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섬김을 시작할 때 비로소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좋은 글이 있어 소개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떤 차를 모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태워 주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사는 집의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당신이 어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남에게 무엇을 베푸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친구가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친구로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당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낸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얼마나 좋은 동네에 사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이웃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것이다.”
은퇴하고 남한산성에 거하시던 한경직목사에게 후배 목사들이 새해 인사차 찾아갔다. 그에게 절을 올린 후배들이 말했다. “존경하는 한목사님, 저희들을 위해서 한 말씀해주시지요.” 그들의 요청에 한 목사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잠시 기도하시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
예수님을 잘 믿고 있는가? 예수님처럼 섬기는 모습의 삶을 살고 있는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잘 믿는 섬김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란다. 섬기는 자가 되어 가장 큰 자로, 으뜸인 자로 세워져 다른 이를 구원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