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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16일. 아침 신문에 위의 그림에 보이는 기사가 일제히 실렸습니다.
고대 국가의 천문 기록을 역으로 추적 해보니,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의 영토가 중국에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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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등 삼국 '중국'에 있었다" 삼국시대의 일식 등 천체 관측 기록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고구려는 물론 백제와 신라도 중국 대륙에 있었다는 주장이 한 천문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우주론)는 15일 서울대 호암생활관에서 열린 한국 천문학회 춘계 학술대회에 낸 논문 '삼국시대 천문기록의 독자관측 사실증명과 삼국위치의 재조명'을 통해 "천체역학적인 계산 결과 삼국시대 일식의 관측지점은 백제의 경우 중국 동부의 발해만 부근, 고구려는 그 북방, 신라는 건국 초기는 양자강 유역이다가 나중에 한반도로 옮아온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중국 동부가 한국 고대국가의 영역이라는 주장은 일부 재야사학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모두 서지학적 근거를 토대로 한 것으로, 자연과학적 증저를 바탕으로 한 이번 주장은 학계에 새로운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박 교수는 삼국의 고대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67번의 일식현상을 추적했다. 컴퓨터로 계산한 당시 동아시아 전역의 일식과 대조해 이 가운데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거나 관측이 잘못된 13번의 일식을 뺀 54번의 일식을 바탕으로 최적 관측지점을 찾아나갔다. 박 교수의 아이디어는 이렇다. 지구상에 달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식은 띠 모양의 일부 지역에서만 관측이 가능하다. 일식마다 진행방향과 관측 가능지역이 다르므로 기록된 모든 일식을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후보지를 좁혀나갈 수 있다. 또 해가 많이 가리는 곳일수록 관측이 쉽기 때문에 그곳이 관측지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식으로 찾아낸 일식 관측지점은 놀랍게도 모두 중국이었다. 24회의 실제 일식을 기록한 신라는 201년까지 중국 양자강 유역에서 일식을 관측하다가 그 뒤 5백31년 동안 아무런 관측기록이 없다가 787년부터 관측지점이 한반도로 옮아 오는 특이한 양상을 나타냈다. 백제는 19회의 일식을 고르게 관측했는데 관측 지점은 발해만 근처였다. 고구려는 일식 관측횟수가 적어 관측지점이 불확실하나 백제보다 북쪽일 것으로 추정됐다. 박 교수는 고려시대에 관측된 99번의 일식에도 똑같은 방법을 적용한 결과 한반도 중부지방이 관측지점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이 결과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는 삼국이 중국의 관측기록을 베꼈을 가능성이고, 둘째는 백제와 신라가 어떤 이유에서건 중국의 일식을 관측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첫째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신라의 경우 관측기록이 훨씬 많은 중국의 기록에서 26개를 임의로 빌려왔을 때, 결과적으로 중국의 관측지점인 서안이나 낙양이 아닌 양자강으로 나타날 확률을 0.24%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밖에 중국에는 없고 삼국만이 기록한 천체 현상의 비율이 ▲금성이 낮에 보임 ▲유성과 운석의 낙하 80% ▲달이 행성을 가림 70% 등에 이르는 사실도 일식의 독자 관측을 뒷받침해준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두번째 가능성에 대해 박 교수는 "역사학자에 맡기겠다"며 언급을 피했다. 그는 "자연현상에 대한 기록은 변조의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귀중한 사료가 된다"고 말했다. 재야 역사학자들과 일부 역사학자들은 중국의 동부에 한때 백제와 신라가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는 '한민족 대륙 경영설'을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서울대 노태돈 교수(한국 고대사)는 "백제가 4세기 이후 중국 요서지방에 백제군을 설치했다는 주장이 일부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을 뿐 백제와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 설명은 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 대륙에 있었느냐?
이 논쟁은 재야 사학계와 주류 사학계가 오랜 시간 동안 논쟁을 벌이고 있는 사안입니다.
조금 더 시계 바늘을 거꾸로 되돌리면 고조선(古朝鮮)이 한반도에 있었느냐 아니면 중국 대륙에 있었느냐 하는 문제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0년 대 초반 초등학교 ‘사회과부도’에는 중국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하고 세운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국사 교과서에서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기술은 사라지고 맙니다.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논쟁이 매우 커졌기 때문이죠.
고조선이 중국에 있었다. 또는 고조선은 한반도에 있었다고 명확히 기술하기 보다는 어떤 쪽 손도 들어주지 않는 외면 전략을 사용한 것이지요.
고조선이 중국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우리 역사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축소, 왜곡됐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사의 자부심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이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역사는 증거를 바탕으로 밝혀 나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역사적 유물 등 현재 발견되는 증거로 볼 때 한반도에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북한 역사학계는 고조선이 중국 대륙, 엄밀히 말하면 요동반도에 있었다는 학설을 채택했었습니다. 그리고 남쪽의 역사학계는 한반도에 있었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뤘구요.
그런데 갑자기 북한의 역사학계 입장이 180도 바뀝니다. 평양에서 단군릉이 발견됐다고 발표하고 나선 것이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고대사의 무대가 중국이었느냐, 아니면 한반도였느냐를 놓고 많은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진실을 밝혀 낼 수는 있는 것일까요?
첫댓글 초고대사를 제외한 현 인류사(아담과 이브의 창세기)의 가장 오래된 인류의 유물은 대부분 한반도에서 출토되었읍니다.
대표적인것이 그 기원을 알수없을 정도의 초기 고인돌부터 시작해서 세계최대의 고인돌로 명명된 팽매고인돌에 이르기까지 광할한 지역에 분포된 화순지역의 고인돌을 보면 한반도가 인류문명의 시원이 맞고요.("한국 지석묘(고인돌) 유적 종합조사·연구"에 의하면, 한반도에 있는 고인돌의 수는 북한 지역에 있는 3,160기를 포함해 모두 29,510기에 달한다. 이 수는 약 5만기로 추정되는 전세계 고인돌의 절반을 넘는 숫자다)
그 이후 만주지역과 대륙으로 진출. 수메르문명과 이집트문명 그리고 아메리카대륙으로...
묘하고 알수 없는 우리의 역사~~되놈과 왜놈과 매국노들에 의해 철저히 사료가
소실,매장,도난,날조,위조되었으니.......
삭제된 댓글 입니다.
훌륭하신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관련된 책이 출판 된것으로 아는데...제목이..생각이 안나네여..
중국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라는 설도 있던데...
객관적 사료만 찾으면...
우리의 역사는 그냥 소설일뿐인거죠,,,
망국과 함께..사라진...모든것을 찾아야 한다는 말인데...
문명의 발상지를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우리 역사의 무대가 결코 한반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싶은 건데..
대륙 역사를 부정하는 부류는 두 종류가 있겠죠..
하나는 왜곡 세력이고..
하나는 현안 문제로 미루고 싶은...
그냥 그렇다는....
후대에 편집했다 하더라도 일식현상을 편집해???어떻게? 생각해볼 문제군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태양빛에 대해 달이 만드는 그림자가 지구를 비추어
태양을 가리는 현상이 일식인데,
당연히 지구의 극히 일부분만 비추게 되고
대낮에 어두컴컴해지는 개기일식은 특히 좁은
특정지역에서만 나타나죠. 그래서 과거의 일식과 앞으로 다가올 일식은 정해져 있고
개기일식(갑자기 어두 컴컴해지는)은 시각과 지역 특정화가 쉽죠.
제기억으로는 개기 일식은 1987년 여름에 겪어본 것 같네요.
좁은 지역과 시간이 특정되기 때문에 추정하는 천문계산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역사기록은 시간이 나와 있기 때문에 지역을 역추정할 수 있겠죠.
주변국과의 폭넓은 분석, DNA추출, 해외문화재 반환이 안되면 대여라도 해서 첫 돌부터
차근 차근 쌓아 올려야 될것 같아요.
한가지에 집중합시다..
박창범 교수 논문이나 저서 등을 한번 보시고 논의를 하셔야 할 듯 합니다. 우리 역사서에 기록돼 있는 천문기록을 중국 역사서에서는 발견하지 못하였고, 그것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학계의 뿌리가 전부 식민사학에서 시작한거라 주류 사학계의 말은 반도사관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자기들은 실증사학라고 하지만 본질은 식민사학이겠죠. 위에 언급된 노태돈 서울대 교수도 이병도-이기백-노태돈 교수로 이어지는 계보더군요. 식민사학에서 말하는 실증사학이란 증거 조작을 덮으려는 술수라고 봅니다. 양키들과 일본이 나눠서 감춰둔 진짜 자료를 찾아야 제대로 된 연구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개인적으로 천문 기록은 별로 조작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컴퓨터 시뮬레이션도 불가능하고 그걸 검증할수 있는 시대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죠.
그렇죠..조작을 아무리 해도 완벽하게 조작할 수는 없거든요..
이곳에서 보면 신라가 반민족 행위를 한 것 처럼 묘사 되는게 아쉽네요. 신라야 말로 일제시대때 역사왜곡을 가장 많이 당한 나라가 아닐까 합니다. 그냥 책에서 배운대로만 해도 의문 투성이가 많다 이것이죠. 당나라 시대의 중국 남방의 신라방이나 신라원 그리고 로마제국과의 무역, 그리고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나침반 이라는 물건. 이것 원래 신라침반 이라고 불리던 물건 입니다. 그리고 중세로 넘어오면서 김(金)나라와 후김 이것을 금이라 발음하는것 또한 말도 안되는 역사 왜곡이죠. 상식적으로 봐도 쇠나라가 되겠습니까? 김씨 나라가 되겠습니까? 김함보의 자손이 세운 왕국인데 당연히 김나라 아니겠습니까?
근데 이또한 발원지인 경상도에 가서 나라를 부흥 시키는게 맞지 않겠습니까? 후김나라는 우리가 아는 전김나라의 발원지에서 나라를 부흥 하는데 말입니다. 또한가지 경주가 서라벌이라는 의견 또한 의심히 많이 갑니다. 서라벌의 전성시대때 세대수가 18만여 호라고 하였습니다. 현대식 가정으로 4인이라 해도 70만정도고 역사책에서 배운대로 라면 100만이라 했습니다. 제가 고양시에 거주한적이 있었는데 고양시 인구가 100만 입니다. 고양시 서울의 1/5정도 되는 면적이죠.경주 저도 가봤지만 별로 안넓습니다. 고양시 아파트 가 세대수의 60%정도 됩니다. 물론 공원도 넓고 길도 넓습니다. 그래서 도시가 넓게 지어진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경주가 100만이 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여겨 집니다. 지금도 100만이 안되는 곳이 과연 1500년전엔 백만이 거주 했을까요? 진짜 웃기는 것은 현재 연변과 길림성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인구수가 1억이 넘습니다. 남북 합쳐도 1억 안되죠. 대륙설이 잡설이고 유물이나 기록이 없다고 아니네 기네 하는데. 만약 한반도가 주 삷의 터전이라면 어떻게 반도보다 이주터인 연변이나 길림성에 조선족이 더많겠습니까? 1억2천만 정도가 중국에 조선족의 수라고 합니다. 우린 또 고려인이라고 하는 중앙아시아에 동포들이 또 존재 합니다. 물론 그들이야 러시아에 의해서 이주 당한 사람들이겠지만 그들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강제 이주 당했는지
모릅니다.대륙설이 맞네 아니네를 말하기 전에 현재의 현상또한 따져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거의 기록이나 유물이 없으니 사실이 아니다라고 하기엔 현재의 조선족과 남북한 인구 조성비가 좀 이상하다 여겨지지 않나요? 또한가지 사람들은 역사와 정치를 별개로 놓자고 하는데 이것 또한 웃기는 일이죠. 역사가 우리 같은 민초들의 삶이 기록 됩니까? 그시대의 정치상황이 기록 됩니까? 현재의 정치 항황, 국제 정치, 전쟁, 경제 등등이 기록되는게 역사죠. 헌데 작금의 정치가 역사가 될진데 어떻게 정치와 역사가 별개 입니까? 대륙 조선사 카페에 저는 회원 가입이 안됩니다. 카페지기와의 견해 차이죠. 그분 훌륭한 분이지만 해군 장교
출신 이고 보수?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치적인 견해차이는 논하지 말자. 그게 카페의 기본입장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그 견해에 반대인게 위에도 열거 했지만 우리 현재의 정치와 경제 국방이 곧 역사에 기록 됩니다. 근데 그것을 어떻게 논의하지 않고 역사를 논하자 할수 있겠습니까? 이곳에 훌륭하신 분들 많으신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학적인현상, 유물론적인 현상외에도 현대에 나타나는 풍습이나 언어, 또는 현상등도 역사적인 증거라 할수 있습니다. 역사는 상상이 아니지만 현상태에서는 어느정도 가설을 세워두고 연구할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라 대륙설이 신빙성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조선이 대륙에 있었네 없었네를 결론지을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있을수도 있었고 없었을수도 있으니까요. 의심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대륙에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고 후대에는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근데 맞네 아니네는 아닌것 같습니다. 왜곡된 역사서를 믿기엔 왜곡세력이 너무나도 불온하고 또 대륙설을 입증하기엔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죠. 하지만 대륙설에 가설을 세우고 연구하는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의심 투성이 나라인데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는 의심이 안가겠습니까? 그냥 상식적으로 봐도 자체 연호가 있는 제후국은 듣보잡이죠. 이곳에서 방위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수도라는것이 비상시를
대비해서 여러곳에 만들어 두는게 그당시의 상식 이었을 것입니다. 고려시대에 개경 남경, 서경 등이 있었죠. 헌데 동경이나 북경은 없습니다. 이것 또한 이상하죠. 분명히 서경(평양), 남경(한성)은 기록이 되어 있는데 말이죠. 그렇담 조선시대에 와서는 왜 수도가 여러개가 존재 하지 않았을 까요? 나라가 바뀌고 새로운 행정구역이 생겨서 그럴까요? 이것 또한 의심해봐야 하는 부분 입니다. 선조가 서쪽으로 피난을 간곳이 의주다 모 이런것은 기록이니 의심을 할수 있고 없고를 논할수 있겠지만 우리는 정말 아주 기초적인 것들 부터 놓치면서 그냥 눈에 보이는 현상 가지고만 논하고 싸우는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