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5:17-22 이율배반[현타] 속에 주님의 뜻이 있다.
요셉은 왜 노예가 되었는가? 아버지 야곱이 편애하여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고, 요셉이 꿈을 자랑함으로써 더욱 미움을 사게 되었다. 그들의 미움은 요셉을 죽일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 계획은 유다의 설득으로 노예시장에 파는 것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요셉이 노예가 된 것은 지나친 자기 자랑과 아버지의 편애와 형들의 미움이 섞여서 나온 결과였다. 우리는 요셉의 불행한 삶을 보면서 몇 가지 안타까움/아쉬움을 표현할 때가 있다. “요셉이 꿈을 형들에게 자랑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 야곱이 요셉만 편애하지 않고 모든 자녀를 골고루 사랑해 주었더라면, 형들이 맏형 르우벤의 제안대로 빈 우물에 두었다가 집으로 데려왔다면,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 죄수가 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우리도 석연치 않을[나쁠] 삶의 결과가 나왔을 때, 가끔 후회 섞인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때 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때 그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당시 그 사람만은 피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쯤 상상 이상의 좋은 자리에 있었을텐데!” -
그러나 요셉의 인생은 노예에서 멈추지 않고 강간미수범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어야 했다. 그의 발은 차꼬[두개의 나무토막 형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여 있었다. 여기서 히브리어로 몸은 혼 즉 정신이다. 정신이 쇠사슬에 매여 있었다는 것은 괴롭고, 고통스럽고,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음을 보여준다. 비록 감옥에서도 교도관장의 인정을 받고 모든 죄수들을 관리하고, 감옥의 제반 사항들을 처리하는 일을 하면서 인정받고 있었지만, 자신의 업무가 끝나면 자신의 발은 차꼬에 차여야 했고, 몸은 쇠사슬에 매여 있어야 했다. 그때마다 현타가 왔다. ‘나는 죄수인데, 교도관도 아닌데 난 뭐하고 있지? 이렇게 한다고 내가 이 감옥에서 빨리 나갈 수 있을까? 교도관장이 나에게 모든 것을 일임해도 역시 나는 죄수이야 그래 나는 죄수였지!’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현실이 정신[혼]적으로 고통스러웠을[혼란을 주었을] 것이다[현타].
더 나아가서 자신이 왜 이 안[감옥]에 들어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느라 여주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 뿐이다. 여주인의 유혹[욕구]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남편의 힘을 이용하여 힘없는 요셉 자신을 감옥으로 넣어버리는 여주인에 대해 한이 맺혔을 것이다[억울함]. 또한 요셉을 총무로 세울 만큼 그토록 아껴 주었던 주인 보디발이 아내의 거짓말에 속아 감옥에 집어 넣은 것에 대해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배신감].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맞구나!’ 술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요셉은 자신의 억울함[한/분통]을 호소한 적이 있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창 40:14,15) - 그 정도로 요셉은 정신적으로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요셉은 은 30에 자기를 팔아먹은 형들과 누명을 씌운 여주인과 어떤 진상규명도 밝히지 않고 아내 말만 듣고 요셉을 감옥으로 보낸 주인 보디발을 미워하고, 저주하고, 복수의 칼을 갈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가 모두를 사랑해 주셨더라면 이런 꼴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버지 야곱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고, 내가 조금만 일찍 철이 들어서 꿈 자랑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땅을 치고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왜 형들은 나를 미워하는 거야? 저들은 참 믿음이 없어!’하며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요셉에게 일어나는 나쁜 상황은 모두 주위 사람들로 인해 생긴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겉으론 그리고 실제로는 요셉의 자랑, 아버지의 편애, 형들의 미움으로 요셉이 노예가 되었고, 여주인의 누명과 주인의 외면으로 죄수가 되었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주도적으로/의도적으로 한 사람을 애굽으로 앞서 보냈셨다(17)고 말씀하셨다. 그 사람이 야곱의 아들들 중 요셉이었고, 형들의 미움으로 요셉이 종으로 팔렸고, 보디발 부부의 누명과 외면으로 죄수가 되어버린 형태였다.
[청중]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일어난 일들이 여러분의 의도[계획]와 상관없이 자꾸 흘러가는가? 현타가 올 것이다. 말씀대로 사는데 여러분의 뜻대로 되지 않는가? 좌절감을 느낄 것이다. 이율배반적인 사건들 앞에서 여러분은 누군가를 미워하고, 저주하고, 복수의 칼을 갈고, 원망하고, 후회하고, 분노할 수 있다. 이율배반적인 삶 앞에서 자괴감이 들 것이다. 이대로 갔다간 인생이 망가질 것만 같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도망가고 싶다. 포기하고 싶다. 죽고 싶다. 이게 정상이다. 그러나 이런 이율배반적인 사건 안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의도적으로 보내셨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좌절이 아니라 기쁨이 생긴다. 고난을 고통으로 해석하지 않고 기쁨으로 해석하고, 기꺼이 이 고난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인생은 내가 설계하는 것 같지만 내가 설계하고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 지금 하고 있는 일들,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등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의해 만났고, 성공했고, 실패했음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현타는 언제까지 진행되는 것일까? 끝은 있는 것일까? 있다. 언제까지인가?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이다(19).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해몽대로 3일 후 복직했다. 그렇다면 관원장은 요셉의 억울함 들었고 석방 간청도 했으니 바로에게 말해서 감옥에서 건져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복직과 동시에 요셉을 잊어버렸다(창 40:23). 요셉의 기대를 한 번에 날려 버렸다. 요셉은 관원장을 원망할 수 있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뜻이었다. 여호와의 말슴이 응할 때가 아니었다. 술 관원장 복직 후 바로가 꿈을 꾸어 요셉을 소환[석방]하는 2년 동안(창 41:1) 하나님의 말씀이 요셉을 단련시켰다. 성경에서 2년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2년이지 요셉 입장에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간이었다. 요셉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죄수 생활을 견뎌야만 했다. 버텨야만 했다.
약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
롬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이율배반적인 현타가 오면 견뎌라. 버텨라. 견디다보면 힘들다. 그러니 하나님께 소리를 질러 기도하라. 기도할 때 소리를 지르는 것은 죽지 않고 견디겠다는 뜻이다. 울면 육체적 욕심이 죽는다. 등산을 하다보면 빽빽한 숲과 오르막길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왔는지 어디까지 가야 정상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더욱 힘들다. 그런데 산 중턱에 솟아오른 바위 위로 가면 내가 어디까지 올라왔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등산을 하면 또 다시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또 다른 중턱에 솟아오른 바위로 가서 탁 트인 시야를 보면 내가 얼마나 높은 곳에 와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시야를 볼 수 있다. 산 중턱과 정상의 시야는 다르다. 이처럼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계속 버티면서 걸어라. 말씀이 여러분을 단련할 것이다. 언젠간 정상이 나오듯이 말씀이 응할 때가 온다.
요셉에겐 그 말씀의 응답이 석방이었고, 더 나아가 요셉을 바로의 집의 주관자로 삼아 바로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했고, 요셉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며, 요셉의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했다(20-22). 여러분에게도 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의 직업과 분야에서 놀라운 응답이 임할 것이다.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실 것이다. 이것이 소망이다. 기대하라. 셀레인다.
결론 – 이율배반[현타] 속에 주님의 뜻이 있다.
이율배반적 현타를 불평, 저주, 미움, 도망으로 바꾸지 말고, 주님이 의도적으로 몰아간 것이니 이 진리를 받아들여라. 고난을 기쁨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라. 부르짖어 기도하라. 견디겠다는 뜻이다. 막혔던 마음이 뻥 뚫린다. 끝까지 가 봐라. 말씀이 응할 때까지.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