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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기질 (Creating Mind)> - 하워드 가드너 지음
1. 한 페이지 요약 및 견해
하워드 가드너는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과 교수이자 보스턴 의과대학 신경학과 교수로 다중지능이론(Multiple Intelligence)의 창시자이다. 저자의 교육심리 이론은 여러 나라에 도입되었으며, 그의 이론에 근거한 연구소와 단체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하워드 가드너는 하버드 대학에서 인간의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의 발달과정을 분석하는 프로젝트제로연구소의 책임자이자 운영위원장으로서, 줄곧 인간의 정신능력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열정과 기질>은 30년간 이어온 하워드 가드너 교수의 다중지능이론에 관한 연구가 잘 반영된 저서로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창조성’에 관한 이야기를 7명의 인물의 삶을 다루며 풀어 가고 있다. 저자는 일단 우리시대 강력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 인물 7명을 찾아냈다. 그리고 저자는 ‘개인-분야-장’ 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서로 다른 분야의 거장 7명에게서 창조 행위에 담긴 여러 특성을 분석했으며, 그들의 창조적 업적을 뒷받침하는 토대를 이해함으로써 창조성의 유형을 찾는 형식으로 글을 구성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세 가지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첫째, 7명이 살았던 세계를 들여다보며 그들의 지적능력과 성품과 더불어 그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에서의 그들이 성취한 업적을 살펴보고자 했다. 둘째, 창조적 행위의 본질에 관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특정한 성품과 조건이 20세기 창조적 인물들의 일반적 특징이며 어느 정도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셋째, 창의성에 필요한 공통점들에 대한 저자 나름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 아래 저자는 제1부에서 창조성이 어떻게 길러지는가라는 제목 하에 책의 목표와 구성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요 내용이 되는 제2부에서는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엘리엇, 그레이엄, 간디 7명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의 사건과 사람들 속에서 그들이 이루어낸 작업을 살펴본다. 마지막 3부에서는 앞선 7명의 거장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주제들을 묶어 창조성의 조건에 대한 저자만의 견해를 정리하며 마무리 한다.
책에서 예로 언급된 7명의 거장들의 공통점 중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은 본인의 관심분야를 찾아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몰입하여 마침내 세상의 인정을 받는 성과를 얻어냈다는 것이다. 거장들은 재능여부를 막론하고 1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한 분야에 집중할 수 있는 지구력과 어릴 때 품었던 꿈(혹은 소명을 찾아 갖게 된 꿈)을 놓지 않고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견지한 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열정과 기질>은 어떤 주제 혹은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아직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나에게는 다소 불편하면서도 고마운 책이다. 20살이 넘어서야 무용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마사그레이엄, 30대 후반이 되어야 비로소 자신의 참다운 소명을 발견한 프로이트, 정치적 종교적 소명을 발견하기 전 간디의 이야기를 보며 연구원 공부를 시작하기 전 초심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았다. 과연 나는 열정적으로 몰입하여 나의 과제들을 하고 있는가. 열과 성을 다하여 내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가. 떳떳하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힘든 내 자신이 부끄러운 밤이다.
2. 나를 확장시킬 책속의 내용
P10
먼저, 창조성의 발휘와 관련해서 시대를 뛰어넘는 공통점은 무엇이고, 시대에 국한된 특성은 무엇인가? 둘째는, 창조성을 발휘하는 인간의 심리와 족적 속에서 그가 살아간 시대의 특징과 의미를 연역해 낼 수 있을까
P21
자네가 읽은 책이 무슨 소용이겠나
답을 찾았지만 해답 없는 인생을 살았을 뿐. (체스와프 미워시)
P48
특정한 지능과 성격을 지닌 개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뛰어넘어, 한 시대에 관해서도 일반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이와 같은 헤겔적인 사고방식은 널리 퍼져 있다. 헤겔적 사고방식의 핵심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즉, 역사에는 고유한 추동력이 있어서 일정한 시대에는 특정한 시대정신과 주제가 전면에 나서고 시대가 바뀌면 다른 시대정신에게 자리를 내주는 식으로 역사가 나선형적(변증법적)으로 진행한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특정한 시대정신을 예측할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과거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한 시대의 고유한 모습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P55
관습에 도전한다는 것은 사실 모든 혁명적 시대의 특징으로서, 그 도전의 성격은 별개의 문제이다. 내가 보기에 이 책에서 연구대상으로 삼은 분야들에서 생겨난 도전들은 상당히 비슷하다. 각각의 분야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단순한 형식을 추구한다는 점, 전통적으로 아이들이 매달리는 문제나 개념들과 씨름한다는 점, 낡은 문명이 죽고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는 장면을 포착하고 기록하려고 한다는 점 등이 비슷하다.
P67
놀고 있는 아이는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거나, 혹은 자신이 즐거울 수 있도록 주면에 존재하는 사물을 재배열한다는 점에서 모두 창조적인 작가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창조적인 작가와 놀고 있는 아이가 하는 일은 똑같다. 창조적인 작가는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즉, 작가의 환상 세계에서는 그의 감정이 충전돼 있다. 물론 그는 환상의 세계와 현실을 날카롭게 구별한다. -프로이트-
P69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해서 몰입 상태(flow state) 혹은 몰입 경험(flow exPerience)이라는 감정 상태에 관해 설명한 바 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내재적으로 동기화된 경험(intrinsically motivating exPerience)에서 자신이 관심을 쏟는 대상에 완전히 몰입되고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이러한 감정 상태는 어떤 활동 분야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몰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그 순간에는 자신이 무엇을 경험하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중에 반성적으로 자신이 완전히 살아 있었고 자신의 모든 것이 실현되는 ‘절정의 경험’을 했다고 느낀다. 자주 창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 상태를 추구한다고 말하곤 한다. 이러한 ‘몰입 순간’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훈련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몸과 마음의 고통까지도 감수하려 드는 것이다. 작품에 전념하는 작가들은 책상에 묶여 있는 시간이 지긋지긋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아마도 결과도 신통치 않은 작품을 쓰면서 그런 ‘몰입 순간’을 겪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더욱 실망한 것이다.
P82
처음의 노력은 대개 만족스러운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며,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믿을 만한 길잡이도 없다. 창조자는 자신의 직관을 믿어야 하고, 아무 보상도 없는 반복적인 실패에도 꿋꿋이 버텨야 한다.
P98~99
대체로 창조자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특히 원만한 삶을 포기하면서 까지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 이러한 계약의 성격은 사례마다 조금씩 다르다. 금욕적인 삶을 다짐하는 경우(프로이트, 엘리엇, 간디)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경우(아인슈타인, 그레이엄)도 있다. 피카소는 이런 거래가 거절된 나머지 다른 사람을 노골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스트라빈스키는 공평무사한 태도를 버리면서까지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이 범상치 않은 협정에서는 이런 계약을 강박적이리만큼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으면 자신의 재능이 손상되거나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서려 있다. 실제로 계약 이행이 느슨해지면 창조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가 있다.
P129
그 핵심 개념은 억압이다. 좀 더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방어 기제라고 하는데, 이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표상들을 의식 아래로 억누르는 심리과정을 일컫는다. 프로이트 자신도 이 개념의 중요성을 확언한바 있다. “억압이라는 교의는 정신분석학 이론 전체가 서 있는 주춧돌이다.”
P130
억압이 프로이트 이론 체계의 중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면, 꿈은 억압 과정을 이해하고 그 밖의 정신 생활에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프로이트는 꿈의 힘을 발견한 것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P136
창조적인 인물들은 학문적인 이해뿐만 아니라 정서상으로도 무조건적인 격려와 지지를 원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통에 대한 이런 필사적인 노력은 엄마와 아이 사이에 맺어진 최초의 소통 관계와 어린 시절의 친구 관계를 회복하려는 심정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P140
해소되지 않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바로 성인 신경증의 뿌리이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여성의 경우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중략)
이제 프로이트는 꿈 분석을 통해 성적인 주제가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 깔려 있으며, 방어 기제는 주로 불편하고 직접 대면하기 어려운 주제인 성적인 체험을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P152
2장에서 소개한 삼각 분석에 따르면, 프로이트라는 재능 있는 개인은 혁명적인 사유 체계를 구상했지만, 이러한 사유는 심리학 및 정신 의학 분야에서 기존의 지배적인 교의와는 충돌을 일으켰다. 만약 새로운 이론이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프로이트는 그 이론을 평가하고 전파하는 지지 세력의 장을 창출해야 했다.
P165
내 논의에서 그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를테면, 그는 특정 지능을 활용하여 창조성의 절정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인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성찰하는 자성 지능을 통해, 그리고 아무도 공감과 이해를 보이지 않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통해 그런 성과를 보였던 것이다. 그런 다음에 프로이트는 에너지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 자신을 적대하는 세상에게 자기 이론의 진실성을 납득시켰다. 처음엔 세상에 매료되었고, 다음엔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처지가 되어 비밀스런 탐구 작업을 계속했으며, 결국 다시 세상에 돌아와 다양한 집단의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프로이트는 창조성의 이원적 성격을 새삼 환기시킨다. 특정 분야에서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어냈고, 덕분에 그 분야는 마침내 다양한 인간 사회의 관심과 가치를 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P171
물리학자들이란 인간 피터팬이다. 그들은 결코 어른이 되지 않으며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있다. 세상 물정에 밝아지면, 호기심을 갖기에는 너무 많이,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된다. - 물리학자 라바이 -
P197
아인슈타인은 어떤 문제에 관해 사고할 때 항상 이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정식화해서 사고방식이나 교육 배경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P206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지적한다.“동시성 개념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 하나의 좌표계에서 동시에 발생한 두 가지 사건은, 이 계에 대해 운동하고 있는 다른 좌표계에서 바라보면 동시에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
P210
하지만 상대성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십 년 동안 그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고 그 내용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이런 조건에 대한 보완적인 태도로서, 그 분야의 기정 사실과 요체를 극복하고 전혀 새로운 접근 방식을 과감하게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P230
아인슈타인은 양자 역학의 요지를 이해했고 결론의 상당 부분을 존중했지만, 그 이론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는 고전 역학의 인과성을 부인하지 않고 완전한 과학적 설명의 가능성을 의문시하지 않는 좀더 심오한 방법으로 세상을 설명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신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아주 유명한 말을 하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에게 있어 과학이란 가장 작은 세계에서도 질서를 가져야 했다. 그는 동료 막스 보른에게 이렇게 써 보냈다. “복사(radiation)에 노출된 전자가 자유 의지로서 튀어나올 순간과 방향을 선택한다는 생각은 정말 참기 어렵습니다. 우주가 이렇게 생겼다면, 나는 물리학자보다는 차라리 구두 수선공이나 도박장의 종업원이 되겠습니다.”
P235
아인슈타인은 1929년 이후에는 물리학에 별달리 공헌한 바가 없었지만, 그의 업적에서 파생된 여러 이슈를 점차 분명히 이해했고, 과학을 삶의 다른 영역에 연관시키는 면에서도 통찰이 깊어졌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과학자로서보다 전반적인 사색가로서 끊임없이 성숙했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시대에서 언제나 독특한 위치에 설 수 있었는데, 단지 뛰어난 과학자로서만 아니라 (과학에 대해서 뿐 아니라 과학이 인간의 삶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도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원숙하고 성찰적인 인간으로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천재란 주로 명민하고 신속하게 직관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직관과는 다른 이해 능력, 즉 성찰적 지혜라고 부를 만한 능력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속 성숙한다. 이러한 지혜는 보통 링컨이나 간디와 같은 정치 및 종교지도자와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P252
신동의 출현은 특정 분야에 대한 어떤 문화권의 관심과 지원 이외에도, 언제나 여러 요인들이 ‘우연히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현상이다. 그러니까,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 뿐만 아니라,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P287
피카소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는 이러한 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하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도약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피카소는 대개는 적대적이었던 주변 사람들의 반응으로 인해 길을 잃지는 않았어도 쓰라린 상처를 받았는지 어디론가 그림을 조용히 치워버리고 몇 년 간은 공개하지 않았다.
P290
프로이트를 다룬 장에서 나는 창조자가 낯선 영역으로 나아가는 모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해당 영역의 경계를 넘어서는 모험을 할 때는 이런 행동에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는 인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어쩌면 꼭 필요할지 모른다는 점을 논의한 바 있다. 피카소의 경우에는, 바르셀로나와 파리의 보헤미안 무리들 같은 잡다한 지지자 그룹에서 창조자의 인지적인 욕구와 정서적인 욕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고 특히 새로운 상징체계의 창조에 동반자로 참여한 한 인물과의 친밀한 관계로 인간관계의 비중이 이동한 것을 볼 수 있다.
P309
피카소는 예술작품이 관람자에게 충격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람자에게 아무런 감정상의 동요도 일으키지 못하고 관람자가 그저 대충 훑어보는 예술작품은 아무 의미가 없다. …… 관람자가 비록 상상 속에서라도 어떤 반응을 보이고 스스로 창조에 대한 열망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 ……관람자를 마비 증상에서 일깨워야 한다.” 피카소는 확신을 갖고 이렇게 말했다.
P330~331
하지만 피카소는 자신의 재능을 초월해서 생각할 능력이 없었다. 그는 여러모로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였는데, 이를테면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성숙한 어른’의 세계를 경멸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피카소는 어린 시절에 일종의 협약, 즉 파우스트적인 계약을 맺었다고 생각했다. 누이동생 콘치타가 죽었을 때 자신의 재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희생할 수 있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여러모로 전근대적인 면모가 완강하게 남아 있던 나라와 고향에서 자란 인물로서, 미신에 깊이 사로잡혀 있고 자주 두려움에 시달린 피카소가 자기 나름대로 이야기를 꾸며댄 격이었는데, 이 이야기는 결국 자신 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얄팍한 변명의 장막을 마음속에 쳐놓은 셈이었다.
P342
스트라빈스키와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비슷한 교육 철학을 전지했고 엄격한 훈련 방식을 선호했다. 훗날 스트라빈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배우든 신참자가 걸어야 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처음에는 학습과정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지만, 이것은 자기만의 표현 방법을 자유롭고 힘차게 추구할 수 있는 수단으로만 삼아야 한다.”
P348
젊은 스트라빈스키는 디아길레프의 활동모습에서 공동작업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두 가지를 배웠다. 하나는 마감 시한을 지켜야 한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예술적 이상은 각기 다르면서 고집은 무척이나 센 사람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며 타협을 이끌어내는 방법이었다.
P355
공전의 성공을 거듭하는 가운데서 이례적인 실패를 맛보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아무리 창조성이 뛰어난 혁신가라 해도 길을 잘못 들어설 수가 있는 법이며, 이들은 본래부터 오류 따위는 범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만 그 실패를 딛고 재기하는 방식이 보통 예술가와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점은 새삼 일깨우는 사실인 까닭이다.
(중략)
이러한 노력은 대중의 평범한 평가 기준에 의해 실패할 수 있을지언정, 창조차 자신에게는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자신의 그 작품을 통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으며, 무엇을 성취하고자 했는지, 나아가서 그러한 목표를 미래의 작품 속에 가장 훌륭하게 담아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P379
앞에서 내가 10년 규칙이라 부른 규칙이 이 경우에도 적용됨을 알 수 있다. 즉, 처음 10년 동안 해당 분야의 지식과 기법을 완전히 터득하고 이후 대략 10년을 주기로 혁신적인 작품과 새로운 방향 전환을 이룬 작품(이론)을 창조한다는 법칙이 스트라빈스키에게도 적용된다는 얘기다.
P387
그는 오랜 세월에 걸쳐 하루에 적어도 열 시간 동안 일을 했다. 오전에는 피아노로 바흐의 푸가를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이후 네댓 시간 동안 작곡에 몰두하고, 오후에는 관현악편곡과 기악편곡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P424
엘리엇은 자신의 위치를 예리하게 분석할 줄도 알았다. 옛 철학 스승인 우즈(J,H.Woods)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중요한 작가가 되는 데는 오직 두 방법이 있습니다. 아주 많은 작품을 써서 온갖 지면에서 제 작품을 볼 수 있게 하거나, 아니면 아주 조금만 쓰는 거지요. …… 저는 과작(寡作)인지라 많이 써서 유력한 작가가 되기는 글렀습니다. …… 런던에서는 작은 책자 분량의 시 한 편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 한편 한 편마다 완벽성을 기해야 하고, 그래서 각기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이 유일한 관건일 테지요. 미국과 관련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무래도 고향보다는 여기서 훨씬 더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 생계를 유지하려면 예술하고는 하등 상관없는 직업을 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겠지요.
P430
문학 분야에서 혁명적인 성과를 이룬 작품이자 한 세대의 정신을 집약적으로 상징하는 작품으로서, 그토록 빠른 시일 내에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은 시는 역사상 거의 없었다. 비록 종교적인 신념을 공공연히 밝힌 만년의 엘리엇은 “삶에 대한 개인적이고 거의 무의미한 불평에 불과한……. 리드미컬한 볼멘소리”라고 칭하면서 『황무지』의 가치를 깎아내렸지만, 유럽과 미국의 어느 세대에 있어서는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었다.
P431
엘리엇의 업적은 다른 측면에서도 인상적이다. 『황무지』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어서, 소수의 교양있는 독자나 이해할 수 있는 시행과 아무리 장황한 주석을 달아도 완전한 해독이 불가능한 암시로 가득한 작품이다. 하지만 『황무지』의 난해성과 심오함은 독자(특히 젊은 독자들)를 속이거나 정떨어지게 하는 대신, 시의 효과를 높이고 독자가 겉으로만 심오한 작품을 읽는 데서 오는 속물적인 만족감을 뛰어넘도록 유도한다.
P443
엘리엇은 시를 정서나 개성의 표출이 아니라, 오히려 정서와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로 여겼다. 그는 개성과 정서를 소유한 사람만이 거기서 도피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완벽한 예술가일수록, 번민하는 자아와 창조하는 자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동시대 모더니스트인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 그레이엄의 견해에 공명하면서, 그는 미숙한 시인은 선배의 작품을 그저 모방만 할 뿐이지만 성숙한 시인은 그 핵심을 훔쳐내서 더욱 개성적이고 훌륭한 작품으로 빚어낸다고 지적했다.
P444
엘리엇이 문학 이론에 기여한 내용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개념일 터이다. 시인은 정서를 직접 전달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시인은 해당 정서를 훌륭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이나 이미지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정서를 명확히 표현하는 일련의 객관 대상이나 상황, 사건인데, 해당 정서를 환기하려면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부적인 상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객관적 상관물을 창조할 수 있는 시인이 가장 훌륭한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비상한 감수성과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결합시킬 줄 아는 시인이 없다면, 우리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능력까지도 퇴화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P457
엘리엇은 앞에서 다룬 현대의 거장들 모두에게 내재한 성향을 집약하고 있다. 경계인이라는 느낌과 인생 전부를 걸고 경계성을 탐구하는 능력이 그에겐 있었다. 게다가 엘리엇은 저절로 경계인이 될 수 없는 처지였기에, 생산적인 비동시성의 수준에 이르기 위해 스스로 경계인이 되기로 선택한 인물이었다. 경계인이란 오직 공동체를 전제하고서야 성립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창조적인 인물의 생애에서는 경계인이라는 느낌을 갖는 순간과 공동체에 속한다는 느낌을 갖는 순간이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궤적을 엿볼 수 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들은 어느 정도는 세계 전체에 속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만 홀로 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양극을 오가는 모습이야말로 창조자의 생애에 긍정적인 비동시성과 부정적인 비동시설을 동시에 가능케 한 요인일 것이다.
P459
그들은 창조력의 원천을 잃지 않고 새로운 작품을 계속 추구하기 위해 일종의 협약, 아주 인상적인 계약을 맺었다는 점이다. 피카소는 젊음을 유지하고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가학적으로 대했고, 스트라빈스키는 친분 관계를 희생해서라도 법정 싸움의 불씨를 지피는 데 주저치 않았으며, 엘리엇은 프로이트처럼 금욕적인 삶을 선택하고 동시에 가학적이라 할만큼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무시했다.
P468
용기 있는 성격에다 미학적인 모험을 추구하였던 이사도라는 당연하게도 무용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녀의 기술적인 혁신은 많은 사람의 추종을 불러올 만큼 숙련성이나 일관성을 갖고 있지 못했다. 이사도라의 성공 요인은 제자나 ‘양녀’들에게 전수해 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주로 그녀의 카리스마 넘치는 태도와 ‘몸의 본능적인 움직임’에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이사도라는 통상적으로 새로운 무용 전통의 창시자라기보다는 고독한 선구자로 여겨진다. 날카로운 식견을 지닌 무용 비평가 애그니스 드 말은 이렇게 말한다. “이사도라는 무대에 널린 쓰레기를 모두 청소했다. 그녀는 거대한 빗자루였다. 그녀로 인해 비로소 무대가 깨끗하게 청소된 것이다.”
P481
신들을 모방하고자 했을 때 우리는 신들의 춤을 추었다. 그런 후에 우리는 바람과 꽃과 나무 등 자연의 힘을 재현함으로써 자연의 일부가 되고자 했다. 춤은 더 이상 의사소통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다. ……현대 무용은 고집스럽게 추함만을 극화하는 것도 아니고 신성한 전통에 타격을 가하려는 것도 아니다. ……표현주의적인 무용의 장식적인 형식에 대한 반역이 일어난 것이다. 대단히 엄격한 간소함의 시대가 온 것이다.
P517
신체-운동 지능은 자립적인 상징체계를 통한(혹은 자립적인 상징체계로 표기되는) 사유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을 움직여 실험하고 여러 차례 변형하는 과정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무용 역사가 린 개러폴라는 이렇게 말한다. “그레이엄은 그녀의 몸이었다. 그것(몸)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강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단련시킨 덕분에 그녀는 그녀 자신이 된 것이다. 몸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따라 그녀가 고안할 수 있는 무용의 한계가 규정되며, 몸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있기에 그녀는 연습을 통해 더욱 더 무용 테크닉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레이엄의 무용 동작 실험에 대한 문헌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사 그레이엄과 함께 무용을 했던 사람들의 기억이나 그레이엄 무용단이 20세기 중반에 창조한 작품에 대한 묘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작품들은 후기의 보다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작품의 초기 버전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P523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종이에 적는다. 어떤 책에서든 인상적인 구절이다 싶으면 바로 옮겨 적는다. 그리고 출처를 적어둔다. 이렇게 하면 실제 작업을 할 때 모든 과정에 대한 기록을 간직하고 있을 수 있다. 내 무용에 대한 메모는 모두 갖고 있다. 특별한 기호는 쓰지 않는다. 내 생각을 그냥 적어둘 뿐이고, 나는 내가 쓴 글과 동작의 의미가 무엇인지잘 알고 있다.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여기 저기에 설명이 있다. -그레이엄
그레이엄도 다른 사람들의 구상과 이미지를 원용한다는 구상과 이미지를 원용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했다. “나는 도둑이다. 하지만 부끄럽지는 않다. 플라톤, 피카소, 베르트람로스 등 누구라도 최고의 인물들에게서 생각을 훔친다. 나는 도둑이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 나는 내가 훔친 것의 진가를 잘 알고 있고, 늘 소중하게 간직한다. 물론 나만의 재산이 아니라 내가 물려받고 물려줘야 할 유산으로 여긴다.”
P536
20세기의 100년 동안 현대 예술을 형성한 다섯 예술가를 고른다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벨라 버르토크,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파블로 피카소 그리고 마사 그레이엄이라고 생각한다. 무용과 무대 공연에 관해서라면 20세기는 그녀의 시대였다. 그리고 다섯 명의 거목 중에서 그레이엄이 해당 예술 분야에 가장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표현 방식이나 기법, 내용, 시점 면에서 다른 어떤 예술가보다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동료 애그니스 드 밀
P545~546
종교와 사회 및 정치 지도자가 되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 검열이 무척 심한 편이다.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초자아가 강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잊어버리거나 사소하게 여기는 문제가 이들에겐 매우 중요한 문제로 여겨진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마틴 루터 킹, 장 자크 루소, 에이브러움 링컨 같은 이런 별종의 인간들은 어린 시절에 저지른 사소한 잘못까지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두고 반추했으며, 심지어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그 잘못을 보상하려고 했다.
P550
다시 한번 가족을 버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간디 성격의 중요한 일면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기회가 문을 두드리면 아무리 먼 곳으로 떠나야 하고 또 자신과 가족에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해도 그 기회를 붙잡는다는 점이다.
P554~555
간디는 이처럼 가혹하고 단단한 현실에 부딪치고도 두려움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변호사로서 더욱 원숙해지고 투쟁 결의를 더욱 굳건하게 다졌다. 유혹도 받았지만 그는 자신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때는 무척이나 수줍음이 많았던 그가 이제 능숙한 대중 연설가가 되었다.
P558
그는 오직 작은 공동체에서만 실행이 가능한 단순한 삶, 전통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금욕적인 사람을 요청했다. “진정한 치유는 영국이 이기심과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문명을 버리는 것, 아무런 목적도 없고 헛되기만 할뿐인, 그리고……. 기독교의 정신을 부정하는 그런 현대 문명을 버리는 것에 있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P560~561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적 창조자들은 주로 개념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하고, 스트라빈스키나 피카소와 같은 예술가들은 기존의 상징체계로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한다. 반면 간디와 같은 정치적 창조자들에게 있어 창조적인 작업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보다 넓은 목적을 위해 움직이도록 추동하는 능력에 있다. 이들의 개인적인 행위는 그들의 사명을 실현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표현의 매개이다.
P573
간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편에 독서와 저작과 성찰이 있고 다른 한편에 몸소 용기 있는 모범을 보이는 지도력이 있는 두 가지 활동의 항구적이고도 생산적인 변증법적 관계를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P575
신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간디는 몇 가지 기본적인 생각을 밝힌 바 있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강조되는 진리와 도덕성, 그리고 영적인 갱생에 대한 추구가 자기 존재의 근본이라는 것이었다. 간디는 개인적으로 훌륭한 삶을 추구하는 것과 공동체에 봉사하면서 모범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을 별개로 취급할 수 없었다. 개인적인 자유는 사회에 봉사하는 자유가 되어야 했고, 개인적인 비폭력은 보다 넒은 갈등의 무대에서도 실현되는 비폭력이 되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진리와 지식과 지혜는 공동체 안에서 추구하는 것이 마땅했다.
P600
간디는 비폭력을 신봉했지만, 점차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고 있음을 암시했다. “자유는 여러분의 생득권이듯 우리의 생득권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 피를 흘리는 것을 우리는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께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자유를 얻는 데 희생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갠지즈 강을 피로 물들인다 해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P627
이들이 보여준 지적인 강점이 서로 다른 것처럼,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시기와 양상 역시 상당히 달랐다. 프로이트는 어릴 때부터 학문적인 문제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지만,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참다운 소명을 발견했다. 그레이엄은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무용을 하지 않았고, 간디는 정치적 종교적 소명을 발견하기까지 이런저런 일에 종사했다.
P628
전형적인 창조자 유형의 인물들을 실제로 자신감과 기민함,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근면함, 일에 대한 집중력 등을 지니고 있다. 이들에게 사교생활이나 취미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기껏해야 일에 몰두하다가 한숨 돌리는 정도의 주변적인 의미밖에 없다.
P637
일곱 명의 창조적인 인물들은 물론 분야마다 약간씩 기간은 달라도 대략 10년을 사이에 두고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었다. 인지 심리학 계통의 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한 사람이 어느 분야를 기본적으로 통달하는 데 필요한 기간은 대략 10년 정도이다.
P654
어떤 개인이 다소 추상적인 의미에서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났더라도 어떤 분야에 참여해서 해당 장에 의해 평가받는 성과물을 내놓지 않으면 그 사람이 실제로 ‘창조적’이라는 평가에 합당한지 여부를 결정하기는 불가능하다. 물론 처음부터 삼각형의 세 결절점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과 분야, 그리고 장 사이에 일종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 개인의 창조성에 대한 궁극적인 결론은 내릴 수 없다.
P690
모더니즘은 자유이다. 하지만 이 자유는 오직 역사와 선대의 속박을 인정한 상태에서 추구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과거와 유년기를 부인하고 모든 형태의 속박을 인정하지 않으며 과거의 뿌리를 모두 근절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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