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거리(雲鐘街)
한양(漢陽)의 새벽 인정(人定) 소리와 함께 도성의 문이 열리고, 저녁 파루(罷漏) 소리로 닫힙니다. 이렇게 도성의 8대문을 여닫게 하는 종루(鐘樓)가 동서 대로와 남북 대로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종루에서 4대문으로 통하는 종로 2가 네거리를 종로(鐘路)라 했으며 이 부근 거리를 운종가(雲鐘街)라 불렀습니다. 광화문에서 남쪽으로 난 길(世宗路)이 정치의 중심 거리였다면, 동서로 뻗은 종로는 육의전(六矣廛)을 비롯하여 많은 상점들이 자리잡은 상업지역이라 할 수 있지요.
필자가 과문한 탓으로 종로 거리의 일상을 읊은 옛 한시는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문신 권근(權近, 1352~1409, 세조대의 대정치가 권람의 조부)이 자신이 소속해 있던 사헌부를 읊은 '상대별곡(霜臺別曲)' 이란 경기체가 형식의 가사 앞머리에 종로를 얼핏 스치고 지나가네요.
華山*南 漢水北 千年勝地
廣通橋 雲鐘街 건나드러
落落長松 亭亭古栢 秋霜烏府**
*華山(화산)은 중국 五岳 중 하나라는 산시성의 名山이 아니고, 서울의 북쪽에 위치해 있는 삼각산(북한산)을 이름
**烏府(오부)는 사헌부의 별칭으로 대소신료들의 기강을 잡는 부서. 가을 서릿발(秋霜) 같다는 의미로 상대(霜臺)라 부르기도 하였음
삼각산 남쪽 한강 북쪽 천년 명승지 (한양)
광교와 종로 건너 들어가
늘어진 소나무 우뚝 솟은 잣나무, 추상같은 사헌부
종로 저잣거리를 그린 태평성시도(일부) / 작가미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종로 저잣거리
종로 시전(市廛)은 조선을 대표하는 저잣거리지만 당시의 풍경을 증언하는 자료는 많지 않습니다. 다행히 18세기 김세희(金世禧)라는 역관이 종로의 저잣거리를 구경하고 이런 글을 남겼다네요.
"인정 소리 열두 번(조선 전기에는 33번?) 울리면 점포의 자물쇠 여는 소리가 일제히 들린다. 그리고 장사하는 남녀들이 짐을 등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지팡이를 두드리면서 사방에서 요란하게 몰려든다. 좋은 자리를 다투어 가게를 열고 각자 물건을 펼쳐놓는다. 천하의 온갖 장인들이 만든 제품과 온 세상의 산과 강에서 나는 산물이 모두 모인다. 불러서 사려는 소리, 다투어 팔려는 소리, 값을 흥정하는 소리, 엽전을 세는 소리, 부르고 답하고 웃고 욕하고 시끌벅적한 것이 태풍과 파도가 몰아치는 소리 같다. 이윽고 저녁 파루가 울리면 그제야 거리가 조용해진다. 종로의 제품은 몇 가지 등급이 있다. 중국의 제품은 모두 당(唐)자를 붙이는데 정교하면서도 치밀하고 담박하면서도 화려하며, 우아하면서도 약하지 않고 기교적이면서도 법도가 있으므로 이 때문에 가장 뛰어난 상품으로 친다. 일본 상품은 정치하고 세밀하며 교묘하고 화려하여 그 다음이다. 우리나라 제품은 대개 조악하고 정교하지 못하다...".
종로 연등회(蓮燈會)
근래 들어 호화롭게 재연되고 있는 4월 초파일 종로 연등회(혹은 연등제)는 사실 천여년을 이어온 축제라고 합니다. 통일 신라시대나 고려조에서는 나라에서 주관하는 행사였다면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민간 축제로 바뀌었다는 게 다를 뿐입니다. 조선이 억불정책으로 승려들의 도성 문안 출입을 금할 정도로 불교를 억압했지만, 오랫동안 내려온 4·8 연등회는 순수한 민속 풍속으로 여겨 허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이 연등회를 구경하는 것은 남산 꽃구경, 마포 뱃놀이 등과 함께 '한양의 10대 볼거리(漢都十景)' 중 하나였다고 하네요.
종로 거리에서 연등 구경하기(鐘街觀燈) / 서거정(徐居正, 조선 전기)
-압운(押韻)은 1, 2, 4구 마지막 자 家, 霞, 花와 6, 8구 끝 자 狖, 漏
長安城中百萬家(장안성중백만가)
한양성 안 백만호 집집마다,
一夜燃燈明似霞(일야연등명사하)
한 밤중에 등불을 켜니 노을처럼 밝구나.
三千世界*珊瑚樹(삼천세계산호수)
온 세상*이 (바닷속) 산호수와 같고,
二十四橋芙蓉花(이십사교부용화)
이십사교에는 온통 연꽃이로다.
*三千世界는 불교에서 한없이 넓은 세상을 이르는 말로 三千大千世界라고도 함.
東街西市白如晝(동가서시백여주)
동쪽 거리 서편 저자가 대낮같은데,
兒童驚走疾於狖(아동경주질어유)
놀란듯 내닫는 아이들 원숭이보다 재구나.
星斗闌干爛不收(성두란간란불수)
북두성이 기울도록 난간 등불 거두지 않고,
黃金樓*前催曉漏(황금루전최효루)
황금루* 앞 물시계가 새벽을 재촉하네.
*黃金樓(황금루) : 춘추전국시대 말, 약소국 연(燕)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인재를 모으려 소왕(昭王)이 지었다는 황금대(黃金臺)를 빗대, 당시 조선이 현자를 우대하고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음을 암시하는듯.
조선 초 문화융성기인 세종~성종대 최고 지성이라 일컫는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칠언율시입니다. 그는 학문의 영역 매우 넓어 천문(天文) · 지리(地理) · 의약(醫藥) · 복서(卜筮) · 성명(性命) · 풍수(風水)에까지 관통하였으며, 문장에 일가를 이루고, 특히 시(詩)에 능하였다고 하지요.
종로 거리에서 연등 구경하기(鐘街觀燈) / 이승소(李承召)
無盡燈然無盡家(무진등연무진가)
끝도 없는 등불이 수많는 집에 켜지고,
紅光相射如流霞(홍광상사여류하)
붉은 빛이 비춰 움직이는 노을 같구나.
玉繩*低垂明月珠**(옥승저수명월주)
(하늘에서) 天乙 太乙, 명월주가 낮게 드리운듯,
瓊枝幻出玲瓏花(경지환출영롱화)
구슬 가지에서 피어나는 영롱한 꽃들.
*玉繩(옥승) : 별의 이름. 북두(北斗) 제5성의 북쪽에 있는 천을(天乙)과 태을(太乙)의 두 소성(小星)을 일컬음
**明月珠 : 밤에 광채(光彩)를 발하는 구슬. 불교용어로 산스크리트어 maṇi-ratna(아름다운 보배 구슬)에서 유래
照破昏衢作明晝(조파혼구작명주)
어둑한 종로 네거리를 내리 비춰 대낮처럼 만들고,
觀者喜躍如躁狖(관자희약여조유)
구경꾼들 신이 나 원숭이처럼 날뛰는구나.
九街歌吹樂昇平(구가가취락승평)
온 거리에 노래와 피리부는 소리 태평성대를 즐기니,
不覺鍾傳五更漏(불각종전오경루)
새벽 오경 바랏소리 치는 줄도 모르누나.
이승소(李承召, 1422~1484)는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나 서거정·신숙주·강희맹 등과 절친했던 당대의 문재이며 정치가입니다. 예(禮)·악(樂)·병(兵)·형(刑)·음양(陰陽)·율(律)·역(曆)에 두루 통달하였고, 특히 문장으로 이름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는 당대의 이름난 학자답게 불교의 교리에도 밝았구요.
종로 거리에서 연등 구경하기(鐘街觀燈) / 강희맹(姜希孟)
恒星髣髴墮千家(항성방불타천가)
큰 별들이 흡사 수많은 집에 내려온 듯,
黃昏處處籠紅霞(황혼처처롱홍하)
땅거미 지는 곳곳에 붉은 노을같은 등불이라.
長竿裊裊綵索飛(장간뇨뇨채색비)
긴 장대에는 채색 줄 휘날리고,
珠樹繁開金粟*花(주수번개금속화)
구슬 달린 나무에는 온통 월계수 꽃이 피었네.
*金粟(금속) : 월계수의 다른 이름으로 꽃이 노란(金) 조(粟)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별명.
山河大地變白晝(산하대지변백주)
산하와 대지는 대낮같이 변하고,
歌鼓競沸人如狖(가고경불인여유)
노래소리 북소리 다투어 들끓어 사람들이 원숭이 같구나.
齊聲爭唱佛誕夕(제성쟁창불탄석)
소리 모아 다투어 석가탄신 노래하고,
奔波不覺已殘漏(분파불각이잔루)
내달리는 인파 날새는 줄 모르네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은 그 문장의 웅혼함이 사마천(司馬遷, 史記의 저자)과 같고, 탁월함은 한유(韓愈, 唐 문장가)와, 간결하고 정치하기는 유종원(柳宗元, 唐 시인)과, 자유분방함은 구양수(歐陽脩, 宋 문장가)에 비견된다는 조선 전기의 대문장가입니다. 그의 친 형인 강희안(姜希顔)도 대문장가로 조선 전기 형제 문장가로 명망이 높았다고 하지요.
종로 거리에서 연등 구경하기(鐘街觀燈) - 일부 / 월산대군(月山大君)
京都十里千萬家(경도십리천만가)
한양 십리 안에 수많은 집들,
燈街處處蒸紅霞(등가처처증홍하)
등불 켜진 거리 곳곳 붉은 노을이 피어 오르는 듯.
香車寶馬滿路去(향거보마만로거)
향기로운 수레 단장한 말들이 거리에 가득 지나고,
醉歌遊女顔如花(취가유녀안여화)
취해 흥얼대며 노니는 계집들 얼굴이 꽃같구나.
동생(成宗)에게 왕위를 빼앗긴 불우한 왕자 월산대군(月山大君, 1454∼1488). 강가에 사저를 짓고 음풍농월(吟風弄月)로 세월을 보냈으나 시름을 달랠 길 없었는지 삼십대 중반에 요절합니다. 월산대군이 대문장가이며 시인인 서거정·이승소·강희맹 등과 함께 읊은 '한도십엽(漢都十詠)'은 조선 한시의 하나의 이정표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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