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팬텀 스레드>
202011772 생물자원과학부 김지현
이 영화는 '사랑의 광기'에 관한 교과서라고 느껴졌다. 둘 중 한 명만 광기를 가진 것이 아닌 두 사람 모두가 사랑에 미친 것 같아 보였다. 당차고 밝았던 엘마는 레이놀즈의 뮤즈가 된 이후로 점점 사랑을 갈구하는 굶주린 포식자 같은 모습을 보인다. 레이놀즈는 너무 예민했다. 애초에 밝고 씩씩한 엘마의 모습에 끌렸던 것인데 그와 동시에 엘마의 씩씩함이 레이놀즈에게는 소음이 되어 거슬리게 느껴지는 것이다. 굉장히 모순적인 사랑이다. 그리고 레이놀즈는 엘마에게 연인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예술가와 뮤즈로서의 모습만을 보여줬고 엘마에게도 그런 모습을 바랐던 것 같다. 원래의 엘마가 아닌 자신의 뮤즈로서의 엘마. 자신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고 드레스를 만드는 일을 도와주며 연인도 해주기를 바란 것이다. 굉장히 이기적이고 비열한 행동이다. 그런 삶을 살게 된다면 누가 엘마처럼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엘마는 레이놀즈와의 단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아마 그 나이대의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레이놀즈는 나이가 많았고 예민했다. 둘은 처음부터 맞지 않았다. 맞물릴 수 없는 두 사람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극 중 초반에는 엘마 혼자만이 스스로를 괴롭히지만 결국 엘마는 레이놀즈를 본인 손으로 망가뜨리고 마지막에는 레이놀즈가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엘마가 레이놀즈에게 독버섯을 먹이는 것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 사람을 아프게 한다? 그 사람의 필요를 얻기 위해? 얼마나 뒤틀린 사랑이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한다’라는 문장은 명백한 모순이다. 하지만 레이놀즈도 모순적인 사랑을 하고 있으니 엘마라고 해서 불가능할 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후반부쯤에서 엘마와 의사가 식사 자리에서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엘마가 레이놀즈를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자신을 향한 애정과 관심이 필요한 건지 헷갈리기도 했지만 결국 엘마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레이놀즈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독버섯이 없으면 둘은 서로에게 따뜻한 눈길을 주지 못한다. 레이놀즈는 스스로를 강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매사에 예민하다. 반면에 엘마는 레이놀즈가 자신에게 기대어 필요로 해주길 바란다. 독버섯 없이는 불가능한 사랑이다. 두 번째로 레이놀즈가 독버섯을 먹는 장면에서 나는 레이놀즈가 엘마에게 모르는 척 한입을 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이놀즈는 엘마를 똑바로 바라보며 스스로 독버섯을 먹었다. 자신이 쓰러지길 바란다는 엘마의 거짓 없는 광기 표출에도 그는 “쓰러지기 전에 키스해줘”라고 말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정말 충격을 받았고 이게 바로 “너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어”의 또 다른 버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독버섯을 먹을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독버섯을 먹이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사랑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레이놀즈와 엘마의 사랑은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영역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가서야 엘마를 향한 사랑을 갈구하며 결혼하자고 하는 레이놀즈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주고 싶어서 독버섯을 먹이는 엘마는 둘 다 비정상적인 사랑을 하고 있다. 영화 내에서도 사람들의 행동은 부자연스럽다. 기계적인 집안사람들, 어딘가 로봇 같은 레이놀즈의 누나, 그와 대비되는 너무나 우아한 음악과 의상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두 사람의 사랑이 더 기괴하게 보여지는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사랑은 자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확실하고 고통스럽지만 끊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광기에 미쳐버린 엘마의 감정선을 나도 공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엘마였어도 저렇게 집착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면서 엘마의 뒤틀린 사랑에 공감하고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이란 언제나 아름답고 찬란한 것이 아니며 한 인간을 완전히 망가뜨려 버릴 수 있겠구나 라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