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할까? / 허숙희
지난 3월 23일 ‘광양시 환경 교육 센터’가 전남에서는 유일하게 환경 교육 기관으로 문을 열었다. 사무실에서 요청이 있으면 가끔 나가서 환경 오염과 이상 기후의 심각성, 탄소 중립 실천에 대하여 강의했다. 2학기에는 ‘학교로 찾아가는 탄소 중립 실천 교육’을 하게 되어 나는 ㅁ 초등학교로 나가게 되었다. 그동안 아이들을 만나 수업을 하였으나 교실에 가서 가르치는 일은 퇴직 이후 7년 만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학급 담임은 장학사로 발령받기 전인 1999년이 마지막이었으니 25년 만이다. 50년 전 첫 부임지에서 첫 수업을 준비할 때보다 더 묘한 기분이었다.
가야 할 학교를 네이버에서 ‘빠른 길 찾기’를 이용하여 찾아보니 집에서 버스로 1시간 10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늦지 않으려면 아침 일찍 서둘러야 한다.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행사 앨범에서 다양한 탄소 중립 실천 교육활동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의 선수 학습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고 그 사진들을 학습자료로 이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 학습은 퀴즈 형식으로 진행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 설명해 주는 것이 효과적일 것 같았다. 수업 자료도 그에 맞추어 준비하였다.
수업이 있기 하루 전날 보조 선생님을 만나 체험에 필요한 세제 가루(베이킹소다와 옥수수 전분이 혼합된 분말)와 향신료로 넣을 호박 가루, 천연 사포닌 성분이 들어있는 인삼꽃 추출물과 항균력이 뛰어난 편백 수와 글리세린을 학생 수에 맞게 챙겼다. 혼자 들기에는 무겁고 부피가 커 나누어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교실 바닥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도록 책상 위에 깔아 놓고 사용할 보자기를 준비하고 가루를 퍼 담을 때 사용할 작은 숟가락과 편백 수를 나누어 담을 계량컵, 종이 상자를 만들 때 필요한 이면지를 챙기니 크게 두 보따리나 되었다. 이론 수업 준비는 많은 시간이 걸려도 집에서 혼자 하니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체험을 위한 준비는 하루 전에 도와주는 선생님을 만나 수업 진행 과정을 알려 주고 재료를 준비해야 하니 신경이 쓰인다. 더구나 집이 센터에서 거리가 멀어 더욱 부담되었다.
강의가 있는 날이다. 아이들이 좋아할 밝은색 옷을 골라 입고 학교를 향했다. 교문 안에 들어서니 수업 중인지 조용했다.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깨끗하게 정돈된 현관을 들어섰다. 선생님인 듯 보이는 사람이 양손에 들린 큰 보따리를 보고는 교실까지 안내하겠다고 했다. 친절한 그를 보니 학교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50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나를 향했다. 짜릿했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름 소개에 이어 나는 ‘뚜벅이’고 보조 선생님은 ‘소나무’라고 환경과 관련지어 만들어진 별명을 이야기해 주면서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아이들의 눈빛이 흥미롭게 빛났다. 여기저기서 ‘뚜벅이!’, ‘소나무!’라고 불러 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아이들이 너무 귀엽다. 못 들은 척하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센터를 간단히 소개하고 학교 영상 앨범에서 찾아낸 탄소 중립 실천 활동 모습을 보여주며 기후 위기의 심각성과 탄소 중립 그리고 ‘그레타 툰베리’(스웨덴의 소녀 환경운동가)에 대하여 알아보겠다고 학습 목표를 확인시켰다. 본인들의 활동 모습이 화면에 나오니 그때 기억이 떠올랐는지 시키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발표하느라 바빴다. 나도 신바람 났다. 사진만으로는 아이들 선수 학습 수준을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화석 연료, 온실가스, 온실 효과, 지구 온난화, 이상 기후 현상, 탄소 중립 내용으로 준비해 간 퀴즈를 풀어가며 수업을 진행하였다. 부족한 부분과 새로운 내용은 보충해서 설명해 주었다. 이어서 툰베리가 2019년 유엔(UN) 총회에서 한 연설문 내용을 알아보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생각해 보게 하였다. 한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내게 다가왔다. 예쁘다고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목에 달린 강사 명패의 사진을 보고 언제 찍은 건지 지금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도 있었다. 8년 전 학교 앨범에 실린 사진이라 그럴 만도 했다. 지금 얼마나 늙어 보이는 것일까?
2교시가 시작되었다. 제로웨이스트(Zero waste)의 의미를 알아보고 자원순환 5단계인 감량화(Reduce), 재사용(Reuse), 재활용(Recycle), 썩히기(Rot), 거절하기(Refuse)를 설명해 주며 분리배출의 중요성을 힘주어 강조하였다. 이어 이면지로 상자를 만들고 친환경 주방 세제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어려워할 부분을 콕콕 집어서 설명해 준 탓인지 한 명도 실패하지 않고 제법 잘 만들었다. 완성된 상자를 신기한 눈빛으로 이리저리 살피며 만족해했다. 만들지 못하는 아이가 있으면 주려고 미리 준비해 간 상자는 필요 없게 되었다. 세제 만드는 순서를 자세하게 그림으로 그려 보여주었더니 별 어려움 없이 모두 잘 만들었다. 사용하기 편리한 동그란 모양을 추천했으나 나름대로 다양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만드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획일적인 교육’과 ‘교육의 평준화’에 대한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사용 방법을 알려 주고, 배워서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하며 수업을 마쳤다.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과 그들이 만든 결과물을 보니 뿌듯했다.
다음에는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지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차는 도심을 벗어나 꼬불꼬불 산길을 돌며 집으로 향하고 있다. 여러 동네를 지나는 동안 길가에 있는 쓰레기 수거함이 눈에 들어왔다. 지나치는 곳마다 한결같이 분리되지 않은 채 수북하다. 내가 사는 동네도 마찬가지다.
오래 전 이장이 마을 방송으로 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려야 하고 재활용이 가능한 것은 잘 분류해서 정해진 수거함에 모아야 한다고 안내하였다. 방송은 얼마 동안 매일 아침 반복되었다. 이장이 쓰레기장에서 지키며 일일이 단속도 하였다. 어느 날은 시시티브이(CCTV)가 보고 있으니 분류하지 않고 버린 사람은 양심껏 알아서 다시 종류별로 나누어 버리라고 겁을 주기도 하였다. 한동안 강력하게 분리배출을 강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자리 잡아 가는 듯하였다. 고향으로 내려와 쓰레기를 마구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 마음 편치 않았는데 이제 달라지는 것 같아서 기뻤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엉망이 되었다. 이장에게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니 아무리 잘해 놓아도 수거차가 한꺼번에 다 가지고 가기 때문에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이웃 동네도 그동안 헛수고 했다며 모두 안 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다. 어렵게 정착되어 가는가 했는데 도로 예전처럼 되다니. 어이가 없었다. 시간을 내서 우리 시 생활 폐기물 매립장엘 가 보았다. 겨우 열아홉 명이 시에서 나오는 재활용 쓰레기를 선별하고 있었다. 담당자에게 농촌 지역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물어보니 그대로 매립된다고 했다. “아! 이럴 수가!” 나는 매립 전에 어느 정도 선별되는 줄 알았는데.
오늘도 나는 아이들에게 자원순환을 설명하면서 쓰레기 분리배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아이들에게 부끄럽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에도 실천을 강조해야 하는데 낯이 뜨거워진다. 부족한 예산을 앞세우는 행정을 이해해야 하는 건가? 아이들이 어른들의 뻔뻔한 모습을 보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까? 정말 괴롭다.
버스에서 내려 동네 마을회관을 쳐다보니 이것저것 모두 섞여진 쓰레기가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쓰레기통이 보였다. 저 속에 내가 버린 쓰레기도 섞여 있겠지?
첫댓글 맞아요. 아이들에게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렇지만 대단하십니다. 페기물 매립장까지 가보시고------.
도시권에서는 쓰레기 분리가 잘되고 있지만 시골에 가보면 그러지 못한 것같아
걱정됩니다. 천연세제도 만드시고 선생님은 환경 운동가이시네요.
저도 그런 고민을 합니다.
광양시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순천도, 고흥도 다 그래요.
우리가 기껏 분리해봤자, 한 통에 막 섞어서 가져갑니다.
선생님의 열정에 감동합니다.
탄소 중립 강의를 들으러 가면 만들기가 포함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게 수업 내용과 상관없는 일회성 만들기(수업 참여자를 모으기 위한)여서 크게 실망했습니다. 선생님이 준비한 재료를 보니 다르다는 걸 알겠습니다. 좋은 일하시고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