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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모던포엠 200호 지령 기념에 부쳐--
한국문단의 변혁을 향한 시발점이 되길
시인 유창섭 (前 월간 모던포엠 편집 주간)
드디어 “월간 모던포엠“이 지령 200호를 발행한다!
월간지라는 모험에다가 정부의 지원도 없이, 단 한 번의 결번도 없이, 지령 200호를 발행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오늘날과 같은 문학적 토양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었다.
매월 원고를 청탁하고 모아서 선選하는 작업도 녹록치 않은 일이거니와 매월 발행하는 발행비와 매달의 힘겨운 운영비도 커다란 부담이었을 시대의 틈을 뚫고 여기까지 달려온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문학적 열정의 끈을 놓지 않고 무수한 경제적 희생과 열정의 소모적 희생을 바탕으로 우직하게 밀고 온 “월간 모던포엠”의 전형철(시인.평론가) 발행인의 결기結氣가 여기까지 오게 된 원동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우선 그 의지의 주인공인 전형철 발행인과 편집부 직원들과 독자 여러분들의 성원에 깊은 감사와 찬사를 보내고 싶다.
문학이란 하나의 소명이다.
누군가 시켜서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하고 싶다고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소위 “돈”이 되지 않는 황무지에서 그 토양을 갈아엎고 오랜 시간 동안의 인고의 세월을 건너 이루어낸 결과이기에 더욱 값지고 빛나는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런 역할의 중심에 서서 가진 가산을 탕진하면서도 지켜온 발행인의 고집스러운 도전을 “소명召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러한 소명의식 뒤에는 지나칠 정도의 시적 결벽증이나 고집스러운 시적문화의 발화를 위한 토양을 만들겠다는 발행인의 독설毒舌과 독자적인 행동은 하나의 신념이 되었고 그런 신념을 바탕으로 이어진 그의 행동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다.
이제 지령 200호를 발간함에 있어 “월간 모던포엠”이 지향해 나가야할 지향점은 무엇일까?
오랜 문단의 문제를 홀로 변혁시킬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 변화의 촉진자가 될 수는 없을까?
사회의 발전은 아주 작은 사건에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발전도 4.19 5.18 등의 사건에서 본 바와 같이 어떤 의로운 희생에 힘입은 바가 많았고, 사회적 이슈가 되어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국민들의 눈뜸도 세월호의 침몰로 커다란 변혁이 있었던 점을 생각해 볼 때, 우리 문단의 변화도 어떤 새로운 문학지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파도가 형성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작은 한 마리의 나비의 날갯짓이 날씨의 변화를 일으키듯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를 생각한다면 월간 모던포엠의 변신이 커다란 변혁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
이제 그러한 의미에서 월간 모던포엠이 시작하는 변신을 통해 우리문단에 고착화되어 온 여러 문제점들이 새롭게 조명되고 새로운 물결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문단이 가진 폐해를 변화시키고 그 폐해를 극복하는 모멘텀momentum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렇다면 우리문단에 널려있는 문제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하면 “패거리 문학”을 개선해야한다는 것이다. “패거리 문학”이란 그 유형별로 보면 몇 가지의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내용을 따로 따로 분리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1. 문단대표의 선출과 문단의 결성
문단의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중심이 되는 문인을 중심으로 서로 자리를 나누어 가지기로 약속하고 문단의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마치 정치에서 항용 등장하는 러닝.메이트running mate처럼 이해가 맞아 떨어지는 문인들과의 결탁에 의해 선출이후 서로 봐주기를 하며 문단의 예산이나 투명한 운영에 반해 편파적이거나 밀어주기를 하며 댓가를 주고받는 문화가 생긴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이것으로 문단이 정치화 되는 하나의 과정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반면에 선거에 패배한 문인들이 새로운 문단을 결성하는 바람에 그를 지지하던 문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패거리 문학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과거 문맥이나 인맥에 기댄 보수적 문단과 진보적 문단, 또는 사회성이 강한 문단 사이의 갈등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독선적인 이사장의 의견이 정당한 원칙도 없이 이사장단 분과회장 연석회의에서 논의도 없이 처리되어 집행되고 있다는 말도 무성하다. 그것만 보더라도 문단의 민주화는 말 뿐이라는 말이 나온다.
기관지인 문학지의 편집위원도 임원진과 아무런 협의도 없이 대부분 이사장의 측근 인사를 골라 쓰는데다가 편집위원회는 가동도 하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편집 발행을 함으로써 문학지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고 있어 다수 회원의 원성을 사고 있다.
많은 문인들이 발표할 지면이 없으므로 어려운 일일 수도 있으나 문학지를 두껍게만 만들게 되므로 작품성이 없는 전화번호부와 같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2. 문학 권력의 출현
기존 문인들이 창작과 비평사, 문학과 지성사, 문학동네 등 몇 개 출판사에서 문학 작품집을 발간하게 되면 그와 더불어 이름이 알려지고 그런 문학지에서 발간하면 그 후광효과hallo-effect를 누릴 수 있다고 믿음으로서 형성되는 출판사들의 문화권력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문예지끼리의 짬짜미로 인한 폐해도 심각해졌다.
작가들은 그런 몇 개의 문예지에 돌아가면서 작품을 발표하면 이름이 알려지고 유명세를 누릴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현상에 묻어가는 집단 지성화에 길들여져서 문예지들은 그러한 작가군을 놓고 서로 봐주기를 해 왔다.
그런 기회를 가지지 못한 문인들은 아예 끼어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적절한 평가를 받지도 못하는 형편이 되므로 자비 출판으로 작품집을 내는 것에 만족하고 마는 형편이다. 이 과정에서 몇 몇 문학출판사의 기업 외형은 커졌으나 문예지로서의 특색과 차별성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형상을 틈 타 전문적인 문학 출판사가 아닌 출판사에서도 그런 문학권력에 기생하여 책의 출판과 동시에 집중적으로 신문에 전면 광고를 내보내는 등 여러 신문 문화면에 기사가 나가게 하고 방송에도 신간 소개, 대담프로 등으로 작가와 작품을 띄우는 등 선전 홍보 수단을 총동원하여 자기 출판사에서 작품집을 출판하는 것에 유명세를 누리게 하는 출판사도 등장하고 있다.
3. 문학비평의 다양성 상실
본디 문학비평이란 작품의 문학적 가치와 새로운 실험에 대한 의미를 찾아내고 작품의 성취도를 평가하며 그 내면의 가치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평가를 겸하여 드러내는 것이어야 하지만 근래에는 그런 비평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저 서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봐주기 현상과 안면에 대한 비판이 서로를 불편하게 한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좋은 면만 부각시키는 현상이 잦아졌다는--두루뭉실한 비평만 남았다는--점이 우리문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주례사 비평은 대개 문학비평가가 의뢰인으로부터 얼마간의 원고료을 받고 문학작품에 대한 평론을 써주고 있어 나쁜 말을 하기 곤란해 쓴소리는 빼놓고 좋은 말만 늘어놓게 토양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분명히 좋은 작품은 아닌데도 좋은 작품인 것처럼 포장한다면 그것은 비평의 이름으로 독자를 기만하는 행위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를 포함하여 어쩌면 자유로운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크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문예지는 출판자본과 연결되어 있고 문예지는 문학상 수상 작전에 의해 문학상 수상은 판매 부수로 직결된다. 문학비평이 뒤따르는 문학상도 한 사람의 스타를 만들게 된다. 그렇게 하여 출판자본이나 작가, 비평가, 언론의 협력에 의해 문언유착과 비평이 연결되고 학연과 지연과 친소관계가 얽혀 비평의 현장은 시장 바닥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4. 신춘문예의 타락과 기능의 상실
문학적 열망을 드러내기 위하여 가장 선호하는 문학적 행사가 30여개가 넘는 신문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신춘문예제도이다.
이 신춘문예에 당선되기 위해 문학지망생들은 얼마나 많은 고뇌와 창작의 어려운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탁마해 왔을까?
그러나 현실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공정한 경쟁과 높은 문학적 가치의 성취란 모두 허사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1) 당선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금적대가를 제공하여야 한다거나, 그 신문사에 광고를 약속해야 한다거나 하는 선택도 줄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기도 했지만 신춘문예라는 그런 입맛에 맞는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 동안 창작 수업을 통한 훈련을 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내밀한 약속도 해야 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말도 아닌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2) 함께 활동한 창작 동아리의 작품 중 지도 작가나 지도교수가 짜깁기해 준 작품이 신춘문예작품으로 당선되었다가 당선이 취소되는 사례도 있다는 걸 보면 신춘문예제도 틀 안의 세계란 요지경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다.
(3) 게다가 신춘문예작품 당선작에 거의 10여년간 여러 가지 유사한 시재詩材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유사한 소재를 다루어 끼리끼리 주제를 놓고 소통하며 시창작을 하고 있으며 지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유사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을까?
(4) 심사위원들이 선選한 작품들이 모두 그에 걸맞는 작품 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작품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그러한 혐의를 받기에 충분하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문은 넘치고 남는다.
(5) 신문사는 신문사대로 심사위원들의 선정에서 편협한 면을 드러내고 있다.
수십 년간 신춘문예작품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이가 지금도 건재하고, 바뀌었다고 해도 그 다음에는 그 심사위원이 얼마나 더 장기집권(?)을 하게 될지도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심사위원에 새로이 편입된 심사위원들도 한국문단을 위해서 몇 푼의 심사비를 탐하지 말고 정당한 심사에 대해 겸허해야 할 것이다.
(6) 과연 심사위원들의 작품선정에는 외압이 없었을까? 아니면 교차 청탁에 의한 봐주기 현상은 없었을까? 작품의 선정에 그 수많은 작품을 정직하게 심사숙고할만한 시간을 주기는 하였을까?
필자가 지난 12년(2009-2020년)간 “월간 모던포엠“에 연재를 하여 온 “신춘문예 평설”을 통해서 많은 지적과 담론을 논의하며 보아온 신춘문예제도는 앞으로도 그런 문제에 대한 변화가 제시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신문사와 심사위원, 시창작지도 교수라는 연결고리로 보면 이도 또한 하나의 패거리문학의 징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5. 등단제도의 운영실태
문학운동으로 포장한 일부 문예지는 기업화가 되어 1년에 수십여 명의 등단자를 배출하며 등단 장사로 수입을 올려왔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등단시켜 주면 보통 책을 구입하게 하고 등단 상패 및 수고비 회식비 행사비로 수백만 원씩 낸다는 소문도 들린다.
같은 문예지 부설로 문학수강을 했거나 등단한 사람에게는 문학회의 동인회를 만들어 입회비와 회비를 받기도 한다.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면 자문위원 고문 등의 감투를 주어 행사 시 찬조금 협찬금을 거두어 문예지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하였다는 것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일부 문학지는 그 운영이 어려워서 회피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만 보다 발전적인 방향에 대한 고민이 없이 너무 지나치게 그런 상황에만 기대어 왔다면 반성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6. 문학상의 범람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많은 문학상에 대해서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문학상 제도를 가진 곳은 문학상을 주도하는 재단의 출연금이 충분하여 잘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문학상을 줄 테니 찬조 후원할 수 있느냐는 식으로 거래를 한다거나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자기 조직이 거대해지면 패거리 문학단체로 문단 단체장에 도전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며 문단 세력으로 발전되어 문단을 분열하고 문학작품의 평가와는 한국문학을 황폐화시킨다는 소리도 들린다.
문학상 만들기에는 기자들만 동원되는 것이 아니고 비평가들이 다시 등장하여 서평과 해설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는 광고와 홍보전략의 선전자료로 이용되며 문학비평은 상업주의적 문학출판 자본에 묶이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그러한 문학상에 대한 투명성이나 심사위원, 문학적 패거리 형태로 봐주기를 하면서 서로의 연결고리를 가지게 되어 그런 문제에 대해 자유로운 문학상은 그렇게 많아보이지는 않는다.
이상에서 대강 6가지 형태로 묶어 본 문제점들은 앞으로도 우리 문단이 해결해야할 문제로 계속하여 운위云謂될 문제로 남아있으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러한 때에 “월간 모던포엠“의 지령 200호를 기념으로 새로이 바뀐 ”월간 모던포엠 문학상“이나 ”모던포엠 우수작품상“ ”글로벌 창작 문학상“ ”모던포엠 신인 문학상“에 각각의 적지 않은 상금과 저서출판금을 지원하는 제도를 실행하겠다는 사고社告를 내어 천명한 것은 엄청난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며 한 시대의 흐름을 주관하고 보다 충실한 문학지로 거듭 태어나겠다는 ”문학적 약속“에 다름이 아니라고 본다.
문학적 성취에 대한 징표로서 상금이나 저서출판비용을 감당하겠다는 월간 모던포엠의 의지표현은 이 금전만능주의적인 시대적 상황을 피할 수 없어 결정한 고육지책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 이것은 감당해내기 어려운 약속이지만 이 시대가 요구하고 문학지망생이 그러한 선택에 호응한다는 점을 수용하지 않으면 않되었다는 필연성에서 일단 유용하다.
이제 편집위원들의 면면도 매우 전진적으로 보완하였고 그 분들의 의지도 단단하여 기대를 걸게 한다.
과거에도 지방문학에 지면을 할애하여 주었지만 앞으로도 아직은 충실하지 못한 지방문학에도 관심을 가져 주기를 부탁드린다.
그리고 작품에 대해 편견없이 공정하고 심사숙고하여 충분한 논의를 거쳐 좋은 작품을 탄생시킴으로서 문단에 획기적 바람을 불러와 적어도 패거리 문학에서 자유롭고 독창적인 문학적 풍토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앞에서 언급한 부분 부분에 일부 연결되는 일들이 과거에 약간의 흠결이 있었다면 이번 기회를 출발점으로 한국문학의 토양을 바꾸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득하다.
아직 무르익지 못했지만 새 시대의 인터넷 문화에 맞는 새로운 문학적 형식과 내용에도 눈길을 주어 미래에 대한 한국문학의 지평을 열어가기를 기대하며, 새로운 문학적 토양을 만들어 보겠다는 “월간 모던포엠”의 발걸음에 탄력이 붙어 한국문단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원하며 다시 한 번 더 “지령 200호”의 발간을 축하한다.
첫댓글 200호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말씀 배독하며 월간 모던포엠의 무궁한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