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곁에 두고 있어 나는 그 친구의 얼굴만 봐도 마음이 환해진다. 그 친구의 주변은 이런저런 친구들이 갯벌의 고동처럼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웃음이 많아 주변 친구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가을 산에 떨어진 밤을 주워 담듯 담아 와 친구들 허허로운 가슴에 웃음으로 채워준다.
우리들은 친구가 입을 열면 먼저 웃을 준비부터 한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였다. 쉬는 시간에 한 개비 남은 담배를 나눠 피우기 위해 수업 종이 울렸지만, 한 개비의 주인이랍시고, 친구가 먼저 화장실에서 빨다가, 다른 친구가 뒤이어 몇 모금을 빨았고, 마지막으로 친구의 차례인데 친구는 먼저 피웠던 친구들에게 야속함을 느꼈다고 했다. 몇 모금을 빨고 나니 손가락이 타들어 갈 만큼 피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야말로 입맛만 버렸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수업을 들어가다 화장실에서 담배 연기가 무명 실타래처럼 흘러나오자, “이 녀석 딱 걸렸다 싶었고 야, 너 누구야 하고 고함을 치자”, 친구는 다른 친구가 장난하는 줄 알고 나 누군데 왜, 다 피우고 갈 테니 기다리라고 하며 여유까지 부렸다고 했다. 친구로서는 몇 모금밖에 안 남긴 친구가 괘씸해 볼일 다 보고 화장실 문을 열자, 문밖에서 선생님은 악어 입처럼 벌리고 서 있고, 호흡은 쫓기는 사자처럼 거칠었다고 한다. 친구는 순간에 양쪽 뺨을 강타당했다고 했다. 우리들은 기대한 만큼 웃었다.
친구가 술을 좋아해 걱정되지만, 그 친구가 하는 일은 다 좋은 일 자신의 이익 되는 일에 냉큼 나서는 법이 없다. 행여나 누군가 챙겨 주려 하면, 그 친구는 무슨 소리냐며 다른 친구에게 되레 들이민다. 우리들은 그 친구의 그런 모습을 보며, 서로 간에 시선 마주치는 일을 피하며 가슴속 깊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음악을 좋아하고, 유전적으로 가창력이 뛰어나 그 친구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강퍅한 마음은 고요함과 풍요로움으로 채워준다. 친구는 욕심스러운 마음에 끌려가는 흔들림이 적은 친구다. 자신의 것을 나누는 일에 인색함이 없다. 친구는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고향으로 귀향했다. 항상 여유가 있는 친구는 부모가 물러준 집도 자신의 마음처럼 평온하게 가꾸고 있었다. 마당에는 짙은 푸름을 마음껏 내뿜은 나무들이 식구처럼 마주 보고 있다. 둘러만 보아도 마음에 위안이 된다. 처마 밑에는 백 년도 넘었을 만큼 한 나무가 자신만의 몸체를 간직한 채 버티고 있다. 오랜 세월을 품은 나무의 품격이 고요히 전해졌다. 나무를 불편해하며 때론 다른 생각도 하련만, 친구는 서로의 존재를 충분히 인정하고 싶어 하는 가슴을 지닌 사람인지라, 제비집까지 고스란히 자리를 받들어 놓았다. 마당 끝에는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채소도 자라고 있었다. 부추, 상치, 당근, 등이 오순도순 주인 마음처럼 부드럽고 곱은 빛이다. 마당을 서성이다 보니 학창 시절을 돌려받은 기분이었다. 어디선가 친구들이 나를 부를 것 같아 대문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거기엔 석양이 고요히 일과를 마무리하듯 책장을 덮는 중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녹아 있는 나무로 지은 곳간에는 부모님이 쓰시던 망태기, 농기구들이 가지런히 있다. 하나하나 쓰임이 다른 농기구들이 나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일손을 놓고 보니 일하는 법을 잊어 버렸네요.” 하며 말끔한 모습으로 가지런히 서 있다. 친구 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소금 일하던 사진까지 반듯하게 안방 벽에 붙어 있다. 한 시대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 같다. 한 가정의 역사가 집안 곳곳에 펼쳐져 있다. 한 장의 사진 속 인물들을 보면 한 시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친구가 살고 있는 고가를 통해 지난 유년 시절을 여행 다녀온 기분이다.
그 친구는 부모님이 물러주신 저수지 아래 논을 물려받았다며, 가을 추수 후 형제는 물론 친구들에게도 가을 선물이라며 보내왔다. 그런 친구가 이번에는 벼농사가 한 가마니도 찾아올 것이 없이 오히려 십이만 원을 농사 기계를 위탁했던 이에게 가져다주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농담하는 줄 알고 빨리 내놔, 큰소리까지 쳤다고 한다. 장난스러운 그이의 호통에 경비 대금 내력을 미안스러운 듯 주춤주춤 내미는 것이다. ‘허허’ 웃음 밖에는 안 나왔다는 거다.
작년에는 이른 벼를 심어 들판에서 제일 먼저 벼가 익다 보니 전국에 사는 새들이 다 모여 지지배배 먹어대는 데 막을 길이 없었단다. 하는 수 없이 모여드는 새들에게 고스란히 가을 추수를 밀어주며 결심했단다. 올해에는 작년처럼 새에게 다 빼앗기지 않겠다는 심산으로 느지막하게 심었다. 작년에 맛 들인 새들 “미안하다 나도 먹어야 살지!” 했다.
부모님이 저수지 바로 아래 논을 물러주신 탓에 모내기 철에 물 걱정은 없었다. 올해는 모내기 철 무렵 가뭄 탓에 물꼬 파동을 겪었단다. 친구가 논에 물꼬를 열어놓으면, 어느새 물꼬를 다른 이들이 막아 버렸다. 아무리 저수지 바로 아래 논이라지만, 먹어야 맛을 알 지하는 다소 서운함도 생겼다.
한결같이 “너는 저수지 아래이니 천천히 되라며, 억지 수도자로 만들더란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건만, 애라, 내가 조금 덜 먹으면 돼지 하는 마음으로 포기를 하고 뒤돌아섰다. 남들은 눈에 불을 켜고 물꼬를 관리하는데, 저수지를 옆에 두고도 못 넣다니 싶으면, 다시 물꼬를 막아야 하나 마음이 수시로 불쑥불쑥 바뀌더란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형님들이고, 동생들인데 어떻게 물꼬 하나에 험상스러운 표정으로 덤벼드나, 차라리 보지 말자며 삽자루를 외면하고 다른 일을 만들어 마을로부터 멀어졌단다. 심란한 마음에 파동을 잠재우기 위함이었다고 했다.
계속 이어지는 물꼬 싸움에 친구는 당분간 논에 가는 일을 포기했더란다. 그러다 보니 너무 늦어 수확에 커다란 차질을 빚게 되더라고 했다. 그래도 다행이지. 농사가 생계가 아니니 내년에 다시 잘 지어 보내야겠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친구 논에 물이 들어가는 순간 물꼬를 막을 때는 언제고 인제 와 세상천지에 저수지 바로 아래 논에서 물이 없어 모내기를 못 한 인간은 너 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놀린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비록 쌀독에 쌀은 못 채웠지만, 친구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 가슴에 넉넉함으로 채워주는 사람은 너 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곡식은 마음만 먹으로면 채울 수 있겠지만, 허전한 이웃들의 가슴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오로지 그대뿐이라고 했다. 친구들은 이번에는 쌀가마니는 못 받아 가지만 그 친구의 넉넉한 마음을 받아 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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