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韓末의 風景 (9) : 옛 다리. 무지개다리. 외나무다리 (사진 44장)
♠ 옛 다리(橋) ♠
▲ 계곡에 놓인 섭다리를 건너는 여인들
▲ 강에 놓인 섭다리
통나무로 기둥을 박고 그 위에 잎나무, 잔가지 따위를 얹어 만든 임시 다리.
▲ 땅속에 묻힌 청주 남석교(南石橋)
충북 청주 석교동에 있던 돌다리. 청주 읍성의 축조와 말접한 관련이 있는
교량이라고 볼 때 대략 고려시대에 가설되었으며 무심천(無心川) 범람 때마다
유실되는 피해가 발생함으로서 수차례 개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1930년대에 무심천 수로가 현재와 같이 변경되면서 교량으로서의 역활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주변의 무심천 하상지역이 매립되어 시장이 변모하면서
남석교 역시 조금씩 매몰되어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 서울 청계천 수표교(水標橋). 1900년
▲ 구한말의 수표교와 수표석
세종 23년(1441) 다리 서쪽 중앙에 나무로 수표(水標)를 만들어 세우면서
다리 이름을 수표교라 불렀고, 이를 수표다리라고도
하였다. 이 수표는 성종 때에 돌로 만들어 세웠으며, 영조 36년(1760)
대대적인 개천 준설 후에 수표석을 다시 세웠다.
영조 때 준천(濬川) 이후 수표교 교각에 ‘庚辰地平’ 네 글자를 새겨서
이후 개천 준설의 표준을 삼도록 하였다.
▲ 복원된 청계천으로 돌아오지 못한 장충단공원의 수표교
1958년 청계천 복개가 시작되면서 수표교는 1959년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다.
2005년 9월 30일 청계천이 복원되면서기존의 수표교를 청계천으로 옮겨오지
못해 임시로 종로구 관수동 105번지와 중구 수표동 54번지 사이 청계천에
다리를 가설하고 수표교라 부르고 있다.
▼ 서울 성동구 중량천 살곶이다리(箭串橋:전곶교)
▲ 조선시대의 살곶이다리(箭串橋) 풍경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널다리로 조선시대 한양과 동남지방을 연결하는
주요통로로 사용되었다.
▲살곶이다리를 통과하는 순종황제의 국장행렬.
(1926년 6월 10일)
▲ 살곶이다리 (箭串橋) - 사적160호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다리 중 가장 규모가 큰 다리로 모두 64개의
돌기둥을 사용하여 세워졌으며, 돌기둥의 모양은 흐르는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마름모형으로 고안되었다.1920년대 집중호우로 다리의
일부가 손상되어 1970년대에 다시 고쳐 지었으나 원래의 모습과는 차이가 난다.
▼ 개성 선죽교(善竹橋)
▲ 개성 선죽교(善竹橋)
옛 이름은 선지교이다. 개성시 선죽동 자남산 동쪽 기슭의 작은 개울에
있으며,919년 고려 태조가 송도의 시가지를 정비할 때 하천정비의 일환으로
축조한 것이다.선죽교는 김잠곡(金潛谷)의 「송도구지」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려말 정몽주가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 등에 의해
이곳에서 철퇴를 맞아 숨진 사건 이후에 유명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1780년(정조4) 정몽주의 후손인 유수 정호인(鄭好仁)이 옛 다리의 주위에
돌난간을 설치하고 별교(別橋)를 세워 보호했다.다리 동쪽에는 선죽교라는
3자가 한석봉의 글씨로 씌어진 비가 있고, 다리 서쪽에는 비각 안에
1740년(영조16) 어제어필의 포충비와 1872년(고종9) 어제어필의 표충비가 있다.
▲ 1920년대 일제강점기 개성 선죽교 사진엽서
▲ 선죽교에 남아 있는 핏자국과 정몽주 초상화
▼ 전남 함평 고막천 평석교(平石橋 : 널다리). 보물 1372호.
▲남한에서는 유일한 고려시대 다리로 1274년(원종 15)
고막대사(古幕大師)가 가설하였다고 전해진다.
문헌에는 고막교(古幕橋)라 기록되어 있으며 구전(口傳)으로는
'독다리'라 불리고 있다.
평석교(平石橋)는 우리말로 '널다리'다. 넓직한 판돌을 깔아 그렇게 부른다.
하천바닥에 교대(橋臺)를 튼튼히 조성하고 그 위에 교각을 세운다.
이 교각 위에 멍엣돌을 건너지르고 다시 그 위에 귀틀석을 놓고 판돌을
평평하게 깔아 만든 다리다.마치 우물마루를 까는 것과 같다.
▼ 충남 강경 미내다리(渼奈橋)
다리 옆에 있던 ‘은진미교비’는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 중인데,
비문에 의하면, 조선 영조 7년(1731) 주민의 필요에 따라 강경촌 사람인
송만운이 주도하여 이 다리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수로정비에 따라 물길이 바뀌어 현재는 제방 제내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98년 완전해체하여 2003년 보수정비하였다.
▼ 경남 창원 주남돌다리
경남 창원의 주천강(注川江)에 가설되어 있는 주남돌다리는
'주남새다리'로도 불린다.창원 동읍의 판신마을과 대산면의
고등포마을을 이어주고 있는 주남돌다리는 800여년 전 강 양편 주민들이
정병산 봉우리에서 길이 4m가 넘는 자웅석(雌雄石)을 옮겨와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이 있을 뿐 건립시기,경위 등이 확실치 않다.
1967년경 집중호우로 붕괴되어 강 중간에 교면석(橋面石) 1매와 이를
지탱하는 양쪽의 교각석 (橋脚石)만이 온전하게 남아있던 것을
1996년 창원시에서 복원 건립하였다.
♠ 무지개다리 : 虹橋(홍교). 虹蜺(홍예)♠
▼ 경남 창녕 영산만년교(靈山萬年橋) : 보물 제564호
▲ 1960년대의 만년교
▲ 2009~2010년, 완전해체 보수정비를 거친 현재의 만년교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 있는 영산만년교(靈山萬年橋)는
1780년(정조4) 세워진 무지개다리(虹橋)로서 영원히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뜻에서 ‘만년교’라 불렀다. 또 남산(南山)인 함박산(咸朴山)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에 놓인 다리라고 하여 ‘남천교(南川橋)’라고도 하며,
다리를 놓은 고을 원님의 공덕을 기리고자 ‘원다리’라고도 부른다.
만년교 주변에는 1780년 당시 쌓은 목적, 시주자, 공사 감독자,
석공 따위의 이름을 기록한 “남천석교서병명(南川石橋序幷銘)”이라 쓴
비석과 “만년교”라 쓴 빗돌 2기가 세워져 있는데
이 가운데 하나는 13살 난 글씨 신동이 쓴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 전남 순천 선암사 무지개다리(虹橋. 虹蜺)
선암사 가는 길에 건너는 두 개의 무지개다리는 대소의 차이가
있을 뿐 축조방법이나 겉모습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작은 무지개다리는 큰 무지개다리(승선교)에 비해
그리 주목받지 못하나 승선교에 못지않게 자연스럽고 튼실한 다리이다.
이 다리로 들어서야 비로소 승선교의 우아한 자태를 볼 수 있다.
▼ 선암사 승선교(昇仙橋) :보물 제400호
승선교는 우리나라의 무지개다리(홍예) 중
가장 우아하다는 평을 듣는 다리이다. 반원형의 승선교가 물에 비치어
완전한 원형을 이루고, 그 안에 강선루(降仙樓)가 어우러진 풍경은
선암사의 손꼽히는 볼거리 중 하나이다.
승선교는 길이 14m, 너비 3.5m로 길게 다듬은 30여개의
장대석을 연결하여 홍예를 드리우고 홍예석 양쪽에 잡석을 쌓아
계곡 양쪽 기슭의 흙길에 연결시켰으며, 위쪽에는 흙을 덮어 길을 만들었다.
▼ 전남 여수 흥국사 무지개다리(虹橋):보물 제563호
다리 길이 40m, 너비 3.45m, 높이 5.5m. 현존하는 홍예형 돌다리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시냇가 암석 위에 편단석을 놓고 그 위에 같은
모양의 86개 석재를 중첩시켜 홍예를 구성하고, 앞뒤의 양측 벽은
자연석을 쌓아 완만하고 긴 노면을 이루었다.
▲(上)머릿돌 끝에 새겨진 용머리.
(下)다리 입구에 놓인 귀면석(鬼面石)
▼충북 진천 농다리(籠橋)
충북 진천 굴티마을 앞을 흐르는 세금천에 놓여 있는 다리로
작은 돌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 올린 후, 지네모양을 본떠 길게 늘여
만들어졌으며, 총 28칸의 마디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 징검다리 ♠
▼ 순천 송광사(松廣寺) 징검다리
♠ 외나무다리 ♠
▼ 경북 안강 옥산서원(사적 제154호) 세심대 옆 외나무다리
옥산서원은 이언적(李彦迪)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1572년(선조 5) 경주부윤 이제민이 지방 유림의 뜻에 따라 창건했다.
1574년 사액 서원이 되었다. 1871년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 玉山書院에서 獨樂堂으로 가는 길의 외나무다리
▼ 경북 안동 만휴정(晩休亭) 외나무다리
만휴정은 조선전기의 문신 김계행(金係行:1431~1517)이 말년에
독서와 사색을 위해 지은 별서이다.
그는 청렴한 관리로 "내 집에 보물이 있다면 오직 맑고 깨끗함 뿐이다"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만휴정은 폭포, 계류, 산림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명승지인데, 요즘은
드라마<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더 유명해졌다.
▼ 충남 서산 개심사(開心寺) 외나무다리
개심사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되는 곳은 오솔길 모퉁이를 돌아서면
보이는 긴 네모꼴 연못이다.연못 왼쪽으로 경사진 흙길도 있지만
연못 가운데로 난 외나무다리를 건너 층층계단을 오르는 것이 제 길이다.
▼담양 소쇄원(瀟灑園) 두 개의 다리
▲ 담장 밑으로 흘러들어 외나무다리를 지난 물은,
가파른 바위를 씻어 내린다.
▲ 김인후의 '소쇄원 48영(瀟灑園 48詠)' 중에서
제3영 危巖展流(위암전류) 가파른 바위에 흐르는 물
계류수석래 (溪流漱石來) : 흐르는 물은 바위를 씻어 내리고
일석통전학 (一石通全壑) : 계곡이 모두 한 바위로 통하네
필련전중간 (匹練展中間) : 흰 명주 필을 그 사이에 펼친 듯
경애천소삭 (傾崖天所削) : 절벽을 기울여 하늘 자리를 깎은 듯
▲ 광풍각 아래 계곡에 걸려있는 다리 : 透竹危橋(투죽위교)
▲ 김인후의 '소쇄원 48영(瀟灑園 48詠)' 중에서
제9영 透竹危橋(투죽위교) 대숲 사이로 위태로이 걸쳐진 다리
가학천수죽 (架壑穿脩竹) : 골짜기에 걸쳐서 죽림으로 뚫렸는데
임이사욕부 (臨危似欲浮) : 높기도 하여 하늘에 둥둥 떠있는 듯
임당원자승 (林塘元自勝) : 숲 속의 연못 원래 빼어난 승경이지만
득차경청유 (得此更淸幽) : 다리가 놓이니 더욱 맑고 그윽하구나
출처:카페-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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