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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인데 오전예배는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후예배는 부모가 자녀 교유를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에베소서 6:1에 [또 아비들아~]라고 시작합니다. 아비들은 아버지를 말하는데 그 당시에는 가부장적 사회이기 때문에 아버지를 대표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양육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세상에서도 부모들이 얼마나 교육열이 대단한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일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을 가르치고 지식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닌데 지나쳐서 지식에 치우치고 인격교육과 인품에 대해서는 좀 약하지 않나 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럼 어떻게 자녀들을 양육해야 하는가, 오늘 이 에베소서 6:4 한 구절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4]
오늘 이 말씀으로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첫째,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4후반]
여기서 훈계는 ‘파이데이아’입니다. 이 말은 ‘파이디온’이라는 어린이 뜻과 ‘듀오’라는 교육이라는 단어가 합성어 된 말입니다. 이 말은 ‘어린이 교육’이라는 뜻입니다. 아이들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즉 아이들은 가르치며 양육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유태인의 자녀 교육에 보면 어릴 때 성경을 배울 때 성경에 꿀을 발라 주어서 가르친다고 합니다. 성경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아이들이 느끼고 배우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 처음 학교에 가거나 책으로 배울 때에도 책에 꿈을 발라서 준다는 것입니다. 배움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배우고 자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우리나라는 오늘날 보편적으로 의무적 교육이 되어 기본적인 지식을 배우고 자랍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한글이 쉽습니다. 그래서 일찍 다 글을 배우고 자랍니다. 그리고 특별히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들고 자라기 때문에 일찍 스마트한 문명을 배웁니다.
그러나 세계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직 문맹이 많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백성들이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글자가 어려워서 어른들도 글을 모르는 나라들도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 아직 한문은 말 할 것도 없고 한글을 잘 모르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지식을 배우는 것이 이렇게 좋은데 여기서 말하는 교훈은 주의 교훈을 말합니다. 주님이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신명기 6장을 쉐마장이라고 합니다.
(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명기6:4~5]
라고 했습니다.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으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6)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명기6:6~7]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은 마음판에 새기고 기억하여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집에서든지 밖에서든지 이러날 때든지 잘 때든지 언제, 어디서나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 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고 또 그 아이들이 말씀을 배우고 자라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하나님의 복 받는 자녀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오죽했으면을 말씀을 글을 써 미간에 붙이거나 손목에 붙이거나 대문에 글을 써서붙이고 집 안에서 볼 수 있게 붙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기록하여 통을 만들어 그 안에 넣고 통에 줄을 달아서 손목에 시계처럼 매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마에도 달고 다니는 것입니다. 집에도 들어갈 때 나올 때 보도록 집 안 밖에 성경구절을 기록하고 매달아 두는 것입니다. 그 말씀 한 구절이 자녀의 평생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말씀을 배우고 자라면 아이들은 금방 자랄 것인데 성인이 되어서 스스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신명기 28장 말씀처럼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고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 열방과 세계 가운데 우수한 민족으로 성장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마치 야곱이 요셉에게 복을 빌어줄 때 요셉이 창대하여 그 나무의 가지가 담장을 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집의 나무가 커서 자라서 그 가지가 담장을 넘듯이 사람이 성장하여 사회에 나가고 해외로 뻗어가고 열방과 세계 가운데 훌륭한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신약성경에도 보면 주님이 가르쳐 주신 교훈이 있습니다. 산상수훈을 비롯해서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잘 가르쳐서 양육해야 합니다. 때로는 말씀을 가르칠 때 훈계를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4에 후반절에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훈계는 ‘’누데시아‘라는 말인데 뜻이 ’경계‘라는 뜻도 됩니다. 이 단어는 가르치고 훈육하다는 의미도 되고 때로는 경계하라는 의미도 됩니다.
즉 아이들을 가르칠 때 때로는 징계가 필요한 것입니다. 교육에는 ‘채찍과 당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할 때에는 칭찬을 하고 상을 줍니다. 그러나 잘못했을 때에는 당연히 경계하여 교훈하고 심하면 책망도 하고 징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잘못을 하였는데도 ‘오냐오냐’하여 키우면 이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어 죄악을 짓는데도 아무 마음의 거리낌도 없이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경우 학교 폭력이 일어나는데 때린 아이들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그것이 잘못되었으니 진심으로 사과하고 또 다시는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교육과 훈육을 했으면 그 사람은 자라서 바른 사람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자녀가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것을 무마하기만 바쁘고 자녀를 훈육하지 않아 나중에 더 큰 죄악을 짓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잠언서에 부모의 회초리는 귀신도 쫓아낸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의 매가 때로는 아이의 악한 생각을 멀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체벌을 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엄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자녀를 혼내면 안 됩니다. 아주 정당하게 종아리를 때리거나 하여 훈계할 필요도 있습니다. 아니면 다른 징계로 훈계하기도 해야 합니다. 벌점을 주어서 용돈을 깍거나 또는 잘못한 점에 대한 벌을 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다 성장하여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해나갈 때까지 양육이 책임이 있습니다.
이제 성도들 가운데 나이가 많고 자녀들이 다 성장하여 어른이 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 자녀들이 이제는 알아서 믿음과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사회적 경험이 없고 인생을 다 잘 모릅니다. 부모 세대는 지난 세월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를 통해 인생의 노하우와 지혜가 있습니다.
그럴 때 자녀들에게 훈육하는 것이 아니라 충고 혹은 좋은 제언을 해 줄 수가 있습니다. 주체는 자녀들인데 부모는 어른으로서 좋은 말을 해줄 수가 있습니다. 그것도 성경 안에서 주의 교훈과 신앙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해줄 때 자녀들은 아직 젊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멘
둘째,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기쁘게 하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에베소서 6:4 전반부]
부모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노엽게 하다는 말은 이 말은 ‘거슬러 분노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즉 자녀들을 화나게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많은 경우 부모가 자녀들을 교육할 때 아이들이 화가 나도록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무슨 일이든지 기쁨으로 감당하게 해야지 화가 나도록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이 분노조절이 안 되어 사회적으로 좋지 않게 성장할 수가 있습니다.
부모가 화가 난다고 해서 자녀들에게 화풀이를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심지어 싸웠다 할지라도 자녀들에게는 기쁨을 대하여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에게서 억울하게 불이익을 당하였다고 생각 될 때에 자녀에게 화풀이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남편이 불륜으로 아내가 그것을 알게 되었으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그래서 어른들이 문제를 풀면 될 것인데 그렇지 못하고 아내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남편을 생각하고 자녀에게 분노하고 화를 쏟아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는 이유없이 화를 당하고 욕을 들으니 이해가 안 되고 또 스스로 분노가 일어나서 아이가 빗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가 공부가 되겠습니까! 학교 교육이 머리에 들어오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경우 부부가 화평하지 못해서 자녀들에게 악영향으로 자녀들이 고통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사회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녀를 기쁨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오면 얼마나 기쁜지 즐거워 하면 자녀가 생각할 때 우리 부모님이 이렇게 좋아하는구나 생각하고 부모님을 기쁘게 하려고 더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겠습니까!
자녀들이 좋은 일을 하고 훌륭한 일을 했을 때 아주 칭찬을 해주고 자랑스러워하면 자녀들은 더 마음이 즐겁고 기뻐서 훌륭한 일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녀를 귀하게 여겨서, 우리의 자녀이기도 하지만 주의 자녀인데 주의 자녀로서 합당하게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아세례를 줄 때 부모에게 문답을 합니다. 물론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부모가 대신 문답과 교육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유아세례의 의미가 부모로서 아이를 신앙으로 잘 양육하겠다는 결단이 중요한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자녀를 주의 말씀과 사랑으로 양육해야 할 책임이 부모에게 있는 것입니다. 아멘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3:16~17]
우리에게는 좋은 것이 있습니다. 성경이 있습니다. 이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기에 아주 훌륭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이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어른이 되어서도 이 말씀을 떠나지 않고 믿음과 신앙을 따라서 의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가르치고 양육하는 방법도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대로 주의 사랑으로 아이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오늘날 뉴스를 가끔 보면 아이들을 때려서 멍이 들고 자녀폭력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계부 혹은 계모가 그렇게 하는 경우입니다. 자기 핏줄이 아니니 사랑으로 대하지 않고 멍이 들도록 때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분을 푸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자기의 핏줄임에도 재혼한 배우자 때문에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멍이 들도록 하는 경우가 흔히 뉴스로 나옵니다.
오래 전에 유럽에 이런 일들이 있어서 경찰이 부모로부터 아이들을 격리시키고 보호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미 우리나라라 그런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국가와 사회가 상처받은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그들을 치유해주지 않은 그 상처가 골마서 훗날 터지면 미국에서 일어나는 총기사건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회는 자기 자녀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원활하게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 한국의 자녀들이 사랑받고 건전하고 축복받으며 성장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정치계는 정치적으로 교육계에는 교사들이 사회에는 공동체적으로 합심하여 좋은 일들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아멘
성도들 가운데 이제 나이가 많고 자녀들은 다 성장을 했을 경우도 있습니다. 그 때에는 자녀들이 이제 사회에 주축입니다. 그들을 축복하고 그들에게 좋은 조언을 해 줄 수가 있습니다. 이제 사회의 주역은 그들입니다. 부모세대는 이제 늙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젊은 세대가 사회와 가문에서 잘 이어가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 옛날 방식으로 자식들을 따라오도록 고집하거나 억지로 지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따라올 자녀들이 아닙니다. 그들을 배려하고 그들이 스스로 사회에서 잘 나아가도록 후원하고 격려하고 중보기도 해야 합니다.
주축은 그들이지 부모세대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부모세대가 손을 놓아버리면 안 됩니다. 그들은 아직도 경험이 부족하고 인생을 다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경험을 한 부모세대가 잘 조언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적으로 신앙으로 부모세대의 좋은 신앙으로 도움을 줄 수가 있습니다.
결론) 자녀를 기쁘게 하고 축복하라!
자녀들이 마음껏 자신의 달란트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축복해주어야 합니다. 항상 주 안에서 기쁨이 충만하도록 배려해 주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주 안에서 믿음으로 감당하도록 코치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자녀를 억압하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뒤에서 후원해주고 기도해주고 격려해주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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