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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5주일 [온유하고,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할 그리스도인] 김성현감독
엡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온유한 자가 되기 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속한 자들, 하늘에 속한 자들 본유의 성품이 온유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 죄로부터 우리를 잘 보호하고, 영혼이 타락하지 않고, 거룩하게 지키려면, 온유한 성품이 너무나 적합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착한 성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온유함은 선한 성품이다.
선한 성품을 가지면, 세상에서는 얕잡아 보일 수 있다.
[구원받은 자의 죄를 이기는 성품]
세상은 온유함보다 강한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개념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맞추어 온유한 성품을 가져야 한다.
죄의 속박에서 빠져나온 상태는 온유함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온유함 자체가 그 영혼을 타락에서 보호하는 장치가 될 것이다.
우리를 악에서, 또는 죄에서 보전하는 것에서 온유함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므로, 교회를 지키는데 절대 필요한 요소다.
그래서, 모두 가져야 할 성품이다.
또, 교회에 주신 임무,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하는데, 전하는 자의 심정은 하나님의 온유함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 성품을 가지고 있어야, 그 말씀이 온전히 전달된다.
그러므로, 온유함을 갖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무언가 추가적으로 더하여 가져야 하는 덕성이 아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거친 성품]
원래 갖추었어야 했는데, 그동안 갖추지 않았던 것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성품이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원하는 성품이 아니다.
온유함은 세상에서 특별히 유익을 가져오지도 않고,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 교회는 60년부터 80년말까지 굉장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 때, 많은 부흥사들의 역할이 컸다.
그 때, 부흥사들의 스타일이 어땠을까.
굉장히 강한 성격이었다.
많은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이상한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중에는 그런 스타일에 굉장히 매료되었다.
자신만만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호통도 치고, 사람을 함부로 야단치고, 권위주의적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리고, 자기 성취에 대해서, 자꾸 말해야 했다.
때로는 남을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한다.
한국은 역사속에서 많은 시련을 갖고 있어서, 억눌린 한이 많았다.
그래서, 성공적인 인물이 나타나, 자기 힘을 과시하는 것에 많이 매료되었다.
복음의 필수적인 요소는 놔두고, 설교자의 그런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복음도 함께 전파되었지만, 그런 카리스마적인 인물의 모습도 많이 전파되었다.
이것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성경과 많이 모순된다.
강압적이고, 사나운 인상은 좋은 것이 아니다.
성경적으로 굉장히 나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시대에는 신앙인이고, 불신자이든, 강력한 인물상을 대단히 선망했다.
모두가 배고프고, 불안한 상태에서 그 역경을 이긴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과거 부흥사들이 공헌도 많지만, 교회에 부작용도 많이 남겨놓았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성품을 외면하고도 그냥 달려왔다.
천국을 준비하는 자로서, 겸손과 온유한 성품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 성공담을 만들어 갔다.
그래서, 화를 내야 성공한다는 생각까지도 하게 되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누가 화를 내면, 성공한 사람만 내는 특권처럼 생각했다.
당시에는 목사가 되면, 첫날부터 화를 내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화를 잘내야 굉장한 영성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이 땅에 있는 것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금생의 권세와 성취를 좋게 보는 것이다.
그 부분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안에서 쟁취가 용인되는 것으로 오해를 가져왔다.
초등학생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서로 다투고, 쟁취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으면, 지옥간다고 할 것이다.
과거 우리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서, 겸손과 온유가 꽤 정착되었었다.
그런데,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그리스도 교회과 그리스도인 답지 않은 모습을 함께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온유와 겸손과 호통치는 것 사이에서 지금까지도 혼란을 갖고 있다.
[교회의 성도의 필수적 성품]
그러나, 주님은 높은 자가 군림하고 호령하는 것은 세상이 하는 것이고, 하늘나라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비록 이 땅에 있을지라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막10:42-45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인자는 섬기러 왔다고 하셨다.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지난주 겸손에 대해서 말했는데, 똑같이 중요한 것이 온유다.
오늘의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보기보다, 이 부분을 쉽게 간과해서는 안되고, 오늘 잘 배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지난주에는 교회 된 자들이 실행해야 할 것에 대해서 나누었다.
본래 우리가 가진 모습은 교만이었다.
모든 것이 교만한 마음으로 연결되었는데, 복음은 겸손해야 구원한다고 한다.
그래서, 모두 겸손하도록 명하셨다.
겸손으로 일치되게 하셨다.
이것은 교회된 자로서 하나님 안에서 통일된 모습을 갖추는 첫미션이었다.
이제는 온유를 통해 연합을 이루라고 한다.
[온유로 통일하여 연합을 이루라]
온화하고, 정중한 것, 부드럽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
내가 그렇게 하는 동안, 내 주장을 모두 챙기지 못할 것이다.
많이 나 자신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그 개념이 함께 있다.
온유하고 싶지만, 내 권리를 지키고 싶다고 하면 되지 않는다.
자기를 많이 포기하는 것이 온유의 자세다.
엡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겸손과 매우 유사한 성질이다.
모두 자기를 내려놓고, 남을 높이는 성품이다.
겸손한 자가 아니라면, 온유한 자가 될 수 없다.
너무나 가깝게 연결되어 있고, 겸손한 마음이 온유한 자세를 갖고 온다.
그 사람이 겸손한 지 아닌지는 온유한지 아닌지 보면 된다.
짝꿍처럼 함께 온다.
교만한 자는 절대 온유할 수 없다.
물론 흉내는 낼 수 있다.
교만한 사람이 온유한 척은 할 수 있다.
교만한 사람이 악하게 행동하는 것보단 낫지만, 흉내는 내도, 지속할 수는 없다.
오래 하지 못하고, 견딜 수 없다.
성질 자체가 변해야 한다.
이것은 마음의 변화를 요구하는 분야다.
겉으로만 모양새를 하는 것은 진정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뿌리내린 참 겸손, 온유다.
행동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다.
온유하면, 이 세상에서는 대번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영어권에 있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온유함은 약함을 좋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온유함은 누구와 싸우지 않으려는 성질이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자기를 자제해야 한다.
온유한 사람은 매일 자기를 포기 해야 한다.
앙갚음 하지 않기 위해, 공격적이지 않도록 자기를 제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격에 대해서, 되받아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 세상 사람은 공격에 대해, 받아칠 준비가 되어있다.
모두 긴장이 되어, 항상 응징할 자세가 되어있다.
이것이 안된 사람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온유한 자가 되면, 이 세상에서는 불편할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많이 아픔도 겪는다.
보통 세상사람같으면, 바로 되받아치고, 해결하고 나오는데, 온유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무능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성품을 그렇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설교 말씀의 제목은 온유를 두번 반복했다.
[온유와 온순]
온유 하나로만 당장 이해할 수 없다.
온유의 참 뜻이 무엇일까.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온유에는 두가지 뜻이 있다.
온유는 따뜻함, 다정다감한 것, 상대방이 편안하게 친절한 것이다.
진짜 이 단어의 동전의 반대편을 보면, 온순함이 있다.
이것이 실체다.
온순함은 착하고, 고분고분한 것이다.
영어의 단어에도 온유, 온순을 나누듯, 두가지 단어가 나란히 경쟁한다.
gentel, weak
온유를 말할 때도 상황과 강조점에 따라 달리 써야 한다.
친절한 태도에 대해, 행위의 모습에서 부각되는 것은 gentle로 표현한다.
그러나, 뒤에서 자기를 희생하고, 내어주는 마음은 온순, weak다.
그래서, 우리는 온유라고 쓰고, 온순이라고 읽는다.
그래야, 이 성경개념이 옳게 정착된다.
그렇지 않으면, 전부 잘못된 개념을 갖게 된다.
온유는 겉으로 나타난 모습을 많이 부각하는 반면, 온순은 실제 내면의 성질을 말한다.
겉은 꾸며서 할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은 꾸밀 수 없다.
본래 성품이 되어야 한다.
원래 성질이 거친 사람은 그 성질이 그대로 있어서, 예수 믿고도 하루 아침에 변화되지 않는다.
여전히 거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나아야 한다.
계속 나아져야 한다.
그냥 원래 나는 거칠다고 하면 안된다.
그러면 그 사람은 태도가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다.
어쨌든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으니까, 오늘 나는 모나고 거친부분이 있다.
그러나, 노력하는 동안, 나는 온유의 가치를 의식하기 때문에, 자기를 통제할 수 있다.
성경은 그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할 수 없다면, 하는 척이라도 해라.
그래서, 훈련하는 자는 비록 아직 모난 부분이 있어도, 훈련하는 것 자체로 칭찬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주님이 합당히 여기심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목표는 온순함으로 잡고, 꾸준히 나가는 것이다.
원래 온유라는 자체를 누가 이룩할 수 있다면, 늘 온유한 성품으로 교회를 섬길 수 있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만 바탕이 온순하지 않으면, 온유함은 쉽게 망가진다.
성경의 유명한 인물들은 온유함이 많았다.
[아브라함, 다윗, 모세, 그리스도]
아브라함은 약점도 있지만, 성품이 굉장히 착했다.
착하다는 것이 이 세상의 많은 사람과 다른 점이다.
자기 주장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는 주인공이지만, 주인공이 아니라, 남을 계속 배려하고, 관찰자처럼 지낸다.
본토 친척을 떠나라고 하실 때도, 왜, 언제 가느냐고 묻지 않고 떠난다.
자기 조카와 함께 지내는데, 부자가 되어, 헤어질 수 밖에 없을 때도, 조카에게 먼저 갈 곳을 정하라고 한다.
자기가 우선 선택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고, 오히려 네 눈에 보이는 것을 다 줄 것이라고 하셨다.
좋게 보신 것이다.
언젠가 아브라함은 세 나그네를 만났다.
그중에 하나는 하나님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그는 성심성의껏 대접했다.
하나님은 그 때, 아브라함에게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예고하셨다.
그 때, 아브라함은 자기 문제가 아닌데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소돔과 고모라에도 의인이 있으면 사해달라고 했다.
독자를 요구하셨을 때도, 그는 아무 저항없이 내놓았다.
믿어도 너무 믿는 것 같다.
그의 특징은 사람에게 친절하느라 많은 손해를 보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는 신념이 있는 것이다.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도 자신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다.
당시 유대인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유대 지도자들이 신앙을 가르쳤는데, 그들은 성질이 날카롭고, 무자비하고, 강압적이고, 백성을 잘 야단쳤다.
백성들의 삶은 늘 억압속에서 슬펐다.
늘 못한다고 하니까, 신앙으로 일어날 수도 없었다.
유대 지도자들은 하나님 말씀 들으라고 하면서, 남을 호통치는 즐거움으로 살았다.
이것이 계속 되니까, 백성들은 소망도 없이 남겨졌다.
그러나, 주님은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하신다.
나는 날카롭지 않다. 너희를 돕기 원한다.
주님은 따뜻하게 오셔서, 그들의 연약함을 무시하지 않고, 연약함을 대신 메꾸어주고, 아픈 자와 함께 하고, 무시당하는 자의 친구가 되어주고, 소망이 없는 자에게 소망을 넣어주셨다.
억압하는 자는 주님으로부터 아무 혜택을 받지 못했다.
곤궁에 빠지고, 절망에 빠진 자들은 주님으로부터 놀라운 감동을 받았다.
이 세상은 그런 성품을 이해하지 못한다.
소심하고, 약하다고 본다.
그들이 실제 예수님을 체포할 때는 군사를 보냈다.
그 때 주님은 저항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내어주셨다.
벧전2: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재판할 때도 많은 거짓증인들이 매도를 했지만, 저항하지 않으셨다.
대제사장이나 빌라도 앞에서, 고문을 당할 때도 변명도 하지 않으시고, 저항도 하지 않으셨다.
사53:4,7,9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그래서, 그를 연한 순이라고 한다.
그는 욕을 받으셨지만, 반항하지 않으셨다.
오직 공의로 심판하는 자에게 부탁하셨다.
하나님은 아실 것이다.
그리고 참는 것이다.
그를 해하려고 끌고 가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끌려갔다.
그는 난폭한 분이 아니었고, 입에 간사함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처절하게 무시당하고, 죄인과 함께 죽으셨다.
사53: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사회적으로는 범죄자중의 하나로 여김을 받았다.
온유한 중에 그는 자기에게 범죄한 자를 위해 기도하셨다.
사람들은 그를 무시해도 좋을 사람으로 보았지만, 그는 극한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고, 아픔을 겪으면서, 하나님이 명하신 일들을 다 감당했다.
[하나님을 위하는 강한 책임의식]
이 세상에 공의의 하나님이 없다면, 온유한 자는 아무 소망이 없을 것이다.
온유한 자는 화도 못내는 자가 아니라, 거룩한 분노를 할 줄 아는 자다.
민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나는 모세에 대해, 강직하고, 센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성경은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하다고 한다.
그는 원래 온유했다. 온순하고, 다정하고, 따뜻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강력하게 했다.
온유한 사람이라고 바보같은 사람이 아니라, 속에는 생각이 있다. 자기를 절제하고 있는 것이다.
절제하는 것은 아픔이다.
백성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했다.
또, 그들이 모세에게 반란했다.
그 백성들을 무섭게 처단했다.
그가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또, 그는 바로왕 앞에 나갔다.
원래 그가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을 처음 뵐 때, 입이 둔한 자라고 했다.
출4:10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원래 모세가 말을 못한다고 하는 것은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것이고, 그것보다는 성격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해냈다.
그는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잘 지키는 성품이다.
그래서, 하늘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다.
온유한 사람도 화를 낼 수 있다.
예수는 성전에서 강도의 굴혈을 만들려는 사람들을 채찍으로 치시며 쫓아내셨다.
하나님이 모욕 당하는 것에 대해서, 거룩한 일이 침해당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모욕을 느끼고, 슬픔을 느낀다.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지만, 그들은 아픔을 겪는 사역이 끊임없이 진행된다.
그들이 남을 부드럽게 대하는 것은 그 사람이 편하고, 행복하기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복수, 앙갚음의 자세가 없는 사람이다.
모두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자기 자신을 위한 욕심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게으르게 하지 않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맡기는 심령이다.
절대 좌시하지 않고, 마지막날을 만드는 하나님의 정의가 승리하기를 믿고, 기다리는 심령.
그 의지는 죽지 않는다.
[교회 전체를 위해 희생으로 섬기는 심령]
교회에서 우리 온유한 심령이 무슨 역할을 할까.
모두에게 하나님의 행복이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 인한 승리가 있기를 원하고,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이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지지 않고, 마음 속에 모신다.
나는 조금 아파도, 모두 평안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성질상 온유한 사람은 개인적 유익을 위해 머리를 쓰지 않고, 공동의 유익을 위해 일한다.
약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그래서, 더 공손하고, 사려깊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삶의 자세를 갖는다.
힘이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사랑해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과 싸우는 것에 준비된 자가 되지 말자.
우리 환경은 날카롭기 쉽고, 싸울 준비가 되어있기가 쉽다.
디3:2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주께서 인정해 주실 날을 기다리라]
언젠가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실 것이다.
세상은 잊어버리고, 나를 강탈하고, 절망에 빠진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실패자로 보지만, 하나님은 나를 기억하시고, 나를 인정하실 날이 있다.
벧전3:8-17,20-2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우리가 왜 선을 행하는가.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내 온유함, 겸손함이 가치가 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의 성공을 소원하고, 바라는 강력한 마음의 사모함이 있다.
벧전5:5-6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이 우리 속에 만들어 내시는 성품]
온유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만들어내시는 성품이다.
마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 땅에 인간이 와서 받을 복이 여덟가지인데, 한마디로 하면 다 온유다.
팔복이 다 온유인 것 같다.
마5:3-10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그러나, 거기에 더하여 아플 것이다.
나는 빠지겠다고 할 수 없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서 만들어 가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성격이다.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골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온유하되 온유한 성도가 되자]
겉으로도 사랑을 베풀고 친절한 자가 되어야 하고, 속에도 온유함이 있어야 한다.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의 의를 신뢰하고 기다리는 사랑이 많은 성품을 훈련하기 바란다.
우리 교회가 어려움을 많이 당하고 있다.
지금 너무 힘들다.
교회가 권한이 없다.
원수가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겸손하고, 온유함으로 하자.
온유함은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절망하지 않고, 힘을 합쳐 교회를 지키자.
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사랑하고, 온유하여, 모두 행복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자기 임무라고 생각하자.
우리의 거친 마음을 이제는 가져가 주시고, 주님의 선하시고, 온유한 심령을 심어주소서.
하나님을 닮은 심령, 내 속에 심어주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뢰, 마지막 날을 고대하는 마음을 심어주소서.
교회가 모두 겸손하고, 온유하되, 놀라운 힘을 낼 수 있도록,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