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산 7월호에 실린 기사라고 22일 온라인에 올라온 내용입니다. 문법에 맞게 조금만 손질하고 띄어쓰기 등을 했음을 알려드린다.
지리산 등산로에서 반달곰을 봤다는 목격담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관련 사진과 영상 때문에 반달곰에 대한 공포감이 재생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반달곰 복원 사업에 대한 찬성과 반대는 개인의 자유지만, 이 공포감이 만드는 과장된 오해와 낭설이 그 근거가 되어선 안 된다. 여기선 현재 흔히 떠돌고 있는 반달곰에 대한 오해만 바로잡아본다.
1. 지리산 반달곰 추적 실태는?
반달곰 복원 사업 초기엔 모든 개체마다 GPS 수신기를 달고 24시간 위치를 모니터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몇 마리만 GPS 수신기를 달고 있고, 안테나로 신호를 수신할 수 있는 전파 발신기를 부착한 개체는 30여 마리뿐이다.
등산객 입장에선 모든 개체를 포획해서 GPS 수신기를 달았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먼저 GPS 수신기는 무겁고, 잘 떨어진다. 또 배터리 수명도 짧다. 전파 발신기는 이보다 가볍고, 수명도 2년으로 길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원 사업이 길어지면서 반달곰들이 학습하며 교체 작업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배터리를 교체하려면 먹이를 놓은 포획틀을 설치하고 반달곰들을 이곳으로 유인해야 한다. 그런데 발신기를 부착하는 과정에 이렇게 한 번 포획되고 나면 반달곰들은 이 포획틀 안으로 가면 잡힌다는 사실을 학습해 버린다. 그러니 갈수록 이 작업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추적 포획도 어렵다. 잠을 자는 굴도 입구는 좁고, 퇴로는 여러 개 확보된 곳을 선택할 정도로 영리해졌다. 아예 반달곰도 멧돼지처럼 취급해 개별 개체에 대한 추적 관리가 아니라 권역으로 관리하자는 의견도 일부 나오고 있다.
물론 추적이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해서 손놓고 있을 순 없다. 그래서 대신 지리산에서 현재 대폭 늘어나고 있는 것이 무인 모니터링 카메라다. 2021년 멸종위기야생생물증식복원사업 연간 보고서에는 52대가 설치돼 있다고 하는데 현재는 6배가량인 300대가 설치돼 있다.
2. 사람에 익숙해지면 괜찮다?
등산로에서 반달곰들이 탐방객을 자주 만난다면, 즉 사람에 익숙해지면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반대로 반달곰은 야생성, 즉 동물의 본성이 유지되어야 인기척을 느꼈을 때 회피하려고 한다. 반달곰의 본성은 대체로 온순하고 대인기피 습성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야생성이 사라지면, 다시 말해 사람에 익숙해지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다가오며, 그러다 공격하거나 낚아채는 동작에 피해를 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뉴스에서 간혹 언급되는 인근 민가에 출현해 염소를 해치거나 벌통을 빼먹는 반달곰들이 바로 이렇게 야생에 적응하지 못하고 인기척에 익숙해진 개체들이다.
3. 일본은 반달곰 인명피해 매년 속출한다는데 왜 한국은 없나?
지난해 일본은 곰에 의해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역대 최다 피해를 기록한 바 있다. 불곰의 공격도 포함한 숫자지만 반달곰이 공격한 경우도 적지 않다. 본성이 온순하다는데, 왜 그런 걸까?
일본의 경우 반달곰이 수천, 수만 마리에 이르기 때문이다. 단순히 숫자가 많아서 사고가 많다는 차원은 아니다. 개체 성격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반달곰의 성격을 정규분포곡선으로 그린다고 할 때 평균적으로 온순한 개체들이 많지만, 그 극단에 공격성이 뚜렷한 개체가 있기 마련이다. 가령 반달곰 중 3%(학술적 근거 없는, 예를 들기 위한 수치다) 정도가 공격적일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지리산은 약 2마리에 불과한데, 일본은 그게 수백 마리인 것이다.
그리고 지리산의 경우 이렇게 공격적이거나, 대인 기피 습성이 없는 개체를 꾸준히 당국에서 잡아들이고 있다. 매년 한두 마리정도다. 그래서 지금껏 다행히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반달곰이 사람과 직접적으로 접촉한 건 딱 한 건, 2014년 벽소령대피소 건물 밖에서 비박하던 탐방객의 침낭을 물어뜯은 사례가 있다.
4. 반달곰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걷다가 멀리 반달곰이 보이는 상황이라면 '천천히 뒷걸음' 치는 것이 가장 최선이다. 그리곤 호루라기나 베어 벨 등을 이용해 인기척을 내면 대부분의 반달곰은 자리를 이탈한다. 인기척을 낼 땐 최대한 거리를 두고 반달곰의 행동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한편 갑자기 수풀에서 습격했을 땐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땅에 몸을 웅크려 급소를 보호해야 한다. 두 대응법이 정반대지만 둘 다 나름 일리가 있다. 반달곰은 주로 새끼를 지킨다거나 자기를 공격하려는 줄 알고 사람을 공격한다. 즉 포식이 아닌 위협인 경우가 많으므로 저항해서 적극 몸을 보호하든지, 아니면 자극하지 않겠다는 표현으로 가만히 있으란 것이다.
물론 인터넷에 종종 올라오는, 반달곰을 만났다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행위도 모두 잘못된 행동이다. 자극하지 않고 빨리 이탈하는 것이 최선이다.
5. 등산로는 안전하다?
최근 벽소령대피소 인근 등산로 상에서 반달곰을 조우한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처럼 등산로는 반달곰 청정지역이 아니다. 오히려 반달곰들은 등산로를 좋아하는 편이다. 반달곰 입장에선 산중에서 길 없는 수풀 사이를 헤매다가 등산로를 만나면 고속도로처럼 여겨질 터다. 그래서 주 이동 통로로 삼기도 한다.
그런데도 등산로로 다니면 반달곰 조우를 대부분 피할 수 있고, 비교적 안전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사실 이건 그 길 자체가 아니라 그 길 위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반달곰은 등산로가 아닌 인기척을 피한다. 또 일부 개체는 탐방로가 인기척이 자주 나는 곳이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학습하기도 한다.
6. 곰 퇴치 스프레이 왜 못 쓰나?
아무리 반달곰이 온순하다고 해도, 당국이 야생성이 적은 반달곰을 포획하는 등 조치를 하고 있다고 해도, 지금까지 사상자가 발생한 적이 한 번도 없더라도, 반달곰에 의한 인명 피해 가능성은 0이 아니다.
그래서 곰 퇴치 스프레이를 민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이것은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때문에 가스총에 준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휴대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곰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의 등산로 입구에서 곰 퇴치 스프레이를 판매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