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칫날
권 명 자
오월은 푸르다. 온 세상이 환하다. 밀, 보리가 익어가는 들녘을 바라보면 떨어지는 꽃잎이 서럽기보다 열매가 자라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마음은 부자가 된다. 자연과 함께 즐기는 이들의 얼굴에도 행복한 웃음이 번진다.
문학 행사가 열리는 잔칫날이다. 새내기 작가님들의 글 샘에서 퍼 올린 우수한 작품시상과 버드나무 축제가 활기를 띤다. 노교수님은 시장에 가셔서 참죽순을 사다가 살짝 데쳐 찹쌀풀에 약간의 고추장을 넣어 봄볕에 꾸덕하게 말린, 우리의 전통음식이며 가장 좋아하셨다는 별미를 손수 만드셨단다. 시상을 마치고 교수님께서 준비하신 꼬득하고 매콤짭짤한 말린 참죽 안주와 와인 잔을 받아들고 감개무량하다. 건배를 외치며 우레같은 박수와 환호로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교육원 정원에 기념식수로 세 그루의 배롱나무를 심고 율봉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먼저 도착한 임원진과 회원님들은 상품과 간식, 작품 만들기를 위한 버드나무 가지를 한 아름 준비하셨다. 호드기도 만들어 삶아 왔단다.
나도 버들가지 한 묶음을 들고 정자에 자리를 잡았다. 척척 늘어진 버들가지를 살짝 비틀어 속대를 빼고 알맞게 잘라 입술을 만들어 호드기를 불며 추억여행을 한다. ‘아이야 우지 마라 배 꺼질라 … ♬♩’ 애간장을 녹이고 마음을 휘젓던 서글픈 노래가 풀피리 꺾어 불고 밀짚에 오색 물들여 편지꽂이며 여치 집을 만들던 동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루루 몰려와 신기한 듯 바라보는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불어보라고 내밀지만, 선뜻 나서지 않는다. 위생보다 정이 우선인 우리만 신바람이 났다. 행사는 전통을 이어가는 지혜의 산실이다.
가느다란 버들가지를 추려 들고 무엇을 만들까 살피다가 오후반 회원님의 지도로 여치집을 만들기로 했다. 열십자로 묶고 다섯 줄을 세워 한 줄씩 바꿔 돌아가며 엮인 모양새가 건물을 돌아 올라가는 층계처럼 이어진다. 난생 처음으로 만들어 본 여치 집을 들어 올리고 아이처럼 함박웃음을 퍼 올린다. 성취감과 수상의 영광에 뿌듯함도 기쁨도 두 배다.
어린이 회관에서 베짱이 역할로 나무 그늘에 비스듬히 누워 신선놀음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익살스레 개미를 놀려대고, 노래를 부르던 생각이 난다. 아이들과 한바탕 즐기고 나면 나이는 뒷전이다. 젊음은 용기를 샘솟게 하고, 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도전은 삶을 신명 나게 했다.
하루를 돌아보며 창가에 여치 집을 걸어놓고 바라본다. 그곳에서 여치가 살면 행복할까. 아무리 관심과 사랑으로 돌본들 풀숲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만 하랴. 여치집이 바람에 흔들린다. 주인도 없는데 밤이면 더 잘 들리는 저 여치소리는 노래일까 울음일까. 괜스레 울적해지는 마음은 나이 탓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