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천사
정우신
안개 너머로 세 사람이 지나가고 네 사람이 지나갑니다 안개는 머물며 뒤이어 오는 안개를 기다리고
세 사람과 네 사람 사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안개가 많으니까 발에 걸리는 것들이 많네요 손을 뻗어도 닿는 것이 별로 없네요
팔꿈치가 여기쯤이었나요 안개와 팔짱을 끼고
검은 계단을 걸어봅니다
한 계단에서 다음 계단으로 발을 옮기는 동안 팔은 무수히 늘어나고
내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때마다 천사들이 나타나 외투 주머니에 택시비를 스윽 넣어두고 갑니다
천사들은 안개 공장으로 돌아가 기계를 돌리며
솜처럼 뭉쳐있다가 흘러나와 소주를 마십니다
스스로 물빛을 내며 안개의 속도로 움직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 당신처럼 떠 있는 교회 첨탑의 늙은 불빛 하나
마주하고 있으면
세 사람과 네 사람 사이에 잠시 아른거리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내 안의 물을 끓여 놓고
아직도 돌아가지 못한 자들을 찾아봅니다
미분과 달리기
바람의 얼굴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봅니다
염소가 발굽을 긁고 있네요
지푸라기를 보다가
콧김이 느껴져
뺨을 긁었습니다
트랙을 달리다 보면
앞니가 시리고
오른쪽 무릎이 절룩입니다
신발 끈이 풀리면 기분이 좋습니다
바닥을 자세히 볼 수 있으니까요
금이 간 곳을 한참
들여다보면
개미는 보이지 않고
누군가 술에 취해
골목을 헤매고 있습니다
날벌레를 머금은
가로등
내 허벅지로 퍼지고
뒤를 보지 않고 달리면
지붕 옆으로 무지개가 놓입니다
나는 지금 트랙을 비집고
자라는 풀
내가 흔들리면
염소가 다가옵니다
염소는 트랙에서
들판을 보고
들판은 별을 복사합니다
개구리는 별과 별이
부딪치는 소리를 냅니다
누군가의 한쪽이 기울어 갈 때
나의 얼굴을 열고
움직이는
염소가 있습니다
이제 운동화 끈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발굽에
풀이 낀 채로
또각또각 뛰어다니는
바람입니다
어떤 참사
고독과 고통이 자주 찾아온다. 고독과 고통이 자주 찾아오는 사람을 만난다. 아픔이 환자와 의사의 관계로만 풀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응어리진 마음들이 주택가에 아무렇게나 내다 놓은 쓰레기봉투처럼 널려있다. 살아가는 자와 죽어가는 자. 살아야만 하는 자와 죽어야만 하는 자. 죽었음에도 거듭하여 살아야 하는 자. 그 사이의 어딘가로부터 안개가 온다. 안개는 눈을 멀게 한다. 안개의 겉과 속은 시공간이 다르다.
어느 날 골목에서 담소를 나누는 시인들을 보았다. 시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시인에게선 물빛이 난다. 시인은 안개를 등대로 바꾸기도 한다. 시인은 안개를 천사로 바꾸기도 한다. 시인은 안개나 천사가 될 수 없다. 시인이 세상을 사랑하려고 하면 세상은 시인을 데려간다.
응어리진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을 시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다음 달 월세 걱정은 뒤로 미뤄두고 고독과 고통을 지고 찾아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를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데운 술을 나눠 먹으며 내일의 천사를 기다리는 사람, 요즘 부쩍 안개가 자주 보인다. 안개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안개 속에서 뒤적이면 흘러가는 내 몸이 보이기도 한다. 사랑에 눈이 먼 사람과 오래도록 골목을 걷고 싶다. 안개의 팔짱을 끼고 작은 성당을 돌아 나와 나는 다시 하천으로 출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