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향기 맡으며 시루떡 돌담길 산책
[매거진 esc] 여행 공룡 발자국 화석 산출지로 유명한 경남 고성의 또다른 볼거리들 경남 고성은 ‘시루떡 세상’이자 ‘공룡의 나라’다. 시루떡처럼 쌓인 중생대 백악기 퇴적 구조에, 호숫가를 걷고 달리던 공룡의 발자국들이 팥고물처럼 깔려 있다. 1억년 전 공룡들이 먹고 놀던 자취가 바닷가와 산과 들에 지천이다. 아르헨티나 서부해안, 미국 콜로라도주와 함께 세계 3대 공룡발자국 화석 산출지로 꼽히는 고장이다. 1982년 덕명리 해안에서 국내 첫 공룡 발자국 화석이 확인된 이래, 지금까지 5000여 족의 발자국 화석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산이고 들이고 파면 나옵니더. 앞으로 몇개가 될지 모르지예.”(고성군청 황규완 문화재담당)
관광객들은 고성 여행길에 용각류·수각류·조각류 공룡 발자국에 꽂힌다. 덕명리 해안 상족암 일대의 웅장한 바위 경치와 신비로운 발자국들을 둘러본 뒤엔 통영으로 또 거제도로 빠져나간다. 먹을거리와 또다른 볼거리를 찾아서다.
“이기 문제라. 고성에 볼거리가 공룡 발자국밖엔 없는 줄 아는 사람들이 아직 많애요.” 산 경치 아름다운 연화산도립공원의 고찰 옥천사 들머리에서 만난 한 주민의 말이다. 그는 “숨은 볼거리가 공룡 발자국처럼 숱하게 깔렸지만 홍보가 안 됐다”고 했다. “공룡 발자국맨쿠로 억수로 깔렸다”는 고성의 볼거리들 중에서, 옛 돌담길이 빛나는 학동마을과 바위 절벽에 들어선 절집 계승사, 그리고 나른하게 깔린 봄 바다가 돋보이는 전망대들을 둘러보고 왔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중생대 백악기 지층이 시루떡처럼 쌓여 있고, 거대한 공룡 발자국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350년 전 형성된 전주최씨 집성촌 학동마을 학이 날개로 감싸안은 듯 아늑하고 서늘한 고택들 판석으로 쌓은 돌담길 예뻐 ‘백악기 화석 전시장’ 금태산 계승사
계승사는 고성군 영현면 대법리, 연화산 줄기 서남쪽 금태산 자락 절벽에 자리잡은 작은 절이다.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금태암)했다지만, 건물은 오래된 게 아니다.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수천 수만겹 퇴적 구조의 절벽을 깎아 절집을 들였다. 절 마당 높은 축대도 가파른 계단도 다 납작납작한 퇴적암 판석들을 쌓았다. 이 절에서 만나봐야 할 것이, 시루떡처럼 쌓인 바위 속에 든 아득한 세월이다. 해와 달이 뜨고 지고, 바람 불고 비 내리고 흘러가버린 흔적이다.
말하자면, 1억년 전 거대한 호수의 얕은 물가, 바람이 일자 물살이 찰랑이며 고운 흙바닥에 섬세한 물결무늬(연흔)를 남긴다. 물이 빠져나가 굳어진 땅에 다시 오랜 세월 다른 흙이 겹겹이 퇴적돼 시루떡처럼 쌓여 굳어진다. 1억년 뒤, 갈라지고 쪼개져나간 바위 위에서 그 물결무늬가 태곳적 모습 그대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것이 대웅보전 옆 요사채 앞 너럭바위에 새겨진 물결무늬 화석이다.
계승사 요사채 앞 너럭바위의 물결무늬 화석. 그리고 당시 물결무늬가 굳어지기 직전, 호숫가 늪지대를 거대한 초식공룡인 용각류 공룡이 네발로 걸어 지나간다. 여기에 다시 세월의 시루떡이 쌓여 굳어진다. 대웅보전 옆에 놓인 커다란 바위에 물결무늬와 그 위를 딛고 간 거대한 용각류 초식공룡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이 바위는 위쪽 절벽에서 떨어져나온 것이다. 절벽 위 보타전 뒤 바위에도 발자국 화석이 남아 있다. 지름 60~90㎝에 이르는 발자국 화석들이다.
또 있다. 1억년 전 물가의 그 고운 흙바닥에 어느 날 비가 쏟아진다. 쏴~. 한동안 쏟아지던 비가 그치자 흙바닥엔 무수한 빗방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이 모습 그대로가 보타전 옆 바위에 또렷이 남아 있다. 지름 2~10㎜의 빗방울 자국 화석이다.
이 모든 게 1963년 옛 금태암을 이어받아 계승사를 창건하기까지 흙과 바위 더미에 묻혀 있었다. 절을 지으며 이 화석들을 멋모르고 파괴하고 또 찾아내기도 한 계승사 주지 법진 스님이 말했다.
“하모. 뭘 알았겠노. 여가 맨 고찰 터였그든. 다 맨 흙으로 덮였었는기라. 절을 만들라 카이까네, 흙을 파내고 바위를 깨내삐린 기라.” ‘시루떡 경치’와 화석들을 감상한 뒤엔 약사전에 올라 아득하게 펼쳐진 첩첩 산줄기들을 감상할 만하다. 법진 스님이 “전국 최고의 명당”이라 자랑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사천 쪽 와룡산(799m) 봉우리까지 한눈에 잡힌다.
이성계가 조선 개국 전에 잠시 들러 수도했다는 이 절에 옛 자취는 별로 남은 것이 없다. 보타전 곁에 ‘모셔 둔’, 뒷산에서 굴러떨어졌다는 커다란 바윗돌 ‘하심석’ 옆에, 절터에서 발굴했다는 반질반질하게 닳아빠진 오래된 맷돌들이 쌓여 있을 뿐이다. 공룡 발자국 화석은 연화산도립공원 안 옥천사 들머리 주차장 옆 물길에서도 만날 수 있다.
시루떡 돌담길 아름다운 학동마을
‘시루떡 경치’는 마을에도 깔려 있다. 고성읍 서쪽, 하일면 학림리에 납작한 판석들로 쌓은 돌담이 아름다운 학동마을이 있다. 350년 전 형성된 전주 최씨 집성촌이다. 학이 날개로 마을을 감싸안은 듯한 ‘백학포란지형’의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이다. 이 마을의 볼거리가 바로, 아늑하고도 서늘한 고택들과 고택들을 감싸며 굽이쳐 나간 특이한 돌담길이다. 돌담도 돌담을 덮은 개석도 얇은 판석들이다.
“우리 동네 돌담은 담쌓는 돌도 덮개돌도 옛날부터 저렇게 납작한 판석을 씁니다. 뒷산에서 캐온 것들이죠.” ‘매사 고택’(최영덕 고가)을 지키는 최영덕(64)씨의 말이다. 기와가 아닌 판석으로 덮은 돌담은 전국에서 여기가 유일하다고 한다. 담장의 맨 아랫부분엔 판석만을 평평하게 쌓고, 그 위로는 황토를 섞어 쌓은 것도 특이하다. 최씨는 “저걸 강담이라 하는데, 바람도 통하게 하고 비가 와도 흙물이 튀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최씨 고택 뒤뜰 텃밭에 있는 우물이다. 화강암으로 만든 두꺼운 덮개돌을 덮은 모습인데, 여기 세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장수·부귀·자손번성을 바라는 뜻이면서, 천·지·인의 뜻도 담고 있다고 한다. 이 구멍을 통해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렸는데, 지금은 펌프로 물을 끌어올린다.
사랑채 옆 250년 된 토종 동백나무는 붉은 꽃을 활짝 피운 채 발치에도 꽃송이들을 깔아놓았다. 공부하는 선비들의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 회화나무, 한 나무의 두 줄기를 서로 붙여 이어놓은 연리지 모과나무도 있다. 학동마을 들머리 한 농가의 무너져가는 돌담 곁이 환하다. 커다란 살구나무와 목련 덕이다.
분홍빛 꽃송이들을 뭉게뭉게 피워올린 살구나무는 ‘100년쯤 됐다’는 고목이다. 학동마을에서 3대째 살고 있다는 최귀수(65)씨는 “내가 쬐맨했을 때도 저 나무는 맨 저만했능기라. 살구가 억수로 달리는데 차암 맛이 달아요. 요즘 살구 댈 기 아이래요.”
봄 바다 풍경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들
고성 앞바다 한려수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무이산 밑에 자리잡은,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암자 문수암이다. 차를 타고 문수암 턱밑까지 오를 수 있어, 관광객도 주민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앞쪽 수태산 능선에 끝에 우뚝한 약사전의 약사보살상 너머로 봄 햇살 반짝이는 남해 바다와 아득한 섬들이 펼쳐진다.
평소 개방하지 않는 색다른 전망대도 있다. 하이면 바닷가의 화력발전소 전망대다. 일반인 출입이 금지돼 있지만, 주말에 단체로 예약하면 일부 시설을 견학하며 120m 높이의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게 했다. 고성 앞바다의 사량도와 남해군 창선도, 서쪽의 삼천포대교가 두루 한눈에 잡힌다.
여행 시기가 가을이라면, 고성의 동쪽 만인 당동만이 내려다보이는 거류산으로 올라야 한다. 만 오른쪽 화당리의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논 풍경이 근사하기 때문이다. 거류산 정상이 아닌, 중턱 전망대까지 30분쯤 산길을 타도 활짝 열린 당동만 풍경을 볼 수 있다. 전망대로 오르려면 장의사를 지나야 한다. 장의사는 원효대사가 처음 창건했다는 절이다. 고성읍내 남산공원에서도 시원한 전망을 만날 수 있다. 백목련도 만발했다. 고성(경남)/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 고성 여행정보
가는 길 수도권에서 경부고속도로~대전 비룡분기점~대전·통영고속도로~고성나들목. 계승사로 바로 가려면 연화산나들목에서 나가 1006번 지방도 타고 계승사 팻말 따라간다.
먹을 곳 하이면 사곡3길 마을 안쪽의 ‘흙시루’의 도다리쑥국한정식(1만3000원, 4월까지·사진). 6~8월엔 갯장어한정식, 9~10월엔 전어한정식 등 제철에 나는 재료로 밥상을 차린다. 장어구이·청국장은 사철 낸다. 20여분 거리의 통영항으로 가면 분소식당·동광식당 등 졸복국·참복국·도다리쑥국 등을 내는 식당들이 많다.
묵을 곳 고성읍 신월리 프린스호텔(모텔급·한국관광공사 지정 굿스테이) 4만원부터, 한옥숙박체험은 학동마을 최영덕 고가, 개천면 청광리 박진사 고가. 평일 5만원부터.
주변 볼거리 갈모봉 편백나무숲 산림욕장, 개천면의 농촌체험마을 청광새들녘(봄나물채취·영상촬영체험·편백숲탐방), 송학동 소가야 고분군, 고성탈박물관, 고성공룡박물관, 당항포관광지의 자연사박물관·엑스포주제관·수석전시관·당항포해전관 등, 삼천포화력본부 화력·수력·태양열 발전시설 탐방 등.
여행 문의 고성군청 문화관광체육과 (055)670-2232, 경남종합관광안내소 (055)673-9503, 삼천포화력본부 탐방 070-8898-2177.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