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체온증의 고통과 산소 유혹 뿌리치며 무산소 등반
1980년 로스켈리는 고소 포터를 일절 고용하지 않고 동료 3명과 마칼루(8,463m) 등반길에 나섰다. 마칼루의 웨스트 필라(West Pillar) 루트는 8,000m급 고봉에서 최대 난코스 중 하나이다. 그는 정상 피라미드까지는 동료 2명과 등반했고, 정상까지는 단독으로 무산소 등반에 성공했다. 로스켈리는 1981년 히말라야의 베테랑 클라이머 제프 듀엔월드와 북미의 매킨리(데날리 : 6,194m)의 캐신 리지(Cassin Ridge)를 등반했는데, 하루만 더 등반하면 정상을 밟을 수 있는 지점에서 허리케인급(Hurricane : 초속 32.7m의 싹쓸바람) 강풍과 영하 50℃의 혹한을 만나 퇴각했다.
로스켈리는 1981년 미국 에베레스트 캉슝벽(동벽) 등반대에 참가했지만, 대원들의 안전에 무관심한 등반대장에게 불만을 품고 등반대를 탈퇴했다. 이태 뒤인 1983년 로스켈리는 밥 크래그(Bob Craig) 대장이 이끄는 에베레스트 서릉 등반대에 칼렌 로웰, 킴 몸(Kim Momb) 대원 등과 함께 참가했다. 그는 에베레스트의 서릉 제4캠프에서 폐수종에 걸려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킴 몸 대원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며 그를 하산시킨 덕분에 그는 구사일생으로 생환했다.
로스켈리는 1984년 루이스 위태커 대장이 이끄는 에베레스트 북벽 등반대에 참가했다. 루이스 위태커 대장은 2년 전 에베레스트 북벽 등반대를 이끌었다. 그 당시 위태커 대는 등반기점이 롱북빙하인 에베레스트 북벽의 직등 루트인 ‘그레이트 쿨와르(Great Couloir : 노튼 쿨와르)’ 루트로 8,380m 지점까지 진출했는데, 여성대원 마티 호이가 8,000m 지점에서 추락사하는 바람에 등정이 좌절되었다. 이번에 두 번째로 에베레스트 북벽에 도전한 것이다.
- ▲ K2 북동릉의 제4캠프.
- 그런데 호주의 소규모 등반대가 선수(先手)를 치고, 이미 에베레스트의 그레이트 쿨와르 직등 루트 등반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미국대는 호주대의 등반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이스트 롱북빙하를 등반 기점으로 삼고, 노스콜(North Col)에 올랐다. 호주대가 에베레스트의 북벽에 11번째 신 루트를 개척한 후, 미국대는 북릉의 7,300m 지점에서 북벽을 평행으로 트래버스하고 그레이트 쿨와르에 도착해 제5캠프를 구축했다. 미국대는 그레이트 쿨와르의 8,100m 지점에 제6캠프를 구축했다.
1월 말 로스켈리는 무산소로, 어쉴러 대원은 산소 장비를 착용하고 최종 캠프를 출발했다. 두 사람이 옐로 밴드 위쪽 8,536m 지점에 도달했을 때, 혹한이 맹위를 떨쳐 로스켈리의 손발을 마비시켰다. 산소 사용을 끝까지 거부한 로스켈리는 하이포서미아(hypothermia : 저체온증)로 등반을 포기했고, 그의 파트너 어쉴러 대원에게 단독 등정을 강력하게 권했다. 산소를 사용한 어쉴러는 에베레스트에 12번째 신 루트의 개척자가 되었다.
1985년 로스켈리는 무산소로 캉첸중가(8,586m) 북벽 7,925m 지점까지 진출하고 악천후 속에서 퇴각했다.
로스켈리는 짐 브리드웰, 일본의 사카시타와 네팔 쿰부히말의 타워체(6,564m) 북동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하려 했다. 타워체는 8,000m급 봉우리에 속하지 않았지만, 난코스 루트의 등반가치 때문에 수많은 원정대가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사실 히말라야에서 8,000m급 봉우리들의 등반만 각광 받다 보니, 순수 알피니즘을 실현하기에 적합한 6,000, 7,000m급 봉우리들이 뒷전으로 밀려 외면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로스켈리 대가 이 봉우리의 북동벽 밑에 도달했을 때 엄청난 양의 낙석이 빈발하며, 강한 화약 냄새가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벽의 등반을 강행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그동안 많은 비용과 노력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벽의 등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자, 일본의 사카시타 대원은 안타까운 심정에서 다른 루트로 등반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로스켈리는 최대 난코스 루트로 등반하는 것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거절했다.
- ▲ 로스켈리의 아내 조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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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 비박으로 타워체 북동벽 재도전 성공
1989년 1월 로스켈리는 네팔의 아마다블람 남벽을 단독으로 등정한 미국의 암빙벽 등반의 달인 제프 로우(Jeff Lowe)와 타워체의 북동벽에 재도전했다. 그들이 북동벽 밑에 도달해 보니, 타워체 빙하 상에 눈사태로 쌓인 커다란 원추형 눈 더미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 거대한 눈 더미 위에는 타워체 북동벽에서 떨어진 커다란 낙빙 덩어리들이 여러 개의 분화구 모양의 선명한 구멍자국을 남겨 놓아, 이 벽 등반의 위험성을 예고했다. 로스켈리는 그 구멍들을 바라보고 겉으로는 마치 한 마리의 용맹한 사자처럼 당당한 태도를 견지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커다란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타워체빙하의 제1캠프에서 출발해 어렵사리 수직고 90m 지점에 올랐다. 그들은 아이스 해머로 60도 경사의 빙사면을 깎아내고 가까스로 좁은 두 번째 비박 장소를 마련한 다음 무게가 90kg이 넘는 8일간의 식량과 연료, 등반장비를 3개의 짐으로 분리해 끌어올렸다.
다음날, 로스켈리는 아무리 애를 써도 사물에 초점을 맞출 수 없었다. 고산병, 뇌수종의 초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이상현상이었다. 그들은 즉시 하산해 페리체에서 1주일 동안 휴식을 취하며 로스켈리의 병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등반을 재개해 짐 양을 대폭 축소하고, 등에 짊어지고 등반할 만큼만 휴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80도 경사의 벽 위에서 구불구불한 갈지자(之) 루트로 전진하고, 바위 날개 옆 2.5cm 폭의 크랙을 이용해 등반했다. 이어서 60도 경사의 빙원을 프런트포인팅 등반으로 오른 후 세 번째 비박에 들어갔다.
다음날 그들은 고된 등반을 마치고 벽에서 텐트를 설치할 장소를 찾아낼 수 없어서, 암벽에 비박 색(자루)을 매달고, 그 속에서 네 번째 비박을 했다. 로스켈리가 수면 중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비박 색에 얼어붙은 차가운 얼음 조각들이 얼굴로 쏟아져 내려 잠을 깨웠다. 밤새 이 수면 방해 공작은 반복되었다. 로스켈리는 비박 중에 습관처럼 더운 물을 데워 수통에 담은 후 그것을 침낭 속에 넣어 자신의 발을 따뜻하게 만들어 동상을 예방했다. 그는 혹한 속에서 비박을 해도 자신의 발이 따뜻하기만 하면, 그 곳이 어떤 장소이든 동양의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涅槃 Nirvana)의 장소로 간주했다.
다음날 아침, 햇볕이 북동벽 상부에 닿자마자, 얼음이 녹으며 갑자기 비행기 폭격 소리 같은 굉음과 함께 낙석들이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들은 낙석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공포에 시달리며 암벽의 슬랩과 걸리와 람페를 차례로 돌파했다. 그들 앞에 크랙이 전혀 없는 움푹 파인 암벽이 나타나 등로가 꽉 막혀 버렸다. 제프 로우가 암벽 우측의 난이도 5.10~5.11의 구간을 프리클라이밍으로 돌파하고 등로를 개척해 그들은 드디어 빙원에 도달할 수 있었다.
- ▲ 가우리 걍카를 등반중인 로스켈리.
- ▲ 로스켈리.
- 그들은 빙원 위쪽에서 다섯 번째 비박을 했는데, 빙하가 끊임없이 이동하며 윙윙대는 소리, 낙석과 눈사태의 소음 등으로 인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들은 이튿날 걸리와 경사 75도의 빙원, 50도의 빙원을 차례로 돌파하고 해발 5,639m 지점에 도달했다.
등반을 마치고 여섯 번째 비박을 준비 중에,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그들의 눈앞에서 실현되었다. 갑자기 수백 m 위쪽에서 굉음과 함께 승용차 크기의 바위가 굴러 떨어지면서 한두 번 벽에 부딪치고, 그들의 비박장소 5m 아래쪽 빙벽에 다시 부딪치며 순식간에 빙벽에 거대한 구멍을 파 놓았다. 그 바위 추락의 여파로 발생한 낙석들 중에서 라켓볼(racket-ball)만 한 돌멩이가 그들의 텐트를 뚫고 들어와 침낭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았다. 그러나 다행히 그 돌멩이가 그들을 피해, 그들은 부상을 입지 않았다. 이 날 밤 그들은 온몸의 근육통, 심한 갈증, 여러 가지 걱정, 커다란 공포심으로 불면의 밤을 보냈다.
다음날 그들은 가파른 절벽의 크랙과 슬랩에 고정 자일을 설치하며 헤드월까지 진출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안전한 비박지를 찾아낼 수 없어서, 고정 자일을 이용해 전날 비박지까지 다시 내려와 비박했다.
다음날 그들은 전날의 고정 로프 설치 지점을 통과한 후, 50도 경사의 빙원을 등반하던 중 다행스럽게 천연 동굴을 발견했다. 로스켈리는 그 동굴 속에서 일곱 번째 비박을 했고, 제프 로우는 위쪽의 바위 립까지 진출해 텐트를 치고 비박했다.
다음날 그들은 거대한 남성 성기 모양의 첨탑을 지나 바위 버트레스 밑에 도달했다. 그들이 버트레스를 오르니 벽 중앙에 위치한 걸리 우측에 정상으로 이어지는 다른 걸리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날 밤 로스켈리는 리지 아래 설원에 설동을 파고 여덟 번째 비박을 했고, 제프 로우는 18m 위쪽에 텐트를 설치하고 비박했다.
그들은 2월 13일 눈 처마가 늘어선 타워체의 동릉에 올라섰다. 그들은 경사도 40도의 설원을 지나 드디어 타워체의 정상을 밟았다.
매킨리 웨스트리지에서 한국 산악인 2명 구조
멘룽체(Menglongtse, 7,181m)는 티베트의 국경지대에 위치해 있는 산이다. 1990년 로스켈리는 동료 3명과 눈 처마가 줄줄이 늘어선 남동릉으로 이 봉우리의 최고봉인 동봉 등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악천후와 조우했고, 또한 대원들의 사기가 저하되어 등정에 실패했다.
로스켈리는 1992년 K2 북동릉 등정자 짐 윅와이어와 매킨리의 웨스트리지로 등정에 성공했다. 두 사람은 매킨리 등반 중에 한국 클라이머 2명이 크레바스에 빠져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헌신적인 노력으로 구조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