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를 꿈꾸는 당신에게] 경쟁률 치열한 해녀학교... 졸업 후에도 바로 해녀 되기는 어려워
이제 제주살이 4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에 거셌던 제주 러시 현상은 다소 진정된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제주 이주를 꿈꾸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제주 1년 살이 혹은 1달 살이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이 글은 동아일보 기자와 세종대 초빙교수를 지내고 은퇴한 후 제주로 이주한 한 개인의 일기이자 제주에서의 생활을 소재로 한 수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제주도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제주의 자연환경,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한국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제주사회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읽을거리가 되길 기대한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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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녀학교 실습시간 테왁을 가지고 물질 연습을 한 후 뭍으로 올라오기 직전의 모습 |
ⓒ 홍실이 |
"물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려고 해녀학교 입학하기 전 몇 달 동안 수영을 배웠어요. 사실 물질과 수영은 근본적으로 달라요. 해녀삼춘들 중에는 수영이 안되는 분도 적지 않거든요. 수영실력보다는 물에 익숙해져야 바닷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막상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니 너무 너무 좋아서 그 매력에 흠뻑 빠졌어요. 물질의 짜릿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나면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게 되지요."
우리 마을에 드디어 해녀가 나올까. 지난해 가을, 바로 세 집 건너 이웃에 사는 홍실이(마을사람들 모두 닉네임으로 서로를 호칭한다)가 해녀학교에 입학하더니 어느새 과정을 모두 마치고 졸업을 하자 '진짜 해녀'가 탄생할지 한동안 마을의 큰 관심거리가 됐다.
해녀학교가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주저없이 말하는 홍실이, 무엇이 그리 매력적이었을까. 또 해녀학교를 졸업한 지 1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왜 아직까지 해녀가 되기 어려운 것일까. 마침 홍실이의 '해녀학교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볼 기회가 생겼다.
해녀학교 들어오려고 3수 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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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녀상 잠녀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상에 알려진 해녀는 제주 여인의 강인함과 근면성을 상징한다. |
ⓒ 황의봉 |
해녀 하면 나이가 많고, 생활력 강하며, 갈수록 줄어드는 제주의 상징적인 존재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홍실이로부터 '해녀 되기'와 관련한 이런저런 사정을 들으니 해녀공동체나 해녀문화에 우리가 모르는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년여성 홍실이가 해녀의 꿈을 안고 문을 두드린 곳은 한림읍 귀덕리 바닷가의 한수풀해녀학교 입문반. 서귀포 법환해녀학교와 함께 제주도에 단 둘뿐인 해녀학교다. 귀덕2리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한수풀해녀학교는 4개월 과정의 입문반과 직업양성반이 있다. 운영경비는 국비지원으로 충당하고 있어 학비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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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수풀해녀학교 한림읍 귀덕2리 바닷가에 2008년 개교했으며, 입문반과 직업양성반이 개설돼 있다. |
ⓒ 황의봉 |
입문반은 일반인이 해녀로 활동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과 기술을 배우는 과정인 반면, 직업양성반은 어촌마을에 살면서 해녀가 되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 해녀지망생이 실전에 필요한 능력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해녀학교 입학을 위한 별도의 시험은 없고 자기소개서로 당락이 결정됐다. 그녀가 놀란 것은 정원 50명 선발에 엄청나게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는 사실이다. 소문으로는 몇백 대 1이라고도 했다. 해녀학교에 들어오기 위해 3수를 한 사람도 있었다.
해녀학교 제10기 입문반에 들어간 홍실이는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별로 고르게 뽑혔는데, 의사, 드라마 작가, 산악인, PD, 재벌기업 중견사원, 경찰, 정보기관 출신, UDT 특수부대원 등 다양한 전·현직 경력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해녀가 아닌 해남이 되려고 온 남성이 20%나 됐다.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지만 공통점은 뚜렷했다. 해녀·바다·물·제주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반드시 해녀 혹은 해남이 되겠다는 목표보다는 바다가 좋고, 물이 좋고, 제주가 좋아서 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는 것.
전체 입학생의 절반 가량이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졸업할 때까지 제주에서 장기간 묵으며 다니는 경우가 많았지만, 수업이 있는 매주 토요일에 맞춰 비행기를 타고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열정적인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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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운동 바닷속으로 입수하기 전에 반드시 준비운동을 통해 몸을 풀어야 한다. |
ⓒ 홍실이 |
해녀학교 수업은 토요일마다 오전에 이론 강의, 오후에 실습으로 진행됐다. 대개는 경험 많은 현직 해녀가 강사로 나왔지만, 간혹 외부 인사도 초빙됐다. 대표적인 경우가 프리 다이빙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전통적인 호흡법과는 다른 새로운 호흡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해녀들의 전통적인 호흡법은 이른바 '숨비소리'로 설명된다. 숨비소리란 잠수하던 해녀가 바다 위로 떠올라 참았던 숨을 휘파람 같이 내쉬는 소리다. 보통 바닷속에서 2-3분 정도 숨을 참는다고 한다.
반면, 프리다이빙 강사는 횡격막을 이용한 복식 호흡으로 산소 소모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그러니까 호흡법이라기보다는 과학적으로 참는 방법을 알려주더라는 것.
사람이 수심 깊은 곳으로 잠수해 내려가면 몸이 압력을 받게 되고, 이때 고막에 통증을 느끼게 된다. 프리다이빙 강사가 가르쳐준 기술이 바로 이퀄라이징이다. 잠수를 한 상태에서 침을 꿀꺽꿀꺽 삼키는 방법으로 물속의 압력과 바깥의 압력이 평형을 이루게 함으로써 고막을 보호하는 기술이다.
해녀학교의 수업과정 중 가장 기초이면서도 어려운 게 덕 다이빙이다. 오리의 잠수동작을 본뜬 동작으로, 물에 뜬 상태에서 상체를 직각으로 숙여서 물속으로 들어가는 다이빙 기술이다. 직각으로 입수하지 않으면 바다 깊숙이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가장 기초이자 기본이 되는 잠수 기술인데, 이 요령을 깨우치지 못해 졸업 때까지도 헤매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교육기간 4개월이 다가오자 졸업시험을 치러야 했다. 해녀학교 앞 바닷속에 설치한 정낭(집의 입구에 대문 대신 가로로 걸쳐 놓은 긴 막대)과 해녀상을 짚고 올라오기, 바닷속으로 잠수해 뿔소라 건져 올리기 등을 테스트하는데, 수중촬영으로 합격 여부를 판정했다. 홍실이는 해녀학교 4개월을 '제주바다와 해녀문화를 이해하게 된' 보람찬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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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녀학교 졸업시험 바닷속으로 잠수해 설치돼 있는 해녀상을 손으로 짚고 와야 한다. |
ⓒ 홍실이 |
해녀 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벽
그런데 문제는 졸업 이후였다. 해녀학교는 졸업했지만, 정작 해녀가 되기에는 장벽이 너무 높았다는 것이다. 해녀학교 동기 가운데 해녀가 된 사람은 단 2명뿐이었다. 어떤 장벽이 이들을 가로막은 것일까.
무엇보다도 해녀사회가 기본적으로 독특한 문화를 가진 공동체라는 점이 이들에겐 장벽 아닌 장벽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해녀가 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현역에서 은퇴하는 해녀의 딸이나 며느리가 그 지위를 상속받는 것이다. 외지인이 해녀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기존 해녀들의 만장일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해녀공동체에 들어가 보조역할을 수행하면서 해녀들과 친밀한 관계를 쌓아야만 한다.
제도적으로 부과하는 의무사항도 있다. 마을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개는 어촌마을에 주소지를 옮겨서 2년을 의무적으로 거주해야 한다. 그리고 해녀들의 동의를 얻어 어촌계에 가입해야 비로소 해녀 활동을 할 수 있다. 상당액의 입회비도 내야 한다.
홍실이도 이런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해녀가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점점 멀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다. 당장 우리 마을에 지은 멀쩡한 집을 두고 주소지를 어촌마을로 옮겨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데서부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는 것이다.
현재 제주도의 해녀는 약 3000명가량인데 대부분의 해녀가 고령이어서 명맥을 이어가는 일이 제주도의 중요한 과제가 된 지 오래다. 해녀 전통을 이어갈 딸이나 며느리 중에는 해녀라는 직업을 원치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해녀가 되면 제법 수입을 올리기도 하지만 고막이 터지는 등 잠수병 1, 2개씩을 달고 살아야 할 정도로 육체적으로 힘든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녀학교 졸업생들의 진입 장벽을 낮출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제주도 당국에서는 해녀문화 보존에 관심이 많아 외지인을 해녀로 받아들이는 어촌계에 지원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차라리 해녀라는 직업을 공무원 개념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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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질수업 후의 기념사진 '해남' 지망생들의 모습도 보인다. 해녀학교 입학생의 20%가 남성이었다. |
ⓒ 홍실이 |
해녀학교를 졸업하고도 해녀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그 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홍실이는 해녀학교 동기들의 유대가 무척 끈끈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말한다.
"동기들과 함께 바닷속에서 물질연습을 하고 불턱에서 몸을 말리고 옷을 갈아입는 체험을 하다 보니 강한 동료 의식이 생깁니다. 어찌 보면 목숨을 담보로 하는 교육을 함께 받은 사이니까요. 졸업생 상당수가 제주도에 거주하는데, 삼삼오오 만나며 연락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해녀학교 졸업생' 홍실이는 해녀의 꿈을 다시 꿀 수 있을까. 해녀학교를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라고 말하는 그녀가 제주 바다를 마음껏 휘저으며 물질을 하는 소망을 꼭 이루기 바란다. (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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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