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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회(URISI)
 
 
 
카페 게시글
영상시, 낭송시 스크랩 `우리詩` 5월호의 시와 다정큼나무 꽃
홍해리洪海里 추천 0 조회 125 18.05.07 06:4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 - 여연

 

꽃이 지천으로 흥청거려요

 

꽃은 공공연한 음탕

황홀한 속수무책이에요

누구도 꽃의 음란을 막을 수 없어요

 

나비는 옆구리 터진 비밀봉투에요

내장이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고 꽃 위를 활보하죠

 

허공을 더듬다가 꽃잎을 만진 건

우연을 가장한 필연

꽃술을 건드릴 때마다 진한 정분이 흘러요

 

꽃잎을 열면

다이너마이트를 휘감는 판도라가 뛰쳐나와요    


 

 

- 남정화

 

  오릉을 옆에 두고 달릴 때 공주에서 퍼져 나오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비상등을 켜야지 덤프트럭이 경적을 울린다 욕지기가 귓가에 쟁쟁하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트럭 고로가 순간 까무룩 해진다 내 몸은 차와 함께 잠시 날아올라 쿠쿵, 하늘가에서 눈이 마주친다 지지배야 지지배야 종다리가 놀려댄다 칼바람 일으키며 원을 그리는 무리 내 몸이 너무 커 무겁구나 지지배야 지지배야 아랑곳하지 않고 놀려댄다 허리 굽은 농부가 아직 허리를 펴지 못하고 흙을 다듬고 있다 그러는 사이 종다리가 농부의 등에 착 달라붙어 같이 시름한다 지지배야 지지배야 삼월 중순 경 종다리하고 나하고    


 

 

돌아보다 - 홍해리

   -치매행致梅行 284

 

돌아보면 먼 길이었다

아주 길고 긴 세월이었다

 

할래발딱대던 하루 하루가 가고

허둥지둥거리던 시간도 지나가고

 

지옥의 한철을 멀리 돌아

지금은 침묵의 강이 흐르고 있다

가고 있는 길이 어디로 가는지

가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적막의 터널을 지나면

칠흑의 사막에도 해가 뜰 것인가    


 

  

구멍난 가마솥 - 정미화

 

이 산 저 산의 잡목

들판의 버려진 껍질들

잡다한 쓰레기까지 받아주었네

 

넓고 깊은 마음으로

속을 끓이고 삭히며

집안 대소사 맡아주었네

 

매운 시집살이

설운 하소연에 같이 눈물 흘리고

자식 걱정 남편 원망

가득한 연기 활활 태워 날려주었네

 

들기름 발라 화장해 다독여 주면

더 무겁게 입 다물고

뜨거운 엉덩이 타는 줄 몰랐네

 

김 세월 검게 타다 못해

구멍 난 가슴

이제 물도 바람도 새니

서늘하게 식어버렸네 

    


 

  

외출 - 김정옥

 

은행에 가려던 참이다

낯선 동네

하얀 건물로 삼켜졌다가 이슥한 밤이 되어서야

지레 겁먹은 소처럼 황급히 튕겨 나오는 날들

문을 나서는 눈을 햇살이 쏘아보고

건너편에서 탱글탱글한 웃음소리가 날아온다

 

놀이터 긴 의자에 아주머니들이

시간을 널어 말리는 광경에 시선을 뺏긴다

놀이터로 가 본다

벌써 그곳에는 봄이 더 빨리 외출했음을 발견한다

겨울코트 입은 내 모습을 산수유나무가

노란 레이스 치마를 살랑이며

이방인으로 만든다

 

서류더미에 묻혀 있던 봄이

어느 사이에 살짝 빠져나왔는지

나만 남겨졌었나?    


 

 

주말농장 - 성숙옥

     -날갯짓

 

2주일 만에 들어선 집안

거실 유리창 앞 죽은 새가 있다

똥이 바닥에 말라 있고

창에도 깃털의 부조가 있다

유리의 덫에 갇혀

몸으로 새긴 간절함이 보인다

 

그 결곡함에 지쳐갔을 호흡

 

눈앞의 다른 새들의 풍경 속

투명한 창을 이해할 수 없었던

눈꺼풀

 

곁을 내주지 않은 희망에

주저앉았을 깃털의 부력

그 날개가 덧없다

 

돌아오는 6번 도로

늘어선 차창에서

퍼덕거리는 강을

보다가 멀미가 났다

    

 

 

글라디올러스 그녀 - 이령

 

  그녀와 내통하던 프리젤리 칵테일 바, 그 집 이름이 내려지는 통에 내 속엔 잔바람이 일고 있어요 지붕 끝에는 아라베스크 둥근 달이 고갤 내밀어 그녀의 만삭 배가 출렁이고 있구요 그녀는 커피포트를 잘도 타일러 골목 구석구석 삼부카아니시스 향길 피워 올렸죠 그때마다 나는 은비늘 햇살과 뉴에이지풍의 음표를 쏟아내는 아라베스크 둥근 지붕에 올라갔어요 그녀가 하루치의 햇살을 걷어내면 알레포티포트 뚜껑 옆에 붙어 아슴아슴 벌름벌름 코를 세웠죠

 

  오늘도 그녀는 궁전 지붕에 올라 내려 피는 글라디올러스 꽃잎 하나씩 따고 있겠죠 언젠가 나는 밤새 밤보다 깊은 새벽길을 걸으며 그 향기에 가슴을 베었구요 그녀가 열어 논 아치 창문 너머 나는 기린처럼 목을 빼고 아라비아 푸른 별을 바라봤어요

 

  나는 그녀 손에 들린 화이바커피잔, 비워도비워도 채워지는 만삭의 잔, 살면서 내려지는 이름들을 그녀에게 전하려다 난 점점 동글동글 모가 닳아요     


 

  

추락 - 전선용

 

손금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쩍 갈라진 팔자는 불상사가 됐다

하락은 수직을 허용했고

충격을 흡수하지 못한 실패는 묘혈로,

정지가 불가능한 관성의 힘은 단호하다

오만한 굴절이 깊은 강에서

세족을 하는데 가라루파가 세욕世慾을 먹는다

깊은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무능한 각질이 일어나 소멸되고 비로소

슬픔이 환해지는.

      

         * 생명과 자연과 시를 가꾸는우리20185월호(통권 359)에서

                       사진 : 요즘 한창인 제주 토종 다정큼나무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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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05.11 07:52

    첫댓글 꽃은 아름다움과 유혹의 관능 사이 존재지요
    잘 보았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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