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의 바람 냄새는 사랑의 꽃을 붉게 피어나게 한다
은빛 물결과 수양버들의 작은 호흡.
금천의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
강변에 반짝이는 금모래 빛
강물은 햇살 받아 반짝 반짝 물 빛이 반짝인다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한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강과 금모래, 햇살과 바람, 꽃과 자갈을 친구 삼아
갈잎의 노래를 들으며
방갱이 살림을 산다
얼굴엔 땀방울이
코등엔 싱그러운 바람이
꽃 향기 몰고 놀려 온다
8월의 바람 냄새.
한 편의 동화 같던 날을 살고 있다
새벽이 열리면
100년 이상 지켜준
교회의 종각에 종소리가 들리고
희뿌연 하늘이 눈을 뜨고
집집마다 탕탕탕 경운기 소리 요란하다
골목길에는 경운기소리
마을앞 교회에서 새벽 기도를 마친
순하디 순한 예수님 닮은 사람들이
밭길, 논길로 달려간다
개울을 가로질러 경운기가 다닐 정도로 겸손하게 만들어 놓은 얕은 길
수양버들이 줄지어 있는 냇가
내 건너에는 논에 벼가 자라고 있다
내 위에는 홈걸이 놓여 있다
오솔길 따라 아빠의 새참을 이고 논으로 달려간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면 거센 물결이 사나웠고
물이 빠지면 물장난하기 좋은 수양버들이 자라는 냇가
고불고불 순한 오솔길은 개울 쪽으로 달려간다.
한여름 더위에 별들처럼 벼들이 딱딱하게 구워지고,
순한 농부의 발자국 따라 부드럽게 다져진 들판사이의 길을 걸어.
구름에 달 가듯 엄마는 점심을 머리에 이고 달려온다
수양버들 그늘에 밥상을 차리고
구수한 보리밥에 된장, 붉은 고추가 놓여 있다
아버지는 된장 붉은 고추를 찍어 점심을 든다
수양버들 그늘에 낮잠을 잔다
나는 개울을 향해 내 세상을 만난 듯 달렸다.
꼬불꼬불한 아버지의 길 위에 제멋대로 자란 찔레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스치면서
‘첨벙’ 개울물이 나를 삼킨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사방으로 퍼졌다
일 순간에 사라졌다.
논두렁에는 큰아버지가 있었다.
검정 고무신 배와 꽃잎 실은 나뭇잎 배를 개울물에 둥둥 띄웠다.
아른거리는 물빛 위에서 내 몸도 흔들흔들.
구름이 터져 비가 왔던 날이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뱃길이 된 경운기 길은 물길마저 시원하다.
위풍당당한 검정 고무신 배가 연약함에 위태로웠던 나뭇잎배가 되었다
정성을 쏟았기에 고무신 배는 홀로 개울물에 끌려갔다.
그로 인해 아버지는 눈물이 얼굴을 흘러내렸고
개울물이 불어날 정도로 울어야 했다.
하늘을 보며 “하나님 고무신 한 짝을 잃어버렸어요. 찾게 해 주세요.” 울먹였었는데.
“처음 배를 띄웠던 곳에서 고무신 배를 띄워 보는 게 어떠니?”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잘 흘러가던 고무신 배가 급물살에 휩쓸려 일순간에 사라져 버릴 때
‘쿵’ 하고 내려앉은 심장이 무거워 다리를 휘청거리며 달려갔다.
고무신 배는 완성체로 포개져 바위틈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물속에서 고무신을 끄집어내며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외칠 때
그 짜릿했던 순간. 세상은 모두 하나님 거였고 맑고 푸르고 반짝였다.
험한 인생길에 안간 힘을 쓰며 살아온 작은 열매
‘내 잔이 넘치나이다’
기쁨의 잔을 들고 아버지께 자랑하고 싶어 경쾌한 발걸음으로 논을 향해 달려갔다.
개울가로 달려갈 때 흔들렸던 찔레나무
커다란 뱀 한 마리가 흰 뱃가죽에 알록달록한 꽃무늬를 하고
대롱대롱 매달려 나를 노려보고 있다.
꼼짝달싹도 못한 채 비명을 질러댔었다.
우리 아버지는 바람이었다.
언제 왔는지 손을 뻗어 뱀의 꼬리를 잡더니 개울을 향해 힘차게 던져 버렸다.
뱀은 날아가고 맨발의 아버지 발등에는 붉은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날 사랑은 그렇게 붉게 피어났다.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어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