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를 페미니즘과 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여성에 대한 억압을 다뤘고 그 억압에 나름대로 저항하는 이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탈출을 시도한 여성도, 연대를 도모한 여성도, 이를 폭로한 여성도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실천하는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세 종류의 저항은 모두 좌절하거나 적어도 한계를 가진다. 작품 속 여성들은 구조와의 대결에서 패배했고 작품을 생산해낸 여성도 구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것이 수없이 좌절해온 현실 속 여성들의 모습을 가장 사실적으로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좌절을 그린 작품라고 해서 독자에게 언제나 좌절만을 주는 건 아니다. 사실보다 사실적인 허구가 오히려 현실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을, 우리는 꾸준히 목격해왔다. <채식주의자>가 그러한 균열의 도화선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