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화성은 조선 정조대 역작품으로 총 길이 5.7킬로미터에 달합니다. 먼저 정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수원화성을 만든 정조는 훌륭한 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정조 즉위년인 1776년 3월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을 설치했습니다. 규장각은 처음엔 역대 왕들의 친필, 서화, 임금님 족보등을 보관하고 관리했으나 점차 정조의 뜻대로 학술 및 정책 연구기관으로 변해갔습니다. 규장각은 초계문신이라고 불리는 젊고 뛰어난 학자들을 선발하고 인재로 양성합니다. 이에 대한 인물이 정약용, 이흥선, 김조순이라고 합니다. 1777년 1월 서자들이 관직에 나갈 수 있도록 법을 제정했습니다. 정조의 개혁정책으로는 한글보급운동으로 윤음의 한쪽 면에 훈민정음으로 썼다고 합니다 이는 언문을 통한 국가정책 홍보입니다. 정조는 자신의 아들 순조가 15세가 되는 1804년에 국왕의 지위를 물려주고 화성에 거처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로인해 화성이 도성구조로 건설된 것 입니다.
이제 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수원화성은 경기도 수원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곽입니다. 수원화성은 조선 후기에 세워진 계획도시입니다. 수원화성은 1794년 1월에 건축시작 1796년 9월초에 건축이 끝났습니다. 먼저 화성행궁으로 들어가려면 홍살문을 지나야합니다. 홍살문이 왼쪽으로 치우쳐진 것은 왕이 거처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좌익문을 지나면 내삼문인 중양문이 나옵니다. 봉수당에 닿기까지 세 개의 문이있는데 외부와의 통신시설인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정당입니다. 이곳은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가 열렸던 장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봉수당에서 펼쳐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은 궁궐 밖에서 펼쳐진 처음이자 마지막 왕실잔치가 되었습니다. 봉수당 왼편에 2층 높이의 건물이 있는데 이는 혜경궁 홍씨의 처소인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경룡관입니다. 이곳은 왕의남자가 촬영된 장소입니다.
정조가 지뢰를 개발하고 활쏘기 연습을 하던 득중정이 있고 행궁의 하이라이트인 화령전이 있습니다. 2009년의 화령전은 태양광선과 달빛이 200년간 덧칠한 빛깔을 자랑합니다. 화령전은 촬영장소로도 제공되지 않을 만큼 가치와 기품이 높은 화성 최고의 건축물입니다. 화양루는 용도를 지나고 해발 143m에 있는 팔달산 정상엔 군사지휘소인 서장대가 있습니다. 직접올라갔다온 경험이 있는데 정말 높고 화성 전체가 잘 보였습니다.
신풍루 앞 느티나무 세그루는 전국의 궁궐이나 행궁에 남아있는 유일한 것들로 정조대왕이 직접 심었다고 합니다. 수원화성엔 모두 11개의 문이 있는데 이중에는 장안문이 4대 문중 하나입니다. 장안문은 임금이 사는 북쪽 한양을 향해 세워진 화성의 정문입니다. 화성의 상징인 장안문은 출입문인 동시에 치밀하게 설계된 군사시설입니다. 장안문안쪽에 방어목적 군사시설이 있습니다. 장안문엔 와장대가 있는데 와장대는 석축계단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주 들어본 봉돈은 봉화대와 돈대의 결합입니다.
수원화성이 초고속으로 건축될 수 있었던 것은 실학자 정약용이 최첨단 기자재를 도입했기 때문입니다. 거중기가 유명한데 거중기는 사용하는 움직도르래가 1개 늘어날때 필요한 인력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거중기 덕분에 수원화성 건축중에 인력을 아끼고 무거운 물체를 수월하게 다룰 수 있었습니다.
정조의 역사가 담겨있는 수원화성은 군사시설 뿐만아니라 예술적으로도 완벽합니다. 수원화성을 둘러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며 정조의 뜻이 담겨있는 수원화성이 대단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상입니다.)
- 5분에 맞추진 못한게 조금 아쉽습니다ㅠㅠ
첫댓글 완전 길다!!잘 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