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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뮤직 스튜디오 원문보기 글쓴이: 다미
경부선 [京釜線]
경부선 [京釜線]
요약
서울과 부산을 잇는 복선철도로 총길이 441.7㎞이다. 1904년 12월 27일에 완공되고 1905년 1월 1일에 전 구간을 개통하였다. 2006년 12월 8일에 전 구간이 전철화로 개통되었다.
본문
총길이 441.7㎞이다. 1901년(광무 5) 8월 20일 북부기공식을 서울 영등포에서, 9월 21일 남부기공식을 부산 초량(草梁)에서 거행하고, 1904년 12월 27일에 완공되었다. 1905년(광무 9) 1월 1일 전 구간을 개통하였다. 같은 해 9월 11일에는 경부선과 일본철도가 부관(釜關)연락선을 매체로 연결되었다.
1906년(광무 10) 경의선(京義線)을 개통함으로써 1908년 부산∼신의주 간 직통 급행열차인 융희호(隆熙號)를 운행하게 되었고, 1911년 11월 1일부터 만주(중국 북동지방)까지 직통급행을 운행함으로써 국제선의 기능을 갖게 되었다. 1933년 4월 1일부터 부산∼선양[瀋陽] 간 국제 급행을 운행하였고, 1939년 11월 1일 부산∼베이징[北京] 간 직통급행열차가 운행되었다.
1939년 일본의 대륙 침략 목적에 의하여 복선화되었고, 1974년 서울∼수원 간이 전철화(電鐵化)되었고, 2003년 4월 수원~병점 간 복복선화되었고, 2005년 병점~천안 간 복복선 전철화가 완료되었다. 2006년 12월에 전 구간 전철화가 완료되었다.
경의선과 함께 한반도의 주요 종관철도로서 많은 지선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운수교통량은 전국 철도 중에서 가장 많아 교통상의 대동맥을 이루고 있다. 2011년 현재 역 수는 90개(보통역 64, 배치간이역 6, 무배치간이역 15, 신호소 1, 신호장 3, 조차장 1), 연간 여객수송 수는 7352만 8292명으로 전체의 60%에 달한다. /네이버
경부선 [京釜線]
서울특별시와 부산광역시를 잇는 철도.
총길이 444.5㎞의 복선철도이다. 서울을 기점으로 천안-대전-대구-부산 등을 연결하며 남한을 종관한다. 일본 자본으로 설립한 경부철도주식회사가 1901년 8월 20일 서울 영등포와 9월 21일 부산 초량에서 각각 공사를 시작해 1904년 12월 27일 완공했다. 1905년(광무 9) 1월 1일 개통했으며, 경인선에 이은 2번째의 철도가 되었다.
일본이 침략정책을 수행하려는 목적으로 부설했기 때문에 공사 진행시 우리나라 관민의 저항과 반대가 심했다. 그밖에도 용지매수분쟁, 결빙과 홍수, 화폐의 차이 등 많은 어려움에 부딪쳐 1902년말까지 서울 쪽에서는 51.5㎞, 부산 쪽에서는 53.1㎞만 완성되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이 임박하자 일본은 군대를 신속하게 이동하기 위해 공사를 강행했는데, 무리한 공사 일정 때문에 졸속 공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경부선이 개통되자 경부선과 일본의 철도가 부관연락선(釜關連絡船)을 매개로 연결되었으며, 1906년 경의선의 개통으로 1908년부터 부산-신의주 간 직통 급행열차인 융희호(隆熙號)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1931년 일본이 만주를 본격적으로 침략하면서 수송량이 급속히 늘어나자 1936년부터는 부분적으로 복선공사를 시작해 약 8년 동안에 거의 모든 노선을 복선화했다. 해방 이후부터 6·25전쟁 기간 동안 이민자가 귀국하거나 전쟁으로 피난갈 때 경부선은 주요 교통 수단이었다. 또 1960~70년대 경제개발시대에 농촌 인구가 서울로 몰려들 때도 주로 경부선을 이용했다. 이렇듯 경부선은 현대 한국 사회의 인구 이동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1974년에는 서울-수원 간을 전철화했으며, 일부 구간을 복복선화했다.
여객 수송량은 전국 철도 중 가장 많으나 화물 수송량은 적다. 경부선에는 모두 84개의 역이 있으며, 노선간 운행 횟수는 서울-수원 간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수원-대전 간, 대전-부산 간이 많다. 서울에서 경인선·경의선·경춘선·서울교외선·중앙선·수도권지하철 등과 연결되며, 천안에서 장항선 및 안성선, 조치원에서 충북선, 대전에서 호남선, 김천에서 경북선, 대구에서 대구선, 삼랑진에서 경전선, 부산에서 동해남부선과 각각 연결된다. 철도의 부설 목적은 비록 일본의 침략수탈정책을 뒷받침하는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국토의 대동맥으로서 남한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곳곳의 대도시 지역을 지선(支線)으로 연결해 시간상 국토 공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철도 /브리태니커
경부선 [京釜線]
서울과 부산 사이에 부설된 복선철도.
개설
길이는 441.7㎞이고 우리나라의 양대 도시인 서울특별시와 부산광역시를 연결하고 대전광역시, 대구광역시를 경유하는 한국 철도의 중추 간선노선이다. 장항선·충북선·호남선 등과 접속되어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형성 및 변천
1901년 8월 20일에 서울 영등포에서, 같은 해 9월 21일에 부산 초량에서 일본 자본의 회사인 경부철도주식회사에 의해 기공되어 4년 후인 1904년 12월 27일 완공되었다. 1905년 1월 1일을 기하여 전선(全線)의 영업이 개시되었다. 그 해 5월 25일에 서울 남대문 정거장(지금의 서울역) 광장에서 개통식이 거행되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경인선(1899년 9월 18일 개통)에 이은 두 번째의 철도 개통이었다. 서구 열강의 식민지 체제 구축이 철도 부설 및 채광권 획득에서 비롯되었던 많은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부선의 부설은 일제의 우리나라 침략 정책 수행의 구체적 발판이었다.
1894년 ‘한일잠정합동조관(韓日暫定合同條款)’으로 경부선 철도 건설에 관한 문제가 조약 문서상에 나타나고, 1898년 ‘경부철도합동조약(京釜鐵道合同條約)’으로 경부철도의 부설권이 일본인 회사에 강압적으로 특허되기까지 일제는 민간인을 앞세워 비밀리에 그 기초 공작을 진행하였다.
즉 일본인 마쓰다(松田行藏) 등은 1885년(고종 22)에 내한하여 4년에 걸쳐 전 국토를 돌아다니며 지세·교통·민정 및 경제 상황을 은밀히 조사하였다. 이어 내한한 일본인 철도기사 고노(河野天端) 등도 당시 부산 주재 일본 총영사 무로다(室田義文)의 비호 아래 사냥꾼으로 가장하고 서울∼부산 간 철도 부설 예상 지역을 면밀히 답사한 뒤 측량 도면과 함께 보고서를 작성하여 1892년에 본국 정부에 제출하였다.
원래 서울∼부산 간에는 동로·중로·서로의 3개 도로를 비롯하여, 전라가도·경상가도·삼남가도 등의 교통로가 있어 처음 노선 계획의 기준이 되었으나, 이들 중 어느 한 도로를 따라 건설하는 것은 지세 등의 제약 조건 때문에 어려웠고,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제적 조건을 중시한 데다 경쟁 철도의 출현을 피한다는 입장에서 서울에서 충청도를 거쳐 부산에 이르는 절충 노선을 택하게 되었다.
공사의 진행은 우리나라 관민의 저항과 반대, 용지매수 분쟁, 결빙과 홍수 및 화폐의 차이 등으로 많은 난관에 부딪쳐, 1902년 말까지 북부에서는 51.5㎞, 남부에서는 53.1㎞만 완성될 수 있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이 임박하자 일제는 군사상의 필요에 따라 공사를 서둘러 강행하였고, 그 결과 졸속공사를 면할 수 없었다.
경부선이 개통되자 같은 해 9월 11일에는 부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를 연결하는 부관연락선(釜關連絡船)을 매체로 경부철도와 일본철도를 연결하는 연대 운수가 개시되었다. 또한 같은 해 11월 10일에는 경부철도와 군용철도인 경의선(서울 용산∼신의주간)의 연락 운행이 시작되었고, 11월 11일에는 군용철도 마산포선이 개통되어 영업을 개시함으로써 군용 철도 시대의 막을 열게 되었다.
경부선의 개통으로 서울과 부산을 잇는 국토의 공간 거리가 시간적으로 크게 단축되었으며 이것은 그 뒤의 국토 발전에 하나의 큰 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 그러나 그 근본 목적은 일제의 우리나라 침략 수탈 정책을 뒷받침하고, 이어 1905년 4월 28일 개통된 경의선과 함께 대륙 진출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어서 결국 경부선의 개통은 그 길을 닦은 셈이 되었다.
1931년 일제의 만주 침략이 본격화된 뒤에는 수송량이 급격히 늘어났고, 이에 따라 일제는 그 동안의 시설 보수에서 한 걸음 나아가 1936년에 경부선 복선 공사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전∼영등포 간의 복선 공사는 1939년에, 부산진∼삼랑진 간은 1940년에 완공되었고, 삼랑진∼대전 간 복선은 1940년 공사에 착수하여 더욱 치열해진 전쟁 중인 1944년 10월에 준공되었다.
수원∼천안간의 복복선화와 전철화가 진행되어 2003년 4월에는 수원∼병점 구간이 1차 개통하였고, 2005년 1월에는 병점∼천안간이 복복선화되어 천안까지 통근형 전동차의 운행범위가 확대되었다. 이와 함께 기존의 서울∼수원 간 직통열차가 서울(용산)∼천안 간 급행열차로 바뀌어 서울역과 천안역을 86분에 이어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구간 전철화 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광복 후 혼란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경부선은 격동을 겪었으며, 뒤이은 사회·경제적 발전에 유통의 대동맥 구실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한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경부선은 곳곳의 도시에서 간선 및 지선철도의 형태로 주요 산업단지와 공업단지를 연결하고,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고 있다.
현황
경부선 KTX·경부선·호남선·전라선·장항선 새마을호·누리로·무궁화호 및 광역 철도가 이 노선을 사용하여 운행한다. 또한, 천안 이남으로는 충북선·중앙/동해남부선·경전선·경북선 열차도 이 노선의 일부 구간을 공유하고 있다.
모든 철도교통량이 모여들기 때문에 한국 철도 내에서 최대의 교통량을 처리하는 용산~시흥 구간은 2005년 기준으로 하행선의 경우 주당 일반열차 1,102편, 수도권전철 전동열차 36편이 통과해 총 1,144편이 통과하는 막대한 교통량을 처리하고 있다. 이를 용산역에서 열차가 출발한 시간으로 나누면 시격은 약 6.8분에 불과하다.
89개의 역을 보유하고 있는 경부선은 2008년 기준으로 여객수송실적은 7,069만 6,185명이다. 그 가운데 경부고속철도를 이용한 승객은 2,978만 7,617명이고, 새마을호를 이용한 승객은 733만 2,859명이다. 무궁화호를 이용한 승객은 3,357만 5,709명이다. 경부선 광역전철 이용승객은 2009년에 2억 5,830만 6,350명이었다. 한편 화물수송실적은 466만 6,215톤이며, 화물의 대부분은 컨테이너로서 436만 7,538톤을 수송하였다.
경부선은 서울에서 경인선·경의선·경춘선·경원선·용산선·서울교외선·중앙선·망우선 및 수도권 지하철 등 주요 본선 및 지선과 연결되는 한편, 천안에서는 장항선, 조치원에서는 충북선, 대전에서는 호남선, 김천에서는 경북선, 대구에서는 대구선, 삼랑진에서는 경전선, 그리고 부산에서는 동해남부선과 연결된다.
이리하여 경부선은 1970년 개통된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전국의 대소 도시와 주요 경제 지역을 연결하는 육로 교통망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경부선
경부본선(京釜本線)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자동의 서울역과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의 부산역을 잇는 한국철도공사의 간선 철도 노선이다. 노선 번호는 201이다.
개요
경부선은 대한민국의 양대 도시인 서울특별시와 부산광역시를 연결하고 대전광역시, 대구광역시를 경유하는 한국 철도의 중추 간선노선이다. 장항선, 호남선 등과 접속되어 그 중요성이 매우 크며,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중요성을 인정받아 한창 전쟁 중인 1944년에 이미 복선화가 완료되었다. 다른 선구에 비해 선형이 좋아 고속 운행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일부 구간은 복복선화되어 용량을 증대하였다. 1974년 서울 - 수원간 수도권 전철이 개통되었으며, 서울 지하철 1호선 서울역 - 청량리와의 직결 운행하고 있다. 2004년에는 KTX를 위하여 경부선의 경로와 유사한 300km/h 급의 경부고속선이 개통하였다. 2006년 전철의 운행 구간이 천안역까지 확대되었고, 2008년 12월 15일 장항선 신창역까지 경부선 전철이 연장되었다.
서울에서의 여객 열차의 출발역은 서울역과 용산역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운영
역사
경인선을 부설한 일본은 대한제국의 철도망을 장악하기 위하여 한반도의 2대 간선축인 서울 - 부산과 서울 - 신의주를 잇는 철도 부설권을 얻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 1898년 9월, 이윽고 부설권을 취득한 일본은 '경부철도'를 설립하고 1901년 6월 일본은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세워, 8월 21일에 서울 영등포와 부산 초량에서 각각 착공식을 거행했다. 일본은 영국에서 자금을 빌려와 미국이 가졌던 부설권과 건설 장비를 구입하였다. 경부철도주식회사의 자본금의 4분의 1은 일본 국고에서 나왔으며, 불입금의 10배에 달하는 사채모집도 승인되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 사장은 "경부선은 조선에서 일본의 유일 맥관이자 사활의 기관"이라고 황족, 부호에서 시골 농부까지 주식을 사서 애국하라고 선동하였으며, 이 국민주 모금운동으로 2,500만 원의 거대 자본금을 조달하였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군수물자 수송등의 이유로 급격히 공사가 진행, 1904년 12월 27일에 완공되어 1905년에 전선이 개통되었다. 일본은 영국처럼 차량이 좌측으로 다녔기 때문에 경부선의 열차도 좌측통행을 하게 되었다. 1906년 러일전쟁 후, 일본의 수상 사이온지는 경부철도 매수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켜 경부선과 경의선을 조선통감부 철도관리국 소관으로 국유화하였다.
철도 예전선 주위에 사는 조선인들은 토지 징발과 인력 동원, 물자조달 등을 좌우한 일본군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노반공사에 농번기 임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동원되었으며, 식량과 가축에 대한 강제 징발도 수시로 자행되어 유랑민이 속출하였다. 대한매일신보는 '철도가 통과하는 지역은 온전한 땅이 없고 기력이 남아 있는 사람이 없으며, 열 집에 아홉 집은 텅비었고, 천리 길에 닭과 돼지가 멸종하였다'고 보도했다. 시흥과 파주, 곡산과 평산 그리고 평양에서 조선인들은 이에 항의하는 싸움을 벌였고, 선로상에 큰 돌을 놓아 저항하였다. 이런 사건의 주모자는 잡히는 대로 사형에 처해졌다.
1908년에는 경부선과 같은 해에 완공되었던 경의선과의 직결 운행이 이뤄져 부산과 신의주를 잇는 직통 급행열차 융희호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국권침탈 이후에는 일본과 만주를 잇는 경부선과 경의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면서 1910년대에 전면개량이 이루어졌다. 남만주철도의 노선과 직통운행도 이뤄져 한반도와 중국대륙을 잇는 국제열차가 운행되기도 하였다.
광복 이후에도 한국의 중추 철도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고, 한국 전쟁때 한강철교가 폭파되기도 하였으나 군수물자와 병력수송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전후에는 유엔군의 공여와 미국의 원조로 들어온 디젤 기관차가 투입되어 서울 - 부산간 소요시간이 크게 단축되기도 하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서울로의 급격한 인구유입과 도시화로 인한 통근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서울 - 수원간의 전철화와 서울 - 영등포간의 복복선화가 진행되어 1974년 8월 15일에 경인선(구로 - 인천), 경원선(청량리 - 성북)과 함께 통근형 전동차 를 운행하여, 서울 지하철 1호선과의 직통운행을 개시하였다.
계속된 통근수요의 증가로 용량이 한계에 이르자 1981년 12월 23일에 영등포 - 수원간 복복선화가 이뤄져 통근형 전동차와 일반열차의 운행선로가 분리되었다(통근형 전동차는 2선, 일반열차는 1선). 그리하여 어느 정도 통근형 전동차를 대량 수용 하는 것이 가능해져 급증하는 통근수요에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1984년에는 열차선을 이용하여 서울 - 수원간을 빠르게 잇는 직통열차(현 급행열차)가 등장하였으나 러쉬아워에 3, 4회만 운행하였다.
계속된 개량과 CTC의 도입, 150km/h 고속주행이 가능한 새마을호 객차의 도입등에 힘입어 1985년 11월 16일 영업최고속도를 140km/h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서울 - 부산간 최단 소요시간이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가 각각 4시간 10분, 4시간 50분, 5시간 15분으로 단축되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수요증가와 대부분의 철도가 경부선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단점 때문에 1990년대에 이르러 만성적인 용량부족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부선 전구간의 복복선화와 고속신선의 도입이 검토되었는데 소요시간 단축과 이에 따른 대량의 여객수송이 가능한 이점이 부각되어 고속신선의 도입이 결정되었다. 고속철도 시스템은 프랑스의 TGV가 선정되어, 2004년 4월 1일에 시흥 - 지천의 경부고속신선이 개통되어 KTX가 운행 개시되면서 서울 - 부산간을 2시간 40분에 연결하여 기존 새마을호에 비해 1시간 30분 이상을 단축시켰다.
이와 더불어 수원 - 천안간의 복복선화와 전철화가 진행되어 2003년 4월 30일에는 수원 - 병점 구간이 1차 개통, 2005년 1월 20일에는 병점 - 천안간이 복복선화되어 천안까지 통근형 전동차의 운행범위가 확대되었다. 이와 함께 기존의 서울 - 수원간 직통열차가 서울(용산) - 천안간 급행열차로 바뀌어 서울역과 천안역을 상행선 1시간 25분, 하행선 1시간 20분 에 이어주고 있다. 참고로 2000년부터 전철 안내에는 1호선이라는 안내명이 사용된다.
또한 전구간 전철화 사업도 진행되어 KTX의 운행을 위해 대전조차장 - 옥천, 지천 구간이 2004년 4월에 전철화된 것을 시작으로 2005년 3월 천안 - 조치원 구간이 전철화되었고 2006년 12월까지 잔여 구간인 조치원 - 지천간의 전철화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2007년 3월 1일부터 경부선에도 전기 기관차 운행이 시작되어 열차운행비용 절감에 도움이 되고 있다.
고속철도 개통과 동시에 일부 구간의 선형 개량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기존의 속도제한 90~100km/h 를 대폭 상향조정하여 140~150km/h 주행이 가능하도록 직선화하여 기존선의 운행시간을 단축하였다. 2000년 이후 노선이 이설된 구간은 다음과 같다.
* 병점 - 오산 (구 선로는 일부 병점기지선으로 사용중)
* 대전 - 세천 - 옥천
* 이원 - 지탄
* 황간 - 추풍령
* 삼성 - 남성현
* 신거 - 밀양 - 삼랑진
연혁
일제 강점기
* 1902년 10월 : 초량역 - 구포역 간 개통
* 1902년 10월 10일 : 영등포역 - 명학동역 간 개통
* 1903년 10월 : 명학동역 - 진위역 간 개통
* 1903년 12월 : 구포역 - 밀양역 간 개통
* 1904년 4월 : 밀양역 - 성현역 간 개통
* 1904년 7월 : 진위역 - 부강역 간 개통
* 1904년 10월 : 성현역 - 영동역 간 개통
* 1905년 1월 1일 : 서울역 - 초량역 영업 개시
* 1905년 5월 28일 : 개통식 (서대문)
* 1906년 1월 20일 : 소정리역 개업
* 1906년 5월 15일 : 유천역 개업
* 1908년 4월 1일 : 초량역 - 부산역 개통, 시흥역 개업
* 1909년 11월 1일 : 부강역 개업
* 1913년 4월 1일 : 부산역 - 부산잔교역 개통
* 1916년 2월 : 부강 - 대전간, 약목 - 대구간 개량
* 1916년 11월 1일 : 김천 - 약목간 개량 (구미 경유로 이설) 동시에 금오산역 폐지, 대신역, 아포역, 구미역 개업
* 1918년 6월 : 부산진 - 부산간 복선화
* 1918년 7월 25일 : 약목역 개업
* 1918년 10월 25일 : 신동역 개업
* 1919년 6월 : 영동 - 김천간 개량
* 1919년 8월 1일 : 남성현역 개업
* 1919년 12월 : 대전 - 영동간 개량
* 1921년 1월 1일 : 지천역 개업
* 1921년 2월 11일 : 사상역 개업
* 1922년 5월 11일 : 내판역 개업
* 1922년 12월 25일 : 세천역 개업
* 1923년 5월 15일 : 대구 - 청도간 개량
* 1925년 9월 15일 : 세송신호소 개업
* 1925년 11월 1일 : 고모역 개업
* 1927년 4월 1일 : 세송신호소를 직지사역으로 개칭
* 1929년 7월 1일 : 전동역 개업
* 1930년 10월 1일 : 회덕역 개업
* 1934년 12월 1일 : 직산역 개업
* 1935년 8월 11일 : 안양풀임시승강장 개업
* 1936년 4월 1일 : 경성 - 영등포간 경인선에서 경부선으로 편입 (복선)
* 1937년 8월 4일 : 신암신호소 개업
* 1937년 10월 24일 : 신암신호소 폐역
* 1938년 4월 1일 : 군포장역을 군포역으로 개칭
* 1938년 6월 15일 : 미륵신호장 개업
* 1938년 8월 1일 : 신암신호장 개업
* 1939년 6월 15일 : 영등포 - 대전간 복선화
* 1939년 8월 31일 : 안양풀임시승강장 폐역
* 1940년 4월 : 삼랑진 - 부산진간 복선화
* 1943년 12월 10일 : 부산역을 부산부두역으로 역명 변경
* 1944년 : 오정역 개업
* 1944년 5월 1일 : 부곡역 개업
* 1944년 8월 1일 : 경성 - 영등포간 복복선화 (경부선과 경인선이 각각 복선 사용)
* 1945년 3월 1일 : 대전 - 삼랑진간 복선화. 전구간 복선화 완료
* 1945년 6월 1일 : 미전역 개업
* 1945년 6월 10일 : 부산부두역을 부산역으로 역명 환원
* 1945년 6월 16일 : 대성역 개업
비전철 시대
* 1946년 2월 18일 : 매포역 개업
* 1947년 9월 25일 : 경성역을 서울역으로 개칭
* 1954년 3월 10일 : 세류신호소 개업
* 1956년 2월 21일 : 증약역 개업
* 1964년 7월 1일 : 각계역 개업
* 1965년 7월 23일 : 부산진역, 초량역 폐역
* 1965년 12월 10일 : 사곡역 개업
* 1966년 4월 8일 : 연화역 개업
* 1966년 5월 16일 : 지탄역 개업
* 1966년 8월 6일 : 안양풀장임시승강장 재개업
* 1967년 5월 1일 : 가풍임시승강장 개업
* 1967년 6월 10일 : 미륵임시승강장 재개업
* 1967년 6월 11일 : 신거역 개업
* 1968년 9월 9일 : 박람회임시승강장 개업
* 1968년 10월 20일 : 박람회임시승강장 폐역
* 1969년 3월 25일 : 구로신호소 개업
* 1969년 6월 10일 : 동대구역 개업, 부산진역 재개업
* 1969년 8월 17일 : 안양풀장임시승강장 다시 폐역
* 1973년 6월 1일 : 구로신호소 폐역
* 1973년 12월 1일 : 구로남신호소 개업
전철화 시대
* 1974년 8월 15일 : 서울 - 수원간 전철화, 통근전동차 운행개시
* 1974년 8월 15일 : 증약역 폐역
* 1974년 8월 15일 : 남영역, 대방역, 가리봉역, 관악역, 명학역, 화서역 개업
* 1974년 12월 5일 : 가풍임시승강장 폐역
* 1975년 12월 29일 : 신암신호장 폐역
* 1978년 1월 1일 : 오정역 폐역, 신암신호장 개업
* 1978년 1월 10일 : 대전조차장역 개업
* 1978년 5월 1일 : 서창역 개업
* 1979년 2월 1일 : 율전역 개업
* 1979년 6월 15일 : 두정신호장 개업
* 1981년 12월 23일 : 영등포 - 수원간 복복선화
* 1982년 8월 2일 : 석수역 개업
* 1984년 1월 1일 : 율전역을 성대앞역으로 개칭
* 1984년 5월 22일 : 신도림역 개업
* 1988년 10월 25일 : 금정역 개업
* 1991년 11월 23일 : 영등포 - 구로간 3복선화
* 1992년 3월 2일 : 미륵임시승강장 폐역
* 1993년 8월 7일 : 엑스포임시승강장 개업
* 1993년 11월 8일 : 엑스포임시승강장 폐역
* 1994년 12월 1일 : 성대앞역을 성균관대역으로 역명 변경
* 1996년 12월 31일 : 서울 - 영등포간 3복선화
* 1997년 4월 30일 : 신길역 개업
* 1998년 1월 7일 : 독산역 개업
* 1999년 3월 10일 : 화명신호장 개업
* 1999년 6월 1일 : 열차전면개편에 따라 경부선 서울~부산간 통일호 장거리 열차가 무궁화호로 승격
* 2000년 1월 1일 : 유천역을 상동역으로 개칭
광역 전철 시대
* 2003년 4월 30일 : 수원 - 병점간 전철화, 복복선화
* 2004년 4월 1일 : KTX 운행개시. 대전조차장 - 옥천, 신동 - 부산 전철화
* 2004년 6월 25일 : 부곡역을 의왕역으로 개칭
* 2005년 1월 20일 : 병점 - 천안 전철화, 복복선화
* 2005년 3월 30일 : 천안 - 조치원 전철화
* 2005년 7월 1일 : 가리봉역을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개칭
* 2005년 9월 5일 : 조치원 - 대전조차장 전철화
* 2005년 11월 1일 : 가천역 개업
* 2005년 12월 27일 : 세마역, 오산대역 개업
* 2006년 6월 30일 : 진위역, 지제역 개업
* 2006년 12월 8일 : 옥천 - 신동 전철화 및 개량. 전구간 전철화 완료
* 2007년 3월 1일 : 전기기관차 운행개시
* 2008년 12월 29일 : 시흥역을 금천구청역으로 역명 변경
* 2010년 1월 21일 : 당정역 개업
* 2010년 11월 1일 : 경부고속선 2단계 구간 개통과 함께 서울역 - 부산역 간 영등포, 수원 경유 기존선 KTX 8회 운행, 김천구미역 개통으로 김천역과 구미역에 정차하던 기존선 경유 KTX 폐지, 밀양역, 구포역경유 KTX 대폭 감소
* 2014년 5월 12일 : ITX-새마을 운행 시작, ITX-새마을, 새마을호 청도역 재정차.
* 2014년 6월 1일 : 경전선 새마을호가 ITX-새마을로 대체 운행.
* 2014년 6월 30일 : ITX-새마을 물금역 정차, 서울-부산 새마을호 폐지.
역 목록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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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5.28 - 경부선 철도 개통식
1905.5.25 - 서울 남대문 정차장(서울역), 경부철도 개통식 거행
1905.1.1 - 경부선(서울-부산) 개통
1904.11.10 - 경부선 철도 완공
1901.8.20 - 경부선 철도 기공
북부기공식(영등포)(8.20), 남부기공식(부산 초양)(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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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5.28 - 경부선 철도 개통식
서울을 기점으로 대전·대구·부산을 연결하며 남한을 종단, 관통하는 복선철도인 경부선 개통식이 1905년 5월 28일에 치러졌다.
총연장 444.5㎞. 일본은 한국 침략정책 수행의 구체적 발판으로써 5년에 걸친 경부선 부설권 획득공작을 벌여, 1898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서울을 방문, 경부철도합동조약을 체결하면서 성취됐다.
이 조약에 따라 일본은 1901년(고종 38) 영등포와 부산 초량에서 각각 기공식을 거행해 1904년에 완공, 1905년 5월 28일에는 전선(全線)에 걸친 영업이 개시되었다. /조선
1905.5.25 - 서울 남대문 정차장(서울역), 경부철도 개통식 거행
대륙을 넘나든 국제선 '경부철도'
경부철도 부설은 1901년 8월20일 영등포에서 북부 기공식, 9월21일 초량에서 남부기공식을 시작으로 공사를 시작하였으며 일본은 1904년 2월의 노일전쟁 발발 전 부터 러시아와의 전쟁을 예견하고 군사수송을 위한 경부철도 긴급부설을 결정하고 1903년 12월 2일 경부철도회사에 경부선 속성건설 명령을 내리는 한편 필요 자금을 지원하면서 늦어도 1904년 12월31일까지 전 구간 개통명령을 추가 하달함에 따라 초량에 임시 건설부를 설치하고 공사를 독려하여 1904년 11월 모 든 구간의 공사가 준공되어 1905년 1월 l일 초량~경성(서대문역)간 영업이 시작되었다. 개통식은 1905년 5월25일 남대문역 구내에서 거행되었으며 이날 개통식에 참석한 주한미국공 사 Horace N. Allen은 축사에서 “나는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차장에게 ‘남대문 역에서 내려주시오!’라고 말할 날이 오기를 희망 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시각표에 의하면 경성역 오전 9시 출발하여 초량역에는 오후8시15분 도착으로 11시간 15분이 소요되었다.
Green Network 코레일뉴스
1905년 5월 25일, 남대문역사(현재
의 서울역)에서 경부선철도 개통식
이 열렸다. (사진 수집가 함성한씨
가 제공).
1905.1.1 - 경부선(서울-부산) 개통
오늘의 역사 (1월 1일)[1905년] 경부선(서울-부산) 개통
우리나라 두번째 철도선인 경부선이 1905년 1월1일 운행을 개시했다. 1898년 9월 8일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해 조선 정부로부터 경부 철도 부설권을 획득한 일본은 1900년 8월부터 공사에 들어갔으며, 1901년 서울 영등포(8월20일)와 부산 초량(9월11일)에서 기공식을 가진 지 3년4개월 만이었다.
공사는 관민의 저항과 반대, 용지매수 분쟁, 결빙과 홍수 등으로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조선 정부의 협조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저렴한 비용으로 건설됐다. 개통식은 5월 25일 남대문 정거장(서울역)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경부선에 이어 부산(釜山)과 시모노세키(下關)를 연결하는 최초의 부관(釜關)연락선 `일기환(壹岐丸)`이 취항(1905년9월11일)하고, 경의선(서울~신의주)이 개통(1906년4월3일)됨으로써 섬나라 일본은 사실상 대륙과 연결되는 효과를 보았다.
1913년에는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 각국과 화물운송을 시작해 오랫동안 숙원해 온 대륙진출로의 확실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첫 열차는 시속 26.5㎞ 속도로 17시간이나 걸려 서울과 부산 간을 운행했지만 5개월 후에는 14시간으로 단축됐고, 1906년에는 다시 11시간으로 단축돼 속도, 기술면에서도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조선
http://focus.history.chosun.com/history/read_body.jsp?id=19990917_0001
1905.1.1 - 경부선 전 구간 개통
[오늘의 역사]경부선 전 구간 개통
1905년 오늘 경부선 전 구간이 개통됐다.
총길이 444.5㎞로 1901년 8월 20일 북부기공식을 서울 영등포에서, 9월 21일 남부기공식을 부산 초량에서 거행하고 1904년 12월 27일에 완공됐다.
1905년 전 구간이 개통된 데 이어 9월 11일에는 경부선과 일본철도가 부관(釜關)연락선을 매채로 연결됐다.
1906년 경의선을 개통함으로써 1908년 부산~신의주 간 직통 급행열차인 융희호를 운행하게 됐고 1911년 11월 1일부터 만주(중국 북동지방)까지 직통급행을 운행함으로써 국제선의 기능을 갖게 됐다.
1933년 4월 1일부터 부산~선양 간 국제 급행을 운행했고 1939년 11월 1일 부산~베이징 간 직통급행열차가 운행됐다.
1939년 일본의 대륙 침략 목적에 의해 복선화됐고 1974년 서울~수원 간이 전철화됐다.
/충청투데이(http://www.cctoday.co.kr) 2009.12.31 15:00
1905.1.1 - 경부선 운행 시작
[역사 속의 오늘] 경부선 운행 시작
일본이 19세기 말부터 그토록 한반도 철도 부설에 집착했던 이유는 우리나라와 중국을 침략하기 위한 군대와 군수품의 원활한 수송에 있었다.
1898년 9월 8일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해 조선 정부로부터 경부 철도 부설권을 획득한 일본은 1900년 8월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1904년 12월 27일, 마침내 영등포~초량 철도선이 완공된 데 이어 1905년 1월 1일부터는 총연장 444.5㎞의 경부선 영업이 시작됐다. 경인선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완공된 철도선이었다.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최초의 부관연락선 '이키마루호'가 취항(1905.9.11)하고,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도 개통(1906.4.3)됨으로써 섬나라 일본은 사실상 대륙과 연결되는 효과를 보았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2006.12.31 20:04
http://www.kookje.co.kr/news2006/asp/center.asp?gbn=
v&code=2440&key=20070101.22027200348
1905.1.1 - 경부선 철도 개통
[책갈피속의 오늘]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
100년 전인 1905년 1월 1일 경부선이 개통됐다. 서울 서대문을 출발한 열차는 30시간 뒤 부산 초량에 닿았다. 말을 타고 며칠 만에 닿던 서울∼부산이 하룻밤 자고 나면 도착하게 된 것이다.
철도는 일본이 기획한 조선 침략정책의 핵심이었다.
1904년 5월 일본 정부가 작성한 ‘대한 시설 강령’에는 ‘(조선의) 교통기관을 장악할 것’, ‘철도사업은 조선 경영의 골자’라는 내용과 함께 철도 부설 계획이 상세히 담겨 있다.
경부선에 이어 △1906년 경의선 △1914년 호남선과 경원선 △1929년 충북선 △1931년 장항선 △1936년 전라선 △1939년 경춘선 △1942년 중앙선 등이 차례로 개통됐다.
일본은 광복 이전까지 약 6000km에 이르는 국내 철도 노선을 장악했다.
이들 철도는 조선의 쌀과 자원, 사람을 일본으로 빼내가는 통로였다. 사실상 일본의 군사시설이었던 조선의 철도는 근대화나 진보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수탈’의 상징이었다.
1908년 경의선과 경부선을 따라 부산∼신의주 구간을 달리는 직통 급행열차 융희호(隆熙號)가 운행을 시작했다. 1911년 11월 압록강 철교가 개통되고 철로가 중국 대륙의 철도와 이어지면서 융희호는 중국 창춘(長春)까지 연장 운행됐다. 이는 일본과 만주를 잇는 병참로로 철도를 활용한다는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융희호 운행 시간은 관부연락선(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연락선)의 발착 시간에 맞춰 편성됐다.
1933년 부산∼선양(瀋陽), 1939년 부산∼베이징(北京) 간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경부선과 이어지는 철도는 ‘국제선’이었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 지배와 대륙으로의 팽창을 위한 ‘동북아 물류 허브’로 삼은 셈이다.
지금은 분단으로 인해 철길로 신의주나 중국까지 갈 수는 없다. 날마다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여객 열차 630여 회와 화물 열차 430여 회가 국내에서 운행되고 있다.
2005년 1월 1일 0시 20분 올해 첫 번째 열차가 서울과 대전에서 동시에 출발했다. 새해를 맞아 밝고 활기찬 한국의 희망을 실은 열차가 또 1년간 전국의 철로를 누비길 기대한다.
김승진 기자 sarafina@donga.com /동아닷컴 2004-12-31 09:5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
sec&sid1=103&oid=020&aid=0000278482
경부선 철도 개통 축하회(1904년)에 구름같이 몰려든 시민들. 1904.11.10 - 경부선 철도 완공 경부선이 1901년 (광무5)에 영등포와 부산 초량에서 기공식을 거행하고 착공하여 1904년 11월 10일 완공, 개통됐다. 길이 445.6km, 1898년에 조선정부로부터 경부선 부설권을 받아낸 일본이 조선인을 부설공사에 인부로 강제동원하고 침목 등의 목재를 남벌해서 사용하는 등 약탈적인 방법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싼 값으로 건설됐다. 1904.11.10 - 경부선 철도 완공 역사속 오늘-경부선 철도 완공 공사 3년 만에 건설된 경부선이 개통된 것은 완공 이듬해인 1905년(광무 9) 1월 1일. 그리고 9월 11일에는 경부선과 일본철도가 부관(釜關)연락선을 매개로 연결됐다. 1906년(광무10) 경의선이 개통된 뒤에는 1908년 부산∼신의주 간 직통 급행열차 '융희호' 가 운행되면서 중국으로까지 이어지는 국제선으로서의 기능을 갖게 됐다.
비록 대륙침략을 위한 목적으로 건설된 경부선이었지만 남한 곳곳에 연결돼 인력과 물자를 수송하며 우리나라 경제의 대동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남북 분단 이후 끊긴 신의주로의 길이 다시 연결되고, 중국` 러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이어지는 구상이 진행 중이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좁은 한반도를 벗어나 유럽세계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매일신문 2004년 11월 10일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3382&yy=2004 1904.11.10 - 경부선 철도 완공 [오늘의 경제소사/11월10일] 경부선철도 완공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된 지 오래다. 특히 고속철도가 생기면서 비행기보다 훨씬 더 편하게 당일치기로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일을 볼 수 있게 됐다. 경부선 철도가 처음 놓였던 100년 전에는 영등포를 출발한 열차가 30시간 뒤에야 부산 초량에 닿았다. 그때만 해도 경부선 철도는 획기적인 교통수단이었다. 말을 타거나 걸어서 며칠씩 걸리던 거리를 하룻밤 자고 나면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부선 철도는 우리 국토를 종단하는 대동맥이지만 조선의 근대화나 개발의 상징이라기보다 일본의 조선 침략과 수탈의 부산물이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총연장 444.5㎞의 경부선 철도가 1904년 11월10일 완공됐다. 일본은 조선과 중국에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한반도 종단철도(부산~신의주) 건설을 추진했다. 경부선 철도가 조선 남부 지방에 대한 일본의 군사ㆍ경제적 세력을 확대하는 유효한 수단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일본은 이를 위해 1898년 9월8일 일본 자본가들을 중심으로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해 경부철도합동조약 체결 부설권을 받아냈다.
기공식이 열린 것은 1901년. 그해 8월21일과 9월21일 각각 서울 영등포와 부산 초량에서 기공식을 갖고 착공된 경부선 철도가 드디어 완공됐다.
일본은 조선인을 인부로 강제 동원하고 침목 등 목재를 남벌해 사용하며 약탈적인 방법으로 경부선을 세계에서 가장 싼 값에 건설했다.
조선의 희생을 바탕으로 부설된 경부선은 부관연락선으로 일본과 연결됐으며 1906년 경의선과도 이어져 신의주까지 닿았다.
명암과 영욕이 엇갈리는 한국 근ㆍ현대사를 상징하는 경부선 철도는 과거 일제 식민지 지배의 수단이자 근대화의 디딤돌이었지만 이제는 한반도의 대동맥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박민수 편집위원 /서울경제 2005/11/09 17:45 http://economy.hankooki.com/lpage/opinion/200511/e2005110917430263820.htm 1901.8.20 - 경부선 철도 기공 [책갈피 속의 오늘] 1901년 경부선 철도 기공 철도만큼 많은 사람과 화물을 정확하고 안전하게 운반하는 교통수단이 또 있을까. 한반도를 넘어 대륙 진출을 꿈꾸던 일제에 철도가 꼭 필요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1899년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이 완공됐지만 일제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건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일제는 1880년대 중반부터 지형탐사를 시작했고, 1896년에는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조선 민중은 저항했다. 측량 기계를 짊어진 일본인이 나타나기만 하면 “땅 뺏어가는 측량꾼이다, 쫓아내라”며 고함을 질렀다. 일본인 측량 기술자들은 장사꾼이나 나그네로 가장하고 비밀리에 측량을 해야 했다. 대한제국 황실도 경부선 건설에 반대했다. 고종은 1896년 두 차례나 일제의 경부철도부설청원서를 거부했다. 그러나 나날이 약해지던 대한제국은 일제의 집요한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1898년 대한제국은 일제에 경부선 건설을 허락하는 경부철도합동조약을 체결했다. 1901년 8월 20일 오전 11시. 마침내 서울 영등포에서 경부선 철도 기공식이 열렸다. 경부선 건설은 조선 민중의 피와 땀으로 이뤄졌다. 일제는 헐값에 토지를 수용했고, 조선 백성들을 강제 부역에 동원했다. 일꾼들에게는 품삯 대신 군용표(軍用標) 한 장으로 때웠다. 1905년 1월 1일 경부선은 세계 철도 역사상 가장 적은 비용으로 완전 개통됐다. 개통 당시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13시간 45분이 걸렸다. 그해 9월에는 부관(釜關) 연락선을 매개로 경부선과 일본철도가 연결됐다. 1906년에는 경의선이 개통돼 일본에서 중국 국경까지 가는 길이 열렸다. 1945년 일본의 패망 전까지 철도를 통해 일본에서 군인과 군수물자가 한반도와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곡물과 각종 자원들은 일본으로 흘러갔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철도가 우리나라 사회의 근대화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 광복 후 한국은 일제가 건설한 철도망을 이용해 사람과 자원을 수송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루기도 했다. 철도는 어떤 목적으로 쓰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경부선의 불행했던 역사는 과거의 기억으로 끝나기를….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동아닷컴 2007-08-20 03:05:00 http://news.donga.com/fbin/moeum?n=people$c_134&a=v&l=506&id=200708200080
조선민족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여 부설된 경부선은 부관연락선(釜關連絡船)으로 일본과 연결되었으며, 1906년(광무10) 경의선과도 연결되어 신의주까지 직통했다. 1911년부터 한(韓)-만(滿)간에 직통급행을 운행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국제선이 되었으며, 1913년 시베리아라를 거쳐 유럽 각국과의 화물운송을 담당했고, 1933년에는 부산-심양사이에 국제급행 `히카리`를 운행, 이듬해는 장춘까지 연장했다. 또 1939년 부산~북경 사이에 국제급행 `고아` `다이리쿠`를 운행하고 같은해 복선을 준공했다.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