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문명을 위한 한국 교회의 탈렌트
1테살 4,9-11; 마태 25,14-30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순교자 성월 성모신심 미사; 2023.9.2.; 이기우 신부
폭염으로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시원한 가을을 맞이하는 9월은 순교자 성월입니다. 박해시기에 교우들이 가장 많이 치명한 때가 9월 하순이어서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순교정신을 이어받기 위하여 한국천주교회는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의 복음에서 하느님 나라 복음의 선포활동을 주제로 ‘탈렌트’를 소재로 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나 한 탈렌트를 받고 있다는 것, 다섯이든 둘이든 탈렌트를 얼마나 더 벌었느냐 하는 것은 부차적이고 처음 받은 것보다 더 벌지 못한 인생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쫓길 만큼 중대한 과오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탈렌트는 그 당시 통용되던 화폐 단위로서 가장 큰 돈이었습니다. 복음서에는 탈렌트 외에도 세겔, 랩톤, 데나리온 등의 화폐 단위들이 나오는데, 대표적인 단위는 노동자의 하루 일당인 동시에 노동자 가족의 하루 생활비로 치는 데나리온이었습니다. 탈렌트는 6천 데나리온으로서, 노동자가 한달에 25일을 일한다고 보면 240개월치, 그러니까 무려 20년치의 월급에 해당합니다. 지금보다도 그 당시의 수명이 훨씬 짧았을 것을 감안하면 이는 사실상 평생 동안 일해서 벌 수 있는 어마어마한 큰 돈이라는 뜻이 됩니다. 또한 이 ‘탈렌트’라는 말은 화폐 단위이면서도 사람이 태어나면서 받은 재능이나 태어난 후 닦은 노력의 성과 등을 뜻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의 맥락에서는 선천적 재능보다는 후천적 노력 성과에 더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어쨌든 다 실력입니다. 그 실력을 하느님께서는 심판의 대상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깨우쳐주신 바, 하느님께서 심판하실 실력의 내용은 사랑입니다. 개인으로서는 자기 인생을 실존적인 차원에서 얼마나 사랑으로 채웠느냐 하는 것이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요, 교회로서는 해당 시대와 해당 국가 안에서 얼마나 사랑으로 변화시켰느냐 하는 것이 심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 역시 테살로니카 그리스인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가르쳤습니다. 코린토에서도 소아시아에서도 나중에는 제국의 심장부인 로마에 가서도 사랑의 계명을 가르쳤습니다. 자신은 박해를 받아 치명해야 했지만 로마제국은 결국 그리스도교를 공인했고 국교로까지 받아들였습니다. 제국의 신민(臣民) 모두가 100% 가톨릭 신자가 되었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부패와 도덕적 타락이 만연되어 있었던 탓으로 외적의 침입을 받자 너무나 어이없게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로마제국을 계승했다고 자처한 후대 유럽 백인들의 시대를 평가해 볼 때, 루터와 마르크스가 출현하기 전 중세와 근세의 유럽 역시 100% 천주교 신자이거나 그리스도교 신자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황청의 부패와 이를 비판한 루터에 의한 교회 분열, 산업혁명에서 등장한 다수 가난한 노동자 계층을 외면한 성직자들의 처신과 이를 비판한 마르크스로 인한 무신론 집단의 출현 현상이 말해주듯이 그리스도교화된 중세와 근세 유럽은 복음화 실력이 빈약했습니다. 그 실력상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던 다른 대륙의 원주민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식민지 경영을 경쟁적으로 한 끝에 유럽 열강들을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들이 되게는 했지만 오늘날 냉담자들이 수두룩하고 성소자가 급감하고 있는 현상으로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유럽 또한 사랑의 문명을 보여주는 모델로는 역부족인 겁니다. 제국주의 정책으로 치달았던 자국의 식민지 경영에 숟가락을 더 얹는 격으로 신자들을 늘리려고 노력하기는 했어도 그 반(反)복음적인 정책을 비판하고 공동선을 지키는 일에 나서지는 않았던 데서 초래된 당연한 자업자득의 결과입니다.
사랑의 문명을 이룩하려면 최고선에 든든하게 뿌리내리고 공동선을 수호하고 증진시킬 만한 사랑의 실력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죄악상을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그에 물들지 않고 거룩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랑의 실천이 필요한 것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꾸짖음을 듣지 않고, ‘착하고 성실한 종’이라는 칭찬을 들으려면 개별 신자들로서나 교회 전체로서나 사랑의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사랑의 밑천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자기만을 위해 써서는 꾸지람을 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즉 개인 신자라면 건강이나 지식, 경험과 경륜, 권력이나 재산 등 주어진 은총을 그저 생계 유지와 기득권 옹호에만 쓸 것이 아니요, 그리고 중산층과 지식인층이 다수 포함된 5백 만의 신자들과 열성적인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포진하고 있는 우리 교회 전체라면 오랜 박해 속에서도 교우촌과 치명으로 신앙을 증거했던 역사적 전통에 대한 기억과 분단극복과 민족통합의 전망 속에서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주어지고 있는 기회 등을 바탕으로 공동선을 지키고 최고선을 함양하는 사랑의 실력으로 그 사목역량을 써야 마땅할 것입니다. 고대 로마 교회와 중근세 유럽 교회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자면, 성당을 많이 짓고 신자들을 더 늘리려고 하기 이전에 사랑을 위해, 더욱이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는 데 쓰여져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탈렌트 비유는 개별 신자들의 신앙생활이나 교회 전체의 사목역량이 과연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등댓불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의 신자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권고의 뜻을 이어받아서 이 땅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을 때를 생각해 봅니다. 그 당시에 우리 나라는 국가와 사회의 이념적 근본을 유학에 두고 있었습니다. 유학 사상과 그 실천은 사회 생활과 가정 생활의 바탕이었습니다. 본시 유학은 종교가 아니라 생활의 철학이었지만 조선 왕조가 시작된 이래 국가의 통치 이데올로기로서 작동되어 왔기에 국교처럼 백성의 정신과 활동을 다스렸습니다. 그 결과, 나라에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았고 신분과 남녀의 차별이 엄격하여 사회의 모순은 날로 쌓여갔습니다.
조선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실학을 연구하던 선비들은 중국에 파견된 서양 선교사들이 저술한 서학 서적을 연구함으로써 자생적으로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북경에서 프랑스 선교사 그라몽(Grammont, Jean Joseph de. 1736~1812)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온 이승훈이 세례를 베풀자 짧은 기간 안에 수천 명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유학을 종교로 숭상하던 지배층은 조선 사회를 지탱하던 통치 이념이 흔들릴 것을 우려하여 천주교를 ‘사학(邪學)’ 즉 나쁜 학문으로 규정하고 배교를 강요했으며 이를 거부하면 죽였습니다. 이런 박해 속에서도 만민 평등과 남녀 동등을 가르치는 천주교를 받아들인 신자들은 심산유곡으로 숨어 들어가 교우촌을 이루어 천주교의 진리를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서 숨어 살아야 했기 때문에 글과 학문을 배울 기회가 없었지만, 4·4조로 지어진 천주가사들을 암송하며 교회의 가르침대로 살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중 이승훈보다 먼저 천주학에 능통했고 이승훈을 북경에 파견했으며 이승훈으로부터 세례자 요한이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은 광암 이벽이 지은 천주공경가를 소개합니다.
<노래 김영진>
어와세상 벗님네야 이내말씀 들어보소 집안에는 어른있고 나라에는 임금있네
내몸에는 영혼있고 하늘에는 천주있네 부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는 충성하네
삼강오륜 지켜가자 천주공경 으뜸일세 이내몸은 죽어져도 영혼남아 무궁하리
인륜도덕 천주공경 영혼불멸 모르며는 살아서는 목석이요 죽어서는 지옥이라
천주있다 알고서도 불사공경 하지마소 알고서도 아니하면 죄만점점 쌓인다네
죄짓고서 두려운자 천주없다 시비마소 아비없는 자식봤나 양지없는 음지있나
임금용안 못뵈었다 나라백성 아니런가 천당지옥 가보았나 세상사람 시비마소
있는천당 모른선비 천당없다 어이아노 시비마소 천주공경 믿어보고 깨달으면
영원무궁 영광일세 영원무궁 영광일세 이내몸은 죽어져도 영혼남아 무궁하리
우리 나라의 역사에서 개인 양심과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이끌어내고, 만인 평등과 남녀 동등을 앞장서서 실천했으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 사회복지 활동의 선구자로서 한국 천주교회는 근대화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비록 일제 강점기에는 신앙의 자유와 교회 조직을 보호하기 위하여 프랑스 선교사 교구장이 내세운 정교분리 노선 때문에 본의 아닌 친일 행적을 남기기는 했으나, 광복 이후 군사독재 시절에 정의구현과 인권 옹호의 십자가를 짊어졌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며 사회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하여 기도해 온 우리 교회가 앞으로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북녘 동포의 복음화를 위해서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기회와 역량을 십분 발휘해야 합니다. 이 노력은 단지 천주교 신자들의 수를 늘리는 노력을 넘어서서 북한 지역을 포함한 동북 아시아에 사랑의 문명을 이룩하는 데 가톨릭 신자들의 탈렌트를 발휘하는 일입니다. 이는 환경 보전과 평화 수호에 종교인들이 협력하며 공존 번영하는 새로운 문명을 이룩하는 새로운 선교입니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백인 그리스도인들이 하지 못했던 일을 우리가 해 내는 문명 선교입니다.
덧붙여, 오늘 9월의 성모신심 미사를 봉헌하면서 박해시대 우리 신앙 선조들이 지녔던 성모신심을 소개합니다. 박해시대 한국 천주교회의 성모신심은 교회창설기 중국에서 들어온 한문서학서(漢文西學書)로부터 발원하였고. 주문모 야고보 신부와 정약종 아구스티노 회장 등 당시 교회지도자의 사목방침과 지도방향 등에서 좀 더 구체화되어, 성모님의 동정을 본받고자 하는 동정녀들의 모임과 동정부부의 탄생은 물론이고 정기적으로 묵주신공을 바치는 명도회와 같은 단체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초기교회 신자들, 특히 순교자들에게서 두드러진 성모공경의 전통은 박해시대 프랑스 선교사들의 지도와 모범으로 더욱 활성화되고 심화, 발전하게 되었는데, 프랑스 선교사들 중에서도 앵베르 주교와 다블뤼 주교의 영향력은 매우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이 한국 초기교회로부터 계승되어 온 성모신심은 예수성심에 바탕을 둔 신심으로써 순교신심을 더욱 풍요롭게 하였습니다. 한국 교회의 순교신심은 순교자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대한 각별한 공경과 깊은 의탁으로 양성되고 보호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천주공경가, Youtube 채널, 박선화, 김종옥 수녀 6집, 행복한 사람 7트랙>
첫댓글 부끄럽게도 ,
성모 신심미사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전에 신부님 글 읽고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본당에서는 성모 신심
미사가 없어
신태인성당까지 매월
첫토요일 성모신심 미사
봉헌 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전에 많이 없었던 성모신심이 조금씩 생기게 되면서 성모님 사랑에 기쁘게 다니고 있습니다.
성모님 공경하고,성모님께 의탁 하는 하루 보내려
합니다.
고맙습니다.
매월 첫 토요일에 성모신심미사를 드리는 전통은 20세기 초 포르투갈 파니마에 성모 마리아께서 발현하셔서 당부하신 말씀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래서 각 본당에서 반드시 행해야 할 의무사항은 아니라서, 성모신심미사를 거행하는 본당도 있고 아예 없는 본당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이런것도 몰랐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