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북구청으로 들어가다보면 ‘북구청’이란 글자가 새겨진 둥근 돌비석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가 직접 써준 글씨다. 청사 앞마당 분수대에는 주민들 모습이 청동상으로 세워져 있는데, 그 가운데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노동자의 모습이 있는 것도 이곳 북구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원래 행정구역상 중구와 울주군에 속해 있던 북구는 97년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분리된 지역이다. 1년반 정도 관선 구청장이 있다가 98년 지방선거에서 민선구청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조승수 현 구청장이 취임했다.
당시 조승수 구청장은 민주노동당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국민승리21’ 후보로 출마, 전국 최연소 구청장으로 당선(당시 36세)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물론 노동운동 경험, 두번의 구속 등으로 ‘운동권 구청장’이란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입견은 오래가지 않았다. 북구청 최정식 토목계장(45·6급)의 말이다.
“노동운동을 했던 분이라고 해서 처음엔 좀 당황했죠. 행정을 잘 할 수 있을지, 게다가 저렇게 젊은 분이 어떻게 구청장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사업추진력이나 인간성 등을 보면 정말 ‘된사람’이에요. 자기 주관이 뚜렷하면서도 권위의식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제가 나이는 더 많지만 정말 존경하는 구청장입니다.”
98년 조승수 구청장이 출마 당시 내걸었던 공약 34개 가운데 현재까지 32건이 완료됐거나 계속 추진중이다. 공약이행율 97%. 구의회에서 예산통과가 안된 ‘북구지역 아파트 문화제 개최’와 울산시와 사업이 중복되어 추진이 유보된 ‘자동차 박물관 건립’ 등 단 2건만이 지켜지지 않았다.
조승수 구청장이 북구를 ‘더불어 사는 희망의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주민계도지’를 없애는 것이었다. 그동안 불필요한 예산낭비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지역언론에 밉보일까봐 어느 단체장도 추진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9
8년 주민계도지 예산 8천6백여만원 중 이미 집행된 5천6백여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예산에서 전액 삭감시켰다. 99년부터는 아예 주민계도지 관련예산을 편성조차 하지 않았다. 이로써 북구청은 연 8천여만원의 예산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이 돈으로 북구청은 실직자 무료진료를 위한 의약품 구입과 보안등 신설 등에 썼다. 주민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자 울산시와 다른 구, 군들도 앞다투어 계도지를 없애는 성과까지 나았다.
주민들 속에 살아 있는 행정을 펼치기 위한 북구청의 시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소년소녀가장이나 노인세대 등의 가정에 보일러 청소를 하는 공공근로를 시행함으로써 저소득층 주민들의 연료비 절감과 수리비 부담을 줄이고 공공근로의 생산성을 높였다.
또 북구지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보건소에서 양방 및 한방진료와 치과 진료를 무료로 실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보호에도 적극 나섰다. ‘구청 어린이집’을 운영해 맞벌이 구청직원들은 물론 구민들에게까지 개방하고 있으며, 행정사무 착오나 민원처리기간이 길어져 주민들에게 불편을 끼쳤을 때에는 구청장 명의 사과문과 함께 가정용 미니의약품 상자를 지급하는 ‘행정사무 착오보상제’도 실시하고 있다.
북구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반상회’다. 조승수 구청장은 통·반장 직선제를 도입해 주민들이 스스로의 대표를 선출하도록 했으며 관 홍보 일색의 반상회를 과감히 폐지, 구청장이 직접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주민 만남의 날’을 갖고 있다.
‘공개입찰제’와 ‘청렴계약제’는 북구청의 투명행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3천만원 이상 사업은 무조건 공개입찰제를 시행하고 있다. 또 1천만원 이상의 공사, 물품구매, 용역계약시 계약 상대자와 북구청이 청렴계약이행서약서를 작성, 업체와 담당 공무원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부정거래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이 서약서를 위반하는 업제는 북구청이 발주하는 모든 계약에 참가자격이 2년간 제한된다. 북구청 공무원들과 업체 관계자들은 “조승수 구청장이 오고나서는 (돈을) 줄 생각도, 받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 각종 공사와 주민 숙원사업을 공무원이 직접 설계에서부터 자재구입, 공사감독까지 맡는 ‘직영공사제’를 도입해 연간 4억4천만원을 절감했으며, 대형 공사에는 구민들이 직접 공사를 감시하는 ‘구민감시관제’를 도입하고 있다.
조승구 구청장이 보여준 ‘진보행정’의 철학은 공무원노조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에서도 잘 드러난다. 조승구 구청장은 지난 3월 “공무원노조 결성과 관련해 중앙정부의 어떠한 탄압지침도 따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될 수 있도록 자치단체장으로서 모든 권한을 동원해 노력할 것”임을 천명, 결국 행정자치부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지난 4월 19일 열린 전국공무원노조 울산본부 출범식이 다른 곳도 아닌 북구청 앞마당에서 열린 것도 우연은 아니다.
이 자리에서 조승수 구청장은 “공무원노조가 공직사회 개혁과 민중을 위한 봉사에 힘을 쏟지 않으면 사용자의 권한을 동원해 공무원노조를 탄압하겠다”며 공개적인 ‘탄압의사’를 밝히기도. 전국공무원노조 울산북구지부 한정숙 사무국장(35·북구청 8급 공무원)은 ‘사용자’로서 조승수 구청장의 모습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한마디로 구청장 때문에 노조가 ‘어용’으로 몰리고 있죠. 노조에서 주5일근무 시행하자고 요구하려고 했더니 구청장이 먼저 안건으로 들고 나오고, 해외배낭여행을 보내줄 하위직 직원을 선정하는데도 노조와 구청장이 같은 사람을 선정하는 식이니까요. 노조입장에서는 구청장이 너무 진보적이라 노조가 할 일까지 뺏어가는게 아니냐는 불만 아닌 불만도 나오고 있죠.(웃음) 사실 노조를 만드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 조승수 구청장이었어요.”
민주노동당 출신의 최초 구청장 조승수. 그가 바꾸어 놓은 것은 어쩌면 제도가 아니라 주민들과 공무원들의 생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