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4월 20일
청주 교동 국민학교에서 나는 제 19회 졸업식날 입니다.
강당에는 4학년과 5학년 후배들이 와 있고
학부형들이 가득히 와 있지마는 나는 혼자 입니다.
선생님들도 다 강당에 모였고 졸업식이 거행 됩니다.
<교가>
우암산 산 꼭데기 먼동이 틀때
무심천 잔물결에 샛별이 떴다
고요한 청주 마을 교동 국민은
대한의 조무라기 우리들 학교
명랑한 우리 학교 즐거운 학교
여기서 배워가는 우리는 행 복.
<졸업삭 노래>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여
우리들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세
4,5학년 후배들이 우리를 위하여 이 졸업식 노래를 부르는데
학생이 울고 학부형들이 울고 선생님들도 다 울어
강당이 울음바다가 됩니다.
나는 졸업장을 받아가지고 집으로 옵니다.
형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점심때쯤 방으로 들어가는데
큰 형이 죽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숨소리가 이상하고 몸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형의 눈을 보니 어머니가 총에 맞아 돌아가실 때의 눈과 똑같이 움직이지도 않고
빛깔도 이상합니다.
"아 형 ! 죽지마 엉엉 죽으면 안돼 형 형"
내가 마구 목놓아 울부짖자 옆집의 아저씨가 들어오더니
이불을 들춰보며 형의 바지속을 들여다 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죽을때 항문의 힘이 다 풀어져 배설물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형은 먹은게 없으나 조금 젖어 있습니다.
아저시가 큰 형의 부릅뜬 눈을 감겨 줍니다.
"바지를 갈아 입히거라"
고 하십니다.
형의 바지를 갈아 입히자 바지에 이가 막 기어 다닙니다.
나는 밖으로 내 놓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달려나가 청주 도립병원에서 일 하는 작은 형에게로 달려갑니다.
작은 형은 서무실 (사무실)에서 소사 (심부름)일을 합니다.
"형 큰 형이 죽어가고 있어"
라고하자, 작은 형은 자전거에 나를 태우고 전 속력으로 달려갑니다.
우리가 집 가까이 와서 형의 자전거를 꾸러박습니다.
우리들은 아픈 것도 잊고 다시 집으로 달려갑니다.
우리가 집에 이르니 큰 형은 아직도 숨을 쉬고 있지만 숨 소리가 아주 약합니다.
"형 형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엉엉엉, 형 죽지마 엉엉"
작은 형이 통곡을 합니다.
한참 후에 작은 형이
"내 이모부에게 갔다올께"
라고하며 나갑니다.
우리 어머니의 언니인 이모가 이곳 운천동에서 살고 있고 남편
이모부는 시청에서 일을 합니다.
큰 형의 숨 소리가 점점 약해 지다가 가만히 끝이 납니다.
나는 마구 오열하지만 죽은 형이 살아날리가 없습니다.
날이 저물자 나는 갑자기 무서워 집니다.
나는 너무 추워 부엌으로 나가서 아궁이에 불을 땝니다.그리고 방에들어가면
죽은 형의 모습이 왜 그렇게 무서운지 모릅니다.
나는 다시 부엌으로 나와 그것에서 잠을 자며 울기도 합니다.
작은 형은 한 밤중에 이모부와 다른 손님 한분이 와서
죽은 형을 염해 주고 관에 넣습니다.
그리고 새벽이 오자 트럭에 관을 싣고 우리도 함께 타고 성당으로 갑니다.
성당에서 형의 장례미사가 거행 됩니다.
미사가 끝나자 우리들은 형의 관을 트럭에 싣고
율량동 공동묘지에 가서 땅에 묻습니다.
나는 죽은 형이 너무 불상하여 마구 울음을 터뜨립니다.
내가 총에 맞아 병원을 돌아다닐때 항상 나를 돌봐주었고
겨울 피난때도 그 엄동설한에 나를 업고 겨울 피난을 갔다 오지 않았는가?
너무나 고마운 형인데 이제 볼 수 없다니 나는 형이 너무 보고 싶은 것입니다.
"너는 이제 우리집에 와 있거라"
고 이모부가 말씀 하십니다.
(계속)
첫댓글 형광등등님 안녕하세요
많이 슬프시겠어요
즐독했습니다 ~~
어서오세요 쥔장님 감사합니다.
이 글을 스면서도마음은 미어 집니다.
동란중에 졸업 하셨네요~
감사합니다 샬롬~
폭염 열대야 코로나19에 고생하시는 님
주의 하시고 조심 하시며 늘 건강 조심 하시며
삼복더위에 가족과 같이 행복 하시고 편안 하소서~
봉황덕룡님 오셨어요? 감사합니다.
더위도 이번주면 우선 좀 낮아질 것 같고 비가 많이 올것 같은 에감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