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임에 갔는데, 기도를 함께 하고 느낌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한 분이, 당신은 “시보기도”를 꾸준히 하고 계시는데, 그 기도를 드리며 경험했던 것들에 대한 일종의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시보기도를 스무여 해를 열심히 해 오시는데, 정말 당신이 바라는 일들이 모두 이루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정성껏 살아오신 분이고 그분 마음에 감사가 넘칠 것이라고 어림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시보기도란 말이 낯설었습니다. 시보기도라니? 중보기도란 것은 들어봤는데.... 그거 아닌가? 내심 궁금했습니다. 제가 모르는 기도이니 나중에 알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제 부족한 지식을 좀 보충해야겠다 싶어 시보기도가 뭔지 확인해 보는 것으로 이번 속풀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저만 모르고 있을 리는 만무할 것이라 위로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에 대해 알아보는 첫 단계에서부터 제가 살짝 무식한 인간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가깝게 지내는 형제 한 명에게 물어보니.... 저를 어이없다는듯 바라보면서 “형님, 그건 시보가 아니라 십오예요 십오. 십오기도 몰라요?” 라지 않겠습니까!
14세기부터 전해 온다는 이 기도를 모르고 지내다니.... 아주 해박한 상식을 자랑하는 사람이라고 저를 봐 오신 분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고백이 될 것이지만 제가 모르는 것이 있고, 따져보면 아주 많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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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를 옮기는 예수. 조르조네(1477(?)-1510) |
십오기도는 스웨덴의 비르지타(Birgitta, 1303-1373, 또는 브리짓다) 성녀의 기도라고도 합니다. 아이를 여섯이나 낳고 남편과 사별한 후 수녀원을 설립하여 살았다는 비르지타 성녀는 신비가로도 유명합니다.
이 성녀가 했던 그리스도의 고통에 대한 묵상기도가 세월을 거듭하면서 다듬어지고, 특히 15세기에 많이 다듬어져서 오늘 날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의 길처럼 이 기도는 열 다섯 개의 묵상 자료가 있으며 한 묵상 주제마다 마지막에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한 번씩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 년 동안(시작하는 날 기준하여 만 일년) 날마다 바쳐야 주님께서 하신 스물 한 개의 약속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구가들은 비르지타 성녀가 그리스도의 고통에 관한 계시를 받기는 했으나 처음부터 열 다섯 개의 기도를 쓴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게다가 그 스물 한 개의 약속은 언제 첨부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니 당연히 비르지타 성녀가 그 약속을 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됩니다.
애초에 비르지타 성녀는 매 맞은 주님의 고통과 상처를 공경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가는 은총과 주님께 향하는 회개의 은총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녀만이 아니라 주님의 고통을 묵상하며 날마다 주님의 기도 열 다섯 번과 성모송 열 다섯 번을 일 년 동안 바치는 사람에게도 회개의 은총이 베풀어지리라는 계시가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 계시에 기초하여 십오기도의 꼴이 갖춰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는데 거기에 스물 한 개의 약속을 누군가가 끼워 넣었다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 스물 한 개의 약속은 매우 사적이며 미신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한 것이라서 교황청에서는 기도문은 인정하지만 거기에 스물 한 개의 약속을 덧붙여 배포하는 것은 경고했습니다(‘사도좌 관보 46’, 1954, 64).
스물 한 개의 약속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도 쉽게 검색해 보실 수 있습니다. 검토해 보시고 우리 신앙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하루에 열 다섯 번씩 일 년 내내 바치는 태도는 매우 아름답고 충실한 신심을 보여줍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깊어지리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비르지타 성녀의 기도가 오랫동안 바쳐져 왔고,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기도의 아름다움 때문이지 이상한 약속 때문은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어떤 기도든 그 결실이 주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위로와 자비를 보여주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십오기도를 통해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키워 나가고 점점 그분의 삶과 일치하게 될수록 우리의 이웃 사랑도 더욱 실천적이 될 것입니다.
참고: http://www.preces-latinae.org/thesaurus/Filius/StBrigid.html(AAS XLVI(1954), 64. 언급) -AAS는 Acta Apostolicae Sedis(사도좌 관보)
박종인 신부 (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