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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ESUSONE 원문보기 글쓴이: 제이원
시편 10:1~18 하나님이 없다? 2020. 7. 29
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2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그들이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3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4 악인은 그의 교만한 1)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5 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그는 그의 모든 대적들을 멸시하며 6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7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8 그가 마을 구석진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의 눈은 가련한 자를 엿보나이다 9 사자가 자기의 굴에 엎드림 같이 그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당겨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10 그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의 포악으로 말미암아 가련한 자들이 넘어지나이다 11 그가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12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13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2)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15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으소서 16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3)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18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시편 10편의 제목을 ‘하나님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청년 때에 여동생과 부산의 어느 교회에서 어느 교수의 강의를 들으려고 갔습니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어떤 말을 듣거나 책을 보거나 간에 문맥을 따라 보지 않으면 오해한다고 하면서 성경에도 ‘하나님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내용이 시편 10:4절입니다. “봉독” 이 말씀의 앞뒤 다 자르면 하나님이 없다는 말로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그 당시 군사독재시절에 교회에서 집회를 하여도 형사들이 와서 녹음하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도 문맥을 따라가면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주님,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그리도 멀리 계십니까? 어찌하여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에 숨어 계십니까?” 시편 기자가 왜 이런 탄식을 하는 겁니까? 지금 악한 자들에 의하여 핍박을 받고 압제를 받아 신음하고 있는데 왜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는가 하는 겁니다. 분명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살아서 역사하심을 믿지만 지금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시는 하나님으로 인식이 됩니다. 그래서 이 환난의 때에 왜 그렇게 멀리 계시고 숨어 계시느냐며 탄식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마음이 없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어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느냐는 마음이 많이 있을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고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당하지 않는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기도하여도 아무른 도움도 없습니다. 어떤 분은 사고로 자기의 아내와 딸을 잃고 나서 나의 아내와 딸이 개돼지 보다 못하느냐고 하였습니다. 이런 분에게 욥기의 말씀을 드리니 분노가 더 폭발합니다. 우리도 이럴 때에는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계시지 않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시각에서 조금 넓혀봅시다. 대한민국을 보고 전 세계를 보아도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는 모습이 너무 많은 겁니다. 이런 세상을 보면서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자들은 전능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의로우시다면 분명히 악을 미워하시고 심판을 하실 텐데 세상은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히 악이 횡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그런 하나님이 없다고 보기에 세상에 여러 가지 사상들이 등장합니다. 제국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그 외에 모든 주의라는 것이 다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하루도 조용하고 평안할 날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겁니다.
그러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놀랍게도 하나님을 안다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없는 이방인인 우리들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신지 바르게 알고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의 주인 되심이 되는 과정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 이전에 우리에게 혼동과 의문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본문 2~4절을 봅니다. “봉독” 우리가 보는 세상도 이렇습니다. 세상에 힘이 있고 강하다는 자들이 온갖 악을 행하는 이유는 그들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에 대하여 심판을 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 너무나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들을 보면 세상에 온갖 악한 일들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뉴스로 장사하는 사람들이나 그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도 각자가 자기의 취향을 따라 행동합니다. 이런 모습이 인간의 죄악 된 확증편향일 뿐인데도 자기들 편에 서지 않으면 악인으로 보고 온갖 저주와 심판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의 모든 사상에 성경이 계시하시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모습입니다.
에베소서 2:12절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이 없는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을 안다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그들이 살아온 삶의 모습을 보면 이들 역시 하나님이 없다고 여긴 자들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정의가 시행되지 않고 온갖 악이 가득한 이스라엘 역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이방인들이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이것이 바로 악입니다. 이러한 악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나 이방나라가 온갖 억압과 착취가 가득하게 됩니다.
본문 5~10절입니다. “봉독”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는 자들의 삶의 모습이 어떠한지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 일어나는 일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악인이 악을 행하는데도 형통합니다. 악인들의 악행이 가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11절을 보면 악인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말씀도 그들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입니다. 그들이 악을 행하여도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니 악을 행하는데 더욱 담대해집니다(전8:11). 악을 행하면 당대가 아니라 후손이라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면 심판을 두려워할 텐데 후손의 후손들까지 평안하고 고난도 없고 재산도 늘어나니 믿는다고 하는 자들도 실족할만한 일입니다(시73편).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이런 세상을 심판하여 달라고 합니다.
본문 12~15절을 봅니다. “봉독”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는 자들의 악행에 의하여 학대당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외로운 자, 고아, 겸손한 자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자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외롭게 되고 고아가 되고 불쌍한 자들이 된 자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습니까? 어제 충남 보령의 장례식장을 다녀오면서 ‘전쟁은 여인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그동안 전쟁 이야기는 남자들 중심이었는데 이 책은 전쟁에 참여한 여인들을 중심으로 다루었습니다. 전쟁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광기가 어떤지 볼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여인들도 전쟁에서는 여인의 얼굴이 아닙니다.
그 책의 인상 깊은 한 대목입니다. 전쟁에서 조국의 영광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지금 그 조국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 조국이 소련을 말합니다.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되었습니다만 오늘 우리는 누구를 위하여 무슨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날 삶이 전쟁과 같다고 합니다. 경제전쟁, 문화전쟁, 종교전쟁은 계속됩니다. 이런 전쟁터 같은 삶의 현장에서 내가 성취하려는 그 삶의 목표로 인하여 남을 억울하게 하고 학대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전쟁터 같은 삶에서 고아가 되고 외롭고 겸손하게 된 자들은 주님의 심판에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16~18절입니다. “봉독” 여호와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 이방인들이며 이방나라들입니다. 이러한 나라들은 주의 땅에서 이미 멸망하였다고 합니다. 주의 나라를 대적한 제국들이 다 멸망하였습니다. 지금의 그 어떤 나라들도 다 멸망할 나라들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이방나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나라만이 영원무궁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누가 구하는 나라입니까?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는 자들의 학대와 압제를 받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고아이며 외로운 자들이며 겸손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게 됩니다.
이사야 45:9~14절입니다. “9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10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 11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13 내가 공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사로잡힌 내 백성을 값이나 갚음이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1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소득과 구스가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남자들이 네게로 건너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계시면 어찌 이럴 수 있느냐고 항의하는 자들을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악인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와 다투는 겁니다. 그 이유는 자기 뜻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기에 그렇게 대드는 겁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망하게 하시고 또 돌이키심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하여 주십니다.
이어지는 15절입니다.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왜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십니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그 하나님은 가짜임을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종일 손을 펴시고 내가 여기에 있다고 하여도 그들은 그 하나님의 품에 안기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원하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십니다.
이사야 65:1절입니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주님을 구하지도 부르지도 않던 자들에게 내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는 이사야서의 이 말씀을 바울사도는 이방인들의 구원을 말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유대인으로 하여금 시기 나게 하여 주께로 돌이키는 말씀으로 해석합니다(롬10:20~11:36). 그러므로 주님의 일하심의 깊이는 사람이 감히 헤아릴 수 없기에 만물이 주에게서 나와서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주님을 이름을 부르게 된 것은 우리가 구하고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여 주셨기에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였지만 그들이 부른 하나님은 우상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살았던 자들입니다. 이런 죄인들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하심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되니 우리의 마음에서 ‘하나님이 없다’라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구약에서 약속하신 주의 영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1:1~9절입니다.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이루려고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핍박한 자가 율법주의자 사울이었습니다.
디모데전서 1:14~17절입니다.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구원이 된 자들은 자기 자신과 이웃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참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상에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맹세하고 저주하며 부인한 베드로사도도 바울을 말하면서 주의 오래 참으심이 우리의 구원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이유를 보겠습니다.
베드로후서 3:8~9절입니다.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세상의 악을 심판하지 않으심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기다리는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오늘 하루도 삶이 잔잔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은 쉽게 성내지 않고 쉽게 흥분하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고요했으면 좋겠고,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표 내지 않고 혼자 간직하다 이내 평온해지는
그러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즐겁고 좋은 일 많은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