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점
미우라 아야꼬 지음
병원 원장으로 있던 스지구치의 아내인 나쓰에는 병원에 근무 중인 젊은 의사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고 3살 난 딸아이를 밖으로 내보낸다. 그러나 이 작은 일로 인해 아이가 유괴되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와 동시에 간통의 현장을 목격한 남편은 아내에 대한 심한 배신감에 어린 여자아이를 입양하여 기르자고 한 아내의 요청에 범인의 딸을 데려다 기르기 시작하며, 주인공들의 내부 갈등은 시작된다.
요코라고 이름 지은 딸에게 온갖 정성을 쏟는 아내 나쓰에, 겉으로 가정은 다시 화목해 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요코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남편 스지구치의 서재를 청소하던 중 그의 다이어리에서 떨어진 한 종이 메모지에 적힌 요코의 신분을 안 나쓰에는 남편에 대한 심한 배신감과 친딸 로리코를 죽인 살인범의 자식인 요코에 대한 애증이 뒤섞이게 된다.
그때부터 요코에게 마음을 닫아버린 아내 나쓰에. 요코는 갑자기 변한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는 걸 알고 모든 상황을 묵묵히 이겨낸다. 세월이 지나 요코에게도 오빠 도루의 친구인 x군이 사랑을 고백해 오고, 나쓰에는 요코가 그런 훌륭한 집안의 자제와 결혼하는 것이 못내 못마땅해 결국엔 요코가 자신의 친딸인 로리코를 죽인 범인의 딸임을 폭로하고 만다.
자신에게 범죄자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안 요코. 어떤 환경적인 어려움도 다 이겨낼 수 있었고 그런 이유들로 자신이 죄를 짓기를 거부하며 살아왔던 요코에게 범죄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본질적인 죄의식은 요코를 자살로 내몰고 만다. 로리코가 죽었던 그 강가에서 자살한 요코. 그러나 진실은 요코는 범죄자의 자식이 아니었던 것. 진실이 밝혀지며 나쓰에와 스지구치는 죄책감에 절규한다. 요코를 살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쓴 스지구치. 이 글의 마지막은 요코가 살아날 거라는 희망을 암시적으로 표현하며 끝을 맺는다.
주인공은 우연히 자기 자신이 사생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커다란 충격을 받고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마음과 또 자신의 출생의 비밀로 인하여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해 버리고 만다. 그래서 끝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기로 결심하고 어느 추운 겨울날 눈 덮인 언덕길을 오르게 된다.
드디어 높은 언덕에 오른 주인공은 하얀 눈길 위에 남겨놓은 자신이 걸어온 발자국을 한번 바라보게 된다. 자기의 발자국을 보는 순간 분명히 자신은 똑 바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앞만 향해서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눈 위에 나 있는 발자국은 비뚤어지고 흐트러진 발자국이 아닌가. 인생을 바르게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고 자기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인공은 이 일로 인하여 그 동안 용서할 수 없었던 어머니를 용서하게 된다. 빙점은 인간의 사랑의 한계를 보여준 소설이다.
지은이 미우라 아야코(三浦 綾子 1922~1999)는 홋카이도 아사히가와 시에서 출생, 아사히가와 시립여고를 졸업하였다. 결핵으로 수년간 요양생활을 하다가 신실한 기독교인이 되었고, 남편의 권유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64년 아사히신문사 현상소설에 『빙점氷點』을 출품하여 최우수작으로 당선되었고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하게 되면서 지방에서 평범하게 잡화점을 경영하는 주부에서 유명 작가로 떠올랐다. 그녀의 작품은 인간의 원죄 등을 주제로 한 저서가 많다.
미우라 아야코는 자신의 기도를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기도는 "하나님! 은혜에 익숙해지지 않게 해 주세요."였다. 그녀는 투병하는 중에 남편을 만났고, 남편의 많은 사랑도 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병도 고침을 받았는데, 그 당시 남편에 대한 고마움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고, 정말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고 고백까지 했었는데, 그런데 몇 년을 같이 살다보니 점점 그 고마운 마음이 점점 시들해갔고, 그 삶에 익숙해지면서 당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남편에게 신경질도 내고, 화도 내고 미워하기도 했었는데 어느날 기도 중에 자신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 은혜에 익숙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은혜에 익숙해지다 보면 감사가 형식적이 되고 고맙고 감사한 마음도 형식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우라 아야코는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평화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주제로 한 많은 저작들을 발표했다. 1982년 직장암 수술을 받은 이후로는 남편의 대필로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만년에는 파킨스병으로 투병 생활을 하다가 1999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소설은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인기를 끈 일본 소설로 꼽힌다. 빙점을 포함한 그의 작품은 대한민국에서 1965년부터 2004년 사이 146편이 306회나 번역, 출간되어,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치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번역된 작품 수가 가장 많은 일본 작가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