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오리
김정자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 마당 한쪽에 수많은 오리를 길렀다. 그때는 오리 집이라고 해봐야 철망으로 대강 어리만 한 울이었고, 집 식구들과 오리들은 한 식구처럼 서로 바라보며 살았다. 새벽이면 장닭과 오리들의 합창소리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중에 대장 오리가 수놈인데 암놈들 보다 깃털이 예쁘고 키도 커 잘생겼다. 대장 오리가 ‘꽥꽥’거리기 시작하면 다 함께 소리를 내서 귀가 따가웠다. 그러다가 대장 오리가 조용하면 다른 오리들도 조용히 소리 내지 않는 오리들이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집 앞에는 개울물이 흐르고 있어 오리를 사육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새벽에 일어나신 어머니는 제일 먼저 오리장 문을 열어 놓는다. ‘괙괙’ 거리며 개울물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오리들은 누가 안내하지 않아도 개울물로 뛰어들었다. 몸통에 비해 짧은 다리는 앞쪽을 향한 세 개의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나 있다. 발바닥은 까치발을 하듯 가볍게 뒤뚱거리며 날개까지 편 채 신이 나게 개울물로 경주라도 하듯 날쌘 몸놀림이 마치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수십 마리, 많을 때는 백여 마리까지 길렀다. 오리는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잘도 먹었다. 날곡식도 풀도 잘 먹었다. 제일 좋아하는 것은 지렁이, 미꾸라지 등 주로 생식이었다.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K 시인은 오리의 먹세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오리는 무지무지 먹는 짐승이다. 무엇이든 잘 먹어 치웠다. 먹는 것도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밥통을 다 채우고 입아귀까지 꽉 차야 그만 먹었다. 목줄기 까지 채웠고, 먹을 땐 가서 손으로 꼬리를 잡아도 꿈쩍을 하지 않고 목을 조금만 꽉 잡으면 먹은게 입으로 게워져 나왔다. 냇가에 있는 다슬기를 통째로 그냥 주워 먹는데 저녁나절 집으로 들어올 때 보면 위 안에 든 다슬기 때문에 무거워서 잘 걷지를 못하고 잡아서 밥통을 만져보면 다슬기가 빠각빠각거리며 입으로 나온다” 라고 했다. 미련한 오리의 식탐이 바보같다는 생각에 웃음을 참을수가 없지않은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개울가에 나가 오리들을 지키는 일이 나의 작은 임무였다. 이따금 줄어드는 오리숫자 때문이다. 황혼이 질때면 종일 개울물에서 신 나게 놀던 오리떼를 몰아 제집에 가두는 일은 오빠가 하였다. 저녁때 오리를 몰고 들어오면서 장대로 오리를 헤아리면 이따금 한 마리가 없어지곤 하였다. 그 시절에는 참외 서리 복숭아 서리처럼, 오리도 한 마리 슬쩍 훔쳐가 잡아 먹는 나쁜 사람들이 있었다. 한번 잃어버린 오리는 영원히 찾지 못하는 것이 뻔한 일이었다. 누구의 짓일까? 궁금하여 잠들지 못한 날도 많았다.
오리들이 물 위에 둥둥 떠다닐 때는 그들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물속에서 노는 동안에 긴 목을 잠수하여 물고기를 날쌔게 잡아먹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물속에 놀던 오리가 밖으로 나와 한번 몸을 흔들면 오리 깃에는 물기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그 애들 덕분에 오리털이 방수 깃털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알게 되었다.
오리는 아무 곳에서나 알을 낳는다. 오리알은 달걀보다 두 배는 큰 알이다. 하루에 오리가 알을 많이 낳을 때는 몇 바구니씩 되었다. 그렇게 많은 오리알이었지만, 좀처럼 식구들에게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오리알들은 어머니에게는 황금알이었기에…. 오리알 찜을 하게 되면 할아버지 상에만 올랐다.
오리알이 많이 모이면 암탉이 부화시킨다. 오리 새끼들은 알을 깨고 나와 금방 걷는다. 어미가 하는 짓은 무엇이든 따라 하고 배우려 했다. 부리를 좌우로 휘저으면 새끼들도 흉내 내고 어미가 물속에 들어갔다 쏙 나오면 그대로 따라 한다. 처음에는 멈칫거리다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물에 뛰어드는 용감한 오리 새끼들이다.
한동안 물에서 놀던 어미 오리는 마치 새끼오리를 쉬게 하려는지 개울가 양지바른 풀숲에 나와 앉으면 새끼들도 따라나와 어미 둘레에 함께 앉아 햇볕을 쬐며 어미 따라 졸고 있는 귀여운 오리새끼들!
오리들은 오빠가 없을때도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의논이나 한 듯 질서 정연하게 뒤뚱거리며 우리 집 대문으로 찾아들었다. 대장 오리가 앞장서고 그 나머지는 뒤따라 나래비로 들어왔다. 주둥이가 넙죽 하여 되려 예쁘게 보이기도 한 오리는 주인집 딸인 나를 보면 더욱 ‘꽥꽥’ 거렸다. 오리들도 우리집에서 내가 제일로 어린아이라는걸 알고 만만하게 본것일까? 어떤놈은 싸움이라도 할것처럼 정면으로 꽥꽥거리며 달겨들기도 하였다. 사람들만 약자를만만하게 보는것이 아니라 동물도 약자를 용하게 알아보는것도 알았다.
냇가에서 오리를 지켜보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천진난만했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오리는 아무리 더러운 물속에서 온종일 놀다 나와도 오리가 한 번만 몸짓으로 털면 오리 깃털은 말끔하다. 오리는 속도 그렇게 깨끗하지 않을까? 오늘따라 더러운 물에 물들지도, 물에 가라앉지도 않았던 냇가에 가 그놈들을 만나고 싶다. 나도 오리의 깃털처럼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인생을 살아갈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