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2장 7절 ~ 12절
O 열흘 후에 주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 7)
And it came to pass after ten days, that the word of the LORD came unto Jeremiah 7)
주의 말씀이 열흘 후에 예레미야에게 임하는 모습입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은 그 즉시가 될 수도 있고, 열흘 또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바로 오지않는다고 응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종된 자세가 아닙니다. 응답하심은 주의 뜻이며, 아직 응답하지 않으심도 주의 뜻입니다. 그리고 저는 주의 응답이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전달된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것입니다.
그가 카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한 군대의 모든 대장들과 백성을 작은 자로부터 큰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러서 8)
Then called he Johanan son of Kareah, and all the captains of the forces which were with him, and all the people from the least even to the greatest, 8)
그들에게 말하니라. 너희가 나를 보내어 너희의 간구를 그분 앞에 드리게 하였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9)
And said unto them, Thus saith the LORD, the God of Israel, unto whom ye sent me to present your supplication before him; 9)
supplication ① 탄원 ② 애원 ③ 기원
요하난이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있습니다. 어제 글에서 언급한대로 요하난은 베들레햄인근의 킴함으로 이미 이집트로 방향을 잡고서 하나님의 뜻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뜻을 물어본 것은 그들을 위하여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주께서는 반드시 응답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하난과 사람들의 가장 안전한 선택은 주의 뜻을 묻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안전한 선택은 없는 것입니다. 열흘 만에 주의 응답이 예레미야를 통하여 그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가 아직 이 땅에 거하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겠고, 내가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행한 재앙에서 스스로 돌이킴이라. 10)
If ye will still abide in this land, then will I build you, and not pull you down, and I will plant you, and not pluck you up: for I repent me of the evil that I have done unto you. 10)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빌론 왕을 두려워 말라. 그를 두려워 말라. 주가 말하노라. 이는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고, 너희를 그의 손에서 건져낼 것임이라. 11)
Be not afraid of the king of Babylon, of whom ye are afraid; be not afraid of him, saith the LORD: I am with you to save you, and to deliver you from his hand. 11)
위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너희가 두려워하는 일루미나티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를 두려워 하지 말라. 주가 말하노라. 이는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고 , 너희를 일루미나티의 손에서 건져낼 것임이라.
이렇게 읽힙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일루미나티에게 항복하고 복종하라는 말씀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담대히 맞서나가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또 내가 너희에게 자비를 보이리니 그로 하여금 너희에게 자비를 갖게 하고, 너희를 너희 본토로 돌려보내게 하리라. 12)
And I will shew mercies unto you, that he may mercy upon you, and cause you to return to your own land. 12)
요하난의 간구에 대한 응답은 시드키야가 받은 메시지와 같았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서 그 땅을 지키고 있으면 주께서 보호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사람의 생각에는 위험하게 보였을 수 있습니다. 주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목숨을 건 모험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됩니다.
이집트로 떠나려는 요하난의 일행의 모습을 보면 요즈음에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생각이 납니다. 가자지구는 이집트와 맞붙어있는 지역이 있는데 이집트는 같은 이슬람인 팔레스타인들을 받아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이집트의 이기적인 자국 우선주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쩔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면 이스라엘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완전히 내몰아 버리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도를 아는 이집트가 이스라엘에게 좋은 일을 해줄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가자지구 다음은 서안지구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만든 조직으로 보입니다. 네타냐후가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려있는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도발로 네타냐후의 입지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마치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것입니다. 이번 하마스의 작전명은 알아크샤의 홍수작전이었습니다. 알 아크사 모스크에서 공습 전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례한 행동으로 자극을 하고 그 다음에 그에 대한 보복이라는 명분으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말이 안되는 설명입니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 아크사 홍수작전 전에 그 모스크에서 무례한 일을 벌였다고 하루만에 이러한 큰 규모의 공습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네타냐후와 하마스는 같은 조직의 다른 형태이며, 이들은 서로 주고받는 작전을 수행하는 기관이 확실한 것입니다. 네타냐후와 하마스는 일루미나티의 정반합처럼 서로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루미나티가 원하는 합을 위한 장기 말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이것은 지금의 한국에 민주당과 국민의 힘의 대립처럼 보이는 모습과도 동일한 것입니다.
이번에 병원 공습으로 약 100명정도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도 앞으로 일어날 대규모의 학살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을 적응 시키는 행위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인명피해가 충격적이지 않도록 하마스와 이스라엘 정부는 조율하여 사건을 일으킬 것입니다.
앞으로 가자지구에서 대규모학살이 일어날 것이며, 그에 대한 사람들의 적응을 위하여 이러한 일들이 반복될 것입니다. 그렇게 잔인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학살이 일어나 가자지구가 정리가 되면 그 다음은 서안지구의 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모스크를 철거하는 일까지 일어날 것입니다. 그 자리에 제 3성전을 세우려는 계획이 이미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알 아크사 모스크가 철거되면 전세계의 이슬람은 모두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에는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일이 일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예루살렘이 군대에게 포위되어 있는 것을 보거든 그때는 패망이 가까운 줄 알라.
그때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피하고, 도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시골로 가되, 시골에 있는 사람들은 도성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누가복음 21장 20절 21절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일을 보게 된다면 우리에게 패망의 날이 가까이 온 것이고, 주의 다시오심도 가까워짐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있는 그대로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피해야하고, 그외의 지역 즉 우리까지도 포함되는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야 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마지막때에 도시가 15분도시로 봉쇄될 것으로 보입니다. 15분도시의 명분은 친환경입니다. 그러므로 시골에 있는 사람들을 강제로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15분도시는 지금의 가자지구의 모습과 동일할 것으로 보입니다. 가자지구는 전기와 수도와 난방을 인구수로 계산하여 조절하여 공급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극단적인 통제에 놓인 감옥이 되는 것입니다. 탄소중립이라는 거짓말로 물과 식량과 전기를 제한 공급하는 압제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일루미나티의 행위를 분석해보면 이들은 어떤 일을 할때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서 시작합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의 동의를 얻어 악을 실현하려 합니다. 이는 코로나 초기에 신천지를 이용하여 그들을 통하여 여론 몰이를 하여 사람들의 자유를 통제함의 동의를 얻은 것입니다.
신천지와 이태원 동성애자 클럽에서 코로나가 확산되어 퍼짐으로 사람들은 특히 기독교인들이 그 사람들이 압제 받는 것에 동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로 드러난 진실은 그들이 일루미나티의 계획에 의하여 누명을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나타날 짐승의 표에서도 그것을 거부하여 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로 나타날 사람들이 사람들 특히 기독교인들의 미움을 받을 만한 대상이 누명을 쓸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부패한 정치인들이 뇌물을 받기위해 짐승의 표를 거부한다고 선동한다면 그들에게 부패하지 않도록 표를 강요하는데 동의할 것인가요? 그들의 부패와 짐승의 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일 뿐입니다.
코로나에서 나타났듯이 신천지와 동성애자 클럽이 매도되고 통제받은 다음에는 우리에게 그 압제가 드리워졌습니다. 이는 가자지구가 정리되면 그 다음은 서안지구와 예루살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짐승의 표의 시기에 지탄받을 대상이 통제에 대상이 되더라도 그들을 매도하는 데에 우리가 동참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그들의 죄악에 동참하는 것이 되고 그 다음의 압제의 대상은 우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내용처럼 국민 사형투표에 참여하여 사형을 클릭하는 것은 살인에 참여하는 것이 되고, 압제자의 결정에 따라 그 다음의 대상이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국민사형투표에 동참하는 것은 그 투표를 만든자에게 생명의 결정에 판단이라는 아주 중대한 권한을 넘겨주는 것이 되고, 그 대상은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압제에 동의하는 것은 내 자신에 대한 압제에 동의하는 것이 됩니다. 악인이라도 사람이 판단하면 안되고 법에 맡기고 그 다음에는 주께 맡기는 것이 오만한 사탄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