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초 학부모들의 뜻은 정당하다
이국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
광주 서구가 지난달 16일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 김백일의 이름을 딴 ‘백일로’ 대신 ‘학생독립로’로 변경해 사용해 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모처럼 무언가 막힌 속을 확 트이게 하는 반가운 소식이다.
서구는 친일인사의 이름을 딴 백일로에 대한 비판이 일자 지난해 12월 추진계획을 수립, 주민의견 수렴 등에 나섰고, 그 결과 주소사용 주민 665명 중 절반 이상 서면동의를 얻은 결과, 전체 69%(460명)가 찬성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지난 달 3일 ‘도로명주소위원회’ 회의를 개최하여 최종 ‘학생독립로’로 변경 결정했다. ‘학생독립로’는 일제강점기 잔재를 청산하는 역사적 의미는 물론 인근에 위치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등의 상징적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 도로명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항일독립지사를 찾아 기리지는 못할망정, 광주가 하필 처음부터 항일 독립운동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된 ‘간도특설대’의 주역이었던 사람의 이름을 따 도로명과 학교 이름으로 써 온 사실은 다시 생각해도 민망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논란이 된 그곳은 일제의 식민지 폭압과 압제를 분연히 뚫고 일어선 거족적인 반일 독립항쟁을 기리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 위치한 곳이어서 더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사실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이름을 딴 곳이 유독 광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앞 1.2km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중의 한 사람인 인촌 김성수의 이름을 딴 ‘인촌로’라 부르고 있지만, 항일독립운동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친일파의 이름을 도로명으로 쓰고 있다. 그런 점에서 광주의 결단은 각별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익숙한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도로 이름 하나가 바뀜에 따라 도로 명판, 건물 번호판은 물론 주민등록증, 우편물 주소 등이 모두 새로 바뀌어야 해 관련 행정절차도 손이 많이 따를 뿐 아니라, 아파트 간판·학원이나 가게 간판까지 바꿔야 한다면 주민들의 불편은 물론 경제적 부담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여러 불편에도 불구하고 주저 없이 명칭 변경에 나선 서구 주민들의 결단은 광주가 ‘왜 광주인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적 사건으로 오래 간직될 것이다.
이에 반해 ‘백일초등학교’ 학교 이름 변경 절차는 다소 진통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일부에서는 학교 측에서 그동안 학교 이름 개명 절차 과정을 밟아 그중 1순위로 ‘예향’을 교육청에 보고했는데 교육청에서 일방적으로 이런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며 불쾌한 반응이다. 학부모들이 몹시 자존심이 상해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과정에서 누가 구성원의 뜻을 왜곡했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나간 얘기지만 작년 11월 학교 이름 변경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부터 오늘의 결과는 예견됐다고 할 수 있다.
결과는 찬성 508명(51.6%), 반대 477명으로 개명 여론이 높게 나옴에 따라 그때부터 개명절차를 밟은 것인데, 이 설문조사에는 재학생과 졸업생, 학부모, 교직원 등이 참여했다.
그런데, 결과를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찬성이 51.6%로 그야말로 간신히 50%를 넘긴 것인데, 재학생, 졸업생, 학부모는 모두 찬성이 높았던 반면, 유일하게 교직원들만 반대의견이 많았던 점이다.
만약 찬성이 아니라 반대가 51.6%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보나마나 백일초등학교는 또 한번 여러 구설수에 오르내렸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재학생, 졸업생, 학부모들의 남다른 역사의식에 큰 박수를 보내고싶다.
석연치 않은 것은 교명 선정 절차에서도 확인된다. 학교 측이 지난해 12월18일 공모절차를 최종 마감한 결과 총 173개 교명이 접수됐다. 학교 측은 바로 다음날 이 중에서 임의로 20개를 압축해 다시 구성원들에게 선호도 조사를 했고, 이 결과 예향, 다원, 하랑 3개를 운영위회의에 상정해 최종 예향을 1위로 교육청에 보고했다.
그런데, 임의로 20개를 압축하는데 교무위원들만 참여했고, 이 과정에 가장 많은 응모 이름이었던 ‘독립’(6건 접수)은 선호도 조사로 올린 20개 이름의 대상에서 처음부터 배제되고 말았다. 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이름을 처음부터 배제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비롯된 김백일 문제가 의도치 않게 학교 구성원들의 자존심 문제로 와전되게 된 데는 학교 측의 책임이 적지 않다. 구성원의 뜻을 왜곡한 것이 과연 교육청이었을까? 백일초등학교는 지금이라도 학부모들을 비롯한 구성원들의 뜻이 본의아니게 왜곡되지 않도록 지금까지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될수 있도록 노력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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