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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그리스도"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초대교회가 가진 가장 실제적인 문제 중에 하나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이름과 칭호를 찾아내는 일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주님을 부르는 칭호들이 여러 가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은 예수님을 "인자", "다윗의 아들", "메시야", 또는 "하나님의 아들" 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칭호들은 유대인들에게는 익숙했지만, 헬라 문화 속에 살던 이방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낮설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 칭호였습니다. "인자"라는 명칭은 다니엘서와 같은 히브리 성문서의 배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었고, "다윗의 아들"이나 "메시야"라는 칭호도 유대인에게는 익숙하지만, 이방인에게는 낮선 칭호였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도 헬라 신화에 나오는 반신반인의 영웅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명칭들은 헬라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호칭으로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초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헬라 세계에서 나타낼 수 있는 적절한 호칭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Lord)을 의미하는 "큐리오스"라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왜 이 칭호가 이방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데 적합했는지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 신약 성경에 사용된 주님(큐리오스)
"주님"(큐리오스)이라는 말은 신약 성경에서 600회 이상이나 나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300회 이상은 바울의 책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주님은 부활하시기 전에는 큐리오스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에 큐리오스라는 말은 주님을 부르는 위대한 칭호가 되었습니다. "큐리오스"는 일반적으로 존경을 나타내는 호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복음서에서도 여러 번 예수 그리스도를 "큐리오스"(주님)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 의미는 "주님"(Lord)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선생님"(teacher), 또는 "주인님"(master)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과 사마리아 여인은 주님을 "주님"(큐리에)이라고 불렀습니다(마 7:28, 마 15:27, 요 4:11). 그러나 그녀들이 부른 "큐리에"라는 호칭은 세상을 통치하는 주님이라기 보다는 존경하는 사람을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에 가까웠습니다. 마가복음이나 마태복음에서 "큐리오스"라는 말은 대부분 이와 같이 "선생님"이라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는 큐리오스라는 명칭이 "Lord" 라는 뜻으로 사용된 경유도 있습니다. 특히 바울의 글에서는 "큐리오스"라는 말이 대부분 "Lord"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는 고백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바울은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할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빌 2:11). 초대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부활을 믿는 것은 구원을 받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었습니다(롬 10:9). 바울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직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고전 12:3). 바울은 자신이 전파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주님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고후 4:5).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주님도 하나이며,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밖에 없다고 가르쳤습니다(엡 4:5). 베드로도 그리스도인들은 마음 속으로 예수를 주님으로 알고 그 이름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벧전 3:5). 초대 교회 성도들의 신앙 고백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초대 교인들에게 예수께서 주님이라는 고백이 중요했습니다.
* 주님(큐리오스)이라는 말이 가진 여러 가지 의미들
그러면 왜 초대 교회에서 이 고백이 그렇게 중요하게 간주되었을까요? 우리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당시에 "큐리오스"라는 말이 어떤 뜻으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에 헬라 세계에서 "큐리오스"(주님)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1) 큐리오스는 존경과 예의를 갖추어서 다른 사람을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이었습니다. 이 말은 영어의 "Sir", 불어의 "Monsieur", 독어의 "Herr"에 해당하는 말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이러한 예가 있습니다. 두 아들의 비유에서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명을 받고 "예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때에 사용된 말이 큐리오스였습니다(마 21:29).
2) 큐리오스라는 말은 편지에서 "친애하는"(My dear)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아피온이란 군인은 그의 아버지 에피마쿠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친애하는 나의 아버지"(큐리오스)라는 말로 인사를 시작했습니다. 또 아폴리나리우스라는 사람도 그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친애하는 어머니"(큐리아)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이러한 뜻으로 사용된 적이 있습니다. 요한 2서를 읽어보면 "장로인 나는 택함을 받은 부인에게..."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부인"이라는 말은 "큐리에"를 번역한 말입니다. 여기에서 택함을 받은 주인이라는 말은 "나의 친애하는 선택된 사람"(My dear elect one)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3) 큐리오스라는 말은 "소유주"를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포도원 주인"(큐리오스)과 "나귀의 주인"(큐리오스)처럼 큐리오스라는 말이 소유주라는 뜻으로 사용된 경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마 20:8, 21:40, 막 12:9, 눅 20:13,15, 19:33).
4) 큐리오스란 말은 종과 반대되는 개념인 "주인"(Master)의 뜻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이러한 예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이 "두 주인"(큐리오스)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4). 바울은 노예를 거느린 주인들에게 성도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 것을 요구했습니다. 바울은 주인(큐리오스)에게 종을 돌보고, 예수께서 자신의 주인(큐리오스)임을 기억하고 살라고 권면했습니다(엡 6:5,9, 골 3:22, 4:1).
5) 큐리오스는 "가정의 가장"을 나타내는 용어였습니다. 에피쿠테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외부에서 질서가 잘 잡힌 집에 가서 명령할 수 없다. 만일 그렇게 하면, 가장(큐리오스)이 그를 추방해 버릴 것이다."
6) 큐리오스는 당시에 "후견인"의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당시에 여인은 법적인 합의나 계약을 맺을 때에 후견인(큐리오스)을 동반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여인들은 결혼이나 이혼할 때에는 반드시 후견인과 동행해야 했습니다. 당시에 큐리오스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 도와줄 수 있는 후견인, 또는 보호자를 의미했습니다.
7) 큐리오스라는 말은 "권위"를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당시에 큐리오스라는 말은 군사적인 결정을 내리거나, 전쟁에 군대를 파견하는 권한을 가진 사람을 부를 때에도 사용되었습니다. 또 당시에 사형을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판사에게도 이 명칭이 사용되었습니다. 당시에 큐리오스는 범할 수 없는 법, 명백하고 확고한 결정, 그리고 권위 있는 판결이나 비준된 조약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도 이런 뜻으로 사용된 예가 있습니다. 주님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큐리오스)이라!"고 하셨는데(막 2:28), 이 경우에 "주인"(큐리오스)은 범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진 분을 의미합니다.
8)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큐리오스라는 말은 로마 황제를 부르는 호칭이 되었습니다. 서양에서 사람들은 황제란 칭호를 사용하기를 주저했습니다. 그 이유는 황제라는 말은 주인과 종의 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같이 보여서 썩 유쾌한 명칭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양권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동양에서는 왕과 신하의 관계는 항상 주종 관계를 가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처음부터 "큐리오스"라는 말을 황제를 부르는 말로 사용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황제는 신으로 간주되기 시작했으며, 큐리오스라는 말은 점점 더 널리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세기 말, 즉 도미티아누스 시대에는 큐리오스라는 말이 황제의 고유한 칭호가 되었습니다. 이 칭호는 법령, 칙령, 선언 등을 선포할 때에 서두에 쓰였고, 심지어 동전에도 사용되었습니다.
9) 큐리오스라는 말은 남신이나 여신을 부르는 칭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로마의 신병 아피온은 그의 부친 에피마쿠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바데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에 주(큐리오스) 세라피스가 구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여기에서 큐리오스는 말은 세라피스 신을 부르는 명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0) 마지막으로 큐리오스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70인역을 번역한 학자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큐리오스, 즉 주님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70인경에서 큐리오스는 여호와를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여호와를 큐리오스로 번역한 경우는 150번이나 되었습니다(눅 2:9, 4:8 참고).
신약 성경에는 "인자", "다윗의 아들", "메시야", 또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호칭들은 유대인들에게는 익숙했지만, 헬라 세계에 살던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소 낯설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는 이방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호칭이 필요했습니다. 마침내 초대 교회는 이러한 호칭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큐리오스"(주님)라는 호칭이었습니다. 우리는 어제 큐리오스라는 말이 신약 성경에서 어떤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또한 당시 사람들에게 이 말이 어떤 뜻으로 사용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시에 큐리오스라는 말은 주인과 선생, 후견인, 왕, 또는 신의 개념을 가진 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성도들은 헬라 세게에서 큐리오스라는 말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때로 그들은 예수님을 부를 때에 "주 예수", 또는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이러한 고백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께서 인생의 주인이 되시며, 자신이 예수님의 종이라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이시며 자신이 그 자녀라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도와주시는 후견인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생애를 주관하시는 왕이시며 자신은 예수님의 백성이라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께서 영원히 경배해야 할 하나님이며, 자신은 예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당시에 헬라어 "큐리오스"(주님)라는 말에는 이러한 여러 가지 뜻이 모두 담겨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의미를 알게 되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함부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진실된 마음이 없이 입으로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진정한 신뢰와 존경과 경외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백은 삶 속에서 주님의 뜻을 행하는 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 역시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 예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일을 중지하게 될 것이며, 그 이름을 귀중하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이유
그러면 초대 교회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은 언제부터 왕과 경배의 대상이신 주님이 되셨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 대답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1)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주님이 된 것은 "부활하신 때"부터였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주님으로 불리게 된 것은 부활 사건과 깊은 관계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사심으로,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롬 1:4)..." 바울은 예수께서 부활을 통해서 능력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부활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경배받기에 마땅한 존재임을 알려주셨습니다.
2)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주님으로 간주된 것은 "세례를 받으신 때"부터였다고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부께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마 3:17, 막 1:11, 눅 3:22). 한 초기 교부는 이 말이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고 기록한 (시 2:7)에서 인용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왕의 대관식에 사용된 말이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말을 근거로 해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30년 동안 하나님에 의해 준비되고 훈련되었으며, 세례를 받을 때에 하나님의 양자로 입양되었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부께서 주님을 아들로 인정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나님의 양자로 입양되었다는 주장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계셨기 때문입니다.
3)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12살 때부터 성전에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갖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주님의 12살 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절기가 끝난 후에 부모들과 함께 고향으로 가지 않고 성전에 남아서 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부모들은 도중에 예수를 잃어버린 것을 알고, 예수님을 찾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예수님을 발견했습니다. 그때에 주님의 부모들이 가볍게 예수님을 책망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부모님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것을 모르셨습니까?(눅 2:48)" 이 구절을 보면 이때에 주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날에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4)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으셨다고 말합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천사들이 마리아를 방문하여 예수의 탄생 소식을 전해준 기록이 있습니다. 그때에 천사는 마리아에게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1)"고 전한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예수)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2-33)." 천사는 마리아에게 예수께서 "지극히 높으신 이",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이를 근거로 예수께서 탄생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탄생시에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아들이셨다.
그러면 성경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요한복음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께서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 아들로 존재해 오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요한복음의 저자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부자 관계는 시간을 초월해서 영원 전부터 계속되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는 역사가 시작되기 전에 시작되었으며, 현재와 미래에도 영원히 그 관계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초대 교회와 우리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최종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도마가 예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 이러한 고백은 초대 교회 성도들의 공통적인 고백이었으며, 또한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모든 성도들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언제든지 있어 왔으며, 앞으로도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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