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보다 싸게 나온 매물은 거래가 이뤄집니다. 이달 초 이후 급매물은 다 팔려서 매도 호가가 2000만원쯤 올랐어요."
한 달 전만 해도 최저 10억5000만원에 살 수 있었던 서울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 112㎡(34평)형은 현재 10억7000만원에 매물이 나온다. 잠실동 '뉴스타한솔공인' 현채연 사장은 17일 "매수자들이 오른 가격에라도 사겠다고 적극적으로 달려들진 않지만 급매는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경기 구리시 교문사거리 인근에 개관한 금호건설의 남양주 '신(新)별내 퇴계원 어울림' 아파트 모델하우스에는 사흘간 8000여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금호건설 관계자는 "분양시장 분위기가 워낙 침체돼 있어 내심 걱정이 많았는데,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몰렸다"면서 "1순위는 몰라도 순위 내 마감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주택시장에 조금씩 온기(溫氣)가 돌고 있다. 아파트 거래량이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용인 등 일부 지역의 중소형 매매가격도 지루한 하락세를 마감하고 모처럼 반등세를 타고 있다.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도 분양가 할인 공세에 힘입어 실수요자의 계약이 꾸준하게 이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집값이 추가 하락을 멈추고 거래량이 2~3개월 정도 더 늘어난다면 본격적인 반등도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불투명한 실물경기 전망과 금리 인상 등 복병도 적지 않아 부동산시장이 회복되더라도 'V'자형이 아닌 완만한 'U'자형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강남 3구 전월 대비 아파트 거래량 21% 늘어
주택경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는 거래량이다. 일반적으로 거래량이 늘어나면 집값도 오르는 경향을 보였다. 실제로 집값이 정점이었던 지난 2006년 11월 전국 아파트 실거래량은 9만가구에 육박했다가 금융위기가 휩쓸던 지난 2008년 12월에는 2만가구에도 미치지 못했다. 올 들어서도 실거래량은 3~4월 4만가구를 넘은 뒤 7월을 제외하고 계속 전월보다 감소세를 보였다.
그런데 국토해양부가 17일 발표한 9월 실거래량은 3만3000여건으로 전달보다 늘었다. 특히 집값을 선도하는 서울 강남 3개 구(강남·서초·송파구)의 거래량은 21.7% 증가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전체 거래량도 11.5%(2248건)가 늘었다. 국토부 이원재 주택정책관은 "최대 일주일에 달했던 추석 연휴를 감안하면 예상 밖"이라며 "주택 거래시장이 정상화됐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지만 회복 기미를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거래량이 늘면서 아파트 매매가도 중소형은 반등세를 타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용산구 등 전세 매물이 부족한 도심권 소형 아파트도 이달 들어 전세 수요가 일부 매매 수요로 전환되면서 급매물 시세가 2000만~3000만원씩 뛰었다.
◆분양시장도 수요자 발길 늘어
분양시장도 원기를 회복하고 있다.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는 분양가를 낮춘 단지 중심으로 계약률이 조금씩 높아지는 분위기. 경기 평택에서 미분양 물량을 판매 중인 반도건설 관계자는 "최근엔 하루 1~2건씩 꾸준히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포 한강신도시에서 분양 중인 삼성물산측도 "실수요자 중심으로 하루 20~30건씩 계약 관련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모델하우스도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수원 이목동의 '장안 STX칸' 모델하우스는 지난 15일부터 사흘간 2만여명이 다녀갔다. 이에 앞서 남양주 별내지구 '우미린'과 부산 정관지구 '동일스위트' 견본 주택에도 하루 5000명 이상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우미건설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중도금 대출이나 집값 상승 여부 등 구체적인 상담을 하는 방문객이 많아졌다"면서 "심리적인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정부 대책·전세금 상승 '쌍끌이' 효과
최근 주택시장이 활기를 보이는 것은 정부의 8·29부동산 대책과 전세금 상승세가 맞물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8·29대책은 추석 이전만 해도 큰 효과가 없는 듯했다. 그러나 이달 들어 실수요자에 대한 DTI(총부채상환비율·소득에 따라 대출 규모를 제한하는 제도) 해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시중 은행에서 대출 예정 고객이 DTI 적용 대상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주택 소유 정보를 확인하는 조회 건수가 늘고 있다. 대책 발표 초기엔 주간(週間) 100~300건에서 10월 들어 400여건을 돌파하며 지난주에는 455건을 기록했다. 닥터아파트 이영진 이사는 "전세금이 오르면서 새 아파트의 입주율이 회복되고 중소형 매매가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택시장이 추가 하락보다 장기적으로 'U'자형의 완만한 회복 국면을 보일 것이라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PB 팀장은 "신고건수로만 보면 거래시장의 지지 기반은 어느 정도 형성된 것 같다"며 "수요자 대부분이 추가 하락 가능성이 작다는 데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연구소장은 "거래량은 가격보다 훨씬 중요한 시장의 주요 지표"라며 "거래량 증가는 신규 진입자가 늘어난다는 뜻이어서 시장이 점차 정상화돼 간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